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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1/09/18 15:39:23 |
Name | 코리몬테아스 |
Subject | 뉴질랜드와 핵실험, 거짓말쟁이 프랑스. |
호주가 오커스에 가입하여 핵잠 진수가 본격화되자. 뉴질랜드는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호주의 핵잠은 뉴질랜드의 영해에 들어올 수 없음을 분명히 했어요. 뉴질랜드는 세계에 널리 알려진 비핵지대고, 30년전 모든 종류의 핵폭발물을 비롯한 핵무기를 뉴질랜드 영공,영해,영토에 들일 수 없다는 비핵선언을 했죠. 주요 동맹국인 호주의 핵잠을 거부하는 것도 이 맥락이고요. 뉴질랜드가 이웃한 바다와 섬들은 오랫동안 열강들의 핵실험기지였어요. 핵실험의 부작용과 피해에 민감했고, 그에 따라 1950년대부터 핵폐기 운동에도 적극적이었죠. 거기서부터 뉴질랜드의 핵무기 보유 동맹국들과의 오랜 갈등이 시작되었어요. (프랑스의 무루로아 환초 핵실험) 태평양 제도의 무기실험에 영국과 미국을 빠뜨릴 수는 없지만, 뉴질랜드의 강경한 핵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건 프랑스에요. 프랑스는 비교적 최근인 95년도까지 핵실험을 진행한 나라에요. 1974년까지 가장 논란이 되는 핵실험인 대기중 핵실험도 진행했는데, 원래 그 실험장소는 프랑스령 알제리였어요. 그리고 알제리가 독립하자 대안으로 찾은 게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요. 그 과정에서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주민들의 약 50%~100%(오타 아님)가 크고 작은 피폭을 당했어요. 가족단위로 피폭당해 13명의 대가족이 모두 암으로 죽어 혈통이 끊기는 일이 왕왕 있었죠. 2000년대 중반까지 프랑스 정부는 그 실험의 영향이 크지 않을 꺼라고 말했지만, 관련 보고서는 비에 섞여 내리는 방사성 낙진 피해 등을 아예 고려하지 않는 등. 핵실험으로 인한 피해는 아주 잘못 평가되어있었어요. 이후 프랑스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고 보상을 시작했는데, 추정 피해자는 20만명 가까운데 보상받은 이들은 60명. 퍼센트로 따지면 0.0003%(오타 아님) 그 섬들은 뉴질랜드와 비교적 가까웠죠. 지금까지도 뉴질랜드는 해당 핵실험이 해당 제도 전체와 뉴질랜드 국민들에게 끼친 피해를 조사하고 있어요. 대기 중 핵실험의 영향을 우려한 뉴질랜드와 호주는 국제협약에 근거하여, 1973년에 합동으로 프랑스의 핵실험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고발합니다. 프랑스는 ICJ가 해당 문제에 관할권이 없다며 출석을 거부하다가 1974년 프랑스 대통령이 해당 제도에서 더 이상 '대기중'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어요. ICJ는 이에 따라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보고 사건 종결. 이는 국제사법재판의 역사에도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에요. 국가수반이 국제사회에 공식적으로 한 약속의 의미. 그걸 ICJ와 같은 국제기구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등. 프랑스는 이후 '대기중' 핵실험 대신 지하 핵실험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무루로아 환초를 비롯한 인근 해양 생태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어요. (침몰한 레이보우 워리어)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85년 '레인보우 워리어 테러'가 일어나요. 무루로아 환초에서 벌어지는 프랑스 핵실험에 반대하기 위해 뉴질랜드 오클랜드 항에 정박했던 그린피스 산하 레인보우 워리어호에 프랑스 공작원들이 폭탄을 설치. 배를 폭파시킨 사건. 이전에도 프랑스는 특수부대 등을 동원해 핵실험에 반대하는 그린피스 운동가를 물리적으로 위협하고 상처입혔던 적이 있는데. 이 테러가 그 정점이었어요. 그린피스는 이제와서는 동물권이나 기후위기 대응문제로 유명하지만, 발족할 때는 반핵실험-반포경으로 똘똘 뭉친과학바탕의 환경감시단체였어요. 레인보우 워리어가 폭파되며 배에 타있던 페르난도 페레이아가 사망. 그는 포르투갈 출생으로 네덜란드에서 활동했어요. 프랑스는 이 테러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을 줄 알고, 테러행위를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플레이로 그린피스의 자작극이라는 소문까지 냈는데. 뉴질랜드 경찰이 프랑스 공작요원들을 체포*하자 자신들이 테러를 일으켰음을 시인해요. 처음에 사회당 정권의 프랑스 대통령은 이 일을 '정보국장'의 일탈로 규정했지만, 20년이 지나 르몽드가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정보국장은 해당 작전을 프랑스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승낙받았고 그 과정이 문서화되어 남아있었어요. 이 테러는 정말 여러 의미를 가져요. 이미 1984년 반핵운동으로 탄력받아 집권한 노동당은 총리직권으로 뉴질랜드 내에서 핵무기를 금지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고, 그 일환으로 미국의 모든 선박이 뉴질랜드 입항이 거부되었어요. 미국은 동맹국에게도 어떤 선박에 핵무기가 있는지, 어떤 잠수함이 핵잠인지 등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정책에 따라 모두 거부했음. 그리고 그 바로 1년 뒤 레인보우 워리어가 침몰당한거죠. 게다가 84년에는 범인이 잡히지 않은 쇼핑몰 폭탄테러가 있어서 뉴질랜드에는 테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자리잡았는데. 그런 배경까지 합해 정말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어요. 반핵운동의 모멘텀은 엄청나게 커졌죠. 그리하여 뉴질랜드는 자국을 비핵지대로 규정하는 1987년 비핵선언을 하고, 해당 내용을 법제화.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물론 레이건 행정부와도 큰 갈등을 빚었는데. 미국은 뉴질랜드는 이제 동맹이 아니라고 했으며, 무역문제로도 뉴질랜드를 압박해 해당 선언을 취소할 것을 종용했어요. 뉴질랜드와 같은 비핵선언이 다른 미국 동맹국으로 확산되리란 우려때문이었죠. 그게 기우임이 밝혀지고 레이건 정부가 물러나며 미국과 뉴질랜드의 관계는 서서히 회복되었고요. 프랑스의 핵실험과 테러는 정말 많은 삶을 바꿨어요. 우선 네덜란드*,스위스*,뉴질랜드,호주,포르투갈의 프랑스 대사들이 일제히 소환된걸로 시작하여, 동맹국을 대상으로 한 국제 테러 규범을 바꿨고, 그린피스는 이 일을 계기로 밀려드는 후원금과 호주와 뉴질랜드를 비롯한 각종 진보정권들한테서 기여받거나 지원받은 선박과 항해술 덕분에 국제 환경 감시망을 작동시켜요. 해양 불법 핵폐기물 투기나 불법포경 감시를 위한 장비 여건이 급격하게 좋아졌죠. 뉴질랜드는 비핵지대가 되었고, 폴리네시아 제도 사람들은 세대를 넘어 지금까지도 피폭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공작원들은 뉴질랜드 법원에서 10년형을 받았으나, 프랑스는 이에 대해 무역보복을 시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UN 사무총장의 중재로 두 나라는 합의에 이르고 공작원들은 판결 후 1년만에 풀려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는 그린피스와 뉴질랜드에게 1600만달러의 보상금을 지급하고요. *네덜란드: 레인보우 워리어는 네덜란드 왕실의 간접지원으로 그린피스가 취득한 함선이었어요. *스위스: 프랑스 공작원들은 스위스 부부를 사칭함.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09-27 19:01)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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