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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1/02/04 22:06:18수정됨
Name   이그나티우스
Subject   시로바코 극장판 리뷰
작년에 극장 개봉했던 <시로바코 극장판>의 VOD가 공개되었다. 극장에서 봤지만, VOD로 집에서 볼 수 있기를 계속 기대했기 때문에 공지가 올라오자 마자 바로 결제를 해서 봤다.

누가 2010년대에 나온 애니메이션 작품 중 최고의 작품을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시로바코>를 꼽는다. 물론 세계관이나 스토리, 연출, 작화가 더 세련된 작품들은 얼마든지 있지만 애니메이션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하나하나 조화를 이뤄서 최고의 작품이 된 것은 단연코 <시로바코>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애니메이션 팬층을 제외하고는 대중적으로는 거의 화제가 되지 않았던 작품이라 굳이 설명을 하자면, <시로바코>는 한마디로 말해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의 제작진행으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미야모리 아오이(宮森あおい)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과정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고, 이러한 큰 줄기는 2014-15년에 공개된 TV판과 작년에 개봉한 극장판 모두 같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영화, 드라마가 특정한 직업을 소재로 다루는 경우 많은 경우 직업은 스토리를 풀어나가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쓰일 뿐이고, 그 외에 멜로나 미스터리, 액션과 같은 일반적인 장르적 서사가 줄거리를 이루게 된다. 그렇지만 <시로바코>는 드물게도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혹은 왜 만드는가와 같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련된 사람들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 자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물론 작중에서 설명을 잘 해주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만 있더라도 얼마든지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TV판의 경우 주인공이 ‘나는 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는가?’라는 동기부여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마지막 화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단순하지만 동시에 호소력 있는 대답과 함께 작품이 막을 내린다. 극장판에서는 좌초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를 살려 새로운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단순히 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넘어,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여기에 대해 작품은 후반부에서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듀서인 주인공의 입장에서 “작품을 반드시 완성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역시나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동시에 작품을 본 사람들에게는 묵직하게 다가오는 대답을 제시한다. 완성된 작품의 하드카피(白箱)를 의미하는 제목과도 상통하는 대답이다.

좋은 작품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백 명이면 백 개의 답이 있겠지만 적어도 나 개인적으로는 하나의 깊이 있는 주제의식을 일관성 있게 풀어내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좋은 작품의 유일한 기준은 아니지만.) <시로바코>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주제의식이 단단히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중심으로 일관성 있으면서도 호소력 있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실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이 제작의 목적이라는 것은 동어반복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글로 써 놓으면 그렇겠지만, 실제 작품을 보면 완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겠지만 상업 컨텐츠의 상당수는 기획이나 제작 과정에서 엎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나올 줄 알았던 속편이 영영 나오지 않기도 하고, 짧은 작품이지만 제작기간은 10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런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책임감을 갖고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이 작품은 이야기하고 있다.

동시에 <시로바코>는 “모두가 함께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것의 즐거움”을 말하고 있다. 주연과 조연이 존재하는 각본의 특성상, 그리고 히어로를 원하는 보는 사람들의 입장으로 인해 많은 경우 애니메이션 작품, 아니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에도 주인공이나 주인공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전개가 많다. 창작물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시로바코>의 시청자의 상당수를 차지할 젊은 시청자들(구체적으로 학생)에게는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공부를 해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목표로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또 짜증나는 일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기피해야 할 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조별과제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나쁜 인식을 생각해보면..) 또 남들과 무언가를 같이 하는 것은 시간낭비라는 인식이 퍼져 있는 측면도 있다. 물론 사람과 함께 일을 함으로써 얻는 스트레스는 분명히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나 혼자서를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분명 과소평가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실제로도 수많은 이해관계자와 관련 종사자들의 협력 없이는 제작하기 힘든 애니메이션 제작현장을 통해 <시로바코>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의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런 부분은 참 소중한 부분이다.

애니메이션, 그 중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분열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거장들이 만든 과거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수준 높은 장르이지만, 미소녀가 등장하는 일상생활을 배경으로 한 최근 출시된 애니메이션은 수준이 떨어지는 이른바 ‘오타쿠 컨텐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슬램덩크>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좋은 작품이지만, <케이온>은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식상한 내용과 진부한 설정, 얄팍한 전개로 보는 사람에게 실망을 주는 작품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형의 캐릭터로 일상생활의 사건들을 그려내는 현대적인(?) 애니메이션 작품이 반드시 ‘수준이 떨어진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이러한 분열적인 시선에 대해서 <시로바코>는 아주 모범적인 해답을 제시한다. 캐릭터 머그잔을 팔아먹기 위해 디자인한 것만 같은 미소녀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해도 잘만 만들면 얼마든지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시로바코>의 팬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주인공을 비롯한 ‘카미노야마 고교 5인조’는 누가 보아도 미소녀 캐릭터이다. 다른 등장인물(특히 남자 캐릭터의 경우)의 경우에는 결코 미형이라고 볼 수만은 없는 비교적 현실적인 디자인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굉장히 대조되는 부분이다. 또 주인공이 젊은 여자라는 부분 역시 남성 소비자층을 노린 마케팅 전략으로 볼 여지도 충분히 있다. (미소녀 캐릭터에 환장하는 남성) 오타쿠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타락시킨다고 보는 입장에서는 <시로바코>도 결국에는 미소녀 캐릭터 상품을 팔아먹으려는 싸구려 작품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작품을 보면 미소녀 캐릭터가 등장하는 ‘요즘 애니메이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캐릭터의 디자인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호소력과 감동을 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다. 주인공의 디자인이 (별로 이 ‘사어’가 된 표현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른바 ‘모에(萌え)’를 추구하면 깊이 있는 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인가? 디자인과 무관하게 주인공을 비롯한 작품에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은 지극히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으며, 단순히 눈요깃감을 위해 소비되는 존재들이 아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주인공은 작품의 그 누구보다도 제작 현장의 여러 트러블로 인해 고통을 겪는다. 영원한 고통을 받는 라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말이다. 아마도 이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이 작품이 미소녀 캐릭터 상품을 팔아먹기 위해 제작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좋은 작품이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해서는 하나의 답이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작품의 어떤 특정한 요소, 혹은 마케팅 전략이 그 작품의 가치를 결정짓는다고 보는 시선이 편협하다는 것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로바코>는 최근 출시된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일부의 비판적인 시선에 대한 하나의 좋은 반례가 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작품이 한치의 결점도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TV판의 경우 거의 단점을 찾기 힘들 정도의 수작이지만, TV판 방영 후 5년이나 되어 개봉한 극장판은 여러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TV판에서 사용했던 연출이나 전개를 재활용하는 부분이 눈에 걸린다. 꼬장을 부리는 상대 회사로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짓는 장면이나(그리고 회사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비현실적인 격투신의 연출이 있는 점), 제작이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의향에 따라 추가로 신을 제작해서 추가하는 극장판 마지막 부분의 전개 등등은 사실 TV판에서 나왔던 부분을 거의 재활용한 것이나 다름없는 측면이 있다.

또 2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으로 인해 등장인물의 대사로 부자연스럽게 상황이나 설정을 환기하거나(미니 캐릭터 등장 신 이후 회사의 상태를 설명하는 첫 장면 등), 이야기의 전개를 급하게 당기는 부분(야마다 감독 부분 등)도 몇 군데 눈에 걸렸다.

그리고 TV판의 경우 TV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컨텐츠적 특성에 대해서 차근차근 심도있게 다루는 부분이 있어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던 반면, 극장판의 경우에는 극장판과 TV판이 무엇이 다르며, 극장판 제작과정에는 어떠한 특징이나 어려움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던 부분도 아쉽다. 이외에 새로 투입된 캐릭터인 ‘미야이’를 무려 사쿠라 아야네라는 거물급 성우를 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활용하지 못한 점 등 속편임에도 불구하고 신규 캐릭터를 거의 활용하지 않고 무리할 정도로 전작 캐릭터만 재등장시킨 점 역시 아쉬웠다. (‘마이타케 시메지’의 경우 성우가 교체되었음에도 전작 캐릭터를 고수할 정도.)

그렇지만 극장판만의 내용상의 장점도 있었다. 먼저 침몰한 기획을 다시 부활시키는 부분은 TV판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던 신선한 내용이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컨텐츠 비즈니스에서 기획이 엎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한데, 그 엎어진 부분을 제법 비중있게 다룬 것은 재미있었다. (그게 얼마나 실제 업계 사정과 일치하는 지와는 별개겠지만..) 또한 작품을 둘러싼 법률상의 분쟁이 트러블의 한 축을 이루는 것도 흥미로웠다. <시로바코>의 장점은 단순히 작품을 만드는 것 이상의 산업으로서의 애니메이션에 대해 꾸준히 환기를 하는 부분인데, 비즈니스에 반드시 따르기 마련인 계약상의 여러 분쟁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어서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극장판 <시로바코>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는 호평인 가운데서도 미묘하게 평이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나도 그런 부분에 어느 정도는 동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작품인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TV판이 99점이라면 이 작품은 90점인 것이고, 90점인 상태에서도 다른 많은 작품들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을 가치가 있다. 여기서 또 이 작품의 속편이 나올 가능성은 그렇게 크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2편의 시리즈만으로 <시로바코>는 앞으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정말 좋은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P. S. <시로바코>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을 위한 잡지식
1. 작중의 키노시타 세이이치의 실제 모델인 미즈시마 세이지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자신은 작품성에 집착하는 키노시타 감독과는 달리 전체 제작과정 전반을 고려하여 최적의 해법을 내놓는 것을 선호하는 주의라고. 만약에 자신이 극장판 마지막 장면처럼 작품이 완성된 후에 결말부에 있어 아쉬움을 느꼈다고 하더라도, 제작과정을 고려하여 작품처럼 완전히 갈아엎는 모험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한다. 여담으로 미즈시마 감독은 작중의 키노시타 감독과 정말로 닮았다!

2. <시로바코>는 TV판 제작 당시 주조연급으로 신인 성우들을 대거 기용했는데, 이들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은 재미있게도 음향 스태프를 중심으로 여러 단역을 맡았던 타카하시 리에이다. 이 작품 후 타카하시 리에는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과 <리제로> 시리즈의 주연을 맡으면서 지금은 일본에서도 가장 주가를 올리고 있는 성우가 되었다. (물론 다른 성우들도 전체적으로는 이 작품을 맡으면서 이름을 알린 편.)

3. <시로바코>의 제작사인 P. A. Works는 <시로바코>의 TV판 제작을 맡은 후 의인화된 경주마를 소재로 한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라는 작품을 제작했다. TV판 중반부에서 달리는 말 작화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던 스토리를 생각하면 재미있는 부분. <우마무스메>에 직접 말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P. A. Works는 움직이는 캐릭터의 역동적인 작화를 잘 살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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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번 보고싶네요
  • 최애 애니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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