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03/23 00:16:20
Name   whenyouinRome...
Subject   아들이 안경을 부러뜨렸다.
어제의 이야기다.

와이프랑 저녁에 술 한잔 하며 이야기 하다 학교에서 아들이 안경을 부러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와 놀다가 부러졌다나...

아들이 삼개월전에 새로 한 안경이라 속상해 했다고 한다.

그런가보다 했다..

이어지는 말에서 아들이 그 친구에게 부모님께 이야기 드리라고 했다고 한다.

그 친구가 부모님께 이야기를 드렸나보다..

집에 돌아왔는데 그 친구 어머니께 전화가 와서 다독이고 미안하다 사과를 하였다 한다.

그 전화를 듣던 아내가 이어 받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였다 한다. 친구 너무 혼내지 말라고도 전했다고...

그러고 나서 또 얼마 안지나 그 아버지께도 내 아들에게 전화가 왔단다..

이러저러하다 들었는데 괜찮니 놀라진 않았니 안경테 부러진건 어떻게 하니 등등.

그 이야기를 들은 나의 첫 마디는 "고맙네. 안경테는 그냥 여보가 해. 뭐 나눠서 하자 니가 내라 하지말고"였다.

아내도 아니나 다를까 그 전화를 받으니 마음이 녹아서 안경테 걱정 하지 마시라 했다고 한다.

그래도 극구 반이라도 내겠다 하셔서 그러지 말고 그 돈으로 친구랑 아들이랑 맛있는거 사먹고 같이 놀도록

용돈으로 주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단다.

그래도 미안하신지 토요일에 같이 점심 먹자고 초대해서 내일은 거기 놀러 간단다...

서로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어서 너무 좋았다.

학교에서 안경테가 부러진 적은 몇 번 있지만 이렇게 당일 바로 어머니에게 연락이 와서 사과를 하고 그도 모자라 아버지까지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그 동안 우리가 원하던 건 큰게 아니다. 전화로 괜찮냐고 물어보고 위로를 전하는 것, 아들의 실수를 사과하는 것.(물론 우리도 사과를 하고 안부를 묻기를 원한다. 하지만 피해자가 먼저 전화를 하는 경우 대부분 부담스러워 한다. 보상해달라는 이야기를 할까봐서인가.....)

그런게 없어서 기다리다 먼저 연락하면 어쩔수 없이 안경테 비용 문제가 나온다.. 난 이런 경우 양보하지 않는다.

보험이 있으면 보험으로 처리해주시고 안되면 반이라도 지불해달라 요청한다.

결국 서로 서먹하게 통화가 마무리 되고 비용을 지불받는 경우도 또 연락없이 묵묵부답인 경우도 있었다...

이번 경우처럼 이렇게 먼저 전화하고 위로를 하는 경우를 정말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

너무 와닿는 말이다..

난 아내로부터 그런 전화가 친구 어머니께 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마음이 녹아버렸다.

이후 친구의 아버지가 또 전화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감탄했다.

이렇게 예의있고 신사적이며 괜찮다는데도 표현하려는 모습을 보니 이 친구랑은 아들이 더 친해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에 담임선생님께도 연락이 왔다고 한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어떻게 처리했고 어떤 방법으로 양 학부모에게 연락을 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며 연락처 공유가 가능할지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으로서 대처가 너무 깔끔했고 아이들을 신경써주는 모습이 보여 기분이 좋았다...

하루가 지난 오늘 아들이 안경테를 새로 맞췄다..

그걸 보니 어제의 일이 다시 기억나서 아내와 몇 마디 주고받았다.

심지어 오늘 나는 중요한 회의에서 미안하다는 한 마디의 사과가 하기 싫어서 자존심을 부리며 싸우던 60~70대 어른들의 민낯을 보고 오는 중이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이렇게 힘든 것일까... 작은 사과 한마디면 큰 사고도 막을 수 있는데... 난 그렇다면 100번이라도 사과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참 어렵다'

하는 생각을 하다 집에 와서 이런 이야길 들으니 더 확 와닿는다....

모르겠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사과에 인색해지는지... 그 말이 왜 이렇게 힘든 것인지....

하지만 정말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는지 너무 잘 알지 않은가....

아들이 안경을 또 부러뜨렸고 (안경테 하느라 또 돈을 써야했고) 회의가 힘들어 기분이 안 좋았지만

이런 기분 좋은 이야기 덕에 기분이 풀렸다.

이제 잠자리 들기전에 생각을 정리해본다...

그런거 같다..

미안한 일에 미안하다는 말을 인색하게 사용해서는 안된다.

고마운 일에 고맙다는 말을 인색하게 사용해서도 안된다.

마음의 감정은 표현해야 상대가 알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아들 친구의 부모가 표현해준 그러한 용기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기분 좋은 밤이다..



27
  • 마음 따뜻해지는 글 감사합니다
  • 훈훈해집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633 일상/생각그래서 고속도로 1차로는 언제 쓰는게 맞는건데? 27 + 에디아빠 24/04/30 477 0
14632 일상/생각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비사금 24/04/29 624 0
14629 일상/생각방문을 열자, 가족이 되었습니다 9 kaestro 24/04/29 520 9
14624 일상/생각5년 전, 그리고 5년 뒤의 나를 상상하며 6 kaestro 24/04/26 522 3
14619 일상/생각나는 다마고치를 가지고 욕조로 들어갔다. 8 자몽에이슬 24/04/24 654 17
14618 일상/생각저는 외로워서 퇴사를 했고, 이젠 아닙니다 18 kaestro 24/04/24 1194 17
14604 일상/생각개인위키 제작기 6 와짱 24/04/17 844 12
14599 일상/생각가챠 등 확률성 아이템이 있는 도박성 게임에 안 지는 방법 20 골든햄스 24/04/12 1138 0
14589 일상/생각지난 3개월을 돌아보며 - 물방울이 흐르고 모여서 시냇물을 만든 이야기 6 kaestro 24/04/09 421 3
14588 일상/생각다정한 봄의 새싹들처럼 1 골든햄스 24/04/09 321 8
14587 일상/생각탕후루 기사를 읽다가, 4 풀잎 24/04/09 460 0
14575 일상/생각육아의 어려움 8 풀잎 24/04/03 687 12
14574 일상/생각재충전이란 무엇인가 5 kaestro 24/04/03 545 5
14573 일상/생각아들놈이 핸드폰 액정을 깨먹었어요. 8 큐리스 24/04/02 784 1
14572 일상/생각처음간 동네 크린토피아 1 큐리스 24/04/02 594 0
14571 일상/생각감사의 글 44 소요 24/04/02 999 74
14560 일상/생각2년차 사원입니다 9 공대왜간공대 24/03/25 1329 10
14557 일상/생각인지행동치료와 느린 자살 8 골든햄스 24/03/24 1300 8
14554 일상/생각아들이 안경을 부러뜨렸다. 8 whenyouinRome... 24/03/23 926 27
14550 일상/생각와이프랑 덕담 중입니다. 3 큐리스 24/03/21 862 4
14539 일상/생각22살. 정신병 수급자 고졸. 9 경주촌박이 24/03/15 1383 1
14537 일상/생각건망증,그리고 와이프 1 큐리스 24/03/15 722 1
14535 일상/생각사람 안변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부부생활을 통해 조금은 변합니다~~ 5 큐리스 24/03/14 947 1
14532 일상/생각groot 님 저격 4 nm막장 24/03/14 943 10
14531 일상/생각삶의 의미를 찾는 단계를 어떻게 벗어났냐면 8 골든햄스 24/03/14 959 17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