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0/09 20:26:23
Name   레이드
File #1   right_now_wrong_then.jpg (54.6 KB), Download : 27
Subject   (약 스포주의) 지맞그틀 - 발칙하고 솔직한 홍상수식 미연시


제 기억속 홍상수는 굉장히 무겁고 무섭고 찌질한 감독이었습니다. 강원도의 힘이나 오 수정은 말할 것없이 극장전이나 뭐 그런것들까지 그런 느낌이 쭉 이어졌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미지가 변하기 시작했죠. 아마 옥희의 영화에서부터 였던걸로? 아니면 하하하에서부터 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조금씩 조금씩 발랄해지기 시작했어요.  발랄하고 재기넘치고 그러면서도 날카롭고, 장난기 넘치는, 최근에는 그런 감독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물론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여전히 존재하죠. 북촌방향이라든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이라든가..)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홍상수 감독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자주 플레이하는 하드 게이머에 틀림 없어요. 이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보면 누구나 느끼실 수 있을걸요. 자연스럽게 세이브 로드 신공을 펼치고, 선택지에 따라 다른 히로인과 이야기를 하고, 그들의 호감을 사기 위해 선물을 주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는 걸 보면요.

이 영화는 2시간 남짓 되는 시간동안 두 가지 시나리오로 이루어져 있어요. 첫 번째는, 자신을 좋아해주는 보라(고아성)와의 이야기. 두 번째는 처음 만난 아주 매력적인 여성 희정(김민희)과의 이야기. 첫 번째 시나리오와 두 번째 시나리오는 비슷하면서도 아주 다르죠.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어떤 선택을 하느냐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누구와 엔딩을 맺느냐가 정해져 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가 두 번째보다 더 좋았어요. 사람들은 두 번째가 더 좋다고들 말하지만.. 왜냐하면 저는 첫 번째의 춘수(정재영)와 매우 닮아있거든요.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진중하질 못하고..크크.

이 영화는 순간 순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과 삶, 인간들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하고 커다란 걸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영화에요. 한정된 공간과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고 발칙하게 드러낸 작품이죠. 저 개인적으론 아주 좋았어요.
한 가지 단점은..뭐랄까 춘수를 보고 있으면 자기 자신을 투영시키게 되서 참 부끄러워지고, 속이 너무 뻔히 보여서 오히려 더 안쓰러워 보이고.. 그런다는거죠. 저는 한동안 스크린을 못 봤어요. 물론 그런 모습이 아주 솔직하고 천진난만해 보여서 좋기도 했지만요.

이 영화는 날카로움과 재기를 함께 갖춘 영화에요. 컷과 컷을 많이 나누지 않고도, 현란한 카메라 워킹이나 화려한 미장센같은 걸 갖추지 않고도 인물의 대화, 몸짓만으로도 충분히 웃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영화죠. 요 근래 본 영화들 중에 가장 많이 웃긴 영화였어요.

어느새 데뷔 20주년, 열일곱번째 장편을 만들어낸 홍상수 감독은 이제 그의 이야기를 힘 들이지 않고 영화 곳곳에 뿌리는 방법을 알아낸 것 같습니다.
한 바탕 웃고 나서 곱씹어 생각해보면 깊은 사유가 있는, 그런 장면들이 아주 많아요. 꼭 한번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상영관이 별로 없고... 이제 곧 내린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기회가 되신다면 !

저 개인적인 별점은 다섯개 만점에 ★★★★

ps, 김민희는 이제 정말 배우라고 불러도 될 것 같습니다. 근데 전 고아성이 더 좋았어요!
아 그리고 제게는 그때도 틀리지 않았어요. 지금도 맞고 그때도 맞고, 앞으로도 틀린건 없을 겁니다. 아마.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128 영화(스포) 엔드 게임 엔딩은 의도된 것이다? 28 우주견공 19/04/26 6575 0
    9266 영화(스포) 영화 '기생충' 개조식으로 짤막한 감상정리 해보려고요 18 미스터주 19/06/01 7230 7
    3526 영화(스포) 터널 - 애미야 국이 싱겁다 14 Raute 16/08/17 5571 0
    1360 영화(스포) 현전불가능한 대상에 대하여 : 베넷 밀러 <폭스캐처>(2015) 9 구밀복검 15/10/28 10265 2
    2104 도서/문학(스포)'역시 내 청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 리뷰 5 Yato_Kagura 16/01/24 7017 2
    6244 문화/예술(스포)수명을 팔았다. 1년당, 1만엔에. 3 콩자반콩자반 17/09/07 8269 0
    556 영화(스포없음)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보고 왔습니다 18 사탄 15/07/10 7302 0
    9120 영화(스포일러) 가슴과 머리로 보는 엔드게임 9 Jace.WoM 19/04/25 5026 4
    12350 영화(스포일러)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후기 (스포있음) 57 Cascade 21/12/15 6073 1
    7660 영화(스포있음) 미니어처일까? 디오라마일까? 영화 <유전> 2 Weinheimer 18/06/11 6274 1
    5583 영화(스포있음주의, 덕내주의) 가오갤1을 복습하며 쓰는 의식의 흐름 가득한 아무말 글 15 elanor 17/05/06 5745 5
    12545 게임(스포주의) Nerdlegame에서 느끼는 "신뢰" 6 dolmusa 22/02/25 4819 2
    14958 게임(스포주의) 뒤늦게 활협전을 하다가 내상을 쎄게 입었네요 3 겨울삼각형 24/10/04 2977 1
    14024 과학/기술(아마도)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한 이유 15 매뉴물있뉴 23/07/09 4713 12
    8127 스포츠(아시안겜 뽕뽑기) 아마추어 전술기: 자 2제 2차원 8 다시갑시다 18/08/28 5142 6
    4938 꿀팁/강좌(아이폰) 메신저 앱 리뷰 18 elanor 17/02/20 5836 0
    6084 스포츠(야구) 김재환과 금지약물과 메이저리그 40 kpark 17/08/09 6862 3
    1148 문화/예술(야자) 이 할머니의 패션 43 눈부심 15/10/01 13403 0
    1455 영화(약 스포주의) 더 랍스터 - 결핍과 결합의 묘한 앙상블 4 레이드 15/11/04 9116 0
    1208 영화(약 스포주의) 마션 - 리들리 스콧의 유쾌하고도 묵직한 메시지 6 레이드 15/10/08 6654 0
    878 영화(약 스포주의) 베테랑 - 에피타이저가 너무 맛있어도 8 레이드 15/08/31 4710 0
    1163 영화(약 스포주의) 인턴 - 로맨틱 코미디와 브로맨스의 표류 6 레이드 15/10/02 7862 0
    1216 영화(약 스포주의) 지맞그틀 - 발칙하고 솔직한 홍상수식 미연시 2 레이드 15/10/09 11294 0
    13200 영화(약스포) 공조2 : 전작보단 훨씬 나아진 영화 2 A7658 22/10/03 3626 0
    6276 기타(약혐)디시의 가슴 뜨거운 야매 의사 17 콩자반콩자반 17/09/13 6985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