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25/05/04 22:06:19
Name   meson
Link #1   https://cafe.naver.com/booheong/232890
Subject   한국현대사에 파시즘 정권이 존재했는가?
저는 독재와 파시즘은 성격이 다소 다르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 왔습니다. 독재가 집권의 형태라면, 파시즘은 집권의 방법론이나 방식에 가깝다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파시즘은 어려움에 처한 대중들의 불만을 선동하여 지지자를 모으는데, 공산주의와는 달리 사회 구조를 급진적으로 변혁하겠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파시즘은 전통적인 사회 체제를 유지하되 그 수혜자를 정상화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따라 특정 소수 집단이 사회의 정상화를 방해하는 ‘적’으로 지목되고, 다수의 어려움은 해당 집단에게 떠넘겨지며, ‘적’에 대한 폭력이 선동됩니다.

따라서 파시스트는 사회의 기득권 세력과 미묘한 관계를 형성합니다. 파시즘의 발흥은 기존 엘리트 집단이 사회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롯되고, 실제로 파시스트들은 제도적 권위를 부정하며 자신이 대중과 직접 소통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회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는 점에서 파시스트와 기득권의 연합은 가능하며, 파시스트의 집권을 위해서는 필수적이기도 합니다. 파시스트는 기득권과 연합해야 국가를 운용할 전문가 집단을 제공받을 수 있고, 기득권은 파시스트와 연합해야 대중의 불만을 타협 가능한 수준으로 무마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파시즘이 주장하는 사회 문제의 해결책은 철저한 분석보다는 증오에 기반하며, 특정 소수 집단을 만악의 근원으로 지목하는 탓에 반지성주의라는 비판을 듣게 됩니다. 해결책은 명확하고 손쉬워 보일수록 매혹적이므로 이러한 의제를 가지고 실제 집권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파시스트의 대책이 정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는 흔치 않죠. 따라서 파시스트는 이러한 난맥상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에 새로운 ‘적’을 지목하거나, 아니면 대중과 단절하고 정권 공고화 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파시즘은 전쟁 또는 독재정권 수립으로 귀결되지요.

그러므로 파시즘이 독재로 이어지기 쉬운 것은 맞지만, 이미 독재정권이라면 파시즘이 아닐 공산도 큽니다. 파시즘의 구호들이 가장 유용한 시기는 집권 이후가 아니라 집권 이전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에서 평가할 때, 우리는 한국에서 파시스트가 집권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파시즘을 방법론으로 파악할 경우 그 핵심은 ‘적’을 공격하면서 인기를 얻고 선거를 통해 제도권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사례가 일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이승만 세력은 집권 이전부터 사조직을 동원해 반대파를 공격했지만, 당시가 정부 수립 이전임을 감안하면 파시즘으로 집권했다고 말하기 모호합니다. 또 박정희·전두환 정권은 모두 군부를 동원하여 집권했으며, 따라서 대중의 열광을 선동하여 권력을 잡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은 또한 현재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서구에서는 세계화와 이민자로 인한 사회 문제가 대두되며 파시스트가 세력을 얻고 있으나, 한국은 세계화의 수혜자이며 이민자 문제도 불거지지 않았으므로 파시즘이 발흥하기 어렵습니다. 극단적 반중 세력이 파시즘의 논법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대중적으로 별다른 반향이 없는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해당 세력이 주요 정당의 중심부로 침투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은 우려할 만하나, 향후 이민자로 인한 사회 문제가 가시화되지 않는 한 파시즘의 성장은 제한적이리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소 낙관적인 추측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이러한 분석이 아직 사회적으로 유효하다고 여깁니다.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토비 15/06/19 35564 1
    16000 일상/생각우리 부부는 오래살거에요 ㅋㅋ 1 큐리스 26/02/04 407 6
    15999 여행갑자기 써보는 벳부 여행 후기 17 + 쉬군 26/02/03 437 8
    15998 일상/생각아파트와 빌라에서 아이 키우기 14 + 하얀 26/02/03 726 19
    15997 일상/생각소유의 종말: 구독 경제와 경험의 휘발성 2 사슴도치 26/02/02 605 15
    15996 오프모임참가하면 남친여친이 생겨 버리는 2월 7일 토요일 14시 사당 또는 이수 커피 모임 72 트린 26/02/02 1373 4
    15995 일상/생각팀장으로 보낸 첫달에 대한 소고 6 kaestro 26/02/01 658 6
    15994 일상/생각와이프란 무엇일까? 2 큐리스 26/01/31 645 10
    15993 영화영화 비평이란 무엇인가 - 랑시에르, 들뢰즈, 아도르노 3 줄리 26/01/31 441 5
    15992 IT/컴퓨터[리뷰] 코드를 읽지 않는 개발 시대의 서막: Moltbot(Clawdbot) 사용기 24 nm막장 26/01/31 772 1
    15991 일상/생각결혼준비부터 신혼여행까지 (3/청첩장 및 본식 전, 신혼여행) 5 danielbard 26/01/30 425 4
    15990 정치중국몽, 셰셰, 코스피, 그리고 슈카 15 meson 26/01/29 1176 7
    15989 IT/컴퓨터램 헤는 밤. 28 joel 26/01/29 860 27
    15988 문화/예술[사진]의 생명력, ‘안정’을 넘어 ‘긴장’으로 8 사슴도치 26/01/28 457 22
    15987 IT/컴퓨터문법 클리닉 만들었습니다. 7 큐리스 26/01/27 600 16
    15986 게임엔드필드 간단 감상 2 당근매니아 26/01/26 584 0
    15983 스포츠2026년 월드컵 우승국//대한민국 예상 순위(라운드) 맞추기 관련 글 6 Mandarin 26/01/26 380 0
    15982 오프모임2월 14일 신년회+설맞이 낮술모임 (마감 + 추가모집 있나?없나?) 18 Groot 26/01/26 748 3
    15981 정치이재명에게 실망(?)했습니다. 8 닭장군 26/01/25 1050 0
    15980 IT/컴퓨터타롯 감성의 스피킹 연습사이트를 만들었어요 ㅎㅎ 4 큐리스 26/01/25 460 0
    15979 정치민주당-조국당 합당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14 Picard 26/01/23 916 0
    15978 오프모임1/23 (금) 용산 또는 서울역 저녁 모임 8 kaestro 26/01/23 721 1
    15977 스포츠[MLB] 코디 벨린저 5년 162.5M 양키스행 김치찌개 26/01/22 353 0
    15976 정치한덕수 4천자 양형 사유 AI 시각화 11 명동의밤 26/01/21 1206 11
    15974 오프모임2월 7일 토요일 14시 사당 또는 이수 커피 모임 하실 분? 21 트린 26/01/20 921 5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