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02/18 02:00:43
Name   right
Subject   자유의 역설
나에게 자유는 대체로 옳은것처럼 보인다. 자유의 반대말이 속박이라면, 나에게 행동할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난다는 것은 당연히 좋지 않을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선택지가 늘어날때, 내 마음은 더 불안하다. 실제로 마트에서 20종류의 잼 중에 하나를 고르는거랑 3종류 중에 고르는거랑 비교하면 3종류에서 고르는게 더 만족도가 높았다고 한다. 그런면에 있어서 글쓰기란 최악(?)의 자유도를 보여준다. 첫 단어부터 무수한 선택지가 놓여있다. 말하기도 마찬가지다. 첫 대화를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 좋네요', '오버워치 하세요?' 중 어떤걸로 해야할까? 미연시게임처럼 이렇게 세 개의 선택지 중에서 고를 수 있다면 참 편할텐데. 말의 내용 뿐만 아니라 음의 높낮이, 어조, 억양, 얼굴 표정, 몸짓, 시선처리 등등 우리의 자유는 이렇게 무한대로 펼쳐진다. 이런 것들에 대해 '내가 잘하고 있나' 하고 신경쓰게 되면 긴장이 되고 불안을 느끼게 된다.

자유를 내 식대로 정의하자면 '내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근데 여기에 반론을 해보자면 '인간은 원하는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인가'라고 의문이 들 수 있다.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별 쓸데없는 잡생각, 잊고 싶은 기억들이 계속 머리에 떠오르고, 매일 성실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침대에서 뒹굴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다. 그래서 다시 정의하자면 '나의 생각과 행동을 타인에게 제한받지 않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자유에 제한을 가한다. '스터디 모임'에 가입해 어느 정도의 강제성을 부여해 공부를 하며, 편한 집을 놔두고 독서실이나 도서관에 가서 타인의 시선을 느끼며 불편하게 공부한다.

누군가가 내 자유를 강제로 제한한다면 화가 날 것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많은 자유가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유를 있는 그대로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인간의 능력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원하는대로 통제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닫는데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자신을 통제하려는 데에 있다. 역사 이래 최대로 주어진 자유 앞에서 그것을 충분히 누리며 성실하게 살지 않는 자신을 보며 괴로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큰 숙제는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무수한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것이다.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587 철학/종교유교(儒敎)에 대한 비판 83 ar15Lover 20/05/14 7756 2
    10423 철학/종교한국 개신교와 '일부' 11 토끼모자를쓴펭귄 20/03/23 4553 5
    10344 철학/종교"증거장막"이란 단어의 본래 의미 5 소원의항구 20/03/04 5889 7
    10204 철학/종교역사적 유물론과 행위자 연결망 이론(완) - 시너지: ‘계약서에 서명하기’를 매개의 실천으로 읽기 호라타래 20/01/20 4392 3
    10191 철학/종교역사적 유물론과 행위자 연결망 이론(4) - 두 이론을 함께 생각하기 2 호라타래 20/01/17 4617 4
    9306 철학/종교소앙 조용은의 '육성교'와 '대동종교' 치리아 19/06/12 6235 7
    8877 철학/종교자유의 역설 2 right 19/02/18 4368 1
    8798 철학/종교탐구하지 말아야 할 지식 17 녹차김밥 19/01/25 5284 1
    8752 철학/종교율법주의 : 최후의 유혹 32 구밀복검 19/01/11 7390 26
    8620 철학/종교인생은 아름다워 22 기아트윈스 18/12/08 5849 41
    8383 철학/종교은탄환의 딜레마 12 메아리 18/10/16 6032 19
    8254 철학/종교7가지 사소한 너무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 4 파랑새의나침반 18/09/20 5833 0
    8191 철학/종교0.999...는 어디서 왔는가? 0.999...는 무엇인가? 0.999...는 어디로 가는가? 19 파랑새의나침반 18/09/09 7663 16
    8054 철학/종교대형교회를 처음 가게 됬습니다. 18 태정이 18/08/14 5494 0
    7764 철학/종교칸트 전집 번역 논쟁은 왜때문에 생겼나. 75 기아트윈스 18/06/28 8815 16
    7470 철학/종교마구잡이로 쓰는 종교이야기 - 이단과 사이비 3 기쁨평안 18/05/02 5177 1
    7452 철학/종교저항으로서 장자 8 메아리 18/04/28 5132 8
    7424 철학/종교적대적 현실 하에서 全生을 실현하려는 실천의 하나 : 무(武) - 2 1 메아리 18/04/22 3426 4
    7423 철학/종교적대적 현실 하에서 全生을 실현하려는 실천의 하나 : 무(武) - 1 메아리 18/04/22 4229 4
    7260 철학/종교감동(感動) 18 기아트윈스 18/03/22 5083 21
    7258 철학/종교간략하게 알아보는 희년 이야기 10 기쁨평안 18/03/21 5679 14
    7234 철학/종교대치동 서울교회 박노철목사측 불법용역들의 폭력적 진입영상 10 jsclub 18/03/14 6177 0
    7221 철학/종교대치동 서울교회 박노철목사 용역 이끌고 교회점거중... 30 jsclub 18/03/11 10195 0
    7153 철학/종교옛날 즁궈런의 도덕관 하나 5 기아트윈스 18/02/23 4229 18
    7132 철학/종교나무꾼이 성범죄자인가요? 25 신내림 18/02/17 6285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