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4/10/04 23:02:41
Name   골든햄스
File #1   IMG_6427.jpeg (157.6 KB), Download : 23
Subject   이득을 줍는 사람들


‘사람이 아니라 상품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에게서 뛰쳐나와, 직접 살림을 꾸리며 원룸에서 허름하게 삶을 살 때였다. 로스쿨에서 나는 모종의 충격을 받았는지 작은 수첩을 구해 10개의 챕터를 나누고 각각의 챕터에 이름을 붙이고 일기 겸 일종의 잠언집 같은 것을 썼는데, 그중 한 챕터에 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한 페이지에 나는 10번도 넘게 그렇게 썼다.
뒤늦게 자본주의적 삶에 들어오게 되면서 받은 충격을 꾹꾹 응축해서 적어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세네카는 말했다.
우정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누구도 그것이 좋단 걸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같은 이유로 좋은 식사, 좋은 장소, 좋은 이벤트에 간 것을 매번 자랑하며 각자의 아비투스를 뽐내는 사회가 됐다.
그 와중에 선현들이 쌓아올린 글과 그것이 표본이 된 교과서는 일종의 귀족 예의 교육 같은 역할을 하게 되어버린 모양이다.
사람들의 말씨는 그 어느 때보다 친절한데 (너 T야?라는 말이 유행어가 된 거처럼) 그 안에 담긴 속셈은 그 어느 때보다 쌀쌀맞다. 가끔은 예전 귀족들처럼 서울 사람들이 죄다 살고 있단 느낌도 든다.

그 와중 내가 학대를 당했건, 말했건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비투스는 내가 이해하기로 거의 판타지 소설 속의 마나와 같은 신비한 현상이다. 우리는 수백, 수천 개의 아비투스로 서로 각축전을 벌이는데 게임 판타지가 흥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상태창” 하면 모바일 토스 앱이 딱 뜨고 당신의 재산세 납부 상황이 등기부가 또 당신의 소환수의 수준을 알려주지 않던가.

그럼에도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나아야 해서. 그동안 현실도 뭣도 모른 채 계속 해서 내 상처만을 탐구했나보다.
그래도 내 이야기가 피곤하다고 상처를 준 친구에게도 축의금을 보내고, 결혼 축하 메세지를 보낸다. 건강하게 잘 살길 바란다고 전혀 상처 받지 않은 척 인스타에 댓글도 썼다.

아직도 세네카가 말한 것 같은 우정을 꿈꾸고, 맥베스처럼 살고 싶지 않은 것은 나의 바보 같은 교과서에 대한 우직함이다. 나의 부모가 되어주고 형제, 자매, 피와 살이 되어준 글자들에 대한 코끝 찡한 사랑이자 열정이다.

아직도 무언가‘다운’ 무언가, 이득 너머의 ‘무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은 모두에게 손해인 더러운 버림받은 소녀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방법은 내가 크게 되어 흘려버리는 수밖에 없다. 오늘도 작은 말 한마디로, 웃음 하나로, 단어들 몇개로 다른 사람들을 이삭 줍듯 주워버리는 사람들 앞에서 “주우려면 줍고 버리려면 버리시오” 하고 대자로 눕는 수밖에 없다.



에휴. 이런 걸 글이라고…



5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토비 15/06/19 35584 1
    16000 일상/생각우리 부부는 오래살거에요 ㅋㅋ 1 큐리스 26/02/04 655 6
    15999 여행갑자기 써보는 벳부 여행 후기 17 쉬군 26/02/03 571 8
    15998 일상/생각아파트와 빌라에서 아이 키우기 17 + 하얀 26/02/03 895 21
    15997 일상/생각소유의 종말: 구독 경제와 경험의 휘발성 2 사슴도치 26/02/02 674 16
    15996 오프모임참가하면 남친여친이 생겨 버리는 2월 7일 토요일 14시 사당 또는 이수 커피 모임 74 트린 26/02/02 1498 4
    15995 일상/생각팀장으로 보낸 첫달에 대한 소고 6 kaestro 26/02/01 699 6
    15994 일상/생각와이프란 무엇일까? 2 큐리스 26/01/31 682 10
    15993 영화영화 비평이란 무엇인가 - 랑시에르, 들뢰즈, 아도르노 3 줄리 26/01/31 469 5
    15992 IT/컴퓨터[리뷰] 코드를 읽지 않는 개발 시대의 서막: Moltbot(Clawdbot) 사용기 24 nm막장 26/01/31 807 1
    15991 일상/생각결혼준비부터 신혼여행까지 (3/청첩장 및 본식 전, 신혼여행) 5 danielbard 26/01/30 446 4
    15990 정치중국몽, 셰셰, 코스피, 그리고 슈카 15 meson 26/01/29 1197 7
    15989 IT/컴퓨터램 헤는 밤. 28 joel 26/01/29 876 27
    15988 문화/예술[사진]의 생명력, ‘안정’을 넘어 ‘긴장’으로 8 사슴도치 26/01/28 476 22
    15987 IT/컴퓨터문법 클리닉 만들었습니다. 7 큐리스 26/01/27 620 16
    15986 게임엔드필드 간단 감상 2 당근매니아 26/01/26 601 0
    15983 스포츠2026년 월드컵 우승국//대한민국 예상 순위(라운드) 맞추기 관련 글 6 Mandarin 26/01/26 392 0
    15982 오프모임2월 14일 신년회+설맞이 낮술모임 (마감 + 추가모집 있나?없나?) 18 Groot 26/01/26 765 3
    15981 정치이재명에게 실망(?)했습니다. 8 닭장군 26/01/25 1068 0
    15980 IT/컴퓨터타롯 감성의 스피킹 연습사이트를 만들었어요 ㅎㅎ 4 큐리스 26/01/25 476 0
    15979 정치민주당-조국당 합당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14 Picard 26/01/23 932 0
    15978 오프모임1/23 (금) 용산 또는 서울역 저녁 모임 8 kaestro 26/01/23 732 1
    15977 스포츠[MLB] 코디 벨린저 5년 162.5M 양키스행 김치찌개 26/01/22 367 0
    15976 정치한덕수 4천자 양형 사유 AI 시각화 11 명동의밤 26/01/21 1220 11
    15974 오프모임2월 7일 토요일 14시 사당 또는 이수 커피 모임 하실 분? 21 트린 26/01/20 934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