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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9/07 21:35:43
Name   삼공파일
Subject   ‘메르스갤’로 대표되는 인터넷 여성주의에 대한 몇 가지 고찰
지난 몇 년간 인터넷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분명 ‘일베’였습니다. 논쟁이 반복되면서 일베를 둘러싼 입장은 대충 정리될 수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베를 싫어하고 거부하는 집단, ‘오유’로 대변되는 민주당 지지층, 소위 ‘깨시민’들 2) ‘일베충’ 3) 일베를 분석하고 인정하려는 입장, ‘좌파 먹물’. 아마 1번부터 그 숫자가 많을 것이고 인터넷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은 무슨 입장이고 어떤 이야기인지 아실 겁니다.

그런데 일베의 아성을 순식간에 무너뜨린 사이트가 등장했으니, ‘메르스갤’입니다. 지금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들은 뚜껑을 열어 보면 전부 이 메르스갤 관련 이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잠깐 여자친구랑 농담을 주고 받다가 이런 질문을 들었습니다. “메르스갤은 일베가 가진 사회적 의미조차 획득할 수 없다는 거야?” 그러고 보니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더라고요. 이후에 잠깐 해본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도덕적인 측면을 떠나서 인터넷이라는 공론의 장에서 메르스갤을 특정한 집단 혹은 담론 정도로 놓고 봤을 때 메르스갤과 일베를 평행하게 놓고 바라보는 것은 여러모로 이야기를 쉽게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봐도 메르스갤을 갈리는 담론의 대치 양상이 일베의 것과 비슷해 보이거든요. 1) 메르스갤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집단, ‘오유’로 대변되는 민주당 지지층, 소위 ‘깨시민’들 2) 메갤러 3) 메갤에 찬성하고 합류하려는 입장, ‘좌파 먹물’.

재밌는 점은 메갤러들이 적극적으로 싸우는 집단은 ‘여혐’이라는 말의 창시자들인 일베충들이 아니라 깨시민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여혐을 좋아하는 일베는 메갤러와 담론으로 부딪히지 않습니다. 원래 하던 대로 여자를 팬다느니 김치년이라느니 하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언어들을 쏟아내지만, ‘미러링’이라는 흥미로운 용어를 만들어내면서 오히려 일베를 따라합니다. 그리고 깨시민들에게 너희가 일베와 다를 바가 뭐냐면서 욕을 쏟아내죠. 더 웃긴 건 깨시민들도 매갤을 여자 일베로 칭하면서 서로를 일베라고 욕하는 상황입니다. 정작 일베는 이 담론에서 쏙 빠집니다. 이것은 반대편에도 아주 똑같습니다. 메르스갤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싸움에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두 번째로 재밌는 점은 좌파 먹물들의 입장입니다. 상당히 많은 좌파 먹물들은 일베를 침착하게 분석합니다. 일베가 보여주는 각종 차별주의를 어떤 사회적인 문제에서 원인을 찾고 이런 일베가 등장한 것은 결과론적인 현상이라는 해석이 대표적이죠. 그리고 이 차별주의는 사실 너희 깨시민들한테도 있는 것이라면서 화살은 일베가 아니라 깨시민들에게 쏩니다. 정치적으로 찬동할 수 절대 없는 일베지만 나름 그 의미를 인정하는 것이죠. 그런데 메르스갤을 대하는 태도는 상당히 적극적입니다. 여혐혐, 미러링 등 신조어부터 해서 원래 써먹던 먹물 튀기는 이론들을 적극 가져와 메르스갤의 윤리적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약간 물음표가 가는 이슈들에 대해 우리는 같은 편이라고 공식적으로 깃발을 꽂고 이론적인 지원 사격을 퍼붓는 것이죠.

교집합을 찾아보면 깨시민과 먹물, 먹물과 메갤러, 메갤러와 일베가 있을 것입니다. 메갤러와 깨시민, 일베와 깨시민은 절대로 교집합이 없어 보입니다. (먹물과 일베도 없을 겁니다. 이건 다음 문제로 넘어갑니다.) 이런 그림을 그려 놓고 보면 메이저 담론과 마이너 담론으로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20~40대, 대학 교육 이상의 교양을 갖춘, 민주당 지지자, 남성”이라는 인터넷 담론의 절대 다수이자 절대 우월에 맞서는 마이너 담론의 뜬금 없는 출현인 것입니다.

이 집단의 우월적 지위는 아주 복합적입니다. “민주당 지지자”라는 점은 몹시 중요한 것으로 자동적으로 윤리적 정당성과 지적 우월성을 담보합니다. 근현대사, 민주주의, 이것저것 여튼 양심을 가진 지식인이라면 새누리당을 뽑을 수는 없습니다. 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맞서는 마이너 담론인 일베는 가장 먼저 윤리적 정당성부터 포기합니다. 이를 가식적 껍데기로 폄하하고 비꼬는 것이죠. 그리고 그에 맞서는 개념인 ‘팩트’를 만들어냅니다. ‘팩트’의 중요한 특징은 윤리적 정당성의 토대가 되는 서사 구조를 붕괴시키는 것입니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5월 광주에서 경찰서를 습격해 총기를 가져간 것은 팩트 아니냐”로 대표되는 것이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메이저 담론에 편승할 수도 껴볼 수도 없습니다. 일베충들이 가끔 주장하는 “우리는 인터넷에서 소수인데 너네는 소수 차별하냐”라는 이야기의 근원이라고 봅니다.

다시 메르스갤로 돌아와서 이제 여기는 깨시민들의 특징인 “남성”을 건드리는 것입니다. 메갤러들이 주로 공격하는 대상은 앞서 말했듯이 딱히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일베의 극단적인 여혐이 아닙니다. 깨시민들의 발화 구조에 깔려 있는 여성 차별주의적 시각을 굳이 드러내서 싸웁니다. 쉬운 예가 이번 맥심 표지 사건일 것입니다. 사실 아주 간단하게 보면, 맥심 표지는 보기에 따라서 충분히 찝찝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범죄 장면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잡지에 인쇄해서 뿌린 것인데 문제 제기할 법도 합니다. 폭력적이냐 아니냐, 잡지 표지로 쓰기에는 너무 폭력적이냐 아니냐, 라는 논란이었다면, 지금 싸우는 사람들이 입장에 전부 반대로 가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바위 위에 부엉이를 그려놓은 표지를 썼다거나 누가 코알라 모자를 쓰고 있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런데 논란은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깨시민과 메갤러의 전쟁으로 뻗어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일베와의 전쟁과는 다른 모습을 목격합니다. “여성”이라는 메갤러의 지위가 그동안 메이저 담론이었던 깨시민이 자동적으로 독점해왔던 윤리적 정당성을 빼앗아 옵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약자거든요. 깨시민들은 굳이 이 사실을 뒤흔드는데 집중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들이 윤리적이라서가 아니라 더 쉬운 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일베충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약자라는 사실을 뒤흔드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윤리적 정당성의 근거를 팩트의 이름으로 빼앗아 오는 것이죠. 일베충이든 메갤러든 싸우는 방법이 다를 뿐 싸우는 대상이 같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로 말이죠.) 깨시민들이 메갤러를 격파하는데 사용하는 것은 바로 “논리”입니다. 일베충의 무기인 “팩트”와 비교하면 참 재밌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남자는 성희롱해도 되냐?”라는 것입니다. 논리라는 것은 단순히 언어의 구조이니 상황이 바뀐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죠. 남자고 여자고 똑같이 성희롱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깨시민의 메갤러를 향한 공격은 대부분이 메갤러의 모순점을 찾아 논파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좌파 먹물들은 메갤러의 싸움에서 기회를 잡습니다. 그동안 메이저 담론에 비해 부족했던 윤리적 정당성을 여성이라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집단의 편에 섬으로서 쉽게 획득한 것이죠. 이 싸움에서 그동안 억눌렸던 키보드 배틀의 재능을 가장 널리 펼치는 사람들이 바로 메갤러와 먹물의 교집합에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깨시민의 “논리” 공격에 가장 날카롭게 대응할 수 있기도 하기에 대중의 관심은 못 받지만, 담론 자체로서의 화력이나 논쟁성은 일베와의 싸움보다 훨씬 불타오르게 되는 것이죠.

우리가 인터넷에서 페미니즘이라고 했을 때, 주디스 버틀러 책을 강독하는 공부를 지칭하는 말은 분명히 아닐 겁니다. 물론 주디스 버틀러 책을 강독하는 사람들이 이 논쟁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지만, 학문적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죠. 저는 이 문제를 담론과 담론이 부딪히는 아주 순도 높은 정치적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사실 일베도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안에 있는 윤리적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기에 사회적으로 더 깊게 생각하게 된 것이고요. 페미니즘 논쟁에서는 윤리적 문제를 느끼지 못하기에 별로 사회적으로 의미를 두지 않게 되고 깨시민들이 하듯이 논리적 비정합성이나 비웃고 넘어가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성의 문제에서 이미 남자로 태어난 제가 이 정치적 담론에 참여하는 문제는 결국에는 실천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인데 좌파 먹물 담론에 합류해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겠으나 실천의 문제라는 윤리 앞에 제대로 설 자신이 없더군요. 제 안에 있는 차별주의와 우월주의를 제대로 대면하고 싶지 않은 비겁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자아 성찰은 이 문제에 발 담그기는 싫지만 흘러가는 모양을 보니 재미는 있다라는 설명에 대한 배경이었습니다. 이하는 댓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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