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0/29 16:53:03
Name   王天君
Subject   [무스포] 에덴: 로스트 인 뮤직


태초에 낙원이 있었다. 생명은 쾌락과 함께 했다. 손을 뻗고 발을 내딛는 곳에 풍요가 있었다. 헐벗은 몸은 추위도 배고픔도 모른채 언제나 채워진 것들로 시간을 만끽했다. 그러다가 쫓겨났다. 행복과 고통, 만족과 결핍의 두 조각으로 삶은 나누어졌고 그제서야 상태는 의미가 되어 멈춰있던 생명에게 길을 열었다. 살아있던 인간은 살아나가기 시작했다. 걷고, 뛰고, 이제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구하려 부지런히 고개를 돌리고 그러다가 비틀거리며 헤매고, 채워지지 않는 육체를 이끌다 텅텅 비어서는 다시 움직이지 않고. 그 어디를 향하건 이정표는 등 뒤의 그 곳과는 반대를 가리켰고 인간은 계속해서 멀어져만 갔다.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것은 벌이 아니었다. 늘 그 곳을 그리고 찾으려 하는 작은 희망으로 벌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희망에 취해있으면서 벌이 벌인줄도 모르고 계속 헤맸다. 도달한 어딘가에서 사방이 막힌 절망만을 보고 그제서야 벌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망각으로 지나쳐온 모든 순간이 와르르 쏟아지고 추방된 자는 그 가혹함을 한꺼번에 느꼈다. 이렇게 완성된 벌은 멈추지 않는 생 앞에서 다시 한번 죗값을 물었다. 일렁이는 저 곳이 보이지 않냐고. 꺾인 의지보다 각인된 소망을 쓰다듬으며 인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리석은 인간은 또 한번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고 계속해서 맴돈다. 더는 머무를 수 없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을 떠날 때처럼.  

행복은 늘 순간이고 나머지는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이 채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전부를 행복으로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행복하지 않은 순간은 참지 않았다. 그래서 행복을 찾아 떠났고 다른 이들과 만나 함께 행복해했다. 오로지 즐겁고 신나게, 그리고 열심히. 반짝이는 밤을 음악으로 두드렸다. 행복했고, 다른 이들 역시도 행복하다고 답해주었다. 음이 지직거리고 노래가 끊길 때도 있었다. 그래도 행복한 밤은 계속되었다. One more time - 멈추고 싶지 않은 순간을 그렇게 이어나갔고 어제와 다른 얼굴들, 어제와 마찬가지인 얼굴들이 눈을 감고, 웃거나 소리지르며 펄쩍펄쩍 뛰었다. 누군가에게 고요하기만 한 밤은 놓쳤던 것들을 들려주었다. 다 같이 흥분을 넘기고 환희를 들이키며 나른하게 속삭였다. 행복하다, 행복할 거야 라고.

빨갛고 파랗고 노란 조명 아래에서 실컷 행복을 맛보고 나면 침대 위로 아침이 들이닥친다. 몽롱한 육체를 다시 적응시키며 아침을 먹고 담배를 피우며 밤을 기다린다. 이제는 만성이 되버린 채 익숙하게 맞이하는 순간들. 음악은 이전처럼 턴 테이블 위에서 빙글빙글 돌며 밤을 움직인다. 유명한 목소리가 외치고 손을 들어올린 이들에게 고조된 비트로 화답한다. 옛날처럼 설레이진 않아도, 행복한 건 분명하다. 음악이 있고, 연인이 있고, 친구가 있고, 밤과 음악을 나눌 많은 이들이 있으니까.

스쳐간 것들이 아플 때도 있다. 울었다. 쓰라렸다. 그래도 행복하긴 하다. 행복은 늘 밤과 음악에서 기다리고 있다. 시커먼 바깥으로부터 어슴푸레한 빛 속으로 뛰쳐들어온 이들과 호흡을 맞춘다. 그들은 행복해한다. 노래는 사랑과 매혹을 싣고 모두에게 뻗어나간다. 아침으로 돌아와 길어진 낮을 보내고나면 다시 밤이 와있다.

오늘도 내일도 행복하기 위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밤과 음악에서 행복을 찾자. 늘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러면, 행복할 수 있다.


  



1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Toby 15/06/19 31678 7
    15047 일상/생각탐라에 쓰려니 길다고 쫓겨난 이야기 4 밀크티 24/11/16 687 0
    15046 정치이재명 1심 판결 - 법원에서 배포한 설명자료 (11page) 22 매뉴물있뉴 24/11/15 1251 1
    15045 일상/생각'우크라' 표기에 대한 생각. 32 arch 24/11/15 870 5
    15044 일상/생각부여성 사람들은 만나면 인사를 합니다. 6 nothing 24/11/14 816 20
    15043 일상/생각수다를 떨자 2 골든햄스 24/11/13 408 10
    15042 역사역사적으로 사용됐던 금화 11종의 현재 가치 추산 2 허락해주세요 24/11/13 490 7
    15041 영화미국이 말아먹지만 멋있는 영화 vs 말아먹으면서 멋도 없는 영화 8 열한시육분 24/11/13 618 3
    15040 오프모임11/27(수) 성북 벙개 31 dolmusa 24/11/13 667 3
    15039 요리/음식칵테일 덕후 사이트 홍보합니다~ 2탄 8 Iowa 24/11/12 365 7
    15022 기타[긴급이벤트] 티타임 따봉 대작전 (종료) 19 dolmusa 24/11/05 1038 31
    15038 정치머스크가 트럼프로 돌아서게 된 계기로 불리는 사건 4 Leeka 24/11/11 1026 0
    15037 일상/생각와이프와 함께 수락산 다녀왔습니다. 10 큐리스 24/11/11 510 4
    15036 일상/생각과자를 주세요 10 하마소 24/11/11 546 18
    15035 일상/생각화 덜 내게 된 방법 똘빼 24/11/11 400 14
    15034 일상/생각긴장을 어떻게 푸나 3 골든햄스 24/11/09 604 10
    15033 일상/생각잡상 : 21세기 자본, 트럼프, 자산 격차 37 당근매니아 24/11/09 1713 42
    15032 IT/컴퓨터추천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나 13 토비 24/11/08 695 35
    15030 정치 2기 트럼프 행정부를 두려워하며 13 코리몬테아스 24/11/07 1462 28
    15029 오프모임[9인 목표 / 현재 4인] 23일 토요일 14시 보드게임 모임 하실 분? 14 트린 24/11/07 512 1
    15028 도서/문학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 오직 문학만이 줄 수 있는 위로 8 다람쥐 24/11/07 737 31
    15027 일상/생각그냥 법 공부가 힘든 이야기 2 골든햄스 24/11/06 681 16
    15025 생활체육기계인간 2024년 회고 - 몸부림과 그 결과 5 Omnic 24/11/05 565 31
    15024 정치2024 미국 대선 불판 57 코리몬테아스 24/11/05 2233 6
    15023 일상/생각마흔 직전에 발견한 인생의 평온 10 아재 24/11/05 799 24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