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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0/21 11:37:18
Name   MANAGYST
Subject   유럽여행 후기 - 그랜드 투어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꼈지만, 그 중 가장 오랫 동안 제 머리속에 울림을 줬던 단어는
"그랜드 투어(Grand Tour)"였습니다.
이 단어를 중심으로 저의 첫번째 유럽 여행 후기를 써볼까 합니다.


< 그랜드 투어란? >
그랜드 투어란 1700년대쯔음 돈 많은 영국의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서 유행한 유럽 여행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장관집 아들이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대학을 보내지 않고, 서울대 모교수를 개인교사로 고용해서 유럽 한바퀴를 같이 돌면서 많이 배우고 오라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1763년, 영국 재무상 촬스~의 아들이 국부론으로 유명한 애덤스미스와 떠난 여행입니다. 애덤 스미스에게 제시되었던 조건은 "연봉 300파운드를 평생 보장한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스미스가 교수로 있었던 글래스고 대학의 연봉이 170파운드였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나게 파격적인 조건이었습니다. 아무튼 스미스는 그 부자집 아들과 3~4년동안 진행된 이 여행에서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국부론>을 쓰기 시작합니다. 분명, 그랜드투어란 학생뿐 아니라 스승에게도 도움이 되는 여행이었나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끄럽지만, 저도 언젠가 제딸 하윤이와 함께 그랜드투어의 스미스 역할을 해보겠다는 다짐을 하게되었습니다. 그 여행을 다녀와서 쓴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뭐 이런 꿈같은 스토리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 왜 그들은 그랜드투어를 보냈을까? >

그랜드 투어를 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사교육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사실 당시에는 이 길고 호사스러운 여행의 효과에 대한 의문도 있었고, 실제로 기대했던 외국어 학습효과는 크지 않고, 오히려 도박으로 돈을 날리거나 현지 여성들과 스캔들을 일으키는 일도 다반사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왜 영국의 부자들은 자식들에게 "여행을 떠나라"고 했을까요? 당시에도 명문으로 불렸던 케임브리지나 옥스포드대학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아마도 영국이 군사/정치/경제적으로 힘이 세졌졌지만, 여전히 문화/예술/역사적으로 부족하다는 일종의 "열등의식" 때문 아닐까요? 어쨌든 역사적으로도 그랜드투어는 영국의 발전에 일정부분 기여한 것으로 보입니다.


< 그랜드 투어는 왜 사라졌을까? 그리고 지금의 여행은 무엇이 달라졌나? >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기차나 증기선이 보편화되면서 여행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었습니다. 부자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면서 여행의 희소성이 줄어든 것이 역설적으로 "그랜트 투어"가 역사속으로 사라진 이유가 됩니다. 멀리 19세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더 싸고, 편하고, 여유있게 여행을 즐길 수 있게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일례로 로마 어디서도 종이 지도를 펼칠 필요 없이 Google Map이 시키는 곳으로 걸어가면 되고, 맛집을 따로 찾아놓지 않아도, Trip Advisor가 근처의 맛집까지 가는 길을 안내해줍니다.


< 지식! 앎! 지혜! 의 중요성 >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지식" "앎" "지혜" 로 불리는 것들이죠. 아무리 맛집과 유적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어도 그곳의 역사적 의미는 공부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경치나 구경하면서 지나가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는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배우고, 배운만큼 성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안다는 것"은 새롭고 가치있는 것을 창조하는데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영국 사람은 아니지만, 미켈란젤로의 사례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고, 사람들이 "성모 마리아가 너무 크서 비율이 맞지 않다"는 비판에 대해 미켈란 젤로는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사람(위에 계신 분) 밖에 없다"는 다소 오만방자해 보이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위에서 바라본 미켈란제로로의 피에타는 보는 순간 소름이...!!
어떻게 미켈란젤로가 이런 작품을 만들 수 있었을까요?

물론 미켈란젤로를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메디치 가문"이 미켈란젤로의 어린 시절 조각을 멈추고, 역사/철학/정치 등의 당시 학문 공부하게 시킨 것이
향후 그의 작품활동에 엄청난 자산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 종착점이 아닌 출발점 >
여행을 통해서 알게된 지식과 경험은 그 자체가 종착점이 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는 석회수가 많아서 맥주와 와인이 오래전부터 발전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고 하죠. 이 사실을 몰랐던 사람들에게 식사를 하며 가볍게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자체가 우리의 삶을 바꾸지는 못할 것은 너무 당연합니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얻은 지식은 종착점이 아닌 출발점이 될 때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 그럼 맥주는 어떤게 있지? 와인은?" 이런 질문으로 이어져야만 한다는 거죠.
여행을 통해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알게 되었다면, 과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데 왜 지금은 이러지?"라는 현재까지 그 생각의 끈이 이어져야 가치가 있습니다.


< 결론: 내가 계획하는 그랜드 투어 >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아주 늦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다짐한 것은
가장 적절한 시기(대략 10년후?)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그랜드 투어를 기획하겠다는 겁니다.

- 빡빡하지 않은 일정 동안 각자 인생의 매듭을 짓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할 수 있는 여행
- 과거 뿐 아니라, 현재로 이어질 수 있는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되는 여행

잊혀지기 쉬운 그냥 말뿐인 목표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그랜드 투어 준비를 위한 핵심가치 3가지"를 정해봤습니다.

1. 아저씨가 되지 말자(몸도 마음도 생각도)
2. 더 깊고 넓은 지식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자
3. 딸아이와 더 친해지자(그랜드 투어를 가게될 그날까지 계속 더 친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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