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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2/05/12 10:49:53
Name   Picard
Subject   회장 vs 회장, 부사장 vs 부사장
안녕하세요. 중견기업 회사원 아재입니다.

제목을 적지 않고 떠오르는대로 써보는 회사 생활입니다.

1. 회장 vs 회장

이전 회장은 금수저였습니다. 사람들이 알정도로 유명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네이버에 검색하면 아버지가 누군지 동생이 누군지, 사돈이 누군지 나오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지역 유지고, 동생도 다선국회의원이고 사돈도 소비재로 나름 알려져 있는 중견그룹 오너 집안이고...이너써클로 치자면 찐이너써클이었겠죠.

뇌피셜로 보거나 들은 이야기를 생각해보면.. 전 회장에게 회사는 자신의 나라이고, 임직원은 내 백성이라는 생각이었던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릴적부터 지역유지 집안의 도련님이었을테니.
1년에 한두번 공장 방문하게 되면 공장장이랑 본부장이랑 총무팀장이 철저하게 의전계획을 세웠습니다. 회장의 차량이 공장 건물 앞에 도착하면 레드카펫이 깔려 있고 총무팀장이 하얀 예식장갑을 낀채로 차문을 열어주면 사장, 본부장, 공장장 등의 임원들과 팀장들은 물론이고 노조위원장까지 도열해있고 여직원 대표가 꽃다발을 들고 있다가 안겨주고......

회장이 구내식당 메뉴를 보고 '먹을만하게 나오네..' 라고 했다거나.. 지방 공장이라 대중교통이 없어 자차출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주는 월급으로 다들 마이카(...)를 몰고 다닐 정도로 풍족하게 사는구나' 라고 했다거나.. 회장이 공장 방문을 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서 회식비를 하사했다거나... ㅋㅋㅋ

아니 2010년대에 주차장에 차 많다고 다들 잘사는구나 하는게 말이 됩니까. 그것도 차들이 대부분 소형차나 아반뗴, 소나타인데.. 정몽준의 버스비 70원 발언이 떠올랐죠

내 종놈들 내치지는 않아서 명퇴를 시키더라도 협력사나 다른 작은 계열사에 낙하산으로 보내서 정년은 채우게 해주는...
성과급 그런것도 없었습니다, 차끌고 다닌다고 자기가 월급 많이 주는줄 아는 사람인데, 성과급 같은걸 왜 주겠습니까. 회사가 돈을 벌면 자기가 잘해서 그런줄 알았죠.
저희 회사가 신사업에 진출했다가 처절하게 망했을때, 회장이 경영진들 모아놓고 '내가 너네한테 속았다.' 라고 일갈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결정은 자기가 한건데, 그 결정은 속아서 한거니 자기 책임이 아니라는거죠.


새 회장은... 젊어서 그런가 좀 더 냉혹합니다. 이전회장이 인심좋지만 세상 돌아가는거 잘 모르는 나랏님이었다면, 지금 회장은 철저한 경영자입니다. 임직원들은 내 회사 돌리는데 필요한 부품이고 부품이 마모되거나 필요 없어지면 바로 내칩니다. 명퇴시키면서 협력사 낙하산으로 정년 채우게 해주던 관례도 싹 없앴습니다. 이 관례는 장단점이 있지만, 인사팀 입장에서는 가성비, 효율이 떨어지는 고참 부장들을 스스로 나가게 하는 좋은(?) 도구였는데 그게 없어지다 보니 부장들이 뭔가 납작 엎드리는 것 같습니다. 한번 실수하면 바로 내쳐지거든요. 그래서 위험한 도전 안하려고 하고 책임도 안지려고 합니다.
부품이 잘 돌려면 기름을 잘쳐줘야죠. 그래서 성과급은 주는 편입니다. 급여는 동결이다. 대신 니들 열심히 해서 목표 달성하면 내가 성과급은 줄게.  이런 마인드 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과급까지 포함해도 옆 회사 기본급만큼도 못한...)

회장이 바뀌고서 사내 정치가 더 심해졌다고 느끼는게, 제가 그걸 보고 느낄 정도의 직급으로 올라와서 그런건지, 회장이 임직원들을 졸로 보고 사내정치를 이용해 먹어서 그런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2. 부사장 vs 부사장

회장이 바뀌면서 기존 임원들을 싹 날리고 딱 4명을 남깁니다. 한명은 영업총괄부사장이 되었고, 한명은 생산기술총괄부사장이 되었고, 엔지니어 출신중 유일하게 공장장이 자리 보전하고, 의외로 미래전략실장이 살아남더군요.

그래서 영업부사장이랑 생산부사장이 차기 사장 자리를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하였습니다. 문제는 생산부사장이 정작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었습니다. 생산계획실장 출신으로 판매와 생산, 구매의 숫자 관리로는 최고 전문가로 회사의 구매부터 판매까지 모든 분야를 다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판매만 떼어보면 순혈 영업맨 출신이었던 영업부사장에게는 한수 접어야 했고, 엔지니어 출신이 아니다 보니 생산부사장이 되어 공장과 연구소에서 보고하는 기술적인 이야기를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과거처럼 COO 체제였으면 COO 자리에는 어울리는 자리였지만, 생산과 기술을 총괄하는 자리를 맡기로서는 부족했건 아이러니가....

그래서 영업은 실적이 잘 나는데, 생산쪽은 원가 절감도 목표 미달, 생산량도 미달, 합격률도 미달 등등 흡족하지 못한 성과가 납니다. 그래서 영업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
(그런데 애초에 생산쪽 목표가 터무니 없는 숫자이긴 했습니다. 부사장이 자기 실적 때문에 말도 안되는 숫자 달성을 강요한거였죠)

사장이 승진하고 부사장 휘하에서 손발역할하던 사람들과 조직을 하나하나씩 짤라 내는거 보면서 부사장 곧 짤린다.. 라는 소문이 계속 돌았는데 안 짤리더군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갔는데, 지금은 이해가 갑니다. 회장이 사장을 견제하기 위해 라이벌을 안짜르고 남겨두고 있다는 것을...

지금 부사장은 기술총괄부사장이라는 직함으로 휘하에 연구소랑 기술기획팀만 두고 있는데 연구소장은 회장에게 직보하라는 오더 받아서 부사장이 맘대로 못하고, 기술기획팀만 줄창 고생하고 있습니다.

제가 기술기획팀장 하다가 공장 실무자로 좌천되었는데, 새 기술기획팀장이 저만 마주치면 우는 소리 하네요.

여기서 일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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