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8/10/14 14:27:03수정됨
Name   메존일각
Subject   내 인생 최고의 게임, LOOM [스포다수]
얼마 전 나간 번개 모임에서 [LOOM] 얘기가 잠깐 나와서 고대 유물을 하나 발굴해보았습니다.
십 수년 전에 쓴 리뷰를 거의 그대로 옮겨와 봅니다.
---

제작: 루카스 필름(현 루카스 아츠)
발매: 1990년

* 리뷰에 쓰인 스크린샷은 모두 1992년도에 발매된 256컬러 버전을 바탕으로 하였다.


음악을 곁들여 본문을 읽으면 감동이 두 배! (정말?)

필자가 최초로 접해본 어드벤처 게임은 King's Quest 3(주01)였다. 국민학생 수준에선 상당히 어려웠지만, 명령어 입력에 따라 주인공 반응이 달라지는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낑낑대기만 할 뿐 마법사의 성조차 벗어나지 못한 세월을 한동안 보내다 중학생 무렵 우연히 매뉴얼을 구하고 사전 꽤나 뒤적거리며 겨우 클리어 할 수 있었다. 이후 몇 년간은 당시 발매된 어드벤처 게임을 거의 빠짐없이 즐길 만큼 푹 빠져 살았다. 그리고 당시 즐긴 수많은 게임 중 Loom을 으뜸으로 꼽고 있다.

(주01) 시에라 온라인에서 발매한, 사악한 마법사와 검은 고양이가 나오던 이 게임을 기억하시는지?


LOOM의 타이틀! 이 화면만 봐도 가슴이 설렌다.

Loom을 접하다!
중1 때의 일이다. 여느 때처럼 친구 집에 놀러가 보니 녀석은 모니터의 뭔가를 열심히 옮겨 적고 있었다. 녀석은 나를 보더니 연필을 내려놓고 ‘이거 꽤 특이해.’ 하며 화면을 가리켰는데….

흑백모니터가 만연하던 그때 그 시절, 녀석의 집엔 부르주아의 전유물이던 컬러모니터가 있었다. 덕분에 난 첫 대면부터 제대로 된 화면을 감상(?) 할 수 있었다. 한데 이때 받은 느낌이 심상치 않았다. ‘특이’했다. 지금껏 해본 게임을 통틀어서도 이건 좀 달랐다. 화면 하단에는 익숙한 영어 동사들의 나열 대신 그저 나뭇가지 하나에 음표만 덜렁 있는 게 아닌가?

이어 친구가 보여준 타이틀 화면에서는 음악이 함께 들려왔다. 음악이라고 해봐야 당시엔 사운드 카드도 없는 한낱 비프음일 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심금을 울렸다. 이때의 감명은 비프음을 테이프에 녹음하여 듣게 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 당시엔 이 음악이 ‘백조의 호수’인지도 알 길이 없었으니까. 

여담이지만 훗날 다른 곳에서 Ad-Lib(주02)으로 Loom의 BGM을 들었을 때 비프음 만큼의 감흥도 없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의아할 따름이다.

(주02) 비퍼와 Ad-Lib: 간단히 언급하자면, 비프음은 사운드카드가 없는 순수 PC음, Ad-Lib은 캐나다 회사에서 만든 고가였던 MIDI 대신의 저가형 음악카드이다.

Prologue
우리나라엔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았지만 Loom에는 프롤로그가 있다. Loom의 역사와 보빈의 과거에 대해 간략하게 알려주는 이야기인데, 게임 내에서는 단지 단편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두 번째 어둠의 시대가 지난 대륙에는 직조공 길드가 있었다. 그들은 배타적이었지만 재능만큼은 무척 훌륭하여 천의 패턴에 마법을 담을 수 있었다. 급기야 염료를 사용하지 않고 빛과 음악만으로 패턴을 짤 수 있게 되자 이를 두려워 한 대륙사람들이 직조공들을 박해하였고, 직조공들은 스스로를 외딴 섬에 가둔 채 정체되었다. 이후 사람들이 Loom이라 부르던 이 섬에 닥쳐온 수많은 질병과 기근으로 사산아나 기형아가 많이 태어났고 자연스레 인구가 줄며 길드는 쇠퇴해갔다.

세 장로를 면담한 자리에서 시그나Cygna는 섬의 미래를 위해 위대한 베틀Loom의 사용을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결국 시그나는 아무도 몰래 Loom으로 아이를 낳지만, 낳은 직후 장로들에게 발각되어 백조로 변한 채 추방되었다. 장로들은 Loom에서 태어난 아이loom-child를 두려워하며 17세까지 처분을 미루기로 하였다. 아이에게 보빈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대모 헷첼Hetchel만이 후원자 역할을 하였을 뿐, 그 누구도 보빈을 가까이 하거나 베 짜는 기술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헷첼만이 몰래 기술을 가르쳐줬을 뿐이었다.

게임은 주인공인 보빈이 17세가 되는 생일날 새벽부터 시작된다. 장로들의 부름에 응해 성소로 간 보빈은 커다란 사건을 겪는다. 대모 헷첼은 장로들로부터 보빈을 감싸려다 까마귀로 변하고, 보빈은 마법으로 천 패턴을 짤 수 있는 장로의 지팡이(주03)를 얻게 된다.

(주03) 지팡이: distaff. 엄밀히 말해 distaff는 실을 잣는데 쓰이는 실 감는 막대이다. 편의상 앞으로도 지팡이라 칭하겠다.

클릭 한 번으로 떨어지지만 반드시 낙엽을 떨어뜨려야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 
이 장면은 '시작'을 의미하는 새벽녘과 지금까지 현실의 '종지부'를 함께 상징하는 것 같다.

The Loom
벌써 30년 가까이 된 게임의 그래픽이 이렇다, 사운드가 저렇다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Loom은 당시 기준으로도 플레이어에게 화면을 얼마나 훌륭하고 멋지게 보일지 고민하는 게임은 아니었다. 다만 이 작품은 패키지 전면에 브라이언 모라이어티Brian Moriarty란 이름을 내걸고 Loom의 세계를 EGA(주04) 16컬러만으로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으며,(주05)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또한 게임에 훌륭하게 녹아들어 있다.

(주04) 640×350 해상도에 팔레트조차 지원되지 않아 얼굴을 주황색으로 칠하던 바로 그 카드다!
(주05) 리뷰에 쓰인 화면은 모두 256컬러 버전이다.

직조공 길드의 역사를 담은 세 장의 태피스트리(일부).
찢겨있는 빨간 태피스트리는 길드의 쇠퇴를 의미하는 세 번째 어둠을 담고 있다.

16컬러 버전과 256컬러 버전의 차이점
1992년에 256컬러 그래픽과 풀 음성을 담은 CD-ROM Talkie 버전이 새로 발매되었다. 그러나 당시 멀티미디어 기술의 한계로 음성을 모두 오디오트랙화 하는 바람에 16컬러 버전에 비해 텍스트나 연출이 상당히 축약되거나 사라졌다.(주06) 때문에 원래 Loom의 세계를 충실히 느끼고 싶은 사람은 16컬러 버전을 즐긴 후 CD-ROM 버전으로 새로 즐기면 되겠다. 게임 볼륨이 작으니 별로 부담은 없을 것이다.

(주06) 하지만 이런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게임에서 풀 음성을 지원하는 것 자체-트랙의 시간별 재생 위치를 가리켜 음성표현-에 심히 놀란 바 있다.

새로이 256컬러 버전을 즐기며 가장 감동을 받았던 장소이다. 
지금봐도 아름답지 않은가?

지팡이로 게임을 진행한다: 음계 연주 
Loom은 당시 어드벤처 게임의 일반적 관행이던 텍스트 명령을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 지팡이의 음계만이 인터페이스로 사용될 뿐이다. [음계 연주](주07)라는 인터페이스는 Loom의 수많은 장점 중에서도 ‘Loom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라 할 만큼 다른 게임과 차별화하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주07) 음계 연주는 프롤로그의 언급처럼 천에 패턴을 잣는 방법이다. 하지만 작품 내에서 마법과 직조술의 경계는 모호하기도 하고 보빈은 실제로 마법사로도 불린다. 따라서 이해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 하에 음계 연주를 주문이란 표현으로 사용하겠다.

위대한 베틀(LOOM)이 놓인 방이다.

플레이어는 머리 아픈 명령어나 복잡한 인벤토리 개념 없이 지팡이의 '음계' 연주 하나만으로 게임 전체를 완벽하게 진행할 수 있다. 필자는 최대의 단순함으로 최고의 완성도를 만들어 낸, 지금의 시각에서도 가히 혁신적인 인터페이스라 주장한다. 플레이어는 지팡이를 이용하여 낮은 도부터 높은 도까지 순차적으로 음계를 익혀가며 4개의 음을 연이어 입력하여 마법 주문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지팡이를 통해 기존의 ‘소유‘ 대신 패턴을 잣는 주문을 ‘기억’해 가는데, 이 기억이라는 요소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종이와 펜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한다. 플레이시마다 달라지는 주문을 제때 기록해둬야 훗날 게임을 재시작하는 불상사를 피할 수 있는 것이다.(주08)

(주08) 완전히 랜덤은 아니고 몇 가지 패턴이 존재한다. 또 시작부에 헷첼을 알에서 깨어나게 하는 주문은 항상 고정되어 있다.

이후 플레이어는 보빈을 통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각각의 장치에서 마법 주문을 배우며 이를 응용한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런 경험을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거리며 납득시키게 함은 Loom의 뛰어난 구성력을 뒷받침하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게임에서 쓰인 마법이란 조금은 황당하면서도 엉뚱하다. 까마귀가 알에서 깨어나는 모습을 보며 ‘여는’ 마법을 배우고, 직조공의 기본 기술인 ‘염색’이나 짚을 ‘금으로 바꾸는’ 마법을 배우며, 심지어 소용돌이를 ‘풀어내는’ 마법도 배운다. 근데 게임 내에 쓰이는 마법들의 모습은 요즘 게임들에 비해 직관적이거나 자극적이지 않다. 따지고 보면 수수하거나 촌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마법 주문을 반대로 외웠을 때 효과도 반대가 된다는 설정을 덧붙이니, 짧은 게임 볼륨에도 불구하고 사건 해결의 가짓수가 풍부해진다. 플레이어는 문제점에 봉착할 때마다 게임오버를 걱정하지 않고도 이런 수많은 선택지-마법-를 이것저것 자유롭게 시도해보게 된다. 상상력만으로 전개되는 ‘순수한’ 판타지 마법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몇 시간 앞까지 내다볼 수 있는 수정구. 계속 들여다보면 결말까지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사진은 보빈의 어머니 Cygna. 이름 그대로 백조다. 백조자리도 Cygnus인 걸 보면...

이 게임에서 유일한 소유물인 지팡이는 원래 보빈의 것이 아니었다.(주09) 그러나 보빈이 장로의 지팡이를 소유하게 되면서 점차 죽음의 신을 상대할 정도로 성장한다. 이는 여타 RPG에서 보이는 경험치 획득을 통한 힘 혹은 마력의 성장은 아니지만 기억의 ‘순차적 축적’ 정도로 표현할 수 있으며 플레이어 또한 보빈과 ‘함께’ 성장해간다.

따라서 이 작품은 순차적인 진행 -성장- 을 위해 철저한 외길 스토리를 지향한다. 다만. 문제를 해결할 때는 어떤 실수도 페널티 없이 용납되므로,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며 재미를 느껴볼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은 외길 진행이지만 나름의 자유도를 느낄 수 있게끔 플레이어를 세심하게 배려하고 있다.

(주09) 아트로포스의 지팡이: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원래 그리스 신화에는 인간의 삶이라는 운명의 천을 잣고 그려가고 절단하는 클로토, 라케시스, 아트로포스라는 세 노파 여신이 등장한다. 셋째인 아트로포스는 가위로 운명의 천을 절단하는, 즉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세 여신의 이름은 Loom에서 세 장로의 것으로 등장하며 그 중 지팡이는 장로 아트로포스가 소유하고 있었다.

룸 차일드loom-child의 모험
이후의 엔딩까지 이어지는 전개를 간략히 적어보면,

보빈은 출생의 비밀을 찾고 섬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백조무리를 쫓아 대륙으로 간다. 유리 직공, 양치기, 대장장이의 마을과 용의 둥지 등 많은 곳을 여행하며 시련을 극복해 가고, 마침내 백조로 변한 어머니를 만나 갖가지 사실들을 듣게 된다. 자신의 마을로 돌아간 보빈은 죽음의 신과 대면하여 헷첼의 도움으로 Loom을 두 조각내고 신의 야망을 분쇄시킨다. 엔딩에서 보빈은 어머니와 함께 백조가 되어 섬을 떠나고, 죽음의 신이 던진 낫은 밤하늘의 초승달이 된다.

여담이지만 엔딩의 대사에서 후속작의 뉘앙스를 느낄 수 있는데, 실제로 Forge라는 게임이 후속 기획으로 잡혀있었다고 한다. 다만 Loom의 저조한 흥행 성적에 힘입어(?) 취소되고 말았을 뿐.

지팡이에 의해 갈려진 Loom. 가위를 갖고서 운명의 천을 자르는 아트로포스의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 다음에 이어지는 백조들의 향연이 정말 일품인데….

보빈은 죽음의 신이 던진 낫을 피하고, 이 거대한 낫은 하늘의 초승달이 된다.

왜 주인공은 직조공weaver일까?
Loom의 세계에는 주인공 보빈이 태어나 자라온 직조공 길드 외에 유리직공 길드, 양치기 길드, 대장장이 길드에 성직자 길드까지 등장한다. 이 다양한 길드들은 하나의 도시국가로써 서로 배타적이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보빈은 직조공 길드에서 태어났을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지팡이는 ‘아트로포스 장로’가 지니고 있었을까?

필자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위대한 베틀Loom은 이 세상 자체이면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직조공들은 대륙인들의 박해 이후 자신들 안에 재능을 가두고 있다. Loom의 고결함 보존에만 급급할 뿐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다. 점차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암울한 이 현실 속에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 현실을 타개해보려 했던 보빈의 어머니 시그나는 오히려 추방당한다.

주09에서 언급하였듯 그리스 신화에서 운명의 세 여신은 직조술을 통해 각기 인간의 운명에 관여하는데, 이중 아트로포스는 가위로 운명의 천(실들의 집합체)을 자르는 역할을 담당한다. 운명은 앞으로 되풀이 될 수 없고, 이는 신조차 거역할 수 없다. 작가는 분명히 이 노파 여신에게서 강한 모티브를 얻은 것 같다.

게임 내에서도 보빈은 죽음의 신과의 대결을 피할 수 없다. 이것은 운명이다. 하지만 보빈은 지팡이(가위)를 통해 Loom을 부숴버림(자름)으로써 위기를 온전히 해결한다. 그리고는 천이 고쳐지는 대로 돌아오겠다고 얘기하며 떠난다. 이를 새로운 운명으로의 발전 의지로 해석한다면, 여기서 왜 작가가 ‘직조공’을 선택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미래를 예견해주는 수정구는 모험 중 세 번 등장한다.

마치며
지금에 와서는 상상조차 어려우나 90년대 초중반까지 어드벤처는 우리나라를 포함,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무척 많은 장르였다. 어드벤처 장르의 양대산맥이던 시에라산(産) King's Quest, Space Quest 시리즈 등과 루카스산 The Secret of Monkey Island, Indiana Johns 시리즈 등 히트작은 수도 없이 많다. 지금은 액션형이나 상황에 따른 반응형 어드벤처 외에 클래식 어드벤처 게임을 찾기 어려워진 상황이라, 가끔 옛 히트작을 즐기며 아련한 노스탤지어에 젖어보곤 한다.

전업주부(…) 로버타 윌리엄스의 시에라산 어드벤처 게임은 훌륭한 스토리텔링과 별개로 친절함이 무척 부족했다. 게임 중 조그마한 조작 실수나 잘못된 명령어에도 죽기 일쑤여서 행동 하나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해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진짜 모험]을 추구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에 반해 루카스산은 '주인공이 죽지 않는‘ 게임이었다.(주10) 이 선택은 플레이어의 실수를 용인하여 보다 쉬운 접근을 유도해주었다. 결국 플레이어의 짜증 요소는 상당부분 제거된 셈이었고 이런 선택은 점차 시에라산 게임보다도 더 큰 지지를 얻게 해주었다.(주11) 

(주10) 나중에는 시에라산 게임도 점차 주인공의 죽음에 너그러워지는 경향을 보였고(가브리엘 나이트 제외), 루카스산도 주인공이 죽는 게임이 등장했으나 주류는 아니었으므로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주11) 시각적으로 서둘러 256컬러에 적응했던 경쟁사 루카스필름에 비해, 기술력이 부족하여 16컬러를 한동안 고수했던 시에라온라인사의 실책도 없지 않았고.

야심가 맨디블. 더 강한 포스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달까.

Loom은 루카스산 게임 중에서도 독특했다. 신화, 별자리, 판타지가 포함되어 백조swan와 직조weaving, 운명destiny이라는 세 주제가 하나의 세련된 이야기를 이루고 있다. 더욱이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래픽과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잘 다듬어진 루카스표 포인트-앤-클릭 조작과 음계를 이용한 혁신적이면서 손쉬운 인터페이스 등은 Loom이라는 네 글자를 지금껏 인구에 회자되게 해주었다. 지금 시각에서 단순해 보이는 게임이지만 스토리라인이나 곳곳에 설치된 기믹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플레이타임을 더해갈수록 이야기의 심도가 점점 깊어지지만 그때까지 익힌 것만 잘 활용하면 누구나 풀 수 있도록 하여 흥미를 잃지 않은 채 진행할 수 있다. 

요란하고 복잡하며, 승부욕을 부추겨서 그저 때리고 파괴하는 작금의 게임에 지치고 질린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Loom을 하며 여유로움을 만끽해보자. 지금은 누구나 손쉽게 구할 수 있고 한글화까지 되어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다. 시간제약도 없다. 그저 현 상황에서 배운 것을 응용하면서 소박한 연출을 즐기고 차분한 마음으로 해나가면 된다. 흡사 복잡한 도회지에서 잠시 벗어나 느긋하게 전원 풍경을 즐기는 기분과 비견되지 않을까?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게임이 왜 명작인지는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음으로 느끼며 깨달아보자. 마우스를 손에서 놓고, 패턴을 입에 문 백조들이 날아가는 엔딩을 보는 순간 왜 이 세계에 더 머물 수 없는지 아쉬워 할 테니까.

[번외편] 가장 흥미로웠던 세 장면…
게임 도처에서 퍼즐 장치를 만날 수 있다. 단순한 효과와 덤덤한 연출들의 집합이지만 각종 장치들의 ‘의외성’은 직접 풀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즉각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이렇듯 오래 기억에 남진 않았을 것이다. 

1. 용에게서 양떼를 지키다.
보빈은 양치기 플리스에게서 용으로부터 양을 지켜줄 것을 부탁받는다. 이런 무척이나 골치 아픈 부탁은 누구에게나 난감할 것이다. 그러나 보빈은 게임 첫머리에 배워 잠시 잊고 있던 그 마법으로 모든 양떼를 지켜낸다! 보빈이 직조공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지극히 당연하겠지만.

2. 용의 둥지에서.
잡혀간 용의 둥지에서 보빈은 몇 가지 마법을 응용하여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 단순하지만 직접 해보면 상당히 재미있다. 일련의 행동은 요즘 감각으로 얘기하자면 쉬지 않고 콤보를 성공시키는 느낌?

Loom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용과의 대면. 상당히 재미있다. 
이제까지 배운 모든 마법을 응용해보자.

3. 나선형 계단을 건너자
보빈은 나선형 계단 끝 쪽에 끊긴 길과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도움 없이 어렵지 않게 풀어나갈 것이다. 간단한 퍼즐이지만 뭔가 카타르시스까지 느껴졌으니!

소용돌이 계단. 이 계단을 헤쳐나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놀라웠다.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6
  • 춫천
  • 메존일각
  • 룸!!!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384 일상/생각내 이야기 4 하늘깃 16/12/15 3347 1
13525 일상/생각내 인생 가장 고통스러운 명절연휴 6 당근매니아 23/01/31 2704 32
8368 게임내 인생 최고의 게임, LOOM [스포다수] 17 메존일각 18/10/14 5485 6
9916 게임내 인생 최고의 다전제 24 kaestro 19/10/29 4727 1
6178 일상/생각내 인생을 다시 설계해보기 4 벤젠 C6H6 17/08/27 3244 6
2232 도서/문학내 인생을 바꾼 책 28 리틀미 16/02/16 5120 3
13441 일상/생각내 인생의 전환점, 2022년을 결산하다 7 카르스 23/01/01 2435 22
10838 창작내 작은 영웅의 체크카드 4 심해냉장고 20/08/05 4119 14
5053 일상/생각내 잘못이 늘어갈수록 20 매일이수수께끼상자 17/03/02 5005 34
734 일상/생각내 짧은 일방통행 연애, 단상 22 Las Salinas 15/08/05 5103 0
12617 일상/생각내 차례는 언제일까? 9 방사능홍차 22/03/13 3801 1
8736 게임내 휴대폰 속의 게임 스크린샷. No. 01 - 애니팡 8 The xian 19/01/06 4273 1
10760 방송/연예내가 꼽은 역대 팬텀싱어 쿼텟 무대 6 Schweigen 20/07/07 5481 2
1305 경제내가 낸 축의금은 돌려받을 수 있나?(Opex Commodity) 3 MANAGYST 15/10/21 8456 3
776 기타내가 대학생 인턴을 뽑았던 원칙 40 난커피가더좋아 15/08/11 4413 0
621 문화/예술내가 드래곤볼의 셀 편을 안좋아하는 이유 32 王天君 15/07/20 25180 0
14579 음악내가 락밴드 형태로 구현하고 싶던 걸그룹 노래들 18 *alchemist* 24/04/04 1456 4
5821 일상/생각내가 만난 선생들 #1 - 언어학대의 장인. 15 tannenbaum 17/06/21 3333 1
5816 일상/생각내가 만난 스승들 #1 - 1994년의 예언가. 21 SCV 17/06/20 4425 16
5845 일상/생각내가 만난 스승들 #2 - 카리스마의 화신 16 SCV 17/06/27 4412 1
5884 일상/생각내가 만난 스승들 #3 - 너 내 반장이 돼라 11 SCV 17/07/03 4304 8
11361 일상/생각내가 맥주를 마실 때 웬만하면 지키려고 노력하는 수칙 46 캡틴아메리카 21/01/21 5340 23
3621 방송/연예내가 무인시대를 좋아했던 이유 7 피아니시모 16/08/31 5984 3
4753 사회내가 바라보는 동성애 11 Liebe 17/02/03 4937 5
14576 문화/예술내가 바로 마법소녀의 목소리 - 성우로 보는 마법소녀 서포트벡터 24/04/03 1491 6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