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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11/30 13:07:42
Name   nickyo
Subject   드라마 송곳이 완결되었습니다
어제부로 12부작 송곳이 완결되었습니다.
사실 9화 이후로 거의 시어머니의 관점에서 드라마를 지켜봤고
자, 너희 과연 어떻게 풀어낼래? 하고 눈을 부라린 터라
마지막화까지 꽤 시크하게 봤음에도
종합적으로 매우 괜찮은 편으로 만들어낸 드라마라고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송곳의 11화, 12화를 연출이나 연기, 미학적 관점에서 비평한다면 과연 고득점을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입니다만
그건 제 전문도 아니고 잘 아는 분야도 아니라 뭐라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저는 이 각본가가 꽤 영리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송곳 10화 이후의 백미는 단 3화동안 노동조합과 기업, 그리고 그 투쟁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디테일과 투쟁 바깥의 거시적 구조를 모두 다뤘다는 점에 있습니다.
게다가 자칫하면 중구난방에 어떠한 시각도 제대로 담을 수 없을 분량들을 극도로 절제하여 결국 어느정도의 밸런스를 갖춘 채로 드러내는데 성공했습니다.

노동운동이 갖는 복잡성은 자본의 생산구조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의 생산구조는 기업의 생리와 일치하는 듯 하지만 동시에 좀 더 거시적이고 좀 더 커다란 것들을 함의합니다. 그래서 노동운동과 노동조합은 자본에 대한 유일한 민주적 권리로서, 자본의 생산구조에 대하여 대척점에 서 있습니다. 이는 자본의 생산구조가 근본적으로 우리가 전제한 인간관과는 거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기인합니다. 따라서 노동운동이란 필연적으로 기업의 생리, 그 위를 포괄하는 자본의 생산구조에 대한 대립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자본주의'를 본격적으로 하나의 분석적 개념으로서 자본론에서 사용하고, 그것이 여전히 유효한 지점들이 있으며 그러한 구조분석을 통해 역사적으로 기업과 임금노동자 간에는 '계급'이라는 형태로 권력투쟁을 해 왔으며 각자의 승리와 실패가 있었죠.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자본주의의 발전속도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이나 노동조합이라는 지점을 아득히 뛰어넘어 버립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재생산 방식과 생리는 이미 법률도, 노동조합도 따라갈 수 없는 지점을 달려가고있죠. 그래서 노동조합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 법조차 제대로 쥐지 못한채 이미 아득하게 멀어진 자본주의의 뒷꽁무니를 붙잡으려 애씁니다.

물론 노동조합 역시 많은 연구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의 현대화에 따른(세계화와 신자유주의도 이 안에 내포되어있겠죠) 생리의 변화에 대해 대처하기 위한 노력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자본에 비해 노동조합은 훨씬 더 다양한 삶의 문제와 파편화된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그리고 그것이 각자의 사회와 국가에 의해 괴리되어 있었죠. 문제는 우리가 살면서 자연스럽게, 자본주의의 생리를, 시장의 생리를, 기업의 생리를 겪고 배우는데에는 익숙하지만 '노동조합과 민주주의'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저 괴리들은 우리의 이해를 어렵게하죠.


송곳은 그런면에서, 약간은 아쉽지만 아주 슬기로운 편이다 싶게 노동조합과 기업, 개인의 갈등을 그려냈습니다. 어떻게 기업과 노동조합이 대치하고, 노동조합과 연대하는 또 다른 노동조합, 그리고 더 큰 조직의 연계과정이 어떠하며, 구조를 반영하지 못하는 '후천적'인 법의 한계를 은밀하게 비추고, 노동조합 안에서 살아있는 한 개인의 삶이 어떤식으로 파편화되어있고 그것이 또한 노동조합과 기업 사이에서 명백하게 경계가 그어져있고 구별하기 어려운 '인간적인' 것임을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죠. 11~12화에서 그려낸 '더 큰 조직과의 연대'는 아마 민주노조를 모티브로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 더 큰 싸움,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본주의 거대기업에 대한 저항, 선도선진적 투쟁, 노동자들의 의식각성과 강화' 같은 단어들로 매우, 매우 강렬하게 그려내었죠. 아마 많은 사람들은 저 언어들에 기가 질렸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문제지향은 매우 본질적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노동조합자체는 기업의 생리에 대해 구성원이 정면으로 저항하여 자신들의 당위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최후, 최선의 방법인데(현재까지는) 자본의 생리는 이미 단일적 노동조합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금융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인간과 국가보다 훨씬 더 유연한 자본의 이동을 가능케 하였으며 그들의 생산기지와 전략은 '이미' 매우 국제적입니다. 한진중공업의 파업이 너무나 장기화되고 어려웠던 이유는 노동자들의 역량이 부족해서라기 보단, 그들이 더 이상 한국의 생산기지에 천착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인 부분이 하나의 요인인 것처럼요. 노동조합 역시 이론이 연구되는 분야이고, (자본주의와 주류경제학 만큼의 속도와 양을 얻을수는 없을지라도) 따라서 송곳에서 너무나 적대적으로 그려진 그 '노동조합꾼'들이 사실은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기서 말한 '선도선진적 투쟁'이 사실은 단일 기업과 노조 사이에서 벌어진 송곳의 비극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원점을 타격하자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이는 자칫하면 하나의 과격적 희생론으로 탈바꿈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언제나 딜레마죠. 분명 자본은 단일기업이 아니라 경제 체제로서 더 큰 토대에서 작동하며, 세계화 속에서 기업 역시 훨씬 빠르게 그 큰 토대의 변화를 이끌거나, 따라갑니다. 그러나 인간은 법, 체제, 국경 또는 다른 사회구조들 속에서 훨씬 느리고, 조합원 개별의 삶과 상황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투쟁은 언제나 그 어딘가의 지점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때때로 그것은 선진적이고 선도적 투쟁으로 역사적인 결과물을 만들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타협적이고 조합원 각자의 당장 필요한 삶의 유지를 위해서 투쟁을 그만둬야 하기도 하죠. 이 모든 과정속에서 언제나 기업, 자본, 정부는 상당히 기울어진 경기장의 덕을 봅니다. 그건 일종의 제도적 한계이기도 해요. 현재의 정치체제에서 최종심급을 쥐고 있는게 법률이라는 것,  그리고 그 법률을 훨씬 더 유리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자본권력의 아군이라는 것, 동시에 모든 이에게 평등해 보이는 시간도 경제적 조건 앞에서는 평등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우리의 '노동조합'이라는 대안은 어찌보면 스펀지처럼 구멍이 뻥뻥뚫려있는 빈약한 무기일지도 모릅니다.


아마 송곳의 마지막화에서 보여주는 것 역시 이런거죠.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이고 평화적인 투쟁방식인 단식. 그 단식장에는 단 한명의 사람도 찾아오지 않고, 어떠한 관심도 없이 천막 바깥은 평화롭기만 합니다. 오히려 회사를 움직인건 회사 내부의 정치싸움 때문이었죠. 무기력했습니다. 드라마는 내내 송곳의 주 무대가 되었던 푸르미 일동지점의 노조의 시선을 카메라로 친밀하게 담지만, 철저하게 이상적이고 철저하게 옳고자 했던 이수인의 투쟁 결말이 정작 푸르미 사내 인사고과를 위한 정치적 고려의 타협이었다는건 되려 비극적이지요. 더 거시적이고 근본적인 투쟁을 말하던 조직을 부정적으로 그려냈고, 평화적이고 이상적인 투쟁을 그려낸 이수인은 긍정적이었으나 결국 노조는 실질적으로 자신들의 힘에 의해 쟁취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마치 우리가 가열차게 독립운동을 했지만 미국의 원폭 없이는 요원한 일이었던 광복과, 유엔군과 강대국의 참전 없이는 자주국가를 세울 수 조차 없었던 한반도의 근대와도 겹쳐보였죠. 그래서 인사상무의 말은 더욱 서늘하고, 뼈저립니다. 니가 이긴게 아냐.


노동조합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지속적으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합니다. 사회와 연대할 수 있는 전위적 위치를 지닌 노동조합, 정치와 연결되어 적극적인 행동과 목소리를 제도권 내,외에서 주장할 수 있는 사회노조, 산업별혹은 지역별 일반노동자 조합을 통해 동등한 노동조건으로 투쟁의 장을 넓힐 수 있는 산별/지역/일반노조 전략, 국제화된 생산기지와 금융자본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산업별 노조, 국제주의, 동종노동자 연대운동 등... 그러나 어느것이든 너무나 멀고, 너무나 험합니다. 그것은 비단 '사람'이 이기적이거나 비합리적이거나 사명감이 없거나 나빠서라기 보단, 노동조합이라는 방식 자체가 갖는 한계와, 자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의 괴리가 낳는 '비어버린' 공간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송곳이라는 드라마는,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의도했든 안했든 간에 이러한 노동조합과 기업간의 비극을 다양한 시점에서 그려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개인 단위의 절망과 고통, 조직 단위의 절망과 고통, 그보다 더 큰 단위의 고민과 고통. 시선의 편향은 있었으나 분명히 언급되었던 중층적인 모순들.



처음 JTBC에서 이 드라마를 한다고 했을때 기쁘면서도 속상했습니다. 아, 이제는 노동조합도, 시위도, 투쟁도 웃음거리와 아이템이 되어 팔리는구나. 이젠 이게 체게바라 티셔츠 같은게 되었구나. 당장 몇년 사이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중앙일보에서 그 죽은 사람들을 어떤식으로 이야기 했었는지. 그 상황을 어떻게 떠들어 댔는지. 그 잘난 보수언론의 주필들이 어떤식으로 사람들을 죽였는지를 기억한다면... 온갖 드라마에서는 이제 운동권과, 공동체와, 사회와, 조직과, 투쟁을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조연으로 써먹기 바쁜, 그래서 싫으면서도 이렇게라도 노출될 수 있다면 그게 어디냐고. 존심 굽히고 그래, 그걸 이용한다면 우리도 거기서 얻어낼 것들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생각보다 송곳은 정말 잘 뽑혔고, 후반부의 내용을 조금만 주의깊게 읽는다면 참 좋은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안보신 분들께는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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