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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05/18 12:25:33 |
Name | 피아니시모 |
Subject | 조선시대의 붕당에 대해서 대충 적어보는 글2 |
어제 글을 쓰고나서 다시 읽어보니깐 존속기간 자체가 짧은 북인의 분량이 너무 긴데 이렇게 되면 앞으로 남인과 서인 그리고 노론과 소론 벽파와 시파는 너무 지나치게 길어질거 같아서 이제부터 그냥 대충 다 생략.. 북인(끝)(..) 소북의 세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봉산옥사를 시작으로 영창대군을 제거하고자한 계축옥사에 이르기까지 광해군의 궁궐병과 함께 세자시절 겪었던 일들의 트라우마가 발현된 옥사병까지 겹치면서 이 옥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대북 그 중에서도 이이첨이 실세로 떠오르게 됩니다. 광해군 역시 이 두번의 옥사 이후 완전히 흑화하고요 그나마 간신히 유지되던 대북/소북 + 남인(+서인)의 균형은 이 계축옥사를 끝으로 완전히 막을 내립니다.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과 그의 3아들은 사사되고 영창대군은 강화도에 위리안치되게 됩니다(그리고 곧 살해당하죠) 이 사건으로 대북(이이첨)은 실세중의 실세가 되고 (지금으로 따지자면) 일당독재가 됩니다. 영창대군에 대한 처벌을 둘러싸고 남인의 대표적인 인물중 하나인 이덕형이 은혜를 베풀것을 주장하다가 삭탈관직 된 뒤 얼마 안가 병으로 죽었고 광해군과 인조의 첫 영의정이기도 했던 이원익 역시 일련의 흐름을 막고자 했으나 끝내 막지 못한 채 실각하고 맙니다. 서인이라고 다를 건 없어서 이항복이 계축옥사 이후 나오는 폐모론을 막으려다가 끝내 귀양을 가면서 정계에서 퇴출되고 맙니다. 이렇게 대북을 견제할 세력이 정계에서 완전히 소멸되면서 북인 천하 정확히는 대북천하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 이런 와중에도 대북은 여러 계파로 나뉘게 됩니다..(..) 영창대군을 죽여야한다 / 인목대비도 죽여야한다 / 둘다 죽여선 안된다로 갈리게 된거죠. 다만 영창대군까진 몰라도 인목대비의 경우 대놓고 죽여야한다고 주장한건 허균정도밖엔 없었습니다. 뭐 여튼 대북은 이렇게 조선 팔도 전체에 대북을 제외한 모든 집단에게(심지어 소북에게도) 엄청난 어그로를 끌기 시작하고 고립됨에 따라 덩달아 자연스럽게 광해군 역시 (본인도 빨리 파악못한채) 고립되기 시작합니다. * 참고로 그 와중에 광해군의 외교정책엔 북인들도 딴지를 걸면서 강력한 친명배금을 주장합니다. * 또한 북인 내부에서도 대북과 소북간의 사이도 상당히 안좋았던거 같습니다. 오죽하면 삼창이라 불리운 인물중 하나인 박승종은 아에 대가 싫다면서 대문도 외문으로 고치고 큰 대가 들어가는건 보는것조차 지긋지긋하다고 할 정도..-_-;; 여러차례 계속된 옥사로 인해 광해군의 권력자체는 엄청나게 강해졌으나 위에서 언급된대로 이미 서인과 남인은 모두 돌아선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대북의 권력 역시 엄청나게 강해져서 광해군으로 하여금 (뒤늦게) 아뿔사하게 만들죠 이렇게 냅두기엔 북인이 너무 거대해졌다고 판단한 광해군은 뒤늦게 서인과 남인에게 손을 내밀지만 이미 늦어도 너무 늦었죠 네 이미 서인은 인조반정을 꾸미고 있었고 남인은 알면서도 방관한채 이를 동조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조반정은 사전에 고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성공하였고 광해군은 그렇게 폐위됩니다. 광해군이 폐위되면서 북인들은 대대적인 숙청을 당합니다. 서인들의 주요타겟은 정인홍과 이이첨의 대북이었습니다. 대북은 거의 전멸이라 봐도될정도로 아주 씨를 말립니다. 그들은 의외로 (광해군의 처남) 유희분이라던가 대북에 의해 소외되었던 (청,탁)소북은 살려주고자 했으나 인조가 길길이 날뛰며 그들 모두를 처형시켜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함에 따라 결국 대북을 넘어 북인 대다수가 전멸하게 됩니다. 이후 북인은 그냥 역사속에서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됩니다. 영조실록등에서 북인의 언급이 없는건 아니지만 중앙정치계에서 북인의 존재 자체는 이때 사라진거나 다름없었습니다. 이후 남은 소수의 소북도 남인으로 가거나 서인으로 가거나 각자도생을 하면서 흡수되었고요 서인(2) 기축옥사 이후 서인은 드디어 정권을 잡는 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조선이 멸망하는 그 순간까지 남인이 정권을 잡은 십년을 제외하면 서인계열의 당이 정권을 계속해서 잡게 됩니다. 앞서 북인에서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서인 역시 그 분파가 되는데 당시 서인은 공서파와 청서파로 나뉘게 되는 데 인조반정을 이끌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한 김류 최명길 김자점등이 공서파 병자호란 당시 최명길과 대립했던 김상헌등 인조반정에 협력하지 않고 재야에 있던 서인은 청서파가 됩니다. 대체로 진짜배기 간신배라 평가받는 김자점 정도를 제외하면 현실주의적인 편인 공서파에 비해 청서파는 좀 더 원리주의적인 면이 강했습니다. 특히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그게 더 커졌죠..-_-aa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조정의 서인들은 대체로 청서파에 많이 기울어있었습니다. 하필이면 이떄즘에 최명길도 김류도 (김류와는 대립하는 사이이긴 했지만) 이귀와 같은 자들도 명을 다 할떄쯤이었고 이떄즘에 인조에게 총애받던게 바로 김자점이었습니다(..) 인조의 총애와 별개로 이미 사대부들은 김자점을 간신배로 여기고 있었죠 심기원의 역모때 있었던 염경업에 대한 처사도 그렇고 김자점에 대해서 좋은 시선을 보낼 수가 없었어요 이런 와중에 소현세자도 죽고 인조는 대신들의 반대를 모두 물리치고 기어이 차남 봉림대군을 왕세자로 세운 뒤 자기 친손자들을 모두 제주도로 귀양보내고 며느리마저 죽여버리죠. 그리고 여기에 김자점이 힘을 보태줍니다. 다른건 몰라도 봉림대군의 왕세자 책봉에 가장 적극적으로 찬동하면서 봉림대군을 밀어준게 김자점이었습니다. 훗날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죠 봉림대군 왕세자가 되고 난 뒤로는 술 한모금 마시지 않을 정도로 (정통성떄문에라도) 책잡힐 행동을 하지 않는 자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인조가 죽고 봉림대군은 효종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그가 왕이 되고난 뒤 조정의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일단 재야의 풍토는 이황 - 조식의 영향떄문이었는 지 벼슬을 버리고 물러가거나 벼슬을 하지 않는 등의 처신을 아름답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특히 병자호란 이후 이러한 풍토가 더더욱 거세졌습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산당 혹은 산림이라 불리우게 됩니다. 인조는 이러한 재야 선비들의 행동을 굉장히 고깝게 여겼었던 반면 효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우선 이들은 기본적으로 유명한 학자나 서원을 중심으로 그룹을 형성했습니다. 조선의 붕당이란 거 자체가 기본적으로 (정치적 노선과 함께) 학통을 중심으로 뭉쳤는데 그것과 유사합니다. 그 중에 가장 유명했던 것이 김장생의 문하생들로 그의 수제자가 바로 그의 아들 김집이었습니다. 또한 그 김장생과 김집의 수제자가 바로 양송으로 불리우는 송시열과 송준길이었죠. 효종은 즉위와 함께 김집은 물론이고 송시열과 송준길을 불렀습니다. 이들을 한꺼번이 부르자 곧 조정은 산당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됩니다. 벼슬을 기피하는 풍토가 있던 상황에서 벼슬을 멀리하던 유생들은 물론이고 조정에 나가있던 소장파 서인들까지 거의 대부분의 사림 아니 서인들은 모두 그들의 등장에 환호를 보내는 것은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자신의 대변자이자 리더로 옹립합니다. 괜히 영향력 아래에 놓였다는 말이 나오는게 아니죠 이런 상황에 가장 당황한 건 다름아닌 김자점이었습니다. 김자점도 이런 상황을 모르진 않았습니다. 다른건 몰라도 권력냄새 하난 기가막히게 맡는 코를 갖고 있던 김자점은 이들이 곧 조정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인의 중심이 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죠. 문제는 김자점이 갖고 있는 권력이란 어디까지나 인조의 총애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일단 산림은 기본적으로 반청이었고 (반면 김자점은 친청파였죠) 무엇보다 소현세자의 죽음에 굉장한 의심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효종의 왕통을 부정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소현세자는 물론 민회빈 강씨 (당시엔 역적 강씨라 해서 역강이라 불렸습니다.) 에 대한 동정심이 상당했었습니다. (나중에 얘기할지 모르겠지만 효종에게 소현세자는 그렇다쳐도 민회빈 강씨는 말 그대로 자기 정통성 제대로 건드리는 존재였던지라 역강이란 호칭 외에 다른 호칭으로 부르면 엄청나게 화내는 건 물론이고 여차하면 죽여버리는 상황이었습니다..) 동정심과 의심을 하는데 이걸 왕에게 돌릴 수 없었습니다. 그럼 누구에게 돌릴까요?네 바로 김자점이었죠 그렇게 김자점은 탄핵되기 시작했고 처음엔 효종이 막아주었으나 얼마 안가 결국 그의 역모사실이 밝혀지고 옥사가 일어나면서 김자점과 친청파는 한큐에 작살나고 조정은 서인 그 중에서도 산림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떄즘에 송시열과 송준길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으나 벼슬을 주고 부르고 낙향하고 하는게 계속반복됩니다..이후 현종이 즉위하고나서는 본격적으로 조정에 발을 붙게 되지만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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