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2/05/10 20:26:31
Name   코리몬테아스
Subject   미국 의회는 낙태보호법을 만들 수 있을까?

https://redtea.kr/timeline2/151501
(대충 미국에서 낙태를 보호하는 판례가 뒤집혔다는 배경설명)




로 대 웨이드를 뒤집는 판결이 설마 낙태에 있어 헌법이 보호하는 자기결정권(Right to privacy)이 없다는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어요. 많은 사람들은 판결이 뒤집히더라도 태아의 생명에 대한 주(state)의 interest는 법원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뒤집히리라 예상했거든요. 그럼 이제 낙태 문제에 대한 공은 어디로 넘어간 걸까요? 연방 의회로?

혹자는 연방대법원이 반 세기 동안 로 대 웨이드를 법제화(codify)하라고 요구했는 데. 이제 와서 뭐가 문제냐고도 할꺼에요. 그건 로 대 웨이드를 뒤집기 전의 연방대법원이죠. 이전까지 연방대법원의 입장은 낙태는 헌법적 권리라는 거였으니까요. 



낙태보호법이 통과될 수 있느냐는 차치하고, 그게 합헌적이긴 할까요? 연방의회는 수정헌법 10조에 따라 각 주가 보유하는 권리를 침해하는 법을 만들 수 없어요. 헌법에서 가능하다고 쓰인 부분을 제외하면요. 그리고 헌법이 가능하다고 한 권한들은 생각보다 제한적이에요. 다만, 연방 의회는 지금까지 그 제한적인 권한을 확대해서 쓰고 있었죠. 대표적인게 위의 통상조항이에요. 일단 연방단위로 규제해야 할 것 같은 대상이 있다면, 이를 Commerce로 규정하고, 그에 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분석한 뒤, 이게 주 경계 밖에서 영향을 준다는 걸 입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법리를 쌓아올림. 


 이런 논리로 만들어지는 법들이 얼마냐 놀랍냐면, 헌법만큼이나 중요한 법으로 알려진 민권법에서 호텔이 유색인종 투숙객을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내용은 바로 통상조항에 의지해요. 이는 연방대법원에서도 부딪혔는 데. 연방대법원은 인종 간 평등의 문제가 통상조항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 어처구니 없었지만, 그럼에도 만장일치로 통상조항이 의회에게 저런 방식으로 사업장을 규제할 권한을 주었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통상조항으로 법률을 찍어냈던 연방의회)  

민권법에 대한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있기 전에도 의회는 통상조약에 의존했지만, 민권법 이후로 더욱 더 통상조약이 부여한 권한에 의지했고. 그 한계를 시험하는 많은 법을 만들었죠. 로 대 웨이드를 법제화 하자고 할 때도 힘들 게 수정헌법 9조와 4조. 기타등등을 조합하기 보다는, 그냥 낙태를 commerce라고 해버리면 된다는 게 대표적인 의견이었을 정도.



그러나 연방대법원의 보수화가 진행되고 90년대 중반 렌퀴스트 시대(보수우위 연방대법원)가 도래하여 통상조약의 권한은 상당수 축소 해석됩니다. 대표적인게 통상조약을 활용해 학교 주변에서 총기사용을 규제하는 학교 총기 금지구역법을 위헌라고 판단한 United States v. Morrison. 이후로도 통상조약을 축소하는 판결은 이어졌죠. 렌퀴스트와 신연방주의자들은 '통상조약은 본질적으로 경제행위인 것'에만 국한되는 게 맞다는 해석을 내놓았어요. 2018년에 이르러서는 90년대에 제정된 여성성기훼손금지법(여성할례를 연방단위에서 금지하는 법률)이 통상조약의 남용이라며 연방순회법원에서 위헌판결을 맞을 정도. 


(통상조약의 권능을 숭배하는 자들이여! 렌퀴스트를 두려워하라! 보수 대법관의 해석을!)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와서, 이번 판결로 미국에서 낙태는 더 이상 헌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어요. 그리고 이를 연방 단위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의회가 사용할 권한은 갈수록 축소되는 중이죠. 민주당이 설사 필리버스터를 폐지하거나 뚫어서 낙태보호법을 제정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연방대법원 앞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이 모든 현상의 뒤에 있는 게 바로 연방대법원임에도? 불확실한 게 많지만 굳이 예측 해야 한다면 전 조금 부정적이에요. 

그리고 이 보수적 흐름은 낙태가 끝도 꼭지점도 아니에요. 이렇게 거슬러 올라간다면 민권법의 핵심이 되는 조항들 마저 위험할 지도요. 


P.S  전 통상조약과 그 권한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좀 많이 웃겼어요. 진짜 자본주의 종주국 답지 않나요? 통상에서 민권을 만들어내는 게 ㅋㅋ 어딘가 판타지스러움. 이 이야기 말고도 이번 판결에 얽힌 재밌는 얘기들이 많아요. Alito가 이번 판결에서 보여준 원의주의(Originalism)을 활용해 낙태가 사생활에 대한 권리(Right to privacy)고 한 것이, 어떻게 사생활의 권리 그 자체와 열거되지 않은 다른 헌법적 권리에 위협이 되는 지. 그리고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동성결혼이 왜 위험한 지 등.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2-05-24 10:10)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2
  • 팬입니다 자주 써주세요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83 정치/사회의대 증원과 사회보험, 지대에 대하여...(펌) 43 cummings 24/04/04 6664 37
1382 기타우리는 아이를 욕망할 수 있을까 22 하마소 24/04/03 1289 19
1381 일상/생각육아의 어려움 8 풀잎 24/04/03 840 12
1380 정치/사회UN 세계행복보고서 2024가 말하는, 한국과 동북아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 16 카르스 24/03/26 1734 8
1379 일상/생각인지행동치료와 느린 자살 8 골든햄스 24/03/24 1429 8
1378 일상/생각아들이 안경을 부러뜨렸다. 8 whenyouinRome... 24/03/23 1192 28
1377 꿀팁/강좌그거 조금 해주는거 어렵나? 10 바이엘 24/03/20 1504 13
1376 일상/생각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8 골든햄스 24/03/14 1359 19
1375 창작소수 사막은 얼마나 넓을까? 5 Jargon 24/03/06 1152 4
1374 기타민자사업의 진행에 관해 6 서포트벡터(서포트벡터) 24/03/06 1014 8
1373 정치/사회노무사 잡론 13 당근매니아 24/03/04 1801 16
1372 기타2024 걸그룹 1/6 2 헬리제의우울 24/03/03 786 13
1371 일상/생각소회와 계획 9 김비버 24/03/03 1012 20
1370 기타터널을 나올 땐 터널을 잊어야 한다 20 골든햄스 24/02/27 1725 56
1369 정치/사회업무개시명령의 효력 및 수사대응전략 8 김비버 24/02/21 1520 16
1368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자율 축구'는 없다. 요르단 전으로 돌아보는 문제점들. 11 joel 24/02/19 1074 8
1367 역사 AI를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 4 코리몬테아스 24/02/18 1203 11
1366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1458 30
1365 기타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서포트벡터) 24/02/06 1315 7
1364 영화영화 A.I.(2001) 18 기아트윈스 24/02/06 1241 23
1363 정치/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2703 12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286 69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965 37
1360 기타텃밭을 가꿉시다 20 바이엘 24/01/31 1105 10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6659 3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