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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5/11/04 13:18:23 |
Name | 이젠늙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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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 배아파서 응급실간 이야기 in Calgary, Alberta, Canada |
저는 철근을 잘근잘근 씹어 삼켜도 소화를 시키는 튼튼한 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벼운 소화불량은 그간 몇번 겪어봤지만 위궤양이니 속쓰림이니 과민성 증후군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데 어젯밤 11시 반에 복통에 잠이 깬 후 데구데굴 구르다가 결국 못참고 새벽 1시 반에 차를 몰아 응급실에 달려갔습니다. 이것저것 검사하고 약받고 결국 아침 10시 반쯤에 멀쩡한 모습으로 병원을 나왔습니다. 11시쯤 집에 도착하여 쓰러져서 죽은듯이 자다가 좀 전에 일어나 저녁먹고 지금 이걸 끄적이고 있습니다. 1:40 아내는 911을 부르자고 했습니다만 만류했습니다. 그럴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병원과 친한 사람이 아니다보니 살고 있는 도시에 어떤 병원이 있고 어디에 가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구글을 했습니다. 검색어는 'Calgary Emergency'. 오, 놀라워라, 알버타주 의료서비스 공식 사이트에서 갈 수 있는 응급실과 현재 평균 대기시간을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대기시간이 꽤 짧았던 병원은 집에서 좀 거리가 있기에 그 다음 짧은 대기시간을 가진 집근처의 병원으로 달렸습니다. 그 병원의 평균 대기시간에 2시간 20분 정도였습니다. 한적한 분위기의 응급실에 도착하니 역시 커다란 전광판에 대기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확인한 시간과 대동소이했습니다. 처음 만나야 할 사람은 간호사입니다. Triage Nurse라고 합니다. 환자의 상태를 보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간호사 입니다. 대충 상황을 설명합니다. '배 무척 아픔. 저녁에 프라이드치킨이랑 아이스티 먹었음.' '언제부터? 어느부위? 날카롭게 혹은 찌르듯이 혹은 타는듯이?' '지난밤 11시 반. 자다가 아파서 깼음. 상복부가 날카롭게 빼고 아파.' '아픔이 1에서 10만큼 중에 어느정도 아프니?' '8에서 9.' '어지러움? 토함? 설사?' '아니' '과거력은? 병력은? 알러지는? 먹고있는 약은? 패밀리닥터는?' '모두 없음' '의료보험 카드는?' '있음' 그리고서 바이탈 계측을 합니다. 혈압이 150 중반대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높은 혈압을 가진 적이 없었기에 제가 좀 놀란 표정을 했습니다. '너 지금 아파서 그래. 이제 접수로 가면 돼.' 다음에 접수로 갑니다. '의료보험 카드, 이름, 전화번호, 주소 줘.' '여기' '미혼? 동거? 결혼?' '결혼' '배우자 이름과 전화번호 줘' '여기. 얼마나 걸릴까?' '대략 두 시간 정도. 그런데 급한 환자가 들어오면 늘어날 수 있음.' 2:10 그리곤 아내와 같이 대기실에 죽치고 앉았습니다. 앞으로 두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저절로 나아지길 희망하며... 2:50 갑자기 제 이름이 크게 호출됩니다. 예상했던것보다 무척 이른 시간입니다. 아내는 대기실에 남고 저만 응급실로 들어갑니다. 응급실 내부는 꽤 큰것 같은데 이리저리 미로처럼 구획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정된 침대에 환자복이 놓여있습니다. 근처의 하품하며 모니터를 지켜보던 남자간호사에 물어봤습니다. '나 이거 입어야함?' '응. 원한다면 바지는 벗지 마' 환자복은 뒤면이 뻥 터진 원피스입니다. 생소하군요.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기대서 끙끙거리고 있었더니 아까 그 남자간호사가 차트를 들고 옵니다. '안녕. 난 앙드레야. 어디가 아프니?' '배가 무척 아파. 내 배가 나를 죽이고 있어.' '어떻게 아프니?' '무딘 칼이 내 배를 찌르는것 같아.' '어떻게 알았니?' '저녁먹고 자다가 지난밤 11시반에...' '아파서 깼구나, 내친구.' '응.' '그래 걱정하지 말고, 내친구.' 다시 바이탈을 체크합니다. 혈압은 159에 이르렀습니다. 제 혈관을 개방합니다. 피를 세 병 뽑고 소변을 받아오게 합니다. 잠시 어떤 여자분이 오더니 심전도 검사를 하고 갑니다. 이제 검사 결과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중간중간 계속 제 바이탈을 잽니다. 통증은 계속됩니다만 혈압은 130 중간대까지 떨어집니다. 5:00 의사가 옵니다. 또 같은 내용을 물어봅니다. 어떻게 언제부터 아프냐 등등... 그리고... '일단 진통제를 줄건데 주사와 입으로 먹는것중에 뭘로 할래?' '약으로...' '??? 그래 약을 줄건데 주사가 좋아 입으로 먹는게 좋아?' '아, 입으로' '니가 아픈 이유는 췌장 아니면 담낭같아. 초음파 검사를 할꺼야.' '아, 나 담낭결석있어.' '그건 어떻게 알았니?' '한국에서 초음파한적 있어.' '언제?' '올해 봄에.' '알았어. 근데 초음파 검사실은 7시부터 시작해. 너는 집에 갔다 오거나 여기서 계속 기다릴수 있어. 어떻해 할래?' '기다릴게' 좀 있다가 앙드레가 파란 알약 두 알과 물을 가져다 줍니다. 약을 먹자 거짓말같이 통증이 사라집니다. 잠시후에 바이탈 사인을 재니 혈압이 정확히 120/80이 나옵니다. '이야, 정확이 텍스트북에 나오는 수치다. 내 옛날 선생이 보면 정말 좋아하겠다. 하하하' 앙드레가 너스레를 떨고 갑니다. 7:50 이제 아침입니다. 앙드레는 집에 가고 젊은 여자 간호사가 이제 저의 바이탈을 재며 케어해 줍니다. 밤시간대의 비교적 젊은 의사들은 사라지고 이제 희끗희끗한 의사들이 이곳저곳 바쁘게 움직입니다. 갑자기 스텝 한분이 휠체어를 가져와선 제 이름을 부릅니다. 휠체어에 실려서 응급실을 벗어나 복도를 지나지나서 초음파실에 도착합니다. 초음파 검사를 합니다. 8:20 다시 응급실로 실려옵니다. 복통도 가시고 충분히 걸을 수 있는데 못걷게 합니다. 10:00 키다리 의사가 옵니다. '안녕. 내이름은 ... 야. 검사 결과, 비록 담낭결석이 관을 막고 있는것처럼 보이지만 너의 담낭은 붓지 안았어. 담낭관도 괜찮아. 또 통증이 오는걸 대비해서 약을 좀 줄게. 아프면 먹어. 프라이드치킨같은건 이젠 피해. 술도 마시지 마. 만약에 아프면서 동시에 열이 난다면 오늘 새벽처럼 응급실로 급히 와야해. 너는 패밀리닥터를 지정해야해. 너의 패밀리닥터를 위해서 오늘 검사 결과를 복사해 줄게. 추가 약처방 등 이후의 경과는 패밀리닥터와 상담해야해. 그럼 안녕.' 그리고 잠시 기다린 후 제 혈관에 꼽아놓은 주사바늘을 제거한 후 저의 응급실 생활을 끝났습니다. 최종적으로 제 손엔 아편성 진통제 8개와 그 약에 대한 주의사항 3페이지, 그리고 미래의 패밀리닥터를 위한 제 검사결과지가 들려졌습니다. 결과지 결론은 통증이 담낭에서 비롯된것 같지는 않다. 췌장이 잘 보이지는 않지만 꽤 부어있는것 같으니 CT scan이 고려된다... 라는것 같습니다. 이게 오늘 새벽 1:40 부터 아침 10:00 까지 있었던 일입니다. 총 비용은 24시간 주차비 $14.?? 였습니다. 소감 1. 이래저래 말 많은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이지만 죽을것 같을때 그냥 죽게 내버려둘것 같지는 않다. 2. 검사 결과는 췌장 CT를 하라는것 같은데 의사는 아무 말이 없네? 패밀리 닥터랑 얘기해야 하나? 3. 어휴, 아픈것 진짜 싫으다. 또 아프면 어쩌지? 4. 이걸 의료인 친목사이트인 홍차넷에 올리면 통증의 근원적 제거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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