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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26 11:13:08수정됨
Name   메존일각
Subject   1271년 5월, 삼별초 토벌 직전에 벌어졌던 촌극
[배경]

1270년, 고려 원종은 몽골에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며 임시수도 강화도에서 개성으로 환도를 진행하고, 삼별초 해산령을 내립니다. 이를 수용할 수 없던 배중손이나 노영희 등 삼별초 수뇌부는 항전을 선언하며 병력과 재물을 실은 선단을 이끌고 진도로 향하는데요. 진도를 거점으로 삼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해안 일대에서 맹위를 떨치게 됩니다. 개경으로 넘어가는 조운선까지 싹쓸이를 하는 통에 고려 조정은 관리들의 녹봉을 못 줄 만큼 타격을 받습니다.

고려와 몽골에서도 나름의 진압군을 결성하여 삼별초 세력을 치려 했지만, 이러한 공격들은 삼별초의 위세에 눌려 번번이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이 상황을 계속 두고 볼 수 없던 고려와 몽골은 작정하고 준비를 하게 되고, 1271년 5월(양력 6월) 출정 직전 막바지 준비를 하던 상황입니다.

<고려사> 권27, 원종 12년(1271) 5월 기사를 보면 다음의 내용이 나옵니다.(<고려사절요> 기사도 거의 유사합니다)

(고려에 파견된 다루가치) 탈타아(脫朶兒)와 재추(宰樞; 고위직 관리들)가 교외에서 열병(閱兵)하였는데 500여 인이었다. 도령(都領; 최고지휘관)과 지유(指諭; 단위부대 지휘관)에게는 1인당 말 1필을 주고 군졸에게는 10인당 말 1필씩 주었는데, 군대가 행군하기 시작하자 군졸 중에는 지나가는 사람의 말을 빼앗은 자가 많았다.

탈타아가 묻기를, “재추의 자제 중 종군하는 자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탈타아가 재추에게 각각 말을 내놓으라고 하여서 군관에게 주었다.


[해제]

길지 않은 기사인데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삼별초 토벌을 앞두고 다루가치 탈타아와 고위 문관인 재추들이 삼별초 진압 부대의 준비 상태를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정렬된 군사의 수는 500이었습니다. 말의 수가 부족하다 보니 지휘관급에게는 각각 말 1필을 줄 수 있었는데, 군졸들에게는 10명당 말 1필씩밖에 줄 수 없었습니다. 군의 준비 상태도 엉망에 군율도 제대로 잡히지 않아, 말이 없는 군졸들은 행군 도중 민간인의 말을 빼앗는 일이 많이 발생했던 모양입니다.  

상황을 보다 못한 탈타아가 재추들에게 물었습니다.

"고려 중신 여러분의 자제 중에는 군에 들어가 출정하는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 당장 그대들의 자제를 종군하라고 말할 수는 없겠소만, 대신 죽음을 걸고 싸우는 저 군인들을 위해 최소한 말은 제공해야 하지 않겠소? 다들 말을 내놓으시오."

...라고 하여 재추의 말들을 강제 징발하고 군졸들에게 제공했다는 내용입니다.

고위직 문관들은 평소 군을 업신여겼지만, 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할 그들은 어지러운 형국이 되자 자기 자식 목숨은 아까운 줄은 알아서 [단 한 명도] 자식을 군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다소 충격적인 모습이죠. 당시 고려 조정의 재정사정이 말이 아니었다고는 하나, 지도층인 그들마저 뒷짐지고 강건너 불구경하고 있었으니 군의 준비 상태가 개판이었던 건 당연했겠죠. 

이를 보다 못한 점령국 몽골의 다루가치가 먼저 나서서 "야야, 너네 양심이 있으면 최소한 말은 좀 내놔야 하지 않겠음?"했다는 거고요.

지금 행정부는 의료인들에게 큰 책임만 지워놓고 너네들이 어떻게든 알아서 해! 하는 상황처럼 보이고, 입법부는 위기 국면에서도 뒷짐지고 표계산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모습이 750년 전 상황과 유사하게 느껴져서 몇 자 적어 봤습니다. 

다만, 질병관리본부는 여건 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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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메존일각
    노고가 정말 많으십니다. ㅠㅠ
    아닙니다 저는 잉여에 가까워서
    2
    본문의 논조와는 약간 거리가 있으나, 민란이 발생한다거나 의병이 일어난다거나 하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보급품을 조달했을까 하는 저의 오랜 궁금증이 이 글을 보고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삼별초야 원래 군사조직이었으니 행정보급관 기타 보급체계가 잘 잡혀있었을 것 같지만, 500인만 하더라도 대대급인데, 그 사람들이 먹고 마실 음료수와 식량(의복과 무기는 별론으로 하더라도)등의 보급품은 대체 어떻게 조달했을까요? 길게는 수년씩 그런 '집단'이 존속했던 걸 보면 나름의 체계는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메존일각
    약탈(...)과 둔전이죠.
    결국 소비집단인 군대가 물자를 어디서 얻어내느냐 하는 것인데, 남의 것을 강제로든 기부의 형태든 빼앗는 것과 아예 한 곳에 정착하여 자급자족하는 방법들이 있었죠. 한데 둔전이라 해도 군인들이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백성을 강제징발하기도 했으니까 그게 그거죠.

    당장 제주도의 전승 중에는 삼별초의 무리한 약탈에 대한 내용도 많습니다. 임란 때 의병이 일어났어도 백성들의 재물을 무리하게 강탈하여 원성이 대단했던 기록도 있고요.

    대의라는 명목 하에 백성을 도리어 도탄에 빠뜨린 사례는 차고 넘치죠.
    1
    듣보잡
    오 새로운 걸 알고 갑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쓰신 내용대로 될 수밖에 없었겠네요.
    바닐라
    삼별초 이야기는 참 좋아하는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헌데 지금이 관리마저 자기 앞가림 하려 등을 돌린 상황이라고 볼 수가 있나요?
    메존일각
    행정부는 의료인들에게 억지로 책임을 지워놓고 제대로 케어를 안 해주면서 너네들이 어떻게든 알아서 해! 하는 상황처럼 보이기도 하고, 입법부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뒷짐지고 표계산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여서 이때의 에피소드가 떠올랐습니다.

    다만 질병관리본부는 여건 하에서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 있다고 봅니다.
    1
    바닐라
    질본까지 밖에 생각이 못미쳤나봅니다. 대구 징발 의료인 등의 처우 소식을 생각하면 분명 떠오를만 한 상황이네요.
    메존일각
    선생님처럼 생각하실 수 있다고 봅니다. 본문에 추가해야겠네요.
    절름발이이리
    현재의 한국 정도면 정부나 정당이나 그럭저럭 대응 하고 있죠. 뭘 더 나서서 하시길 원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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