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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9/10/20 19:36:20수정됨 |
Name | OSDRYD |
File #2 | IMG_1489.jpg (537.7 KB), Download : 8 |
Subject | 최고령 의사 히노하라 시게아키(日野原重明, 1911-2017) |
이번 엠티의 숙소였던 Cottage Biwako Club에는 특별한 기념관이 하나 있습니다. 일본의 최장수 현역의사로 기록된 히노하라 시게아키(1911-2017)를 위한 기념관입니다. 그는 1911년생으로 교토대학 의학부에 입학하고 1939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1941년에 동경의 성누가병원(2019년 newsweek 평가 일본2위)의 순환기 내과의사로 시작하여, 1992년 원장, 1996년 명예원장을 지내게 됩니다. 아무래도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많다보니 중간중간 에피소드도 다양합니다. 1970년 내과 부장이던 시절, 학회 참석차 탑승한 여객기가 적군파에 납치되는 요도호 사건의 탑승자로 긴박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김포공항에서 다행히 살아남게 됩니다. 요도호 사건 이후, 히노하라의 인생관이 바뀌게 됩니다. 큰병원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명예를 추구하던 삶에서, 생명 사상을 전파하는 활동가가 되었습니다. 전쟁과 헌법개정을 반대하며,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생명의 그릇을 가지고 타인을 도와주자는 캠페인을 펼치는 의사가 됩니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 "인명의 중요성을 의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의사야말로 평화의 최전선에 서서 행동해야 한다. 지금도 잊지 못한다. 지독한 전쟁이었다. 지옥이었다. 아이들에게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102세였던 2014년에는 '10대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헌법의 책'을 간행해 "자위대가 전쟁을 할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꾸는 것에 반대한다"고 강조하며 "일본이 이미 전쟁으로 잘못된 일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야 말로 생명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들에게 알리고 싶다" 1995년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에서 외래진료를 중단하고 밀려오는 환자들을 무제한으로 입원시켜 대처하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당시 히노하라 원장의 역할이 컸습니다. 그는 과거 도쿄 대공습당시에 대량환자를 대처하지 못한 점을 반성하여 혹시라도 재난상황에 대비해서 병원 설계를 변경하였던 것이 효과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 한 직업을 100세까지 한다는 것, 저에게 그런 열정이 남아 있는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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