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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09 11:02:28
Name   化神
Subject   나는 무단횡단 하는 사람이 싫다.
정확하게는 무단횡단 하면서 차가 오는지 살펴보지 않고 갈 길 가는 사람이 싫다.

무단횡단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가 오지 않는 거리, 안전이 확보된 도로 위. 그것이 법이 정한 바를 어기는 것이기는 하나 뭐 자기가 하겠다면야 굳이 내가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차가 오는데도 무단횡단 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 화가 나서 미쳐버릴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과연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유유자적히 차도 위를 걸어가는 걸까. 좌우를 살피지도, 그렇다고 뛰어가지도 않는다.

설마 무슨 일 생기겠어? 차가 멈추겠지. 라고 생각하는걸까.

오늘도 시속 50km/h 이상 속력으로 중앙 차로를 질주하는 광역 버스를 두고 왠 아주머니가 무단횡단을 했다.

운전 기사가 경적을 울렸지만 쳐다보지도 않고 길을 건너갔다. 버스가 사람을 피해갔기에 별 일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주머니의 표정을 보았다.

웃더라.

나는 그 웃음이 너무 싫었다. 아무 일 안 생겼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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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6개월 전 이야기다.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을 일일이 신경쓰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왠지 그날은 어떤 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2, 3학년 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 키가 큰 건 아니었지만 제법 통통했다. 평소라면 흔히 스쳐지나가는 사람 중에 한 명일 테지만 왠지 거슬렸다. 그 아이는 손에 물건이 담긴 검은 비닐봉투를 오른손에 들고, 왼손으로는 핸드폰을 하면서 길을 건너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무단횡단을 하고 있었다.

말릴까?

생각하다 말았다. 별 일이야 있겠어, 그리고 요즘 애들한테 참견해봤자 좋은 소리 못 듣겠지.


나는 버스 정류장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시면서 친구를 기다렸다.

쿵.

뭐지? ... 어? 설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버스가 서 있었다. 사람이 모여들었다. 교통사고. 버스에 치인 것이다. 나는 가까이서 상황을 지켜봤다. 놀란 버스기사가 달려나와 아이의 배를 누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 피가 흥건했다. 잘못된 응급처치를 하고 있었다.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나는 달려가면서 버스 기사를 뿌리치고 아이를 받아들었다. 버스기사의 망연자실한 표정, 그 옆에 있던 어떤 아주머니의 다급한 목소리, 벌벌 떨면서 119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코와 귀,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더 이상의 출혈은 없었다. 머리는 다행히 찰과상에 의해 까진 정도. 팔 다리에 상처가 있었지만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불규칙적이었지만 다행히도 숨은 쉬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라이트를 켜서 눈에 가져다 대었더니 동공이 작아졌다. 다행히 중뇌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뇌출혈이 의심되지만 더 이상은 알 수 없는 일.

계속 말을 걸면서 피를 닦아주고 상태를 살폈다. 으으 신음을 계속 냈지만 대답이나 반응을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계속 말을 걸었다. 괜찮아. 별 일 아니야. 괜찮아.

구급차가 온 것 같은데 차가 못들어온다.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으니까 편도 2차선 도로에서 차가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고 있어서 구급차가 들어올 길을 막고 있었다. 화가 났다. 지금 이 아이는 사경을 헤메고 있는데 구경하느라고 애를 죽이는데 동참하고 있었으니.

구조대가 와서 들것에 실어 나르기 전에 목에 보호대를 채우려고 했는데 그 때 갑자기 아이가 반항하기 시작했다.

"잡아주세요."

팔과 다리를 잡고 보호대를 채웠다. 계속 보호대를 풀어버리려고 힘을 썼기 때문에 팔 다리를 계속 붙잡아 줘야 했다.

"보호자 한 분 같이 가셔야 합니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다들 서로 얼굴만 쳐다봤다. "같이 가실 분 없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탔다. 여기서 이렇게 시간 버리고 있을 수 없었다.

구급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5분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 맙소사. 이번엔 경찰차가 길을 막는다. 나원참. 구급차가 중앙선을 넘어 질주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들여보내는데 아이가 괴성을 지르는 것이 들렸다. 살기 위한 본능적인 반응이라던데.

손을 보니 피가 흥건했다. 병원에 있던 사람들이 다 놀래던데, 나는 차분하게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었다.

...

전화번호를 남겼지만 연락이 오지 않아서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 지 모른다. 죽었을 지 살았을 지. 살았더라도 어떻게 살고 있을지...

내가 한 번이라도 그 아이한테 말을 걸어서 무단횡단 하지 말라고 얘기를 해볼 걸 하는 후회를 계속 한다. 어쩌면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니까.

나는 그 날 이후로 무단횡단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만에 하나라도 닥쳐올 결과는 너무 참혹한데도 사람들은 별 생각없이 무단횡단을 한다. 내게 죽음의 위협이 다가오는지도 모르는데 앞만 보고 간다. 나는 아니겠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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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넷으로 이주하면서 전에 썼던 글들을 옮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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