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9/10/25 23:36:32
Name   사이시옷
Subject   끌어 안는다는 것, 따뜻함을 느낀다는 것에 대해
전 참 좋았어요.

엄마는 제 등 위에서 피아노를 치듯이 손가락으로 등을 두드려주셨죠.
밤이면 자장자장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제 등에 가볍게 울려오는 토닥거림도 기억나고요,

포대기에 싸이기 위해 엄마 등에 폴짝 뛰어올라 엄마 목을 감싸면,
저를 추슬러 포대기 안에 단단히 감싸시며 곧 엉덩이를 손으로 통통 쳐주셨어요.
그럼 저는 좋아하는 엄마 냄새를 가득 마시며 행복감과 나른함에 젖어 들었죠.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청국장 냄새가 나는 할머니 방에 기어들어 가면
꼭 시계 반대 방향으로 쓰다듬어 주셨어요. 쉬쉬 소리를 내시며 따뜻한 약손을 내어주셨죠.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이 출근하실 때는 현관 앞에서 왼쪽 볼, 오른쪽 볼, 입술에 뽀뽀했었죠. 쪽쪽쪽 소리가 크게 나지 않으면 다시 해야 했어요. 겨울이 오면 아빠는 배웅 뽀뽀를 하기 전 갈라진 제 입술에 찹스틱을 발라주셨어요. 그런 날이면 아빠 볼에 제 입술 자국이 진하게 남았지요.

이렇게 거의 매일, 매 순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과 체온이 저를 채워줬었죠.
그런데 사춘기가 되고, 성인이 되고 나니 이 모든 것들이 부끄러워지더군요. 그러니까 멈췄죠.
그래서 연애를 열심히, 열심히, 열심히! 했나 봐요. 여전히 마음속에선 손길과 체온을 원했기 때문이었죠. 뭐.. 다른 것도 원했겠지만요.

언젠가 모든 사람은 체온이 36.5도일 텐데 왜 서로 맞닿아 있으면 더 따뜻하게 느껴지나 궁금했던 적이 있어요. 이제 와 생각해보니 혼자만의 체온으로 살기엔 찬 바람이 너무나 많이 불기 때문인가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외로움이란 것은 마음이 추워질 때 보내는 신호겠지요?

끌어안으면, 끌어안기면 느껴지는 온기 속에서 제가 살아있음을 강하게 느껴요. 희미해진 내가 다시 찐하게 돌아오는 기분이에요. 그와 동시에 나와 맞닿아있는 존재도 강하게 느껴져요. 과거에 끌려다니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 속을 헤매지 않게되요. 지금 느껴지는 이 순간 속에 숨쉬게 되어요.

그래서 참 좋아요.
그래서

사고뭉치 고양이를 한 번 더,
여전히 귀여운 아내를 한 번 더,
맨날 난리치는 아들을 한 번 더,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안아주실 엄마 아빠가 안계신 부모님을 안아드릴래요.



P.S.: 멍청똑똑이님의 '체온 가까이의 온도'를 읽고 씁니다.



13
  • 감사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620 역사일본 보신전쟁 시기 막부파와 근왕파 번藩들의 지도 6 유럽마니아 20/05/26 5531 1
11253 사회우리 시대를 위한 혁명가 5 ar15Lover 20/12/20 5531 5
2629 방송/연예[스포] 무한도전 젝스키스 게릴라 콘서트. 4 Bergy10 16/04/16 5532 1
10987 사회재난지원금 신청/지급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7 Leeka 20/09/24 5532 5
11093 경제사회초년생이 집을 장만할 수 있는 정석루트 3종 16 Leeka 20/10/27 5532 4
12336 정치노재승을 왜 철회하지 못할까..? (뇌피셜) 26 Picard 21/12/09 5532 0
1597 음악Pink Floyd - Come In Number 51, Your Time Is Up 2 새의선물 15/11/19 5533 0
1975 영화2015년 최악의 영화를 찾아서 6 kpark 16/01/08 5533 0
10084 일상/생각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5 우럭광어 19/12/15 5533 13
10689 기타니들도 선생이냐 - 제 버전 6 회색사과 20/06/15 5533 0
9889 일상/생각끌어 안는다는 것, 따뜻함을 느낀다는 것에 대해 3 사이시옷 19/10/25 5534 13
10513 역사도철문, 혹은 수면문 이야기 2 Chere 20/04/18 5534 14
3612 게임NBA2k17이 나옵니다. 4 Leeka 16/08/31 5535 0
4067 기타콜 더 미드와이프 2 알료사 16/11/03 5535 3
4590 영화메릴 스트립의 Cecil B. DeMille 상 수상 소감 9 Beer Inside 17/01/10 5535 2
7199 일상/생각블루투스, 너마저...! 6 No.42 18/03/06 5535 3
8812 스포츠페-나-페-나-페-나-조-조-조 8 손금불산입 19/01/27 5535 0
9110 기타2019 GSL 슈퍼 토너먼트 시즌1 결승전 우승 "김도우" 김치찌개 19/04/23 5536 0
9705 일상/생각N은행 스펙타클 하네요.. 15 집에가고파요 19/09/25 5536 1
11375 음악사랑의 그림자 3 바나나코우 21/01/25 5536 4
929 정치교통사고, 반드시 죽이고야 마는 19 눈부심 15/09/06 5537 0
2671 음악20세기에 태어난 흑인 모차르트, 별이 되어 떠나다. 5 Terminus Vagus 16/04/22 5537 2
3417 일상/생각[이벤트신청마감]제가 신봉하는 옛 성현의 말씀! 52 난커피가더좋아 16/08/01 5537 3
3171 의료/건강담배는 파킨슨병을 줄여줄 것인가? 22 레지엔 16/07/01 5537 2
5338 꿀팁/강좌와우의 홍차넷 컨텐츠 소개[2/?] 12 와우 17/03/31 5537 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