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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4/08/13 00:43:14수정됨
Name   김비버
Subject   '수험법학' 공부방법론(1) - 실무와 학문의 차이
1. 개요
이 글은 변호사시험 기타 고시류 시험 등 법학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시험으로서의 법학 공부 방법의 한 길을 제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특히 이 글이 상정하는 주 독자는, [이른바 '강사저'는 죽어도 읽어지지가 않는데, 그렇다고 '교수저'로 공부하는 것도 막막하고 두려운 수험생]입니다. 바로 로스쿨 시절 저와 같은 수험생들입니다.

결론적으로, (1) 실무로서의 법과 학문으로서의 법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이른바 '수험법학'은 실무를 수행하는 법률가의 양성을 목적으로 하므로, 실무로서의 법을 이해해야 시험을 위해 공부할 법이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2) 그리고 이러한 실무로서의 법을 공부하기 위하여는 '법률은 역사적 텍스트'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법령에는 '(i) 구체적인 사안 및 문제상황(issue)이 먼저 있고, (ii) 그 사안에 대처하기 위해 법률이 제정된 다음, (iii) 법률의 특정 부분의 해석이 애매모호해서 여러 논의(=학설)가 구구하다가, 판례가 이를 정리해주었다''역사적 흐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대로 사안을 해결하고 답안지(실무 서면도 마찬가지입니다)를 작성하는 것을 '리걸 마인드'라고 합니다. (3) 다만 대한민국의 수험생들은 교과서만 읽으면 위와 같은 흐름을 자연스럽게 익히지 못하게 됩니다. 대한민국의 기본법들(민법, 헌법, 형법)이 역사적 맥락과 구체적 사안에 근거하여 자연스럽게 성립,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수험생들은 위와 같은 사정을 감안하여 어느정도 가상의 구체적 사안을 상상하여 개념을 익힐 것이 필요합니다.

이하 위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2.  실무로서의 법과 학문으로서의 법의 차이

로스쿨에 입학해서 '수험생'이 되어 보면 아시겠지만, 이른바 '수험가'에 가장 해묵은 논쟁 중 하나는 '교수저 vs 강사저'입니다. 대체로 '강사저파(派)'가 다수이고 '교수저파'가 소수입니다. 그럼에도 교수저파는 꾸준히 존재합니다. 교수저파는 대체로 (1) 변호사시험 등 시험문제의 출제자와 채점자가 모두 교수라는 점 (2) 강사저는 사실 여러 교수저를 '짜깁기'하여 요약한 것이므로, 체계일관성을 위해서는 교수저를 보는 것이 좋다는 점 등을 이유로 내세웁니다. 사실 위와 같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강사저파가 다수인 것은 법학과목 시험의 특이한 현상이 아닐까 합니다. 이론상 시험문제의 출제자이자 채점자가 직접 작성한 텍스트만큼 그 시험을 대비하기 좋은 텍스트가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변호사시험의 경우에는 전국 로스쿨의 교수들이 한데 모여 작성한 '과목별 문제집'과 '판례집(표준판례집)'까지 존재합니다.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위 문제집 등으로 변호사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저의 결론은, '교수저를 현명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사저파가 다수인 이유, 즉 교수저를 기초로 공부할 때 오히려 헤매게 되는 이유를 이해하고, 그러한 요소를 피해서 교수저라는 텍스트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수저를 기초로 공부할 때 오히려 헤매게 되는 이유는, 실무에서 법을 이해하는 순서와 교수저가 법을 기술하는 순서가 서로 반대되기 때문입니다. (1) 실무에서 법을 접하고 이해, 활용하게 되는 순서는, (i) 구체적 사안이 먼저 발생하고, (ii) 그 사안에 적용될 법령 및 판례를 리서치한 후에 (iii) 각자의 입장(원, 피고의 입장, 변호사의 입장, 검사/처분청의 입장, 판사의 입장 등)에 비추어 법리와 주장을 구성하는 것입니다(이하 이처럼 구체적 사안에서 법령, 판례 및 주장으로 나아가는 방식, 이해 등을 '귀납적 방식', '귀납적 이해', '귀납적 OO'이라고 하겠습니다). (2) 반면 교수저의 기술 순서는 (i) 저자의 주장 내지 법리 이해(이를 흔히 '체계'라고 합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교수저를 '체계서'라고 불렀습니다) 또는 여러 사안의 공통된 요소를 추출하여 학자들이 만든 '개념'이 먼저 소개되고, (ii) 그러한 체계와 개념에 맞추어 법령과 판례가 나열됩니다(이하 이처럼 주장이 먼저 소개되고 그에 맞추어 법령, 판례 및 구체적 사안이 제시되는 방식 내지 이해 등을 '연역적 방식', 연역적 이해', '연역적 OO'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실무로서의 법과 학문으로서의 법의 차이점으로서 중요한 것이 바로 위 점에 있습니다. 실무로서의 법은 귀납적 방식으로 이해되지만, 학문으로서의 법은 연역적 방식으로 이해됩니다. 우연히 법학 교수의 체계와 자신의 사고방식이 서로 매우 부합하거나, 집안이 대대손손 법조인인 등의 관계로 그러한 체계가 매우 익숙한 학생이라면 교수저를 처음 보면서도 주파하듯 읽어가면서 크게 어렵지 않게 고득점을 할 수도 있습니다(실제로 제 경험상 전국구급의 초고득점자들 중에는 위와 같은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우 실정법을 다루는 실무가 또는 수험생은 철저하게 실무적인 관점, 즉 귀납적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민법' 과목의 교수저로 많이 보는 것으로 송덕수 교수의 '민법강의'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을 처음 펼치면 먼저 사법의 대원칙으로서 '신의칙'과 '계약자유의 원칙'이 나오고, '사람'의 개념 및 태아의 권리능력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람임에도 일부 권리능력이 제한되는 경우(미성년자 및 제한행위능력자 등)가 서술되고, 다음으로 '자연인'이 아닌 사람, 즉 '법인'에 대한 서술이 나옵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즉 법률요건과 법률효과가 나옵니다. 법률효과로서 '권리'와 '의무'의 개념이 나오고(이 즈음 하여 독일어 용어들도 소개됩니다), 법률요건의 종류로는 '법률행위'와 '준법률행위' 및 '위법행위' 기타 비법률적 사실행위가 소개됩니다. 나아가 법률행위의 종류로 계약과 단독행위가 서술되고, 다시 계약의 성립요건 및 효력요건 등에 대한 서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계약의 성립 및 효력요건과 관련하여 의사표시의 흠, 의사표시의 하자 등과 함께 행위자와 당사자가 상이함에도 예외적으로 계약이 성립하는 경우, 즉 '대리행위'의 요건 및 무권대리의 경우 처리 문제 등(추인, 무권대리인의 책임, 손해배상 등)이 다루어지며, 계약이 아예 성립하지 않았던 경우의 처리문제 즉 이른바 '원시적 이행불능'의 문제도 함께 다루어집니다(보통 이 즈음부터 법령과 많은 판례가 나열되고, 강사저 내지 강사 강의에서 본격적인 '두문자' 등 이른바 '시험대비 암기문구'를 제시하는 부분도 여기부터입니다. ex) 착오취소의 요건은?=착중중 by 윤동환. 표현대리의 요건은? = 표내상선 by 윤동환 등). 

초학자로서 위와 같은 목차를 그대로 따라가며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유는 다시 말씀드리지만 위 목차가 실제 실정법의 발전 내지 발견 순서와 반대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정법은 어디까지나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때그때 발생한 규정 내지 명령 등을 모은 것이고, 애초 무질서하게 전개되던 규정 등을 종합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법전 또는 판례집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법전 등을 다시 일정한 체계로 이해하기 위해 사후에 기술한 것이 교과서입니다. 그리고 교과서 서두에 등장하는 위와 같은 추상적, 일반적인 서술들은, 그러한 개념들을 다시 종합적으로 정리하거나 개념들 사이의 관계를 정의하기 위한 '옥상옥'에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신의칙과 계약자유의 원칙의 대립은 정확히는 공법과 사법의 경계 지점에서 발생하는 대립입니다. 즉 '사법'이라는 실체와 '공법'이라는 실체가 먼저 대략적으로나마 이해되고, 그 사이의 애매한 지점에 대한 일반원칙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는 개념과 '권리, 의무'라는 개념은 법률관계의 구체적인 모습 중 아주 일반적인 요소, 즉 '주체'와 '주체 사이의 관계'라는 일반추상적 요소를 추출한 것이고, 여기에는 이른바 '주체 중심'의 근대 서양철학적 세계관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법률효과(=권리, 의무)의 원인되는 것으로서 '법률행위'라는 것은 '계약' 내지 '단독행위', 즉 쉽게 말해 '약속'이라는, 길거리 삼척동자도 체득하고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 그 공통 요소를 추출해 일반추상적인 개념으로 '사후적으로' 창조한 개념입니다(='법률행위는 권리, 의무의 원인이다'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한다'는 것과 완벽하게 동일한 의미입니다. 다만 그 '약속 지킴'을 '국가권력이 강제'할 때 그것을 '법률'관계라고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법률관계'와 '비법률관계'의 차이, 즉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서구 국민국가의 기초 정치철학적 관념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법률행위'라는 시공간을 점유하는 구체적 실체는 존재하지 않고, 법률행위라는 개념으로 묶인 구체적 현실들 개개의 모습을 알기 전까지는 '법률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수저를 통하여 가령 법률행위의 정의(=의사표시를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하여 그 의사표시의 내용대로 효력을 발생하는 사법상의 법률요건)를 아무리 외워도, 이는 '글자 외우기' 밖에는 될 수 없습니다. 사실 제가 처음 공부할 때 위 요건을 공책에 수십번 적어가며 외운 시행착오의 기억이 있습니다. 

따라서 실무로서의 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위 교수저 등 기술 순서와는 반대, 즉 법이 처음 발생하고 정리된 그 '역사적 순서'에 따라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가끔 변호사시험에서 헤매고 공부를 오래 하는 학생 중에 스스로도 '내가 왜 이걸 못 하는지 모르겠다'는 케이스를 봅니다. 그 학생들 중에는 로스쿨 입학 전까지만 해도 법리를 곧잘 구사하고, 심지어 국가기관 등에서 소송담당자로 어려운 서면을 직접 작성하였던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그 학생들이 실무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역사적 순서에 따라 실정법을 접하다가, 로스쿨에 와서 위와 같은 연역적 이해에 무방비하게 노출되고, 현학적인 개념에 너무 천착하다가 결국 '내가 알던 법이 법이 아니고 법에는 무언가 심오한 것이 있다'는 상태, 수험계 말로 이른바 '주화입마'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달리 법에는 전혀 심오한 것이 없습니다. 그 역사적 순서대로 차근차근 보면 이는 길거리 삼척동자도 자연스럽게 알만한 쉬운 것입니다. '법률은 역사적 텍스트'입니다. 위 말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글에서는 역사적 텍스트로서의 법률의 예시 및 공부의 순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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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수저 은수저 교수저
    1
    집에 가는 제로스수정됨
    좀 당황스러운데 왜 저년차 변호사들이 이렇게 체계가 안잡혀 있는지 엿보이는 대목이군요...
    (왜 A를 아는데 A''를 모르는거지? 같은)

    법학만이 아니라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당장 점수뽑기는 귀납적인게 쉽지만 (말단암기)
    연역적인 체계를 한번 세워두면 공부가 오래가고 응용이 쉽습니다. (체계적이해)
    사실 두가지는 서로 시너지를 내는거지 완전히 별개의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수험법학으로 보더라도 연역적인 체계구성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들일 수는 없더라도
    대략적인 뼈대는 한번 잡아놔야 개별 사례 암기도 편해집니다. ... 더 보기
    좀 당황스러운데 왜 저년차 변호사들이 이렇게 체계가 안잡혀 있는지 엿보이는 대목이군요...
    (왜 A를 아는데 A''를 모르는거지? 같은)

    법학만이 아니라 모든 공부가 그렇지만 당장 점수뽑기는 귀납적인게 쉽지만 (말단암기)
    연역적인 체계를 한번 세워두면 공부가 오래가고 응용이 쉽습니다. (체계적이해)
    사실 두가지는 서로 시너지를 내는거지 완전히 별개의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수험법학으로 보더라도 연역적인 체계구성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들일 수는 없더라도
    대략적인 뼈대는 한번 잡아놔야 개별 사례 암기도 편해집니다.

    판례는 이론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이 구현된 실무인거고 확정된 법칙이 아니라 변경가능한 겁니다.

    다수설과 소수설이 있을 때 판례가 소수설을 따르면 소수설이 힘을 얻고 다수설이 되기도 하지만
    다수설의 비판이 반복되면서 판례를 뒤집기도 하는거죠. 다만 현실의 대다수에게는 당장 내 구체적 사례와
    내가 어떻게 될지가 중요하니까 판례가 금과옥조인거지 판례가 가지는 현실적인 강한 힘과
    판례가 내린 결론의 당부는 같은게 아닙니다.

    우리는 영미법식 판례법 체제가 아니라 대륙법 체제입니다. 우리법은 말씀하신 것처럼 구체적 사례를 모아놓은 덩어리가 아니에요.
    기원과 시초를 따지자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건 로마시대 얘기고 세월을 거쳐 이미 체계가 잡혀있는 대륙법
    - 주로 독일/일본법을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연역적 체계가 있고 이를 뼈대로 마인드맵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최근들어 그런 앞뒤가 안맞는 체계이탈적이고 논리모순적인 실무나 입법이 많이 행해지고 있다는 인식은 있었는데,
    아무래도 점점 영미법 체계로 가려는 모양이네요. 로스쿨 도입으로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패망한 결과가 이런 효과로 나타나네요..
    1
    김비버
    무엇이 제로스님을 이토록 화나게...ㅎㅎ"왜 저년차 변호사들이 이렇게 체계가 안잡혀 있는지 엿보이는 대목이군요"라는 말은 원색적입니다.

    어찌 제가 체계를 모를 것으로 그리 쉽게 단정하십니까...ㅠㅠ훈련된 법조인이라면 당연히 그 체계를 알아야 하지요. 이 글에서도 그 이해와 함께 수많은 고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다만 그 체계가 어떤 자연과학적 진리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념적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체계가 인간 사회 이전부터 어떤 우주의 진리로서 자연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 ... 더 보기
    무엇이 제로스님을 이토록 화나게...ㅎㅎ"왜 저년차 변호사들이 이렇게 체계가 안잡혀 있는지 엿보이는 대목이군요"라는 말은 원색적입니다.

    어찌 제가 체계를 모를 것으로 그리 쉽게 단정하십니까...ㅠㅠ훈련된 법조인이라면 당연히 그 체계를 알아야 하지요. 이 글에서도 그 이해와 함께 수많은 고생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다만 그 체계가 어떤 자연과학적 진리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념적 창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체계가 인간 사회 이전부터 어떤 우주의 진리로서 자연적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다보니 그 해결을 앞뒤가 맞게 정리할 필요가 생기고, 사후적으로 정리하게 된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당연히 공부도 그 순서로 해야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런 예시를 들지 않고 '법률행위'라는 개념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이 글도 구체적 사안과 체계 사이의 그러한 관계를 고려해서, 구체적 사안에 대한 대략적인 감 없이 바로 체계를 공부하는 것은 공허하다는 말을 하는 것뿐입니다.

    체계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입법, 해석을 해도 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체계가 그 자체로 어떤 보편적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가령 대한민국의 법체계는 북한에서는 지적 유희에 불과합니다. 체계는 그로써 법률기관권력의 향배를 예측하고, (변호사 입장에서는) 의뢰인을 보호할 논리를 만들 때에 가치가 있습니다. 만약 어떤 입법이 체계를 일탈하였다면, '체계를 일탈했다는 점' 그 자체로 그 입법이 부당할 여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체계를 일탈하여 법조인들에게 혼란을 주고, 논리적 정합성이 결여되어 법적 안정성이 저해'되기 때문에 부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법적안정성을 희생해가면서까지 체계일탈적 입법을 해야 할 시급한 정책적 문제가 있다면 또 정당화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세법이나 공정거래법 등 분배적 정의와 밀접한 법, 각종 행정청이 규제현장에서 자체적으로 발령하는 고시입법 등에는 그러한 정책적 고려가 많습니다.

    우리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대한민국의 민법은 내용상으로는 정확히는 일본의 민법을 준용하면서 이 땅에 적용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거의 그 글자 그대로 파파고 번역 복사붙여넣기 하여 제정되었습니다. 물론 일본제국이 자신의 민법을 만들면서 독일이나 프랑스의 법제를 많이 참고했으므로, 독일 등의 법체계가 흘러흘러 우리 민법전을 설명하는 데에 적용될 수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때 수입된 독일법의 체계는 독일의 역사적 상황과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독일법계가 발전시켜온 체계입니다. 대한민국 법학의 여명기 때에는 우리가 참고할 사례가 많지 않았으므로 독일법 체계를 빌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했을 수도 있겠으나, 대한민국에서 판례 등이 누적되어 온 이후에는 당연히 그 구체적 사안들을 정리한 대한민국의 법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 때에 와서는 독일의 법체계는 대한민국에서는 그냥 지적 유희에 불과한 것입니다.

    저도 법학의 사멸에 안타까움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체계법학'과 '기초법학'은 구별해야 합니다. 체계법학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자체로는 아무런 질량도, 가치도 없습니다. 그 체계로써 사람들이 질서정연하게 법령을 제정, 해석할 때에만 그 특정 법계에서의 법적안정성에 기여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반면 기초법학, 즉 '법령을 이러저렇게 제정, 해석해야 경제적 후생이 증가한다'(법경제학), '대한민국의 법령에는 이러저러한 경위로 식민주의적 잔재, 가부장적 잔재가 남게 되었다'(법제사학, 법여성학, 법인류학)는 등의 '법학'은 (물론 이도 당연히 도구이지만) 그 말 자체로 가치를 지향하고,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초법학이 과연 로스쿨 도입 이후 사멸되었을까요...? 잘 아시겠지만 기초법학은 사법시험 시절에도 실무에서 거의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사법시험 폐지 이후 '시험성적 지상주의'가 완화되고 나서야 숨쉴 틈이 생긴 것 같습니다. 서울대학교 법대/로스쿨에서 가장 잘 나가는 자칭타칭 이른바 '에이스' 교수는 사법시험 내지 연수원 수석 출신인 것을 아십니까...?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
    1
    집에 가는 제로스
    화가 났다기보다는 적은 그대로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김비버님이 그 '체계'를 모를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 홍차넷에서 김비버님이 법과 관련된 게시물 작성해오신거 보아왔고
    내심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원색적인 표현처럼 그 체계를 모르는 변호사-만이 아니라 법조인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죠.

    그래서 더 당혹스러운거에요 상당히 내공이 깊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이는 김비버님조차
    연역적인 내용, 그에 담긴 통일적인 해석의 가치를 너무나 경시하시기 때문에요.
    그래서 이게 요즘의 대세... 더 보기
    화가 났다기보다는 적은 그대로 '당황스럽습니다.'

    저는 김비버님이 그 '체계'를 모를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동안 홍차넷에서 김비버님이 법과 관련된 게시물 작성해오신거 보아왔고
    내심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원색적인 표현처럼 그 체계를 모르는 변호사-만이 아니라 법조인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죠.

    그래서 더 당혹스러운거에요 상당히 내공이 깊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으로 보이는 김비버님조차
    연역적인 내용, 그에 담긴 통일적인 해석의 가치를 너무나 경시하시기 때문에요.
    그래서 이게 요즘의 대세인가 라는 한탄입니다.

    제가 화가 난 부분이 있다면 그건 본문의 '원색적이고 단정적인' 표현들입니다. 제대로 긁?힘.
    본문은 체계법학의 가치에 대한 김비버님의 의견을 의견처럼 서술하시지 않았어요. 정답처럼 서술하셨죠.

    추상적인 개념의 정리를 '옥상옥'이라 하셨고 "법에는 전혀 심오한 것이 없다"라고 굵은 글씨로 강조하셨죠.

    당연히 법학에 담긴 사상은 자연과학적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관념적 창조물입니다.
    근데 그건 법학만이 아니라 소위 문과, 아니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개념은 다 마찬가지 아닌가요?

    구체적인 상황에서 추상적인 개념을 뽑아서 정리하는게 법학이고, 정리된 결과물이 법률이고,
    그것을 다시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시키는게 실무죠.

    그리고 '추상적인 개념'이 '보편적 진리'죠.
    체계자체가 보편적 진리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고 담는 것이 체계입니다.
    대한민국 민법전이 북한에서 의미가 없어도 대한민국 민법전에 담긴
    '약속을 하면 지켜야 한다'라는 개념은 북한 민법전에도 들어있어요.
    1
    김비버
    말씀하신 취지를 이해했습니다ㅎㅎ다시 읽어보니 제가 너무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체계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것은 아닙니다. 논지를 희석없이 전달하는데에 집중하다보니 단정적으로 말하게 되었는데, 다른 방면에서의 고민은 달아주신 댓글 내용으로 보충하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법학교육 체계가 바뀌면서 일어나는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한정된 시간에 실무가를 양성하기 위한 체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제로스님께서 말씀하시는 분들도 시간이 지나면 다들 비슷하게 수렴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당근매니아
    댓글 보면서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사시 때는 강사저 개념이 없었나요?
    대학동에서 강의용으로 만들어진 강사저는 그 시절에도 똑같이 있었을 거 같은데 말이죠.
    휴리스틱
    몇 년도부터라고 해야 할 지는 잘 모르겠는데, 사시 때도 강사저 많이들 봤습니당.
    dolmusa

    드디어 법차넷에서 법철학 논쟁까지 보게 되다니..
    1
    Paraaaade
    읽으면서 [기본법들(민법, 헌법, 형법)이 역사적 맥락과 구체적 사안에 근거하여 자연스럽게 성립,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이 부분의 이유가 궁금했는데 댓글로 알게 되었습니다.
    cheerful
    아... 역시 대한민국 커뮤니티 최후의 보루 홍차넷이다... (물론 난 맨날 뻘소리만 달고 있지만 >_</)
    이 글 보고 사법고시 준비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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