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1/01/24 00:05:02
Name   Schweigen
Subject   주인양반 육개장 하나만 시켜주소.
퇴근 전 객실에서 콜을 받은 직원이 손님과 한참을 이야기 하더군요. 때마침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 제가 대신 전화를 넘겨 받았습니다.

주인 양반 여 육개장 하나만 시켜주소. 내 저녁을 못 먹어서 그러오. 컴퓨터를(배달어플) 할 줄 몰라 그러니 부탁 좀 합시다.

저녁 늦은참 백살이 성성한 할아버지 한분이 투숙을 하셨어요.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나 일행도 없이 혼자 오셨더라구요. 근처 중국집이나 식당들은 문 닫은 뒤라 주문을 하려면 어플로 해야하는데 어려움이 있으셨던거죠. 금액 때문에 한그릇은 안되는지라 두 그릇 시켜 직원한테 한그릇 니 해라 하고 한그릇은 손님께 가져다 드리고 한그릇 값만 받으라 했습니다.

세상은 분명 빠르고 편해졌는데 누군가에게는 어렵고 불편해지기도 한다지요. 만역히 이야기를 듣는것과 경험하는 건 꽤 다르드라구요. 그냥 육개장 한그릇 먹는게 어떤이에겐 너무 높은 허들이 되버린 세상이 참 아이러니...

그 할아버님이 세상을 따라잡기 버거운것이 온전히 그분탓인것만은 아닐겁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또 우리는 뒤쳐진 사람들을 뒤떨어진 사람이라 짜증을 내거나 비난을 하거나 혹은 아예 무관심하곤 하죠. 솔까 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구요.

얼마전이었을거에요. 점심께 은행에 일보러 갔다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는데 할머님 한분이 창구에 앉아 직원과 한참을 실랑이 하시더라구요. 그리 어려운 내용은 아니었고 몇가지 서류와 개인정보 활용 동의에 대해 몇번씩 되묻고 되묻고 설명하고 설명하고... 그러다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창구 중 몇은 비어 있던터라 대기는 점점 늘어 났고 여기저기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고 저도 표현은 안했지만 슬슬 짜증이 났습니다. 때마침 식사를 마친 다른 창구직원들이 합류하면서 병목은 풀렸습니다. 근데... 그게 저나 여러분들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내용들이었지만 할머님에겐 아니었겠죠.

노인네들 따라가려는 노력은 안하고 나는 그런거 모른다 핑계만 댄다 쉽게들 얘기해요. 저도 아니라고는 못하겠네요. 근데 저도 어느면에선 육개장 한그릇 주문하기 어려워 했던 할아버지나 은행업무에 낯설어 하시던 할머니랑 다를게 없더라구요. 어느 누군가에게 저는 세상 못따라가는 꼰대노땅일테고요.

긍까... 가끔 뒤도 돌아 보게요. 거기도 사람 있으니께요.



36
  • 춫천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890 사회홍차넷 20000플 업적달성 전기 87 파란아게하 17/07/04 6497 37
11367 일상/생각주인양반 육개장 하나만 시켜주소. 9 Schweigen 21/01/24 4018 36
10525 일상/생각하루 왕복 110km 통근했던 이야기 37 SCV 20/04/23 5133 36
10432 역사오늘은 천안함 피격 사건 10주기입니다. 22 Fate 20/03/26 5610 36
9715 기타마감)강다녤 줄서면 스벅 깊티콘 주는 게시물 (추가X2) 113 tannenbaum 19/09/27 4930 36
9324 과학/기술과학적 연구의 동기부여는 시대를 어떻게 대변하는가? 25 다시갑시다 19/06/18 5404 36
9215 일상/생각홍차넷 1년 후기 8 곰돌이우유 19/05/20 5157 36
8548 사회형벌의 목적, 책임주의, 그리고 음주운전 28 烏鳳 18/11/20 6632 36
6997 과학/기술국뽕론 43 기아트윈스 18/01/25 6425 36
5020 일상/생각10 26 진준 17/02/27 4741 36
4883 기타홍차상자 이야기 :) 52 새벽3시 17/02/15 7047 36
11876 정치내가 왜 문재인을 좋아하지...? 107 매뉴물있뉴 21/07/13 5606 36
2711 역사유게에 올라온 유재흥 글에 대해 63 눈시 16/04/29 12915 36
14427 일상/생각전세보증금 분쟁부터 임차권 등기명령 해제까지 (4, 完) 6 양라곱 24/01/31 2902 35
13791 일상/생각부모님이 반대하는 결혼 썼던 사람입니다 오랜만에 왔습니다 18 이웃집또털어 23/04/27 2750 35
13022 사회<20대 남성 53% "키스는 성관계 동의한 것">이라는 기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 보고서 원문 자료를 바탕으로 43 소요 22/07/25 3280 35
12524 일상/생각길 잃은 노인 분을 만났습니다. 3 nothing 22/02/18 2791 35
12278 일상/생각어느 유서깊은 양반가문 이야기. 16 Regenbogen 21/11/16 3645 35
11591 댓글잠금 사회한국 성차별 문제의 복잡성. 88 샨르우르파 21/04/18 6907 35
10178 일상/생각습관 만들기 - 2달째 후기 40 카야 20/01/14 4932 35
9731 정치내가 조국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 23 그저그런 19/09/29 4968 35
9305 일상/생각엄마 전화 7 꿈꾸는늑대 19/06/12 4641 35
9184 일상/생각30대 기획자. 직장인. 애 아빠의 현재 상황. 15 아재 19/05/12 5120 35
6359 일상/생각학력 밝히기와 티어 29 알료사 17/10/01 6096 35
5034 기타[마감] 홍차상자 우편배달 이벤트 (지방 한정) 74 새벽3시 17/02/28 5406 3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