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3/18 11:26:22
Name   nickyo
Subject   [조각글 19주차] 카를과 디르도
[조각글 19주차 주제]
무생물의 사랑에 대한 글을 쓰십시오.
- 분량, 장르, 전개 방향 자유입니다.

맞춤법 검사기
http://speller.cs.pusan.ac.kr/PnuSpellerISAPI_201504/

합평 받고 싶은 부분
ex) 맞춤법 틀린 것 있는지 신경써주세요, 묘사가 약합니다, 서사의 흐름은 자연스럽나요?, 문체가 너무 늘어지는 편인데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글 구성에 대해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맘에 안 드는 것은 전부 다 말씀해주세요, 등등 자신이 글을 쓰면서 유의깊게 봐주었으면 하는 부분 등등을 얘기해주시면 덧글을 달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

극단적으로 몰아붙여봤습니다.

본문

------------------------------------------------------------------------------------------------------------------------------------------

눕는다. 쩔그렁, 등 뒤로 소리가 퍼진다.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어내어도 피로와 노곤함 만큼은 쉬이 닦이지 않는다. 그는 다만 손 끝으로 자신의 몸을 쓰다듬어간다. 목을 타고 내려오던 손은 어깨의 끝부터 쇄골을 타고 도드라지거나 패인곳을 가볍게 지나간다. 가슴의 온도가 평소보다 조금 높다. 식어버리기전에 조금이라도 따스함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잠시 손길을 멈추어 체온을 느낀다. 이윽고 조금 차가워진 배와 옆구리를 지나, 아랫배를 훑는다. 이내 사타구니와  허벅지까지 손가락 끝으로 걷고 나면 누운 자세로는 더 이상 팔을 내리기가 어렵다. 약간은 아쉬운 기분으로 뾰족하게 솟아오른 가랑이 사이를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이어진 손길은 서서히 멀어져간다. 아득하게 멀어져가는 손길에 카를은 아쉬움과 갈망이 절박하게 멍울진다. 온 몸을 뒤틀며 바짝 날 선 허리를 뒤틀어보려 하지만 멀어지는 그의 손길을 구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느리다.


빛 한줌 새어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카를은 다만 오롯이 누워있다. 따스한 손길이 언제 그를 쓰다듬었냐는 듯이 차갑게 식어버린 몸이 기분나쁘다. 아아, 빨리 찌르고 싶다. 쑤시고 싶어. 그는 애타는 갈증으로 몸을 배배 꼰다. 거칠어지는 숨결, 날카로운 고성이 들을 사람 하나 없는 방 안에 울려퍼진다. 어제는 좋았지. 그는 홍조를 띄며 기억에 잠긴다. 미끈거리는 피부에 손 끝이 닿는 순간 등줄기에는 짜릿한 번개가 내리친다. 조금 더 참았어야 했는데. 그는 입맛은 다신다. 날카로운 손 끝으로 그의 곱고 매끈한 피부를 긋는다. 꿈틀거리는 살결 사이로 뜨끈한 애액이 배어나온다. 목이 탄다. 카를은 그만 참지 못하고 거칠게 그 사이를 파고든다. 짧은 비명소리가 들리는 듯 했으나 이미 카를의 귀에는 닿지 않는다. 온 몸에 달라붙어오는 뜨겁고 끈적한 속살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조여온다. 카를은 그때서야 온 몸을 바르르 떤다. 숨조차 쉬기 힘들만큼 깊게 달라붙은 곳에서 요동치는 살결과, 흘러내리는 끈적한 체액에 카를은 환희를 느낀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다. 카를은 기쁨과 쾌락으로 춤춘다. 그의 춤사위가 이어질 때 마다 살결은 더 벌어지고, 열기는 점점 더 밖으로 터져나온다. 벌어지고, 벌려지고. 가장 깊은 곳에서 카를은 끊임없이 사랑을 외치고, 사랑을 요구한다. 그에 장단을 맞추기라도 하는 듯 그를 둘러싼 몸이 이윽고 파르르 떨리며 서서히 무너져간다. 더 이상 힘있게 그를 감싸안던 이들은 온데간데 없고, 카를은 춤사위를 멈추고 슬그머니 몸을 뺀다. 그의 몸에는 여전히 뜨거운 사랑의 결실들로 범벅이지만, 찬 공기를 쐬며 순식간에 식어버리고 만다. 카를은 지난 사랑의 아쉬움에 깊이 한 숨을 내쉰다.

"발정기야?"

디르도는 어느새 카를의 방에 있다. 카를은 무심한 눈초리로 디르도를 쳐다본다. 카를과 다르게 디르도는 뾰족한 곳이라곤 없다. 둥글고, 완만하고, 물렁하다. 둘은 너무나 달랐으나 오로지 같은 욕망을 지닌다.

"왜 또 시비야."

둘은 서로를 끊임없이 시기한다. 디르도에게 있어 카를만큼 질투가 나는 이는 없다. 디르도는 카를보다 훨씬 더 인기가 좋고, 디르도는 카를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의 몸을 탐했다. 그리고 훨씬 더 자주 디르도를 찾아온다. 디르도는 지칠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사랑에 답하였다. 반면 카를이 사랑을 나누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러니 디르도가 카를을 질투할 이유는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디르도는 그럼에도 카를을 시기했다. 카를은 디르도가 닿지 못하는 곳에 닿는다. 디르도에게는 영원히 허락되지 않을 사랑이 카를에게는 주어진다. 디르도는 그것에 언제나 화가 나 있다. 끊임없이 더 깊은 곳을 갈망하는 그에게 카를의 날카로움이란 소망이자 동경이었던 셈이다. 디르도는 그를 사랑한 이들이 딱 허락하는 만큼만 젖을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곳 까지만 닿을 수 있었다. 디르도의 욕망은 그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했다. 디르도의 욕망은 그들의 손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들이 원할때에,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디르도는 다만 순종할 뿐이었다. 뜨거운 살결이 디르도를 감싸안을때에도 그 온도는 카를이 느끼는 것보다는 분명히 낮았고, 디르도가 힘껏 맞닿은 살결역시도 카를만큼 깊게 달라붙을수는 없었다. 그를 적셔주는 사랑 역시 그러하였다. 그래서 디르도는 카를이 싫었다. 나도, 나도! 디르도는 다만 입술을 힘껏 깨물 뿐이다.


"하고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헐떡이나 싶어서."

"누구처럼 자주 할 수 없는 입장이라 그래."

"하긴, 매번 상대를 바꾸는 것도 참 피곤한 일이겠어."

카를은 입을 닫는다. 디르도는 한껏 우쭐하다. 유일하게 그가 카를보다 나은것이 있다면 여러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를은 아니었다. 카를은 단 한번의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와 몸을 섞은 이들과 영원히 이별했다. 가장 깊은곳에 닿는 자에게 주어진 숙명. 가장 날카로운 자에게 벼려진 저주. 그래서 카를 역시 디르도를 좋아하지 않는다. 카를은 영원히 외로움 속을 부유한다. 그에게는 모든 사정에 역사가 없는 셈이다. 단 한번의 사랑이 단 하나의 상대에게 이어지지만, 두 번은 없다. 디르도가 한 명과, 혹은 훨씬 더 많은 상대들과 몇 번이고 같은 체온과 손길 속에서 서로를 탐닉할때에 카를은 오로지 다음을 기다릴 뿐이다. 지독히도 멀고, 긴 시간동안 카를은 그저 자신의 욕망을 날카롭게 벼린다. 둘은 같은 욕망을 공유하면서도 서로를 시기한다. 디르도는 카를의 가장 깊은 곳에 닿을 뾰족함을, 카를은 디르도에게 있는 이별없는 사랑을 위한 뭉툭함을. 하지만 이내 그 둘은 이 질투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깨닫는다. 말싸움을 이어나갈 의미조차 찾을 수 없다. 둘은 다만 어둠속에서 가만히 몸을 뉘인다. 그들의 사랑은 결국 누군가를 위한 준비에 불과한것을. 둘은 다만 그 비참함을 외면한다.


딩동, 벨소리가 울린다. 둘은 감았던 눈을 뜬다. 오빠, 저에요. 어. 들어와. 멀리까지 고생 많았어. 카를과 디르도는 벌써 숨이가쁘고 어깨가 뜨끈해진다. 와, 오빠 잘해놓구 산다. 혼자 사는 거 맞아요? 그럼.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새어나갔을까? 잠깐만 기다려. 먼저 씻고 있을래? 오빠도 참... 샤워실은 이쪽? 그전에.. 아, 잠깐.. 가벼운 키스가 이어진다. 혀 끝이 슬그머니 입술을 쓸어담는다. 나..씻구..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슬그머니 그녀를 놓는다. 이윽고 물소리가 들려온다. 그는 콧노래를 부른다. 오늘은 어느쪽으로 할까? 서랍을 연다. 카를과 디르도는 쏟아지는 빛에 아찔하다. 흐응, 흐흐응. 그는 카를과 디르도를 들었다 놓는다. 둘은 그저 타는 목마름을 숨긴 채 제발 자신을 골라달라고 소리없이 외친다. 둘 다 할까? 그녀가 나오기 전 까지 시간은 충분하다. 그는 반쯤 풀어진 눈동자로 허공을 응시한다. 이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혀 끝이 입술을 쓸며 입맛을 다신다. 맛이 아주 좋을꺼야. 그는 서랍을 닫는다. 카를과 디르도는 가쁜 숨을 몰아쉰다. 빛이 사라진 곳에서 둘은 흥분으로 가득하다. 오빠, 수건 어딨어요? 아 맞다! 잠깐만 챙겨줄게. 그는 수건 대신 서랍을 다시 열고 칼을 쥔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성큼성큼, 걸음이 빨라진다. 물소리가 잦아든다. 끼익, 문소리가 열린다. ㄲ.. 자음과 모음이 미처 다 붙기도 전에 카를은 환희에 찬 교성을 지른다. 꿈뻑, 꿈뻑. 그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하다. 늘씬한 다리가 무너져 내린다. 그는 가녀린 허리를 힘껏 붙들어 잡는다. 물방울이 선홍색으로 번져간다. 채 닫히지 않은 먼 방의 서랍속에선, 디르도의 이 가는 소리만이 고요하다.







0

    게시글 필터링하여 배너를 삭제함
    목록
    게시글 필터링하여 배너를 삭제함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2655 창작[23주차] 인류 멸망 시나리오 7 얼그레이 16/04/20 3184 0
    2653 창작[조각글 22주차] 봄봄봄 1 레이드 16/04/20 2910 1
    2639 창작[22주차] 빵곰 삼촌, 봄이 뭐에요? 7 얼그레이 16/04/19 3962 5
    2579 창작[21주차] 일기 1 까페레인 16/04/08 3052 0
    2572 창작[22주차 주제] '봄날 풍경'으로 동화나 동시 짓기 2 얼그레이 16/04/07 3340 0
    2558 창작일기 2 3 nickyo 16/04/06 3644 0
    2554 창작[21주차] 4월 1일~ 4월 5일 일기 14 얼그레이 16/04/05 3623 1
    2551 창작[21주차] 想念의 片鱗 4 레이드 16/04/05 2999 0
    2546 창작[21주차] 생각들 2 제주감귤 16/04/05 3389 0
    2530 창작[조각글 20주차] 공생충의 5초 3 드라카 16/04/03 3668 2
    2515 창작[20주차] 처음 함께 만났던 언젠가의 어느날처럼. 1 틸트 16/04/01 3530 2
    2514 창작3월 31일 일기 1 얼그레이 16/04/01 3231 0
    2511 창작일기 1 nickyo 16/03/31 5081 5
    2500 창작[21주차 주제 공지] 일기쓰기 1 얼그레이 16/03/30 3310 0
    2499 창작[조각글 20주차] 알파고 -얼그레이님의 보이니치를 잇는 글 2 마르코폴로 16/03/30 4277 2
    2496 창작[조각글 20주차] 보이니치 2 얼그레이 16/03/30 3184 0
    2495 창작[조각글 20주차] 시간 2 레이드 16/03/29 3527 0
    2493 창작[조각글 20주차]누구나 스쳐지나가는..그래서 사무치게 슬픈.. 2 쉬군 16/03/29 3557 0
    2487 창작[조각글 20주차] 아마도 마지막이 될. 1 RebelsGY 16/03/28 3919 0
    2469 창작[20주차 주제]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 1 얼그레이 16/03/25 3498 0
    2460 창작[19주차] 종이학 2 제주감귤 16/03/24 3796 0
    2456 창작[조각글 19주차] 탄생 1 얼그레이 16/03/23 3483 0
    2430 창작[19주차] 무엇이 우리의 밤을 가르게 될까. 1 틸트 16/03/19 3622 1
    2425 창작[조각글 19주차] 카를과 디르도 6 nickyo 16/03/18 3424 0
    2422 창작[조각글 18주차] 방문 3 얼그레이 16/03/17 3445 3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