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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9/29 13:15:18
Name   바코드
Subject   아이고 의미없다....(11) - 그런 곳에 쓰는 대자보가 아닐텐데...?
추석은 온국민의 명절이지만 저같은 할일없는 백수는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날이기도 하죠. 학원도, 헬스장도 쉬기 때문에 할일없이 스타나 하고 앉아있는 날입니다.

집에 가니 얼마전에 해프닝이 있었더군요. 부모님이 농사를 하시는데, 직접 재배한 고추를 말려 지인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집에 가져다 놓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죠.

얼마 전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대자보가 붙었다더군요. 동장이 붙인건 아니고 어느 집에서 붙였나봅니다.

내용은 '고추냄새가 나니 좀 치우고 좋게좋게 살자.'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1. 저는 집에 없었기 때문에 말린 고추는 모두 제 방에 두고 문을 닫았습니다. 한여름에 습기가 차면 고춧가루를 만들기 힘들어질테니까요.

2. 말린 고추를 사고자 하는 지인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순환이 빨랐습니다. 다시말해 말린 고추가 쌓여있는 날도, 수량도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3. 그정도로 퍼진다면 음식냄새는 광역스킬처럼 퍼져야 정상인데, 우리집으로는 왜 음식냄새가 올라오지 않는 것일까?

4. 고추는 8월달에 주로 수확해 판매가 이뤄졌다. 그런데 왜 9월에 이러는 것인가?

이정도의 의문이 있었지만, 대자보에서 특정 세대를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넘어갔죠.

그러다가 며칠 전 대자보를 붙인 집(알고보니 위층이더군요.)이 나름 용의자(?)로 저희 집을 지목한겁니다. 아버지가 새벽에 말린고추를 들고가는 모습을 본 거죠.

실랑이는 없었지만 나름 언쟁이 있었나봅니다. 저도 자세한 내용은 모르니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어제 터졌습니다.

어머니는 고추 간장 조림을 반찬으로 하셨는데, 갑자기 위층에서 인터폰으로 연락이 오더군요. 역시 스타를 하고 있던 저는 그 이야기를 같이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고추 내용이었죠. 중요한것은 저희 집은 반찬을 만들고 있었던 중이었고, 말린 고추는 흘린 것만 딱 하나 있었습니다.
  
상황이 다른 점은 저도, 아버지도 층간 소음으로 단단히 열받아 있었던 상태였죠. 윗집에 4살, 2살 아이가 있는데 오늘도 새벽 2시까지 굴러다녀서 잠을 설친 상태였습니다.

"그럼 내려와서 보세요.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제가 진심으로 열받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사쿠라를 만질 때가 되었죠.




내려오신 분은 30대 직장인이시더군요. 상당히 화난 표정으로 내려오셨는데, 그래도 배우신 분이었는지 화를 가라앉히면서 이야기하시더군요.



"저희도 고추냄새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렸어요."

"말린 고추 없는데요?? 그거 한 달전에 끝났어요."

"..."

"그리고 우리가 반찬을 해먹는데, 그정도도 양해 못해주면 저희는 할 말이 없죠."

"그러니까 저희 입장은, 여기서 고추냄새가 올라오니깐 조금만 양해해달라는 거죠. 누가 반찬을 만들어먹는걸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럼 말린 고추도 아닌데 대자보는 왜 붙이셨던 건데요?"

"그거야 워낙 냄새가 나니까..."

"그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그렇게 붙이신 거예요? 그리고 제가 한 마디 하는데, 본인들 층간 소음 내는건 아무말 안하니까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 생각하시는거예요?"

"저희도 소음때문에 맨날 저녁 8시까지 놀이터에서 놀아주고 그런 다음에 재워요. 우리는 절대 낼 일이 없어요."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 그럼 왜 맨날 새벽에 소리가 나는 걸까요? 애들에게 몽유병이라도 있어요?"

"우리 애들은 아닌데 그걸 왜 우리한테 이야기하냐구요?"

"그럼 고추냄새도 우리가 아닌데 그걸 왜 우리한테 이야기해요?"

"그럼 당신들도 고추냄새 낼테니까 저희도 층간소음 내도 괜찮다 이거죠?"

"..."


뭐 이딴 분이 다 있답니까?

밑장빼다 걸리면 손모가지 날아간다는걸 아직 모르시는 분인것 같아 한 마디 더했습니다.


"그건 애초부터 말이 안되죠. 본인들이 반찬 만드는 걸 고추 만드는 걸로 착각해서 붙인 모양인데, 그렇게 나오면 저희도 할 말이 없죠. 그럼 저희도 대자보를 하나 쓸까요? 애들 조용히 할 수 있도록 허니버터칩 하나는 붙여드릴게."

"그러니까 저희가 하고 싶은 말은, 위층에 고추 냄새가 심하게 올라오니까 서로 조심조심하자는 겁니다."

"아니 고추가 없는데 뭘 조심하자는거예요? 여기 보니깐 흘린 고추 하나 있는데 이것때문에 냄새난다고 하면 전 할 말이 없어요. 그리고 확실히 이야기하는데, 고추는 8월에 거래가 끝났는데, 9월에 냄새가 나는건 다른 집에서 했다는 생각은 안드세요?"

"아뇨, 지난번에 아버님께서 들고가시는걸 봤기 때문에 그건 확실하죠."

"우린 8월에 끝났다니까요? 심지어 그 방엔 지금 제가 잠깐 지내고 있어요. 그정도로 냄새가 심각하면 이미 그 방에 냄새가 뱄을테고 전 그 방에서 못지내죠.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니까요?"



그 때 윗집 와이프분께서 내려오셔서 그만 가자고 이야기를 한 터라 이야기는 여기서 대충 마무리되었습니다. 다만 끝나기 전에 어머니가 한 가지는 확실히 했죠.

"우린 그쪽이 뭐라고 해도 내년에도 똑같이 고추농사는 지을 거니까 그건 확실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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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해프닝을 쓰면서 약간 각색이 들어가긴 했지만 내용은 동일합니다.

이번일 이후로 아마 앞으로 대자보를 붙이는 일이 없지는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네요.

그렇게 참지 못하는 경우라면, 본인들이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고 왜 대자보부터 써붙였을까요?

본인들의 생존(?)이 걸렸다는 문제를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 정말 우스웠습니다.

심지어 사실조차도 알지 못한채 이야기를 써붙였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요즘 SNS같이 사회에 말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마치 본인들이 잔다르크화(化) 되는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할 말 다하고 다니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졌죠. 그리고 그것이 마치 정의인양 행동하는 경우도 많아졌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퍼거슨 경의 1승'은 이런 곳에서 자주 발생합니다.

본인이 잘못하는 것은 무시하고, 본인이 싫어하는 것부터 먼저 없애고자 하는 것. 인간이 이기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본성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함부로 이야기하면 결국 말한 당사자부터 역효과를 보겠죠.

앞으로 이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도...



ps. 맞춤법 지적은 환영합니다. 보통 글의 2배를 썼으니 틀린 부분이 많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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