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원들이 추천해주신 좋은 글들을 따로 모아놓는 공간입니다.
- 추천글은 매주 자문단의 투표로 선정됩니다.
Date 19/06/20 22:55:05수정됨
Name   温泉卵
Subject   사사키 로키, 야구의 신이 일본에 보낸 선물
* 사사키 로키는 이미 타임라인에서 숱하게 언급했던 선수이지만, 타임라인 특성상 보지 못했던 분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한 번 정리하는 게 보기 좋겠다 싶어 티타임에 글을 하나 씁니다.


사사키 로키(佐々木朗希, ささきろうき)는 2001년 11월 3일, 일본 동북부 이와테현의 리쿠젠타카타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소 특이한 이름인데, 3살 위의 형이 좋아하던 백수전대 가오레인저(우리나라에선 미국판 파워레인저 와일드포스로 유명합니다)에 등장하는 악역 로키(狼鬼)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소학교(초등학교) 3학년부터 야구를 배우기 시작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사사키의 인생을 바꿔버린 사건이 일어납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동일본대지진이라고 부르는 동일본대진재(東日本大震災)죠.

우리나라에선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미야기현의 쓰나미 피해로 회자되지만 위로는 아오모리현부터 아래로는 이바라키현까지 광범위한 해안가가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사사키가 살고 있던 리쿠젠타카타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사키의 아버지는 쓰나미로 인해 사망했고, 이후 사사키는 어머니와 형제들과 함께 인근 오후나토시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어린 소년에게 이 경험이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대지진 당시 도시가 불바다가 된 케센누마시에 있었다는 한 고교야구 감독은 '야구의 승패는 재난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면서 엄청난 매스미디어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사키의 멘탈이 저 때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오후나토에서 야구를 계속하던 사사키는 3학년 시절에 참가한 지역선발팀에서 소학교 친구 오요카와와 재회하여 배터리를 이루게 됩니다. 이 팀은 토호쿠대회 준우승을 달성했고, 이미 140이 넘는 공을 뿌리는 사사키에게 명문교의 제안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사키는 고심 끝에 형이 졸업했던 학교인 오후나토고에 진학해, 중학교 팀메이트들과 함께 고시엔에 도전하기로 결정합니다. 사사키의 선택을 계기로 총 10명이 함께 오후나토고에 입학하게 됩니다.

사사키는 고등학교 데뷔경기에서 최고구속 147km/h를 기록하며 야구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2학년 봄에는 153을 기록했는데 3학년을 포함해 작년 고등학생 전체 1위 기록이었습니다. 여름에는 154를 기록하더니 가을에는 157까지 구속을 끌어올리며 2학년 역대 최고구속 타이기록을 세웠고요. 이때도 이미 유명해서 '오타니 2세', '이와테의 괴물'로 불리며 올해 드래프트 최대어로 간주되고 있었습니다만 대중들까지 알 정도로 인지도를 결정적으로 끌어올린 건 올해 4월에 있었던 U-18 대표 예비후보 합숙이었습니다. 여기서 사사키는 163km/h를 던져 오타니의 160을 갱신하는 신기록을 세웠고, 내로라하는 전국의 타자 6명을 모조리 삼진으로 잡아내며 야구계를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고등학교 최고의 유망주에서 일본 야구계의 신기원을 열 국보로 위치가 격상되는 순간이었죠.


고교야구 잡지는 당연히 표지모델, 프로야구를 다루는 잡지에서도 드래프트 최대어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마침 올해가 새 연호 레이와 원년이기에 사사키의 별명은 자연스레 '레이와의 괴물'로 자리잡았습니다. 고시엔 역사상 최고의 투수로 회자되며, 드래프트 파동을 일으키기도 했던 '쇼와의 괴물' 에가와 스구루, 일본 대중들에게 고시엔을 대표하는 투수로 각인되어 있으며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성인무대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던 '헤이세이의 괴물' 마쓰자카 다이스케에 이어 한 시대를 상징할, 준비된 슈퍼스타로 간주되고 있는 거죠. 당연한 얘기지만 사사키는 공만 빠른 게 아닙니다. 190cm의 장신에 힘과 유연성을 갖췄고, 타자로서도 활약할 만큼 센스도 좋습니다. 작년 추계대회에서의 패배 이후 중량과 투구폼 교정에 성공하여 더욱 빠른 공을, 더욱 안정적으로 던질 수 있게 되었으며, 변화구도 한층 날카로워져 내년에 당장 프로 1군 투수로 활약할 수 있다는 극찬을 받을 정도입니다. 한편 골밀도 검사 결과 아직 신체가 다 자라지 않아 160에 육박하는 강속구는 위험하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이에 맞춰 의도적으로 구속을 떨어트리고 변화구 위주로 투구하는 게 선수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의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눈물을 흘릴 비극적인 경험을 했고, 일본인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열혈 스포츠의 중심에 있는데, 그게 또 역대급 재능의 소유자이고, 마침 일본인들에게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자마자 출현했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모든 걸 다 갖춘, 내츄럴 본 슈퍼스타라고 해도 무방할 겁니다. 덕분에 아직 본격적인 여름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사사키 신드롬이 몰아칠 준비는 끝나있습니다. 혹시나 희박한 확률을 뚫고, 사사키가 고시엔 본선에 당도한다? 작년의 카나아시농고 열풍도 어마어마했지만, 그 이상의 신드롬이 불어닥치겠죠.

현재 일본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떡밥거리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하나는 노모 히데오를 뛰어넘어 최다 1위 지명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일본 프로야구의 드래프트는 1위에 한해 모든 구단이 드래프트에 참가한 선수를 자유롭게 지명할 수 있고, 복수지명이 나올 경우 제비뽑기로 교섭권을 갖게 됩니다. 현재까지 최고 기록은 노모의 8개구단이고, 고등학생은 후쿠도메와 키요미야의 7개구단입니다. 사사키는 언젠가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긴 하지만, 일단은 일본 프로야구부터 거치겠다는 입장이기 떄문에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사사키가 재학중인 오후나토고의 전설입니다. 오후나토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35년 전에 봄-여름 고시엔에 내리 출장한 적이 있는데, 당시 팀 구성이나 배경스토리가 올해 사사키가 이끄는 팀과 매우 흡사합니다. 당시의 오후나토는 봄 고시엔 4강까지 올라가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올해의 사사키와 오후나토가 당시의 열풍을 재현할 수 있을까 연신 기사를 써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고시엔 우승입니다. 토호쿠 지방은 아직까지 단 한 번의 우승 없이 준우승만 12번을 기록했는데, 재경기 끝에 준우승, 수중전 끝에 준우승, 3연속 준우승 등 정말 다양한 방식으로 패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덕분에 토호쿠 지방의 고시엔 우승은 白河の関越え(시라카와노세키코에, 에도 시대 토호쿠로 가는 관문이던 시라카와를 고시엔 우승기와 함께 통과해 개선하는 것)으로도 불리며 토호쿠 100년의 비원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확실히 대업을 달성하는 주인공으로 사사키와 오후나토고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 고시엔 진출도 희박한 게 현실인데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건 아닌가 우려되기도 합니다.

사사키가 고시엔에 출장하든, 출장하지 않든, 어떤 모습을 보여주더라도 일본 야구계는 사사키로 인해 들썩거릴 겁니다. 고시엔에서 활약한다면 일본열도가 디지털 시대의 상식을 깨는 야구 열풍에 휩싸일 것이고, 활약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깨와 팔꿈치를 보존한 채(지금까지 사사키는 작년 가을에서야 처음으로 연투를 경험했고, 일본 투수로서는 엄청나게 관리받은 편입니다) 프로선수가 되어 일본 야구계를 이끌어나가겠죠. 그야말로 야구의 신이 일본에 보낸 선물입니다.

* Cascade님에 의해서 티타임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9-07-01 14:20)
* 관리사유 : 추천게시판으로 복사합니다.



20
  • 야구 이야기는 언제나 좋아요
  • 대성하길 바랍니다.
  • 재미있게 잘 쓴 정보글입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376 기타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8 골든햄스 24/03/14 915 18
1375 기타소수 사막은 얼마나 넓을까? 4 + Jargon 24/03/06 866 4
1374 기타민자사업의 진행에 관해 6 서포트벡터 24/03/06 819 8
1373 기타노무사 잡론 13 당근매니아 24/03/04 1522 16
1372 기타2024 걸그룹 1/6 2 헬리제의우울 24/03/03 609 13
1371 기타소회와 계획 9 김비버 24/03/03 850 20
1370 기타터널을 나올 땐 터널을 잊어야 한다 20 골든햄스 24/02/27 1558 56
1369 정치/사회업무개시명령의 효력 및 수사대응전략 8 김비버 24/02/21 1401 16
1368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자율 축구'는 없다. 요르단 전으로 돌아보는 문제점들. 11 joel 24/02/19 954 8
1367 역사 AI를 따라가다 보면 해리 포터를 만나게 된다. 4 코리몬테아스 24/02/18 1052 11
1366 체육/스포츠(데이터 주의)'빌드업 축구'는 없다. 우루과이전으로 돌아보는 벤투호의 빌드업. 13 joel 24/02/12 1326 30
1365 기타자율주행차와 트롤리 딜레마 9 서포트벡터 24/02/06 1183 7
1364 영화영화 A.I.(2001) 18 기아트윈스 24/02/06 1114 23
1363 정치/사회10년차 외신 구독자로서 느끼는 한국 언론 32 카르스 24/02/05 2546 12
1362 기타자폐아이의 부모로 살아간다는건... 11 쉬군 24/02/01 2148 69
1361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810 37
1360 기타텃밭을 가꿉시다 20 바이엘(바이엘) 24/01/31 1000 10
1359 일상/생각한국사회에서의 예의바름이란 18 커피를줄이자 24/01/27 6532 3
1358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3) 17 양라곱 24/01/22 6160 22
135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2) 17 양라곱 24/01/17 5686 14
1356 요리/음식수상한 가게들. 7 심해냉장고 24/01/17 1252 20
1355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1) 9 양라곱 24/01/15 2671 21
1354 기타저의 향수 방랑기 31 Mandarin 24/01/08 3293 2
1353 의료/건강환자의 자기결정권(autonomy)은 어디까지 일까? 7 경계인 24/01/06 1274 21
1352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3 joel 24/01/01 1306 24
목록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