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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8/10/14 14:27:03수정됨 |
Name | 메존일각 |
Subject | 내 인생 최고의 게임, LOOM [스포다수] |
얼마 전 나간 번개 모임에서 [LOOM] 얘기가 잠깐 나와서 고대 유물을 하나 발굴해보았습니다. 십 수년 전에 쓴 리뷰를 거의 그대로 옮겨와 봅니다. --- 제작: 루카스 필름(현 루카스 아츠) 발매: 1990년 * 리뷰에 쓰인 스크린샷은 모두 1992년도에 발매된 256컬러 버전을 바탕으로 하였다. 음악을 곁들여 본문을 읽으면 감동이 두 배! (정말?) 필자가 최초로 접해본 어드벤처 게임은 King's Quest 3(주01)였다. 국민학생 수준에선 상당히 어려웠지만, 명령어 입력에 따라 주인공 반응이 달라지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낑낑대기만 할 뿐 마법사의 성조차 벗어나지 못한 세월을 한동안 보내다 중학생 무렵 우연히 매뉴얼을 구하고 사전 꽤나 뒤적거리며 겨우 클리어 할 수 있었다. 이후 몇 년간은 당시 발매된 어드벤처 게임을 거의 빠짐없이 즐길 만큼 푹 빠져 살았다. 그리고 당시 즐긴 수많은 게임 중 Loom을 으뜸으로 꼽고 있다.
LOOM의 타이틀! 이 화면만 봐도 가슴이 설렌다. Loom을 접하다! 중1 때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친구 집에 놀러가 보니 녀석은 모니터의 뭔가를 열심히 옮겨 적고 있었다. 녀석은 나를 보더니 연필을 내려놓고 ‘이거 꽤 특이해.’ 하며 화면을 가리켰는데…. 흑백모니터가 만연하던 그때 그 시절, 녀석의 집엔 부르주아의 전유물이던 컬러모니터가 있었다. 덕분에 난 첫 대면부터 제대로 된 화면을 감상(?) 할 수 있었다. 한데 이때 받은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특이’했다. 지금껏 해본 게임을 통틀어서도 이건 좀 달랐다. 화면 하단에는 익숙한 영어 동사들의 나열 대신 그저 나뭇가지 하나에 음표만 덜렁 있는 게 아닌가? 이어 친구가 보여준 타이틀 화면에서는 음악이 함께 들려왔다. 음악이라고 해봐야 당시엔 사운드 카드도 없는 한낱 비프음일 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심금을 울렸다. 이때의 감명은 비프음을 테이프에 녹음하여 듣게 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 당시엔 이 음악이 ‘백조의 호수’인지도 알 길이 없었으니까. 여담이지만 훗날 다른 곳에서 Ad-Lib(주02)으로 Loom의 BGM을 들었을 때 비프음 만큼의 감흥도 없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의아할 따름이다.
Prologue 우리나라엔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Loom에는 프롤로그가 있다. Loom의 역사와 보빈의 과거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주는 이야기인데, 게임 내에서는 단지 단편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클릭 한 번으로 떨어지지만 반드시 낙엽을 떨어뜨려야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이 장면은 '시작'을 의미하는 새벽녘과 지금까지 현실의 '종지부'를 함께 상징하는 것 같다. The Loom 벌써 30년 가까이 된 게임의 그래픽이 이렇다, 사운드가 저렇다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Loom은 당시 기준으로도 플레이어에게 화면을 얼마나 훌륭하고 멋지게 보일지 고민하는 게임은 아니었다. 다만 이 작품은 패키지 전면에 브라이언 모라이어티Brian Moriarty란 이름을 내걸고 Loom의 세계를 EGA(주04) 16컬러만으로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으며,(주05)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또한 게임에 훌륭하게 녹아들어 있다.
직조공 길드의 역사를 담은 세 장의 태피스트리(일부). 찢겨있는 빨간 태피스트리는 길드의 쇠퇴를 의미하는 세 번째 어둠을 담고 있다. 16컬러 버전과 256컬러 버전의 차이점 1992년에 256컬러 그래픽과 풀 음성을 담은 CD-ROM Talkie 버전이 새로 발매되었다. 그러나 당시 멀티미디어 기술의 한계로 음성을 모두 오디오트랙화 하는 바람에 16컬러 버전에 비해 텍스트나 연출이 상당히 축약되거나 사라졌다.(주06) 때문에 원래 Loom의 세계를 충실히 느끼고 싶은 사람은 16컬러 버전을 즐긴 후 CD-ROM 버전으로 새로 즐기면 되겠다. 게임 볼륨이 작으니 별로 부담은 없을 것이다.
새로이 256컬러 버전을 즐기며 가장 감동을 받았던 장소이다. 지금봐도 아름답지 않은가? 지팡이로 게임을 진행한다: 음계 연주 Loom은 당시 어드벤처 게임의 일반적 관행이던 텍스트 명령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지팡이의 음계만이 인터페이스로 사용될 뿐이다. [음계 연주](주07)라는 인터페이스는 Loom의 수많은 장점 중에서도 ‘Loom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라 할 만큼 다른 게임과 차별화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위대한 베틀(LOOM)이 놓인 방이다. 플레이어는 머리 아픈 명령어나 복잡한 인벤토리 개념 없이 지팡이의 '음계' 연주 하나만으로 게임 전체를 완벽하게 진행할 수 있다. 필자는 최대의 단순함으로 최고의 완성도를 만들어 낸, 지금의 시각에서도 가히 혁신적인 인터페이스라 주장한다. 플레이어는 지팡이를 이용하여 낮은 도부터 높은 도까지 순차적으로 음계를 익혀가며 4개의 음을 연이어 입력하여 마법 주문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지팡이를 통해 기존의 ‘소유‘ 대신 패턴을 잣는 주문을 ‘기억’해 가는데, 이 기억이라는 요소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종이와 펜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한다. 플레이시마다 달라지는 주문을 제때 기록해둬야 훗날 게임을 재시작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주08)
이후 플레이어는 보빈을 통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각각의 장치에서 마법 주문을 배우며 이를 응용한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런 경험을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거리며 납득시키게 함은 Loom의 뛰어난 구성력을 뒷받침하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게임에서 쓰인 마법이란 조금은 황당하면서도 엉뚱하다. 까마귀가 알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며 ‘여는’ 마법을 배우고, 직조공의 기본 기술인 ‘염색’이나 짚을 ‘금으로 바꾸는’ 마법을 배우며, 심지어 소용돌이를 ‘풀어내는’ 마법도 배운다. 근데 게임 내에 쓰이는 마법들의 모습은 요즘 게임들에 비해 직관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따지고 보면 수수하거나 촌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마법 주문을 반대로 외웠을 때 효과도 반대가 된다는 설정을 덧붙이니, 짧은 게임 볼륨에도 불구하고 사건 해결의 가짓수가 풍부해진다. 플레이어는 문제점에 봉착할 때마다 게임오버를 걱정하지 않고도 이런 수많은 선택지-마법-를 이것저것 자유롭게 시도해보게 된다. 상상력만으로 전개되는 ‘순수한’ 판타지 마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몇 시간 앞까지 내다볼 수 있는 수정구. 계속 들여다보면 결말까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사진은 보빈의 어머니 Cygna. 이름 그대로 백조다. 백조자리도 Cygnus인 걸 보면... 이 게임에서 유일한 소유물인 지팡이는 원래 보빈의 것이 아니었다.(주09) 그러나 보빈이 장로의 지팡이를 소유하게 되면서 점차 죽음의 신을 상대할 정도로 성장한다. 이는 여타 RPG에서 보이는 경험치 획득을 통한 힘 혹은 마력의 성장은 아니지만 기억의 ‘순차적 축적’ 정도로 표현할 수 있으며 플레이어 또한 보빈과 ‘함께’ 성장해간다. 따라서 이 작품은 순차적인 진행 -성장- 을 위해 철저한 외길 스토리를 지향한다. 다만. 문제를 해결할 때는 어떤 실수도 페널티 없이 용납되므로,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며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은 외길 진행이지만 나름의 자유도를 느낄 수 있게끔 플레이어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룸 차일드loom-child의 모험 이후의 엔딩까지 이어지는 전개를 간략히 적어보면,
여담이지만 엔딩의 대사에서 후속작의 뉘앙스를 느낄 수 있는데, 실제로 Forge라는 게임이 후속 기획으로 잡혀있었다고 한다. 다만 Loom의 저조한 흥행 성적에 힘입어(?) 취소되고 말았을 뿐. 지팡이에 의해 갈려진 Loom. 가위를 갖고서 운명의 천을 자르는 아트로포스의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백조들의 향연이 정말 일품인데…. 보빈은 죽음의 신이 던진 낫을 피하고, 이 거대한 낫은 하늘의 초승달이 된다. 왜 주인공은 직조공weaver일까? Loom의 세계에는 주인공 보빈이 태어나 자라온 직조공 길드 외에 유리직공 길드, 양치기 길드, 대장장이 길드에 성직자 길드까지 등장한다. 이 다양한 길드들은 하나의 도시국가로써 서로 배타적이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보빈은 직조공 길드에서 태어났을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지팡이는 ‘아트로포스 장로’가 지니고 있었을까? 필자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위대한 베틀Loom은 이 세상 자체이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직조공들은 대륙인들의 박해 이후 자신들 안에 재능을 가두고 있다. Loom의 고결함 보존에만 급급할 뿐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다.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암울한 이 현실 속에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 현실을 타개해보려 했던 보빈의 어머니 시그나는 오히려 추방당한다. 주09에서 언급하였듯 그리스 신화에서 운명의 세 여신은 직조술을 통해 각기 인간의 운명에 관여하는데, 이중 아트로포스는 가위로 운명의 천(실들의 집합체)을 자르는 역할을 담당한다. 운명은 앞으로 되풀이 될 수 없고, 이는 신조차 거역할 수 없다. 작가는 분명히 이 노파 여신에게서 강한 모티브를 얻은 것 같다. 게임 내에서도 보빈은 죽음의 신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운명이다. 하지만 보빈은 지팡이(가위)를 통해 Loom을 부숴버림(자름)으로써 위기를 온전히 해결한다. 그리고는 천이 고쳐지는 대로 돌아오겠다고 얘기하며 떠난다. 이를 새로운 운명으로의 발전 의지로 해석한다면, 여기서 왜 작가가 ‘직조공’을 선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래를 예견해주는 수정구는 모험 중 세 번 등장한다. 마치며 지금에 와서는 상상조차 어려우나 90년대 초중반까지 어드벤처는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무척 많은 장르였다. 어드벤처 장르의 양대산맥이던 시에라산(産) King's Quest, Space Quest 시리즈 등과 루카스산 The Secret of Monkey Island, Indiana Johns 시리즈 등 히트작은 수도 없이 많다. 지금은 액션형이나 상황에 따른 반응형 어드벤처 외에 클래식 어드벤처 게임을 찾기 어려워진 상황이라, 가끔 옛 히트작을 즐기며 아련한 노스탤지어에 젖어보곤 한다. 전업주부(…) 로버타 윌리엄스의 시에라산 어드벤처 게임은 훌륭한 스토리텔링과 별개로 친절함이 무척 부족했다. 게임 중 조그마한 조작 실수나 잘못된 명령어에도 죽기 일쑤여서 행동 하나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진짜 모험]을 추구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에 반해 루카스산은 '주인공이 죽지 않는‘ 게임이었다.(주10) 이 선택은 플레이어의 실수를 용인하여 보다 쉬운 접근을 유도해주었다. 결국 플레이어의 짜증 요소는 상당부분 제거된 셈이었고 이런 선택은 점차 시에라산 게임보다도 더 큰 지지를 얻게 해주었다.(주11)
야심가 맨디블. 더 강한 포스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달까. Loom은 루카스산 게임 중에서도 독특했다. 신화, 별자리, 판타지가 포함되어 백조swan와 직조weaving, 운명destiny이라는 세 주제가 하나의 세련된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래픽과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잘 다듬어진 루카스표 포인트-앤-클릭 조작과 음계를 이용한 혁신적이면서 손쉬운 인터페이스 등은 Loom이라는 네 글자를 지금껏 인구에 회자되게 해주었다. 지금 시각에서 단순해 보이는 게임이지만 스토리라인이나 곳곳에 설치된 기믹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플레이타임을 더해갈수록 이야기의 심도가 점점 깊어지지만 그때까지 익힌 것만 잘 활용하면 누구나 풀 수 있도록 하여 흥미를 잃지 않은 채 진행할 수 있다. 요란하고 복잡하며, 승부욕을 부추겨서 그저 때리고 파괴하는 작금의 게임에 지치고 질린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Loom을 하며 여유로움을 만끽해보자. 지금은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고 한글화까지 되어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다. 시간제약도 없다. 그저 현 상황에서 배운 것을 응용하면서 소박한 연출을 즐기고 차분한 마음으로 해나가면 된다. 흡사 복잡한 도회지에서 잠시 벗어나 느긋하게 전원 풍경을 즐기는 기분과 비견되지 않을까?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게임이 왜 명작인지는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음으로 느끼며 깨달아보자. 마우스를 손에서 놓고, 패턴을 입에 문 백조들이 날아가는 엔딩을 보는 순간 왜 이 세계에 더 머물 수 없는지 아쉬워 할 테니까. [번외편] 가장 흥미로웠던 세 장면… 게임 도처에서 퍼즐 장치를 만날 수 있다. 단순한 효과와 덤덤한 연출들의 집합이지만 각종 장치들의 ‘의외성’은 직접 풀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즉각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이렇듯 오래 기억에 남진 않았을 것이다. 1. 용에게서 양떼를 지키다. 보빈은 양치기 플리스에게서 용으로부터 양을 지켜줄 것을 부탁받는다. 이런 무척이나 골치 아픈 부탁은 누구에게나 난감할 것이다. 그러나 보빈은 게임 첫머리에 배워 잠시 잊고 있던 그 마법으로 모든 양떼를 지켜낸다! 보빈이 직조공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2. 용의 둥지에서. 잡혀간 용의 둥지에서 보빈은 몇 가지 마법을 응용하여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 단순하지만 직접 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일련의 행동은 요즘 감각으로 얘기하자면 쉬지 않고 콤보를 성공시키는 느낌? Loom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용과의 대면. 상당히 재미있다. 이제까지 배운 모든 마법을 응용해보자. 3. 나선형 계단을 건너자 보빈은 나선형 계단 끝 쪽에 끊긴 길과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도움 없이 어렵지 않게 풀어나갈 것이다. 간단한 퍼즐이지만 뭔가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졌으니! 소용돌이 계단. 이 계단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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