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5/11/16 13:21:31
Name   J_Square
Subject   두 번째 결혼 기념일에 쓰는 의식의 흐름
안녕하세요.

내일 최종 논문미팅인데 또 이러고 앉아서 홍차나 홀짝이고 있습니다.
24시간 풀 집중력으로 열심히 해야 하는데… 참 머리가 서버리면 난감하네요. 뇌를 쥐어짜서 뭐라도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한 잔 끌쩍이고 나면 또 머리가 돌아가겠지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태어나서 두 번째로 맞는 결혼기념일입니다.
앞으로 5년… 아니, 내년이 윤년이니 4년이군요. 4년동안은 이렇게 주중에 결혼 기념일을 맞게 됩니다.
서로 생일은 대충 밥만 먹고 땡쳐도 결혼기념일은 잘 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당일에는 케잌으로 또 하기로 하고 미리 주말에 안개바람 맞아가며 남한산성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코가 석자라 어디 잘 놀러가지도 못하고 일요일에도 출근하고 퇴근도 22시 전에는 못하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지켜주는 와이프가 참 고맙기도 하고,
그래도 너무 멀리 나가면 몸도 피곤하고 차도 막히고 하여 가까운 곳으로 다녀왔습니다.
와이프는 남한산성도 신세계라며 좋아합니다.
가끔 보는, 익숙해지지 않는 저 모습 보면 항상 만감이 교차합니다.
싸게 퉁쳐서(…) 편하다, 젊은 나이에 어디 놀러다니지도 못하고 안씨럽다, 모지리 남편 만나서 작은거에도 고마워하니 미안하다 나도 고맙다 등등…
그렇다고 저희 본가도 뭐 금수저 문 집안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7~80년대 중동신화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란 저는,
초가집 농사꾼 집안에서 자라(지금도 장모님은 그 흙집에서 살고 계십니다) 서울 유학 와서 일주일에 용돈 만원씩 받아 고시 공부하던 와이프가 가끔 생경해 보이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그런 얘기들 많이 듣습니다. 노오오오오오오력을 안 해서 글타는데, 대체 얼만큼 해야 되냐 어엉
그들의 위로받고 싶음은 능히 옳은 부르짖음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누구나 책임을 나누어 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저희 처가… 보면 글쎄, 또 보면 노오오오오오력을 하면 또 되는거 같습니다.
큰처남은 나이 스물에 혈혈단신으로 동대문시장에서 인력꾼으로 시작하여 마흔줄인 지금 매출 수십억의 동대문 신발의 한 축으로 자리잡으셨고,
작은처남은 공돌이 스물여덟에 수능을 다시 보더니 지금 또 잘나가는 중견기업 간부가 되었습니다. 낼모레 마흔에 늦은 아들도 보았지요.
와이프도 보면 20대를 싸그리 노량진에 몸바치더니 결국 지금 과천으로 출퇴근을 합니다. (아직 부처가 안 내려갔어요)
아직 뭐 어디 누가 땅장사를 하고 뭐슬 테크를 하고 수저를 도금을 하니 이런 수준은 아니지만,
그들이 치고 올라왔던 바닥을 내려다보자면 무저갱이지요.
그런 분들이라 그런지 결혼도 하기 전 딴딴한(그 당시에는… 지금은 흑흑) 직장 제가 다 집어던지고 공부하겠다고 설칠 때,
남들 같으면 파혼내니 난리가 날만한 것도 그 분들은 오히려 믿어주시더군요.
작은 처남이 어느날엔가 곱창집에서 대작을 하면서 한 말이 기억이 납니다.
'내 자네를 믿는 것이, 내가 자네를 직접 보고 얻은 믿음도 크지만, 내 동생이 자네를 믿는 그 믿음도 크네.'
그 믿음을 보답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 항상 생각하고 결혼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노력을 증명한 자들만이 또 그 노력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저도 노오오오오오오력이라는 것이 얼만큼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노력은 끝이 없습니다. 말은 사실 틀린 건 없지요.
그렇다고 또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요즘은…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위로해야 하는 사람들이 '노력을 하라'고 채찍질하고, 위로받고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에 질려버려 포기해버리는…
또 정작 그 '노력을 하라'는 사람들은 그들의 노력을 증명한 적이 있는가? 에 대한 걸림돌도 있지요.
정말 노력해 본 사람들은 노력하는 자들에게 '더 노력하라' 고 채찍질하지 않더군요. 그들을 믿어주지요.



결혼 기념일인데 뭔소리 하는지…
빨리 논문 초고 털고 케잌이나 사들고 들어가야 겠습니다. 거의 결론만 남았는데 문장을 만드는게 너무 힘들어요. 트위터를 끊던가 해야지…
홍차클러 여러분도 남은 하루 고이 보내시길 바랍니다.



2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48 IT/컴퓨터한국의 모바일 OS 점유율 4 Leeka 15/08/26 6050 0
    9836 일상/생각 사람이 죽음을 택하는 진짜 이유 / 미뤄주세요 6 Jace.WoM 19/10/14 6049 21
    5936 정치국민의당 위기, 예정된 수순이었나? 19 소맥술사 17/07/13 6049 8
    11630 경제한국 증시에 다가오는 대폭락의 전주곡(신용공여잔고) 23 쿠팡 21/04/30 6048 4
    11508 사회유책주의 VS 파탄주의 23 이그나티우스 21/03/21 6048 3
    13183 의료/건강와이프랑 10키로 마라톤 완주했습니다. 19 큐리스 22/09/27 6048 26
    10053 사회우리/하나은행 DLF 사건의 보상가이드가 나왔습니다. 5 Leeka 19/12/06 6048 1
    7862 방송/연예화전소녀의 우주소녀 병행활동 문제 2 Toby 18/07/16 6048 1
    4424 게임여러분의 인생게임은 무엇입니까? 59 피아니시모 16/12/21 6048 0
    11331 스포츠[NBA]골스의 핵심은 그린이다. 5 legrand 21/01/10 6047 3
    9446 스포츠[사이클] 2019 TDF Stage 10 - 눈 뜨고 코 베인다 AGuyWithGlasses 19/07/17 6047 5
    7469 음악모차르트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 1 맥주만땅 18/05/02 6047 7
    6158 여행독일 아주머니에게 도움받았던 일. 6 리니시아 17/08/24 6047 5
    4915 게임돌겜대신 섀버를 하게 된 이유 6 Leeka 17/02/18 6047 0
    1571 일상/생각두 번째 결혼 기념일에 쓰는 의식의 흐름 8 J_Square 15/11/16 6047 2
    743 음악Suzanne Vega - The queen and the soldier - 폴 크루그만이 사랑한 가수... 6 새의선물 15/08/07 6047 0
    11470 일상/생각못생기게 태어난 이유로 14 syzygii 21/03/06 6046 16
    10311 의료/건강코로나19 확대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 결과 8 다군 20/02/21 6046 0
    9803 의료/건강에이즈 환자 전액 국가지원을 이제는 고쳐야 하지 않을까요. 7 tannenbaum 19/10/09 6046 1
    9347 게임파판14 새 트레일러가 나왔었네요. 2 뜨거운홍차 19/06/26 6046 1
    9227 음악그남자가 왜 좋니? 4 바나나코우 19/05/24 6046 3
    2504 경제한국판 양적완화는 가능할까? 42 난커피가더좋아 16/03/31 6046 2
    12026 스포츠아스날은 왜 몰락해가는가. 6 joel 21/08/29 6045 5
    10605 정치달이 차면 기운다. 12 쿠쿠z 20/05/21 6045 0
    10167 IT/컴퓨터최근 사용했던 IT 기기들 짧은 후기.. 11 Leeka 20/01/08 6045 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