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2/07/27 14:19:19
Name   Picard
Subject   (영양無) 나는 어쩌다 체조를 끝내고 레전드로 남았는가
안녕하세요. 중견기업 중년회사원 아잽니다.

아래 댓글에 보내 체조를 어떻게 안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셔서... 썰 풀어 봅니다.

1. 구보....(???)
제가 1년차 사원시절...
우리 공장은 매일 아침 8시 40분에 체조를 했습니다. 그 체조에 참여 안하면 지각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게 했지요.
그러던 어느날... 총무팀장이 공장 전 사무직에게 전체 메일을 쏩니다.
사원 여러분의 건강을 위해 다음주 월요일부터 체조 끝나고 공장 한바퀴 도는 구보를 하겠다고...

총무팀장이 예비역 소령 출신이라지만... 구보? 구우우우보오오오?
미쳤구나? 진짜 군대스럽다 군대스럽다 하니까 진짜 군댄줄 아나?
그래서 옆자리 사수 대리님에게 '구보는 너무한거 아닙니까?' 라고 하니까 대리님이 '에효 ㅅㅂ... 까라면 까야지..' 라고 하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1년차 신입사원의 패기로 저는 그 공지 메일에 회신을 누릅니다.
'사람마다 건강상태도 다르고, 사정도 있는데 군대도 아니고 구보는 너무 한것 같습니다. 재고 해주십시오'
지금도 날씬하진 않지만, 그때도 고도비만형이었고 저희 공장 외곽으로 한바퀴 돌면 2km 쯤 됩니다. 안에서 짧게 돌면 1km. 좀 넘고요.

그 다음날... 팀장회의 갔던 팀장이 씩씩 거리면서 오더니 '피카드! 회의실로 와!' 합니다.
회의실로 들어가니 '야! 넌 그런 메일을 보냈으면 나한테 귀띰은 해줘야지!' 라고 합니다.
팀장 회의에서... 총무팀장이 공장장, 부공장장 및 전 팀장들 있는 자리에서.. 저희 팀장 들으라는 듯이 비아냥 거리면서
'아이고.. ***팀에 1년차 신입사원 피카드가 구보를 못하겠다네요?' 라고 실실 쪼개더랍니다.
팀장은 당황해서.. '어.. 걔가 뚱뚱하잖아요. 걔 공장 한바퀴 못 돌아요.'하면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으니 총무팀장이
'그러니까 뛰어야지요. ***팀장님은 신입사원들을 어떻게 대하시길래.. (이런 메일을 쓰게 합니까?)' 라고 하는데..
부공장장이.. '하긴 피카드 걔는 공장 뛰라고 하면 죽을지도 몰라' 라고 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답니다.
다른 팀장들도 '애들이 다 야근에 찌들어서 아침에 구보 하라고 하면 쓰러질지도 모르죠'
'우리 팀 ***이도 비만인데...'
'응.. 피카드 걔는 족구도 완전 개발이더라....'
(그렇습니다. 다들 구보는 선넘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총대를 메긴 싫었던 것)
그래서 그 자리에서 '구보는 하지 말자' 로 결론이 낫고 총무팀장은 그 뒤로 저만 보면 '운동 좀 해라, 살빼라'를 했습니다.
팀장도 씩씩대면서 부르긴 했는데 좀 지나니까 구보 안하는게 나았던건지 그냥  '다음부터는 이런거 있으면 미리 말하는거다. 니가 신입이라 몰라서 그랬나본데..'로 대충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신입사원 피카드가 구보를 막았다'라고 소문이... (...)
'야 월요일부터 구보 한다고 하지 않았어?'
'어, 피카드가 총무팀장에게 개겼대'
'응? 걔 올해 들어온 신입 아니야? 용감하네..'
'뭐 어때.. 구보 안하게 되었으면 되었지..'
지금도 가끔 고참 부장님들이 얘기 합니다. '피카드 니가 걔였지?' 하고..


2.
몇년전, 미세먼지로 온나라가 난리던 과장 시절...
기상청과 뉴스에서는 바깥활동 하지 말아라, 미세먼지 경보다 난리를 치고 눈으로 봐도 누렇던 어느날..
총무과장(위에 팀장이랑 다른 사람)이 또 전체 메일을 보냅니다.
'요즘 체조 참석율이 저조하니 팀장님들 체조 참여 독려 바랍니다. 총무팀에서 출결 점검 예정입니다.' 라고요
(부연설명을 하면 총무과장은 저보다 한살 많지만 경력직으로 들어온지 3년쯤 되었을때고 저는 10년이 훌쩍 넘은 사람이었습니다. 원래 경력직으로 들어올때 1년후 차장 승진하기로 했었는데, 차장 승진을 위한 사내 자격 시험을 통과 못해서 승진을 못하고 반기마다 있는 시험을 3수째 하고 있었고(통과한다고 차장 승진 시켜주는건 아니지만 통과 못하면 아에 차장 진급 대상에서 제외), 저는 같이 시험봐서 재수 안하고 통과한 상태..)

눈으로 봐도 미세먼지가 심하고 바깥에 돌아다니면 목이 매케한데 얘는 왜 체조에 목메는거지?
하지만, 저도 철모르던 신입이 아니니까... 메일을 보내진 않고 총무팀에 찾아 갑니다.
'과장님.. 요즘 미세먼지 때문에 난리인데 아침에 체조를 꼭 해야 하는건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하니..
'회사 규칙이잖아요?' 라고 짜증을 냅니다.
'회사규칙에 체조 얘기가 어딨어요. 직원들 건강을 위해 도리어 말려야지..'
'아 ㅅㅂ... 하라면 해요. 총무에서 하라면 하는거지 왜 말이 많아'
갑자기 욕과 반말을 들은 저도 빡이 쳤습니다.
'총무는 현업이 업무를 잘하게 지원해주는 부서지, 군대가 아니잖아요? 왜 까라면 까야되는 겁니까? 공장장 결재 받아서 게시판에 당당하게 게시를 하든가?!'
이렇게 언성이 올라가니 옆에 있던 노무팀장(고참 부장)이 말립니다.
'야야... 별거 아닌거 가지고 왜 그래.. 피카드 너 현장 가라..'

그리고 팀장회의때 총무과장이랑 제 이야기를 노무팀장이 했고, 공장장이 그렇지 않아도 말을 할까 했다며 미세먼지 경보 있을때까지 체조를 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뭐 거의 매일 미세먼지 경보였잖아요. 그래서 미세먼지 경보 있다고 안하고 비와서 안하고 하다가...
몇달만에 미세먼지 경보도 없고 비도 안오는 날이었어요.

원래 한달에 두번 9시에 총무, 노무 등 지원부서 빼고 모든 현업부서 과장 이상 다 참여하는 회의가 있는데, 그때 공장장이 오전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회의를 8시반으로 당겼습니다. (네.. 저희 9시 출근입니다.)  보통 일정이 있으면 회의를 연기하던가, 서면대체 하던가, 짧게 하던가 하는데 실적이 너무 안 좋아서 공장장이 기분이 안 좋아서 회의를 당긴것이었습니다. (과장이상 중간관리자들 까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30분에 칼같이 보고가 시작되었는데, 이미 공장장은 기분이 안 좋았지요. 그런데 40분이 되자 갑자기 체조 방송이 그날따라 엄청 크게 나오는 겁니다. (3분간 체조 음악이 나오고 건물 앞에 도열해서 체조시작) 오래간만이라 그런지 진짜 우렁차게 틀었더라고요. 체조 한다고 신이 났던건지..
하지만, 폭발한 공장장이 '야!, 총무는 이 회의 안들온다고 한가롭게 체조방송이나 틀고 있어? 여기 다 모여 있는데? 체조할 사람이 누가 있나?  당장 끄라고 해!' 그래서 부랴부랴 팀장들이 전화해서 음악 끄고.. '앞으로 총무, 지원팀도 다 들어오라고 해! 이 놈들 공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한가롭게 음악이나 틀고 말야!' 라고 해서 그 뒤로 지원부서 과장이상 다들 들어와서 구석에 앉아 졸고 있게 되었고...

그 뒤로 체조가 없어졌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제가 총무과장이랑 싸워서 체조가 없어졌다고 기억을 하네요.
이렇게 저는 항상 총무팀과 각을 세우는 레전드(?)가 되었고... 그래서 총무가 제가 얘기하는건 잘 안해줍니다. ㅠ.ㅠ

이외에도 이렇게 튀는(?) 행동을 많이 해서 '난 이 회사에서 진급은 글렀어...'라고 했고, 부장들도 '피카드 너는 참 요즘 애들 같다..(아니 요즘 애들 같으면 진즉 그만뒀지)' 라고 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예전 이사님이 잘 봐주셔서 승진도 하고 팀장도 되었지만, 지금은 좌천되어 공장으로 빽...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2-08-07 22:40)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1
  • 아아 이것은 치토스같은 맛 용양가 없고 마딛는맛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19 기타페미니스트 vs 변호사 유튜브 토론 - 동덕여대 시위 관련 26 알료사 24/11/20 5134 34
1418 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1316 33
1417 체육/스포츠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958 32
1416 철학/종교비 내리는 진창을 믿음으로 인내하며 걷는 자. 8 심해냉장고 24/10/30 1195 21
1415 정치/사회명태균 요약.txt (깁니다) 21 매뉴물있뉴 24/10/28 2307 18
1414 일상/생각트라우마여, 안녕 7 골든햄스 24/10/21 1186 36
1413 문학뭐야, 소설이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은 거였나 15 심해냉장고 24/10/20 1816 41
1412 기타"트렌드코리아" 시리즈는 어쩌다 트렌드를 놓치게 됐을까? 28 삼유인생 24/10/15 2114 16
1411 문학『채식주의자』 - 물결에 올라타서 8 meson 24/10/12 1126 16
1410 요리/음식팥양갱 만드는 이야기 20 나루 24/09/28 1409 20
1409 문화/예술2024 걸그룹 4/6 5 헬리제의우울 24/09/02 2274 13
1408 일상/생각충동적 강아지 입양과 그 뒤에 대하여 4 골든햄스 24/08/31 1616 15
1407 기타'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3 김비버 24/08/13 2260 13
1406 일상/생각통닭마을 10 골든햄스 24/08/02 2165 31
1405 일상/생각머리에 새똥을 맞아가지고. 12 집에 가는 제로스 24/08/02 1789 35
1404 문화/예술[영상]"만화주제가"의 사람들 - 1. "천연색" 시절의 전설들 5 허락해주세요 24/07/24 1607 7
1403 문학[눈마새] 나가 사회가 위기를 억제해 온 방법 10 meson 24/07/14 2088 12
1402 문화/예술2024 걸그룹 3/6 16 헬리제의우울 24/07/14 1843 13
1401 음악KISS OF LIFE 'Sticky' MV 분석 & 리뷰 16 메존일각 24/07/02 1769 8
1400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3) 26 삼유인생 24/06/19 3021 35
1399 기타 6 하얀 24/06/13 2010 28
1398 정치/사회낙관하기는 어렵지만, 비관적 시나리오보다는 낫게 흘러가는 한국 사회 14 카르스 24/06/03 3268 11
1397 기타트라우마와의 공존 9 골든햄스 24/05/31 2075 23
1396 정치/사회한국 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2) 18 삼유인생 24/05/29 3285 29
1395 정치/사회한국언론은 어쩌다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나?(1) 8 삼유인생 24/05/20 2839 29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