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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4/11/06 21:03:56수정됨 |
Name | 골든햄스 |
File #1 | IMG_6503.jpeg (829.1 KB), Download : 0 |
Subject | 그냥 법 공부가 힘든 이야기 |
원래 나의 꿈은 작가였다. 이유는 왕따 가정폭력 피해자로 지낼 때 책만이 날 위로해줬기 때문이었다. 그중 특히 아동 청소년 소설들을 좋아해서 소외된 청소년들을 많이 다루신 작가님을 좋아했다 웬걸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그분이 상상마당에서 수업을 하시는 거 아닌가 없는 수업료는 친구에게 빌리기까지 해서(!) 자기소개서, 글 과제 제출 및 검사, 면접까지 나름 빡센 절차를 거쳐 그 수업에 들어갔었다. 수업은 생각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현자일줄 예상한 선생님은 무언가 힘이 없어보이셨고, 이미 몇회때 그 수업에서 자리를 잡고 무리를 형성한 아주머니들이 기가 쎘는데 왠지 나를 싫어하는 아주머니가 글을 괜히 흠을 잡았고 ‘그렇게 구두 신고 오니 내 옛날 생각이 난다’고 티나게 젊음을 질투하기도 했다. 글에 대해 피드백을 주는 건 좋지만, 비웃음을 못 참으며 “아니 그런 시를 카톡 프사로 해둔 분이 왜 그러신대…” 라고 말한 건 어린 내 마음에 좋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유독 젊어서 눈에 띄었고, 어쩌면 예민한 아주머니들의 마음에 파란을 일으켰는지도 모르겠다. 문단의 영향을 항상 직접적으로 받는 작가님은 이제 스스로에 대한 글쓰기를 장려하고 있다며 자신의 인생에 대해 써보라 했지만, 내가 소중했던 친한 삼촌과의 글을 쓴 것에 대해 아줌마들은 “징그럽다” “스토커 같다” 라며 정상 가족 외의 이야기에 대해 반감을 드러냈다. 근데 이 모든 걸 보는 작가님은 전혀 눈치를 못 챈듯이, “이렇게 나이차가 나는데 잘 어울리는 게 보기 좋다” 같은 말씀만 하셨다. 모처럼 옆자리에 앉게 된 회식 자리에서 나는 글에 대해 느낀 내 근본적 회의감 (글도 어떤 법칙을 따른다는 점 등) 에 대해 얘기했지만 작가님은 크게 반응치 않았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나쁜 선생님에 대해 대항하는 이야기를 쓴 동화가 실은 자기의 아들이 반대로 아부해서 잘 넘어간 위기를 갖고 반대 쪽으로 상상해서 써본 이야기란 걸 알게 됐다. 난 그것이 왜 그리 내게 상처가 됐는지 잘 모르겠다. 어떤 독자 부모가 자기 애가 그걸 따라해 학교가 야단이 났다고 편지를 보냈다며 깔깔 웃으시는데, 기분이 좋지 못했다. 학창시절 나는 누가 왕따를 당하면 그냥 지켜보지 못하고 지켜줬는데, 그건 내가 당시 중독됐던 2세대 판타지 소설의 영향이 컸다. 거기선 주인공들이 항상 정의롭고, 나서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사태는 악화됐고 작은 내 마음과 몸으로는 모든 뒷처리를 할 수 없었고 선생님들까지 유난이라고 날 싫어하곤 했다. 그 외에도 민주주의나 장애인 인권이나 수많은 글의 의제가 실은 ‘작가가 제일 안전하고 고결한 느낌이 들 때 쓴 글자들’이지, 실천의 영역에서는 다른 작용이 필요하단 걸 느끼던 찰나였다. 실천의 영역에서, 우리는 누구 한명이 우리 인사를 무시하기만 해도 그날 기분이 찝찝하지 않은가? 그런데 글은 그런 나약한 우리에게 영웅의 역할을 부과한다. 그런 고결한 기쁨을 작가들이 안전히 책상 위에서 누릴 수 있다는 게 나는 못내 얄미웠다. 나의 인생 얘기를 깔깔 비웃는 그들을 놔두고 문학 코스는 접었다. 보편적 인생을 살지 못해 가치관이 거친지 문단 수상도 낙마했다. 그 뒤로 한번 다시 야설로라도 글로 돈을 벌어보겠다고 시도했지만 홍차넷 분들이 아시듯 나는 실패했고,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때 마음가짐은 ‘글로 한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게 더 낫지’ 였다. 곧이어 글솜씨를 인정받아 법학 논문집을 만드는 학회에 들어갔다. 근데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법학 논증과 논문에는 그다지 논리가 없었다. 예로 들어 왜 미필적 고의는 실현 가능성을 ‘용인’하는 것이고 ‘감수’하는 건 아닌지에 대해서 아무런 국어학적인, 심리학적인, 데이터적인 뒤따름이 없이 그저 그런 것이다. 권위있는 몇몇 학자들이 주장했다는 주석이 달려있긴 하지만 그들도 그냥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쓴 것 뿐이다. 결과적 가중범이 고의범보다 형량이 같거나 높으면 결과적 가중범이 성립한다고 적으면 뭔가 대단한 논증을 한 거 같지만, 사실 그냥 어떤 논리를 만들어 내서 자기 혼자 논증을 한 거다. 물론 내가 법을 매우 못하는 사람인 것이고, 법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게 보이는 것 같지만 생물심리를 전공했던 나로선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게 왜 한정위헌인데?” “관습헌법이 뭔데?” 같이 내가 수업을 듣다 질문이 생겨 주위에 물으면 다들 흰 가면 같은 얼굴로 침묵했다. 그런 쪽으로 가면 안 되는 모양이었다. 공부를 하고 이것저것 이야기를 듣다보니 과연, 이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뉴스에서는 법원 관련 꼭지가 나올 때마다 멋드러진 법원 건물을 보여주지만, 사실 중요한 건 그 밑에서 갈리고 있는 젊은 친구들 몇명의 순간적인 기분과 마음이었다. 어쩌면 그들의 여론이라 해도 좋고. 무엇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법의 영역인 게 절대 아니었다. 이미 이뤄지고 있는 세상사를 정당화하는 쪽에 가깝게 느껴졌다. 설사 변화가 이뤄진다 해도 그것은 대부분 비슷하게 동질적으로 자란 법조인 집단이 어떤 쪽으로 문득 말머리를 향하게 됐을 때 일어나는 일이지 나 같이 늘 ‘눈에 띄게 다르다’ 소리를 듣던 아웃사이더랑은 상관 없는 일이었다. 학부 때 법학을 좋아했지만 그건 실정법과 전혀 달랐다. 요건 하나하나를 섬세히 따져주시던 명강의로 유명한 교수님의 수업과 달리, 언제나 빨리 뜀뛰듯 수십 p를 외워야했다. 결국 애매하게 애매한 사람으로, 나는 남아서 변호사시험을 보고 있다. 어쩌면 대학 입학 전 웹툰 작가가 될 뻔 했던 것, 쇼핑몰이나 강의를 할 때 광고 콘텐츠를 잘 만들던 걸 고려해서 진로를 바꿔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하면서. 간혹 힘든 사람들이 ‘우릴 위해서 법조인이 되어주세요’ 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게 법조인의 역할이 아니란 걸 알 정도는 공부를 한 거 같다. 그렇다 해도 내 지난 삶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적어도 나는 죽을병에서 살아났고 가족을 찾아낸 사람이니까. 헤매이는 모든 자가 길 잃은 건 아닐 지어니. -상담에서 글쓰는 게 제게 도움이 된 거 같다고 글을 많이 써보라 하셔서 아무 주제로든 글을 많이 써보겠습니다 ㅎㅎ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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