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03/14 01:41:46
Name   골든햄스
File #1   2C64EFB3_6977_4D84_933A_8211D603934F.jpeg (283.5 KB), Download : 2
Subject   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오늘 서강 올빼미를 둘러보다가 삶의 의미를 묻는 글을 보게 됐습니다. 사실 어릴 때는 삶의 의미에 대해 간절했고, 고민하게 되는 시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그만큼 죽음이 두렵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누..구나 이런 느낌 어릴 때 느끼지요??)

이제는 어느 순간 삶은 다 당연히 의미 있으며, 죽음이 인간에게 있는 건 축복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또 제가 고민하는 주제는 있지만 두 주제는 다행히 마감이 됐는데, 문제는 이것이 그리 깔끔히 두부 자르듯 보여줄 수 있는 어떤 논리가 있는 건 아니란 겁니다.

제가 어느 순간 삶이 의미 있다 느낀 건, 예를 들면 이런 건데, 어떤 부부가 오순도순 오십 년을 같이 살고 오래 살던 집에서 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쳤을 때 꼭 기쁜 시간만이 의미있게 기억에 남진 않을 겁니다. 싸웠던 순간, 처절했던 순간, 그럼에도 서로에게 돌아왔던 순간, 자그마치 오십 년을 서로 알았어도 아직 몰랐던 비밀들과 서로의 오래된 오해를 알게 되는 그 순간들. 어떤 것이 찾아와 고통 또는 쾌감을, 혹은 간지럽기만 한 무감각을 주다가 결국은 붓질 같은 흔적을 남기고 가는 것들. 그것들이 하나하나 모여 쌓인 캔버스. 보통 우리가 노부부가 아름답다고 하는 데는 이런 이유들이 있는 것이겠죠.

그와 마찬가지로 모파상의 오랜 단편 <목걸이>에서처럼 인간은 서툰 오해 하나로 수십 년을 낭비하기도 하는데, 그것 또한 어떻게 보면 어떤 의미인 것입니다. 혹은 위의 노부부의 이야기와 반대되는 느낌과도 같은 실패한 결혼 생활들이나 기이한 결혼 생활들도, 그토록 고통스럽게도 부여잡고 있던 아귀힘이 놀랍구나 하고 생각하면 그 역시 인간 역사의 큰 주름들입니다.

인간의 삶만큼 부조리한 것도 드물고, 그렇기에 그와중의 모든 희망과 악행과 죽음과 추구와… 이 모든 것들이 때때로 놀랍게 느껴지는 겁니다.

더욱이 의미있는 삶을 바란다면 모 미국 대학의 가르침마냥 우리는 사회적 롤모델을 하나 정해 따라할 수도 있죠. 사실 대부분의 실천은 용기의 문제입니다!

세상은 불합리와 싸울 대상으로 가득하니, 그런 것과 싸우는 데서 의미를 찾자면 끝도 없으니 정의의 용사 놀이를 하기도 좋고.

반대로 나쁘게 놀 방법도 끝도 없어서 악당 놀이를 하기도 좋습니다.

아니면 소소하게 오늘 얼마 이득 봤다. 라임 타르트를 먹었다. 매일 명상을 했다. 이런 것들로 삶을 사는 루틴 중심의 삶이 요즘 유행하기도 하고 썩 건강해 보이기도 합니다.

보다 게으른 제가 찾은 건 순간들인데, 저는 매일 전에는 몰랐던 순간을 하나는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감각이, 새로운 해석이, 새로운 조우와 만남이 반드시 내일의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전에는 어긋났던 애인이나 친구와의 일이 새로운 시각으로 보일 때, ‘아 나도 어렸고 그쪽도 어렸구나.’ 하고 문득 깨달음이 느껴질 때, ‘그쪽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구나.’ 싶을 때 이상하게 삶이 느껴집니다.

문득 고전 문학의 한 페이지가 가슴에 사무칠 때. 전에는 몰랐던 스쳐갔던 한 사람의 진심이 느껴질 때…

새로운 분야의 책을 펼쳐놓고 전혀 몰랐던 단어들을 배우면 관련 뉴스들이 들리기 시작하고 전혀 몰랐던 온갖 협회며 전문가며 시장의 존재도 알게 되죠. 그럴 때마다 내가 모르는 세상의 크기가 얼마나 클까 생각합니다.

가끔은 괴짜들이 보고 싶어 인터넷을 한참 떠돌아다니기도 합니다. 제 악취미 중 하나가 서양의 온갖 기묘한 권리운동단체 구경하기입니다. 끝도 없어요.

이 과정에서 어느 순간부터 삶의 의미에 대한 생각은 놓은 거 같습니다.

좌절도 영광만큼이나 어떤 우주적 동력이구나, 라고 느낀 순간 특히..

하지만 역시 10대-20대 초중반에는 삶의 의미를 한껏 고민해야 청춘이지 않을까, 그게 괴롭겠지만 삶을 펼쳐나가는 힘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래도 이전부터 늘, 전 어릴 때가 힘들었어서 힘든 청춘들을 위해 글을 남겨놔야겠다 라고 맘 먹었기에 하나 둘 빵쪼가리로 탈출로를 안내하듯 글을 써놓으려고 합니다.

영원과 같은 찰나를 살면 된다고, 제 생물심리 지도교수님께선 은퇴하며 말씀해주셨습니다. 부끄러운 글이고 또 훗날 후회하겠지만…;; 저보다 지혜로울 저의 인생 후배들은 여러 글을 취합해주시길.



17
  • 영원과 같은 찰나를 위하여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583 정치총선 결과 맞추기 한번 해볼까요? 52 괄하이드 24/04/07 1563 0
14581 정치MBC 여론M 최종 버전 14 당근매니아 24/04/07 1970 2
14580 사회의대 증원과 사회보험, 지대에 대하여...(펌) 42 cummings 24/04/04 5169 37
14579 음악내가 락밴드 형태로 구현하고 싶던 걸그룹 노래들 18 *alchemist* 24/04/04 734 4
14577 육아/가정우리는 아이를 욕망할 수 있을까 22 하마소 24/04/03 1075 19
14576 문화/예술내가 바로 마법소녀의 목소리 - 성우로 보는 마법소녀 서포트벡터 24/04/03 405 6
14575 일상/생각육아의 어려움 8 풀잎 24/04/03 687 12
14574 일상/생각재충전이란 무엇인가 5 kaestro 24/04/03 545 5
14573 일상/생각아들놈이 핸드폰 액정을 깨먹었어요. 8 큐리스 24/04/02 784 1
14572 일상/생각처음간 동네 크린토피아 1 큐리스 24/04/02 594 0
14571 일상/생각감사의 글 44 소요 24/04/02 999 74
14570 철학/종교토비와 함께한 월요일 [1편] 7 saint 24/04/01 665 0
14569 정치선거공보 정독하기 1 당근매니아 24/04/01 525 6
14567 오프모임아이디 바꾸려고 만드는 벙(펑) 16 비오는압구정 24/04/01 640 1
14566 문화/예술1분기 애니메이션 후기 - 아쉽지만 분발했다 12 kaestro 24/03/30 599 2
14565 도서/문학양승훈,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서평. 5 카르스 24/03/30 845 12
14564 사회UN 세계행복보고서 2024가 말하는, 한국과 동북아에 대한 의외의 이야기 14 카르스 24/03/26 1515 7
14563 음악[팝송] 맥스 새 앨범 "LOVE IN STEREO" 2 김치찌개 24/03/26 319 1
14560 일상/생각2년차 사원입니다 9 공대왜간공대 24/03/25 1329 10
14559 음악[팝송] 피더 엘리아스 새 앨범 "Youth & Family" 김치찌개 24/03/24 260 1
14558 오프모임이승탈출 넘버원 3회차 12 치킨마요 24/03/24 901 0
14557 일상/생각인지행동치료와 느린 자살 8 골든햄스 24/03/24 1300 8
14556 요리/음식까눌레 만드는 이야기 10 나루 24/03/23 737 6
14555 오프모임[아주급한벙]신촌 홍곱창or정통집 오늘 19:00 34 24/03/23 1114 2
14554 일상/생각아들이 안경을 부러뜨렸다. 8 whenyouinRome... 24/03/23 927 2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