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03/12 10:43:06
Name   Picard
Subject   제조업(일부)에서의 여성차별

제가 모든 제조업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저희 업계에서도 내부 분위기는 저희 회사 밖에 모르지만...

제가 다니는 회사는 제조업이고 중공업입니다. 아차 하면 사람 죽을 수 있는.... 실제로 업계에서 거의 매년 사망사고가 났다고 소식이 들립니다. (저희 회사의 마지막 사망사고는 5년전..)
저희 회사 현장 기술직은 여자가 한명도 없습니다. 자동화가 많이 되어 근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사고로 손의 절반을 잃은 분도 의수 끼고 일하지만 하여튼 여자는 한명도 없고, 현장에 여자가 없다고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습니다.

사무직을 보면..
저희 회사 사무직중 여성의 비율은 약 20% 정도 입니다. 그런데 이중 (작년에 개봉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에 나온 분들 같은) 업무지원직 비율이 상당수 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서울 본사에 근무합니다. (여담으로, 업무지원직에서 사무관리직으로 전환이 가능하긴 한데, 시험이 상당이 어렵고 지금까지 수십년동안 이 시험에 응시한 사람은 극소수고 그나마 합격한 사람이 15년전에 딱 한명입니다.)
과거 신입 공채를 하던 시절, 남녀 비율을 보면 대략 8:2 정도 였는데... 작년부터 정규직 전환 연계 인턴 채용으로 바뀌면서 9:1 도 안됩니다. 올해 20명 뽑았는데, 여자는 딱 한명이었고, 작년에는 10명 뽑았는데 다 남자였습니다. 대부분의 팀이 여자를 원치 않으니 남자만 뽑았다가 욕먹고 한명 끼워놓은거 아닐까? 하는 뇌피셜... (....)

제가 근무하는 공장에 업무지원직 포함 여자가 7% 정도인데, 이중 위에 말한 업무지원직을 빼고 대졸 사무관리직으로 좁히면 딱 1명입니다. 그나마 2명이었다가 몇년전 구조조정할때 내보냈습니다.

여자 부장은 전사 통틀어서 한명도 없습니다. 임원은 뭐 말할것도 없고요.
십여년전, 제가 신입사원일때 여성임원비율 기사가 났던 적이 있는데, 저희 업계는 상위 10위권 회사에 여성 부장도 없다고 모 언론(중앙이었나, 조선이었나)에서 때렸는데...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여성 부장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저희 업계 다른 회사도 대동소이하고요.

여자 차장이 딱 3명 있는데, 이분들 사내에서 다들 인정하는 슈퍼우먼들이고요. 그런데 10년째 부장 못달고들 계십니다.
모 여성 차장을 부장 진급 시키려고 총괄부사장(COO)까지 이야기 했는데, CEO 직속의 인사실장이 '부사장님, 이 친구 부장 승진 시키면 커리어 꼬여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세요?' 라면서까지 반대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부장 = 팀장인데, 같은 팀에 부장급이 여럿 있으면 팀장이 팀을 이끌기가 껄끄럽습니다. 부장진급하고 실무자하기도 껄끄럽고요. 여자를 부장 승진시키면 팀장을 달아줘야 하는데, 여자 팀장은 시기상조고, 팀원으로 돌리려면 다른 팀장들이 안 받으려고 할거라는 이유로 커리어가 꼬인다는거죠. 유리 천정이 아니라 대놓고 불투명 방탄유리천정이 있는 셈입니다.

몇년전에 구조조정을 할때 팀별로 인원 할당이 있었습니다. 주로 고참들이 나갔는데, 3년차 사원인 여자 엔지니어가 있는 한팀만 그 친구가 나갔죠. 나중에 들은바로는 팀장이 그 친구를 불러다가 '우리 회사는 여자 안 키운다. 너 아직 젊잖아.. 위로금 줄때 나가서 새출발 하는게 낫다' 라며 내보냈습니다.

저희 팀에도 여자가 한명 있었는데, 이사님 모시고 출장 다녀오는데 이사님이 '*** 대리 때문에 고민이 많다' 라면서 운을 떼시더군요. 결혼하면 육아휴직도 할테고 그동안 빈자리를 어떻게 메꿀지, 과장 승진은 어떻게 시킬지 등등.... 아니 그런데, 그때 이 친구 결혼은 커녕 남친도 없었거든요.. ㅋㅋㅋ  그냥 이 핑계 저핑계로 여자 부하 직원을 데리고 있기 싫다는거겠죠.
그래서 작년에 다른 팀으로 보냈습니다. 당사자한테는 한마디도 없이...

이런 일을 공식적으로는 막아야 하는 인사팀에서도...
3년 선배인 여자 과장은 내내 과장이고.. 3년 후배가 먼저 차장 달더니 이제는 인사팀장 되었습니다.
법적으로는 문제 안 생기겠지만...
여자는 왠만하면 과장까지는 승진한다. 그런데 그 이후는 없다. 후배들이 추월해가기 시작하면 현타가 오고 자진해서 나간다.
이걸 충실히 실행중이죠.

저희 회사는 소비자들은 모르는 중견기업이지만, 업계에 대기업도 있고 누구나 들어도 아는 회사도 있는데 대충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이렇게 여성 차별을 하는 회사가 남자라고 차별 안할리가 없죠.
흔히 있는 학맥, 인맥외에...
전형적인 '남자다운 남자' 가 아니면 차별 받습니다. 윗분들에게는 깍듯하고, 씩씩하고 술 잘먹고, 후배들한테는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 솔직히 말하면 꼰대+진상이어야 인정 받죠.
남자다운 남자가 성골이고, 성별로는 남자지만 남성성이 부족하면 진골, 여자는 육두품이랄까요. 걔중에 슈퍼우먼이면 여자도 진골 취급을 받긴 하지만 워낙 극소수라...

제가 협력사나 후배들한테 반말 안하고 좋게 대해주니 (저를 싫어하던) 이전 상사가 '난 너 군대 면제인줄 알았다. 과장 달고도 조직에 적응(?) 못해서' 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윗분들이 나가면서 팀장 달았을때, 뭐? 피카드가 팀장 달았다고? 하면서 놀란 분들이 은근 많았다고..  다른데서 팀장이 올줄 알았대요. 솔직히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ㅋㅋㅋ)


그래서 요즘에 성차별이 어딨냐.. 남자가 역차별 받는다..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 업계가 후진건가.. 아니면 저 사람들은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이런 현실을 모르는 걸까..
서울/경기도는 성차별이 없나? 제조업이 아니면 성차별이 덜한가? IT는 성차별이 없나?
이런 궁금증이 듭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3-23 07:37)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6
  • 늘 느끼고 부딪히는 일을 다른 업계지만 업계 종사자로서 잘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로 남초 커뮤니티를 보는 남초집단 내 여성으로 공감 많이 했어요.
  • 업계 내부를 들여다보면 성차별 만연하죠.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22 기타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차가운 거리로 나서는 이유 4 삼유인생 24/12/08 1091 40
1421 기타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난 다시 만난 세계,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노래 4 소요 24/12/08 909 22
1420 기타 나는 더이상 차가운 거리에 나가고 싶지 않다. 9 당근매니아 24/12/08 1359 43
1419 기타페미니스트 vs 변호사 유튜브 토론 - 동덕여대 시위 관련 26 알료사 24/11/20 4588 33
1418 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1182 32
1417 체육/스포츠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840 32
1416 철학/종교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1083 21
1415 정치/사회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3 매뉴물있뉴 24/10/28 2065 18
1414 일상/생각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1083 36
1413 문학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5 심해냉장고 24/10/20 1738 41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2025 16
1411 문학『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1073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348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193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534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196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2112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739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545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2035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792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700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2940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1967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198 11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