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2/31 21:25:23
Name   bullfrog
Subject   올해의 마지막날을 호스피스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아버지 오스피스로 옮기신 지 2주차가 되었네요.

지난 월요일에 어머니한테서 온 문자.
'아빠 산소수치가 많이 떨어져서 요셉실(임종전 모시는 방)로 옮겼다'

3박4일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어머니 저 동생 셋이서 자고먹고씻고...

저는 밤이면 밖의 편의점으로 가서 캔맥주를 사서 먹습니다. 잠이 안 올거 같아서요.

아버지는 꼭 해를 넘기시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이렇게 오래 있는 건 간호사 분들도 갸우뚱 하시는 걸 보니...새해를 보고 싶으신 가봐요. 이미 의식은 없으신데.

밑에 유상철 감독님은 4기인데도 저렇게 이겨내시는데, 1기인 아버지는 뭐 땜에 이렇게 빨리...뭐 다 운명이겠지요.

혈압이 81까지 떨어지는 걸 보고는 또 지켜보기 괴로워서...내려와 맥주를 마십니다. 저는.옆에서 자지도 못하고 항상 가족대기실에서 잡니다. 요셉실 앞을 왔다갔다... 지나가면서 빼꼼 쳐다봅니다. 네, 저는 비겁한 아들입니다.

2020년 마지막 날입니다. 아마도 새해는 아버지를 떠나보내드리는 것으로 시작하겠지요. 아직 의식이 있으실 때 같이 문병온 저의 와이프한테 열심히 살라고 했답니다. 아버지와 함께한 40년...그리고 아버지 없는 40년, 열심히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다난하기만 했던 2020년이 저물면,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나면, 정말 열심히 보람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게 최선의 결과를 낳는 건 아니지요. 인생은 불공평하니깐요. 저희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 처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 처럼요.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저는 제 인생의 가장 어두운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내일의 새해는 뜨겠지요. 시간이 흐르는게 두렵지만, 잘 보내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겠지요...그리고 아버지 말대로 저는 어떤 인생의 굴곡에 놓이든, 제 나름의 최선을 다해 보렵니다. 홍차넷 여러분들도 건투를 빕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그리고 꼭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챙기실 수 있기를 기원드립니다.




24
  • 그저 힘내시라는 말 밖에 못드리겠습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963 일상/생각외로움의 세상에서 차 한잔 7 기쁨평안 17/02/22 3695 25
4815 일상/생각엄마. 16 줄리엣 17/02/09 4272 25
1376 요리/음식라면 41 헬리제의우울 15/10/29 11226 25
9476 일상/생각스무살한테 인생 그렇게 살지 말라 욕 먹은 썰. 26 tannenbaum 19/07/27 5331 25
14373 역사정말 소동파가 만들었나? 동파육 이야기. 12 joel 24/01/01 2046 24
13265 일상/생각10/22 온가족 설악산 다녀왔습니다. 7 큐리스 22/10/24 2121 24
13069 IT/컴퓨터가끔 홍차넷을 버벅이게 하는 DoS(서비스 거부 공격) 이야기 36 T.Robin 22/08/08 3769 24
12998 사회장애학 시리즈 (1) - 자폐를 지닌 사람은 자폐를 어떻게 이해하나? 16 소요 22/07/14 4020 24
12947 일상/생각제가 홍차넷에서 하고 싶은 일 첫번째 26 설탕 22/06/24 3587 24
12595 의료/건강오미크론 유행과 방역 '정책'에 관한 짧은 이야기 11 Ye 22/03/08 3773 24
12326 오프모임* 벨기에 맥주 최강자전 * 결과 (+ 간단 후기) 16 캡틴아메리카 21/12/05 5424 24
13161 일상/생각딸내미로부터 가을을 느낍니다. 11 큐리스 22/09/19 2878 24
12019 역사과거를 도려낸 나라의 주민이 사는 법. 15 joel 21/08/27 3915 24
11816 IT/컴퓨터부산지역 D&D(개발자&디자이너) 동아리에 개인기부했습니다. 12 보리건빵 21/06/23 3558 24
11689 사회섹슈얼리티 시리즈 (완) - 성교육의 이상과 실제 18 소요 21/05/18 4405 24
11505 창작할리퀸 harlequin 24 흑마법사 21/03/19 4354 24
11299 일상/생각올해의 마지막날을 호스피스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15 bullfrog 20/12/31 3895 24
10709 정치어르신들 전 상서 - 인국공 사태에 부쳐 166 BibGourmand 20/06/23 10209 24
10218 일상/생각멘탈이 탈탈 털린 개인카페 리모델링 후기 42 swear 20/01/23 5521 24
10140 일상/생각잠이 안 와서 한줄한줄 쓰게된 이별이야기 8 금붕어세마리 20/01/02 5521 24
10031 일상/생각하루 삼십 분 지각의 효과 13 소고 19/11/26 5489 24
9839 일상/생각죽음을 대하는 일 2 멍청똑똑이 19/10/15 4291 24
9830 기타[옷나눔] 여자 직장인 옷 나눔해요 33 다람쥐 19/10/13 5005 24
9732 일상/생각은사님은 뉴라이트 11 tannenbaum 19/09/29 4120 24
9674 일상/생각상견례 준비 중입니다. 20 모여라 맛동산 19/09/16 3720 2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