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23/04/11 21:35:51
Name   아이솔
Subject   인간 대 사법

"무죄를 선고한다."

검사가 기소한 사건의 유죄 판결율 98.5%.
1.5%의 당사자가 되어 드라마나 소설에서나 보던 장면의 주인공이 된 순간이지만, 전혀 기쁘지도 감격에 차지도 않았다. 그저 판결문을 읊는 저 판사의 말을 멈추고 대체 왜 1년 반동안 이딴 어처구니 없는 일로 법원에 몇번이나 오가야 했고, 마음을 졸이게 한 시간에 대해 할 말은 없는지 묻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판사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된다고 하지 않던가. 국선 변호사도 그렇게 주의를 줬었다. 그리고 2심 판사가 그나마 이 부조리극에서 그나마 정상인이었기에 살아난 것도 맞고. 아 근데 그래도 그게 이 씨

[영상을 꼭 보시길 바랍니다]
https://youtu.be/_hM_mKwymMs


사건 발생.
작년 7월, 배달알바 중 자전거로 횡단보도를 건너다 마주오는 사람의 팔꿈치와 접촉. 사과하고 지나가려 했다가 붙잡더니, 12대 중과실이니 뭐니 하면서 그냥 넘어가줄 태세가 아니다. 그래 알겠다 싶어 보험 접수를 제안하지만 뭘 더 쳐바라는지 지금 당신이 해야될 행동이 뭔지 생각해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뭐? 뭘 더 줘? 지랄 말고 조용히 보험금이나 받아가. (라고 말하진 않음) 내가 모르는 체 하는게 열이 잔뜩 올랐는지 112에 신고를 하고 친구도 부르면서 판을 키운다. 근데 다리는 왜 갑자기 쩔뚝이냐? 무려 한 시간 넘게 생쇼를 하다가 경찰이 말려주고 일단 응급실에 보내줘서 상황 종료. 뭘하면 16만원이 나오냐.


다음날.
(내가 잘못한건 사실인데 내가 한 사과와 제시한 보상안이 마음에 안들면) 고소를 하든 말든 니 맘대로 하세요~였지만 설마 다음날 바로 고소장을 제출할 줄은 몰랐다. 아마도 자기가 백퍼 먹는 판이라고 확신하고, 나랑 직접 얘기해서 합의금 탈게 아니라고 판단한듯 하다. 대체 왜 이러기까지 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일 키우는데 페티시가 있나? 어차피 나를 형사처벌 받게 해봐야 따로 보험 합의를 하는 이상 민사소송을 걸 수도 없다. 그러니 순수히 나를 엿먹이려고 한 행동인 셈인데, 그것이 지 발목을 잡을 줄은 이때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일사천리.
경찰 조사를 받고(이런 걸 사건이라고 다루려고 된 경찰이 아니라며 한탄하는 수사관이었지만, 그래도 죄는 맞단다.) 대략 3주만에 검찰로 넘어가 약식명령을 받았다. 벌금 50만원이다. 일이 꼬였다. 솔직히 기소유예일거라고 행복회로를 돌렸는데, 내가 진짜로 처벌을 받을만한 죄를 저지른게 맞나보다. 근데 검사실에선 원래 연락 한번도 안하나? 예민해진다. 그냥 벌금 후딱 내고 2년 뒤 실효를 기다릴까. 정식재판 청구했다 질질 끌리면 실효도 그만큼 늦어질텐데. 내가 전과란게 생기는 구나. 끙끙 앓다 6일차(정식재판청구는 약식명령 후 일주일 간 가능하다)에 정식재판을 청구한다. 여기까지가 9월이다.


1심.
나는 사법부에서 인정하는 빈곤인이므로, 국선변호인을 신청할수 있었다.(월 평균소득 270만원 미만) 1심 변호인의 제안에 따라 반성문과 탄원서를 제출하고, 공판일에 출석해 재판정에 섰다. 법정에서 CCTV 영상은 보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영상을 트는 시늉만 해서 나와 변호인은 그냥 고개만 모니터쪽으로 까딱였을 뿐이다. 에이 설마 판사가 사무실에서 검토한거고 이건 요식행위겠지. 변호인이 읆는다. '피고인은 전과없는 성실한 청년으로서~'
근데, 변호인에게서 이상한 말이 들린다. [피해자가 제출한 진단서의 부상 부위와 사고충돌 부위가 다르다]고? 어어???? 어어???? 그럼, 내가 여기 끌려온 게 서류상으로조차 다치지 않았는데 상해를 입혔다는 이유거나 파동권으로 비충격부위를 다치게 해서란 말인가??? 아하, 이제 알았다. 이 새끼들 영상 한번도 안보고 공소장 썼구나. 아니 그럼 경찰은 뭐냐?
판사가 묻는다. 피고인 민사합의만 한거죠? 네. 선고는 11월 00일 입니다. 결과는 벌금형의 집행유예. 벌금 납부는 면했지만 형은 남는다. 여기서도 (전과가 남지 않는) 선고유예를 기대했건만 정말 영상 한번 안보고 기소하고 판결하면서 자비란 게 없구나. 정식재판청구 때와 달리,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 자리에서 항소장과 항소이유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속터지는 2심.
2심 사건번호가 부여된 것이 21년 11월. 1차 공판 22년 4월. -> 기일 변경으로 5월.  2차 공판 7월 -> 기일 변경으로 8월. 3차 공판 9월 -> 기일 변경으로 10월. 선고 12월. 그러니까 1심때 2달 컷된 재판이 2심엔 22년 한 해 내내 재판을 한 셈이다. 돌아버린다. 그 중 한 번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이 밀렸다며 전날에 급히 변경한 것이고, 한 번은 판사가 하루에 다 못끝내겠다고 내 사건을 역시 공판전날 기일변경한 것이다. 쌍욕마렵다. 공판을 세번이나 한 것도 속 뒤집어진다. 1차 공판은 진단병원에 사실조회신청을 넣어보란 얘기(아니 그런게 있었으면 1심에선 왜????), 2차 공판은 사실조회가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나왔다면서도 이것만으로 확정지을 수 없다며 피해자를 증인으로 불러보자는 얘기(아니 1차 때 얘기해서 오늘 불렀으면 좀 좋아요?)로 나는 입도 못열고 나왔고, 3차 공판에 나온 사기꾼의 횡설수설을 듣고나서야 1년만에 발언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다려왔지만 결코 기쁘지 않은 무죄 선고로 이 코미디는 끝이 났다.


깨달은 것.
어쨌거나 저쨌거나 자전거로 횡단보도를 건넌 것은 잘못이다. 솔직히 사고가 일어나도 설마 어떤 FM이 자전거를 형사처벌하겠냐는 안이함이 있었던 것도 사살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번 당한 이후로 횡단보도에서 무조건 하차하는 버릇을 들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것이 자전거를 횡단보도로 지나가서 생긴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지만, 자전거는 합법주행이라 한들 인사사고가 났을때 형사처벌은 피할 제도적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보행자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건드리는 순간 경찰서행 티켓이다.
사륜에 대한 혐오감이 생겼다. 폭주를 해도 종합보험이라는 방패가 형사처벌을 막아준다. 더 큰 피해를 유발하는 쪽이 더 작은 처벌을 받는다는 점에서 사륜들은 이륜, 특히 자전거가 어쩌니 저쩌니 하며 입을 놀려선 안된다.
경찰이 낳냐 검찰이 낳냐, 이건 그냥 병림픽이다. 경찰은 법을 생각보다 훨씬 모르고 검찰은 올라온 사건을 검토조차 안한다. 판사 역시 마찬가지다. 영상 한번 봐주십사하고 변호사가 읍소해야 되는 상황이 정상인가.


사후 처리.
사기꾼에게 내가 받았던 수모를 돌려줄 차례가 왔다. 다치지도 않은 것을 알면서도 진단서를 끊어 허위신고를 했으므로 무고죄요, 적어도 보험사기에 해당할 것이다. 아니면 둘 다거나. 사기꾼에게 연락을 했다. 뭔 자다가 봉창두드리냐는 식으로 굴던 인간이 상황파악이 됐는지 납작 엎드린다. 그러나 아버지가 수술하셨고, 자기는 어제(...) 직장을 잘려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단다. 그 말을 믿진 않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게 돈 없다는 상대에게서 돈 뜯어내는 일이다. 어차피 보험금 회수는 보험사가 할테고, 그동안 법률상담받느라 쓴 돈만 달라고 했다. 20만원이다.
최종 무죄를 받았으므로, 형사비용보상을 신청할 수 있었다. 변호사 보수는 국선변호인을 신청했으니 해당없고, 4회 공판에 해당하는 여비를 받을 수 있었다. 검색결과 하루 5만원이라고 한다. 날강도 새끼들이 따로 없다. 참, 이것도 따로 사건번호가 부여되어서 뭔 의견서를 제출하고 하느라 언제 받을지 기약도 없다. 헛짓거리했으면 바로 입금해도 모자랄판에.
국민신문고에 당시 수사관에 대한 민원을 올렸다. 전화를 받았다. 제가 다 죄송하고 욕하셔도 좋단다. 근데 30분 뒤에 절뚝이고 저지랄한건 어떻게 생각하시냐니까 그런 판단은 제가 아니라 병원이나 판사가 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서 우선 절차대로 처리했단다.
말씨름 해봐야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어서 조금 열내다 말았다. 끗.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23-04-24 19:34)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17
  • 고생하셨습니다.
  • 고생 많으셨읍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593 37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7 커피를줄이자 24/01/27 5397 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5068 22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5543 14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2480 21
1350 일상/생각아보카도 토스트 개발한 쉐프의 죽음 10 Soporatif 23/12/31 1379 19
1347 일상/생각빙산 같은 슬픔 10 골든햄스 23/12/17 1277 36
1344 일상/생각비오는 숲의 이야기 38 하얀 23/12/14 1274 56
1342 일상/생각이글루스의 폐쇄에 대한 잡다한 말들. 10 joel 23/12/03 1606 19
1337 일상/생각적당한 계모님 이야기. 10 tannenbaum 23/10/30 1798 48
1333 일상/생각살아남기 위해 살아남는 자들과 솎아내기의 딜레마 12 골든햄스 23/10/01 2275 20
1332 일상/생각나의 은전, 한 장. 6 심해냉장고 23/09/30 1694 24
1330 일상/생각아내는 아직 아이의 이가 몇 개인 지 모른다 2 하마소 23/09/25 1812 21
1326 일상/생각현장 파업을 겪고 있습니다. 씁슬하네요. 6 Picard 23/09/09 2262 16
1324 일상/생각경제학 박사과정 첫 학기를 맞이하며 13 카르스 23/08/29 2420 32
1321 일상/생각뉴욕의 나쁜 놈들: 개평 4센트 6 소요 23/08/16 1662 20
1317 일상/생각사랑하는 내 동네 7 골든햄스 23/08/01 1781 34
1316 일상/생각우리 엄마 분투기 8 dolmusa 23/08/01 1808 47
1313 일상/생각벗어나다, 또는 벗어남에 대하여 11 골든햄스 23/07/24 1689 27
1311 일상/생각(기이함 주의) 아동학대 피해아동의 부모와의 분리를 적극 주장하는 이유 45 골든햄스 23/07/12 2517 44
1309 일상/생각사진에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6 메존일각 23/07/06 1455 13
1308 일상/생각비둘기야 미안하다 14 nothing 23/06/29 1960 10
1303 일상/생각난임로그 part1 49 요미 23/05/21 3132 69
1302 일상/생각빨간 생선과의 재회 13 심해냉장고 23/05/21 2272 22
1301 일상/생각팬은 없어도 굴러가는 공놀이: 릅신이 주도하는 질서는 거역할 수 없읍니다. 8 구밀복검 23/05/20 2163 23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