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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9/03 21:14:42
Name   마르코폴로
Subject   파스타 이야기




이탈리아 요리는 로마 시대, 혹은 그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파스타나 피자와 같은 음식들이 이탈리아에 정착한 것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였습니다. 이탈리아 요리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지역까지 접근하기에 편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주변 지역의 요리법과 음식재료를 받아들이면서 더욱 다양해졌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파스타는 피자와 함께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18세기 유럽에서 계몽주의 국가 프랑스는 주변국들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프랑스에 비해서 이탈리아는 그때까지도 정치적으로 독립된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이탈리아’라는 용어는 정치적 측면이 아니라 오히려 요리의 측면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맥락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가 근대 이후 요리의 주류로 떠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일찍이 근대국민국가 체제를 완성하고 그 체제를 통해 요리법 책자를 발간하고 보급한 영향이 큽니다. 이탈리아는 이러한 방식에 저항합니다. 이탈리아는 프랑스의 흐름과는 다르게 지역적 특성과 개별적인 요리법을 살리는 방향으로 자체의 요리법을 세워나갑니다. 이탈리아는 정치보다는 오히려 음식의 차원에서 먼저 독자적인 구체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파스타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탄생하게 됩니다.

파스타의 역사는 길고 복잡할 뿐만이 아니라 명료하지도 않습니다. 온갖 전설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만큼 파스타는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 확실한 정보가 부족하고, 또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는 과정도 단순하지 않습니다.
파스타의 기원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가장 널리 퍼진 것은 마르코 폴로가 13세기에 동아시아까지 여행하고 돌아오면서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파스타를 들여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의 식품 회사 협회가 출간한 잡지 ‘마카로니 저널’에서 미국 내 파스타 판매 증진을 위해 홍보용으로 지어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파스타의 기원은 기원전 1000년경 고대 그리스 문명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스어로 ‘라가논’이라는 용어는 반죽을 만들어 길게 자른 형태의 평평하고 넓은 빵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기원전 8세기 무렵 그리스인은 이탈리아로 이 반죽을 들여왔고, 라틴어로 ‘라가눔’이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오늘날 파스타의 한 종류인 ‘라자냐’라는 용어가 나왔습니다. ‘라가눔’ 이라는 말은 키케로와 호라티우스 같은 로마 작가들이 언급했고, 최초의 요리책이라고 추정되고 있는 ‘요리에 대하여’에도 ‘라가눔‘이라는 표현이 나와 있습니다. 14세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보면 마소가 환락의 나라를 묘사하는 대목에서 ‘마카로니와 라비올리를 만들어 닭을 삶은 수프에 요리하면 되고’ 라는 구절이 나오기도 합니다.
16세기에 들어 파스타가 이탈리아의 식생활에 본격적으로 등장하지만 지금의 형태와 다르게 장식용이나 디저트로 만들어졌습니다. 비싼 가격 때문에 부유층만 소비할 수 있었지요. 실제로 1770년대까지 마카로니라는 단어는 영국에서 ‘완전함과 우아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18세기에 들어 파스타가 대중적인 음식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건조기술의 발달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에 파스타의 보존 기간은 길어야 삼사 일을 넘지 못했지만 말려서 오래 보관할 수 있게 되자 대량 생산과 유통이 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가격도 저렴해집니다. 특히 베네치아, 제노바와 같은 해안가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건조 파스타를 찾는 수요가 급증하게 됩니다. 이들 도시에서 이뤄지는 무역량이 증가하면서 장기간 항해하는 배에서 쉽게 저장할 수 있는 유형의 음식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게 되는데, 이같은 조건에 건조 파스타가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18세기 파스타의 제조에 관한 유명한 서적은 프랑스의 폴 말루엥이 1767년에 발간한 요리책입니다. 파스타 제조법으로 유명한 책이 이탈리아가 아닌 프랑스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파스타가 이미 유럽에서 대중적인 음식으로 퍼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요리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당시의 시대 상황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서적이나 제도를 통해 요리를 통일하고 규격화하려 했고, 이탈리아 요리는 그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파스타가 18세기에 이탈리아의 국민 음식으로 자리 잡기 시작 한 곳은 나폴리였습니다. 당시 나폴리는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본토 남부를 포괄하는 왕국의 수도이자 40만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앞서 언급한 폴 말루엥 또한 나폴리에서 다양한 종류의 파스타를 만드는 기술을 습득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의 책에 따르면 당시 나폴리에서만 30가지 이상의 파스타가 생산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중해에서 성장한 식물과 과일들은 강렬한 원색을 뽐내는데 이런 식재료를 보고 자란 영향인지 나폴리 사람들은 파스타 또한 눈으로도 감상하고 음미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의 결과로 다양한 형태의 파스타가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이라는 책을 보면 나폴리 장사치들의 바구니에 담긴 음식 재료들의 형형색색에 반했다는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괴테가 언급한 것에 따르면 당시 나폴리에서는 익힌 마카로니를 어디서든 팔았고, 아주 싼값에 어느 가게에서나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괴테의 경우 이 여행에서 이탈리아 음식 역사의 중요한 발전을 현장에서 목격한 것이지요. 괴테 방문 이전 시기인 17세기 까지 나폴리를 대표하는 음식은 브로콜리와 양배추였습니다. 채소와 과일, 그리고 나폴리 앞바다에서 제공받던 생선이 그들의 주된 식단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폴리 인들을 ‘잎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묘사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18세기에 들어오면서 나폴리 사람들은 ‘마카로니를 먹는 자들’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1785년에 나폴리에서만 마카로니를 파는 가게가 300여 곳이 넘었다고 하니 '마카로니를 먹는 자들'이라는 호칭이 그리 과해 보이진 않습니다. 

파스타를 처음 만들던 방식은 긴 벤치에 앉아서 발로 밟아 파스타를 반죽하는 것이었습니다. 나폴리의 왕 페르디난도 2세는 위생 문제와 함께 미관상 좋지 않던 이런 식의 제조법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체사레 스파다치니라는 유명한 기술자를 불러들여 개선책을 강구하도록 합니다. 그 결과 발로 반죽하던 방식을 기계로 대체하게 됩니다. 당시에 갓 도입된 증기기관을 활용한 형태의 기계였습니다. 18세기 들어 나폴리 인구는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음식 공급 문제가 대두되고 있던 상황에서 반죽 기계의 보급은 파스타를 훨씬 낮은 가격에 대량으로 생산 가능하게 만들어줌으로써 인구 증가에 따른 음식 공급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조하게 됩니다. 이 때에 이르면 파스타는 중산계층의 필수적인 식단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게 됩니다. 가정에서 파스타를 따로 만들 필요없이 그저 싼 값에 대량 유통되는 파스타를 구매하기만 하면 되게 된 것입니다. 18세기에 파스타가 그림이나 자기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것은 파스타가 대량 보급되면서 서민들이 아무데서나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즉흥극인 ‘콤메디아 델라르테’에 보면 ‘풀치넬라’라는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풀치넬라’는 어린 칠면조나 닭을 의미하는데 부리처럼 생긴 코가 달린 가면을 쓰고 나오는 등장인물이 칠면조나 닭과 닮았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주로 게으르고 약삭빠른 방자한 하인으로 등장하는 풀치넬라는 언제나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사회질서를 얕잡아보면서 주인을 갖고 노는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파스타 냄새를 대단히 잘 맡고 파스타에 매우 집착하며 파스타가 주어지기만 하면  언제 어디서든, 얼마만큼의 양이든, 다 해치우는 것으로도 유명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이 ‘풀치넬라’라는 인물은 파스타를 걸신들린 듯이 먹는 이미지로 당시에 인기가 있었습니다. 파스타를 손으로 게걸스럽게 먹는 장면이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이탈리아의 대중들에게 깊은 공감을 줬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렇듯 18세기에 파스타는 이미 대중의 음식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됩니다.


 - 짚으로 만든 호리병 모양의 와인병 '피아스코' 사이에 가로누워있는 '풀치넬라'

19세기에 들어서면서 파스타에 또 다른 중요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토마토소스가 곁들여진 형태의 파스타가 나타난 것이지요. 이탈리아에 토마토가 전해진 것은 17세기였는데 처음부터 요리에 토마토가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에는 토마토에 독성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관상용 식물로만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토마토소스가 나타나기 이전의 파스타들은 아무런 소스도 첨가하지 않거나 치즈만 곁들여 먹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19세기에 토마토소스가 만들어지면서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형태의 소스가 곁들여진 파스타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처럼 이탈리아 요리의 대명사 파스타는 중앙의 정통 요리에 대한 지역의 서민 음식으로 출발하여 여러 변화를 거친 끝에 오늘날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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