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1/09/30 11:27:33
Name   Picard
Subject   산재 발생시 처벌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안녕하세요.

중처법 개정당시 원안대비 후퇴하는걸 보며 분노했던 제조업 현장 관리자입니다.
(정확히 현재 제 업무는 지원부서라 현장을 매일 나가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번은 현장을 돌게 됩니다.)

사원, 대리때는 현장에서 안전사고 나는게 직접 목격한적도 있어요.
한번은 야간 당직때 전화 받고 머리 터져서 피흘리는 사람 태우고 응급실 갔고..
한번은 롤에 손이 끼어서 손가락 3개가 으스러지는거 목격하고 현장 반장님이랑 계장님이 급하게  태워서 안산으로 보낸후 허겁지겁 달려온 공장장 등 관리자들에게 당시 상황을 게속 설명했었네요. (당황한 상태에서 같은 말을 계속 해야 하니 저도 헷갈리더라고요)
여담인데, 가까운 병원 놔두고 멀어도 안산으로 가는 이유는.. 거기 모 병원이랑 모 병원이 접합수술로는 우리나라 제일이라고 합니다. 왜냐? 안산공단에서 워낙 사고가 많이 터져서...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무조건 안산으로 갑니다.



제가 과장 초짜 시절에 회사에서 사망사고가 연달아 벌어진적이 있어요.

첫해에 정비협력사분이 4층 높이 크레인 점검하러 올라갔다가 추락사...
그 다음해에 다른 정비협력사 반장님이 수리후 라인 가동할때 기계에 끼어 사망

이때까지는 회사에 다니는 사무직으로서 와닿는 조치는 없었어요. 회사가 크게 피해본것도 없었고요.
돌아가신 분이 우리 공장에서 근무하시지만,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법적 책임은 없었고, 원청사인 저희 회사에서 협력사를 통해 위로금을 지급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급했더라도 50억은 아니었을 거라는건 확신하지만.

그런데, 그해 말에 저희 회사 현장분(정직원)이 자동창고에서 설비 가동중에 청소하다가 자동이송차량에 치여서 돌아가십니다.
원래 설비 가동중에는 사람이 들어가지 않게 막혀 있는데, 신호수를 두고 이송차량이 이쪽 블럭으로 오면 신호를 하면 청소하던 사람들이 피하는 식으로 들어갔대요.

이건 빼도박도 못하죠. 우리 회사 정직원이고 안전규정도 위반한거라...
(협력사 분들 돌아가셨을때도 노동부에서 조사 나오고 사망사고니 경찰도 오고 그랬지만 협력사쪽이라 잘 몰랐습니다.)
경찰 와서 창고에 테이프로 감고 국과수 오고 노동부에서도 오고..

중재해가 발생하면 제가 알기로, 해당 설비를 최소 3일에서 최대 3개월까지 가동중지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동창고 전체를 가동중지시키면 제품 출하가 안되잖아요. 3개월동안 출하를 못하면 회사 망할지도...
그래서 사정사정해서 자동창고의 해당 블럭만 15일 중지 시키는 것으로 피해를 최소화 합니다.
이미 그 블럭에 있던 제품들은 가동정지 명령 받기 직전에 다 뺐고요.

제품이 나와도 창고에 쌓을 공간이 없어서 라인도 일부 정지하기는 했지만, 이정도면 선방한거라는 얘기를 당시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CEO, 공장장, 팀장 등등이 경찰 조사를 받고 공장장과 안전팀장, 청소 작업 지시를 한 기술팀장, 신호수 역활을 한 현장 반장이 기소 되서 재판을 받습니다.

회사는 3주인가 4주인가 특별감사 받으면서 탈탈 털렸어요.
노동부 특별감독관이 저희 회사 직원 명단을 가지고 이 지역 병원에서 외상으로 치료 받은 기록과 대조해서 산재 신고 없이 묻어버린 안전사고를 20여건 더 밝혀냅니다. (직접 취조(?)를 받은 현장분 말로는 매섭게 증거 내밀면서 추궁하니 그냥 네.. 맞습니다. 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왔다고)
벌금 꽤 때려 맞았고요.


그때 공장장이 (사무직 전원과 현장 계장 이상 들어가는) 전체 회의에서 성질을 내면서 '야! 니들 이렇게 하면서 공장장 재판 받게 하고 전과자 만들거야!?' 라고 한게 기억나네요.
결론은, 공장장이랑 기술팀장은 집유 받고 안전팀장이랑 반장은 선고유예 나왔습니다.

그 뒤로 작은 안전사고도 항상 전체적으로 공유하고, 책임여부, 규정위반여부, 규정의 합리성 여부 등을 다 따졌고, 설사 재해자 본인이 규정을 안지킨거면 본인까지 징계하는 식으로 나갔고 안전사고가 줄기 시작했'었'습니다.
산재가 자주 발생하면 페널티가 있는데, 새로 바뀐 안전팀장이 공장장의 지시라며 사고 발생하면 뭉개지 않고 FM대로 다 신고해버리고요. (그러다 보니 산재가 아닌데, 산재인척 해서 회사에서 치료비 받아내던 일부가 덜미가 잡히기도)

그런데, 오너 바뀌고 임원들 물갈이 되면서 공장장 바뀌니까 다시 조금씩 후퇴하더라고요.
안전은 비용과 시간이니까요. 새 오너가 제품원가 목표 달성으로 무지하게 갈구거든요.
지금 안전팀장은 선임자가 어떻게 일했고, 그러다가 어떻게 재판 받고 사표 내고 나갔는지를 다 본사람이라 버티는데..
만약, 안전팀장이 바뀌면 더 후퇴하지 않을지.


사실 저희 오너는 회사에서는 공식 직함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그룹 회장들이 그러는 것 처럼.
대표이사는 CEO 랑 회장의 로열 패밀리인 CFO가 등록되어 있으니... 중재해가 발생해서 CEO나 공장장이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오너는 눈하나 깜짝 안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월급쟁이 CEO 나 공장장이라고 해도 쓸수 있는 돈이 있고, 결정할 수 있는 경영방침이 있거든요. 그 양반들이 중재해 발생하면 나 전과자 된다.. 라는걸 아는데도 안전에 신경 안쓸 수 있을까요?
사람이 참... 민사재판만 해봐도 많이 바뀐다는데, 과실치사로 형사재판을 받으니 확 바뀌더라고요..


우리 오너야 중재해가 발생해도 재판 받을 일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경찰 조사는 받을테고...
오너가 뻑하면 임원 날린다고 하지만, 안전에 돈 못쓰게 하고 법도 못 지키게 하면서 사고나면 부하 직원 방패막이로 전과자 만드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게 되면 사람을 구할 수는 있을까요? 저희가 흔하게 발에 치이는 중견기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 회사 경영진까지 올라가려면 인맥이나 학벌, 경력이 꽤 좋아야 합니다. 이런 분들이 어느정도 뒤로 보상을 받으면 회장 대신 별을 달아줄지....
(10억... 아니 이제는 50억은 불러야 하나요. 대리도 50억 받는데..)


법의 합리성이나 통계 자료 등을 댈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십수년 제조업 공장에서 일하면서 보고 겪은 것으로 판단할때
오너나 CEO 를 형사처벌 받게 하겠다. 원청사에게 책임을 묻겠다 라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산재사망사고의 1/3이 5인이하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데, 중처법에서 5인이하를 빼버렸으니...
참.. 사람 생명도 어느 회사 다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세상입니다.
하긴 뭐 어디는 대리도 이명으로 50억 받고, 어디는 죽어도 5억도 못 받으니.


P.S)

저희 해외수출팀에서 통관에 문제가 생기자 해당 국가 법을 어긴적이 있어요. 팀장이랑 수출사업부장 선에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몇달뒤 실적을 검토하던 저희 팀에서 발견했죠.
그래서 경영진에게 보고를 하려니까 여기저기서 연락이 와요. 이번만 넘어가자. 안걸리지 않았냐. 영업애들도 고생한다...
'상무님.. 현지법에 의하면 이거 발각되면 CEO 형사처벌 1년 이상 또는 한화로 5500만원이상 벌금입니다.' 라고 했더니...
'야.. 알았다. ' 하고 끊으시더라고요.
형사처벌... 참 무서운 단어였습니다.

저도 업무상 법, 규정을 자주 보면서 합법/편법을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 오면 스트레스 받는데...
저희 팀원 하나가 '불법이면 어때, 안걸리면 되지. 내가 책임질게!' 라는 마인드라 골치아프네요.
걸리면 네가 무슨 책임을 지냐. 팀장인 내가 지고 공장장이 지고 CEO가 지는거지...
(딴데 보내고 싶은데 이 친구가 저희 업무를 너무 좋아합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1-10-12 07:41)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5
  • 동의합니다. ceo가 경각심을 갖게 될 것 같읍니다 (다만 웬만한 산재는 묻어버리려 하지 않을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선생님 글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 귀중한 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39 정치/사회검단신도시 장릉아파트에 대한 법개정을 추적해 봤습니다. 15 Picard 21/10/28 5180 8
1138 정치/사회다시 보는 사법농단 8 과학상자 21/10/19 4464 19
1134 정치/사회IT 중소기업을 선택할 그리고 선택한 이들을 위한 -틀-의 조언 14 아재 21/10/07 6392 23
1133 정치/사회청소년, 정체성의 발전, 인종관계 15 소요 21/10/03 4469 30
1132 정치/사회산재 발생시 처벌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 3 Picard 21/09/30 4018 25
1116 정치/사회동북아에서 급증하는 무자녀 현상 (부제: 초저출산이 비혼'만'의 문제인가?) 23 샨르우르파 21/08/13 6048 24
1112 정치/사회상호교차성 전쟁 23 소요 21/08/03 4832 11
1097 정치/사회외신기사 소개 - 포퓰리즘 정치인이 일본에서 등장하기 힘든 이유 6 플레드 21/06/13 4616 12
1096 정치/사회누군가의 입을 막는다는 것 19 거소 21/06/09 5610 55
1093 정치/사회의도하지 않은 결과 21 mchvp 21/05/30 4650 19
1091 정치/사회섹슈얼리티 시리즈 (완) - 성교육의 이상과 실제 18 소요 21/05/18 4946 27
1080 정치/사회택배업계의 딜레마 19 매뉴물있뉴 21/04/16 5507 11
1071 정치/사회우간다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과 난민사유, 그리고 알려는 노력. 19 주식하는 제로스 21/03/17 5299 32
1069 정치/사회미래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에 대한 4개의 가설 27 이그나티우스 21/03/14 5184 17
1065 정치/사회수준이하 언론에 지친 분들을 위해 추천하는 대안언론들 20 샨르우르파 21/03/03 8201 24
1062 정치/사회섹슈얼리티 시리즈 (10) - 성노동에는 기쁨이 없는가? 35 소요 21/02/21 5689 18
1061 정치/사회일용근로자 월가동일수 기준 축소에 반대한다 7 주식하는 제로스 21/02/16 4893 19
1052 정치/사회건설사는 무슨 일을 하는가? 13 leiru 21/01/13 4978 16
1051 정치/사회미국의 저소득층 보조, 복지 프로그램 칼웍스 5 풀잎 21/01/13 4841 8
1046 정치/사회만국의 척척석사여 기운내라 15 아침커피 20/12/29 6046 35
1042 정치/사회편향이 곧 정치 20 거소 20/12/23 5558 34
1036 정치/사회판결을 다루는 언론비판 ㅡ 이게 같은 사건인가? 4 사악군 20/12/06 4483 16
1029 정치/사회현 시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_ 관심에 대해서 9 Edge 20/11/09 4534 10
1026 정치/사회툰베리가 당신의 변명을 들었습니다. 툰베리:흠, 그래서요? 34 코리몬테아스 20/11/03 6408 18
1024 정치/사회공격적 현실주의자 Stephen M. Walt 교수가 바이든을 공개 지지하다. 6 열린음악회 20/10/29 4647 13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