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3/28 16:26:32
Name   ORIFixation
Subject   장미라는 이름
지옥같은 1년차가 끝나고 춘계학회가 지나면서 슬슬 2년차들은 풀리기 시작한다. 아랫년차를 백업하는 일도 점점 아랫년차가 일을 할줄 알게 되면서 줄어들고 1년차의 긴장도 풀어져 가는 시기다. 그렇게 4월의 춘계학회도 지나고 벚꽃철도 지나가버린 어느 금요일 밤이었다. 그 당시는 토요일 아침에도 브리핑과 회진을 돌았기 때문에,, 마침 당직이기도 하고 그리고 딱히 금요일 저녁이라고 해도 만날 사람도 없다는 여러 이유들로 해서 숙소에 앉아서 컴퓨터를 뒤적거리고 있던 그런 목가적인, 아주 일상적인 금요일 밤이었다. 핸드폰이 울리고 1년차의 이름이 뜬다.
그리고 떨리며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형 응급실로 좀 얼른 와보셔야 겠는데요?"
"왜 너도 이만하면 처치가 되잖아... 무슨 환잔데?"
"21세 female, 프레스기계에 손이 말리며 upper arm 1/3까지 crushing이 블라블라...."

우선은 뛰어 내려갔다. 1년차가 커버할 수준도 아니고 아니 이건 우선 레지던트가 커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응급실 처치실은 이미 처참했다. 패닉에 빠진 일년차와 인턴이 부산히 움직이고 있었고 X-ray와 사진을 윗년차에게 보내서 노티를 마친다음 바로 생리식염수로 최대한 씻어내고 드레싱과 부목처치를 했다. 다행히 바이탈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엄청나게 때려부은 진통제 탓인지 환자는 제대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1년차가 보호자에게 수술동의서를 받는 동안 마취과에 전화를 걸어서 수술방을 구했다. 이미 윗년차와 교수님도 모두 병원에 뛰어들어와 응급실에 내려왔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X-ray를 보니 아예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도 잘 모르는 정도의 손상이었다.

이렇게 사지절단인 환자의 경우에는 맹글드 점수라는 것을 매긴다. 환자의 나이에 따라 손상정도, 혈압 등등에 따라 어느정도의 점수가 넘어가면 혈관 봉합술을 한다고 해도 보통 예후가 좋지 않아서 절단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21세 여자라니. 최대한 팔을 살려보는 방향으로 수술하기도 하고 수술이 시작됐다.

이미 뼈는 으스러져서 맞추기 힘들었고 제일 중요한 혈관과 신경도 잘린게 아닌 눌려서 여기저기 손상이 되어있었다. 밤에 들어간 수술은 아침까지 계속 되었다. 너무 길어지는 수술시간 또한 예후에 좋지 않다. 혈관과 신경을 최우선으로 하고 근육, 건을 수술한다음 뼈는 형태를 잡아놓는 정도로 외고정장치를 해놓았다. 아침에 중환자실에 환자를 넣고 나오니 이미 회진, 브리핑은 끝난 시간이었고 숙소에서 잠시 누웠더니 다시 저녁이었다.

수술부위의 상처는 예상했었지만 좋지 않았다. 혈관이 제역할을 못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렇다면 어떻게 소독을 하더라도 괴사가 진행되기 마련이다. 수술부위도 크고 중환자실에서 하는 드레싱은 아무래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소독중에서도 정신을 차린 그녀는 담담하고 가끔은 웃기도 했다. 1달여를 그렇게 수술과 소독을 반복했지만 결국은 살리지 못하고 절단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녀의 부모님들은 두분 다 시각장애인이었다. 1명이 있는 남동생은 지적장애가 있었고 그녀는 그러한 집을 부양하기 위해 공장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한동안 의국에서는 그녀의 기구한 이야기가 화제에 올랐다. 정말 안될라 치면 저렇게까지 안될수 있냐고. 절단이 결정되었지만 그것을 듣는 그녀는 울지 않았다. 체념한듯 약간은 슬픈듯한 그 표정은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다른 병원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고 그때쯤 그녀의 퇴원날짜도 나가오고 있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을때 그녀는 퇴원을 하고 외래에서도 볼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은 장미였다. 붉은, 꽃들의 여왕이라는 장미. 가끔씩 산재사고가 뉴스에서 나오면 생각이 난다. 그녀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5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424 기타재미있게 읽었던 책 추천(1) 20 Raute 15/06/24 8324 0
    13802 일상/생각재미로 읽는 촬영 스튜디오 이야기. 8 메존일각 23/04/30 2426 9
    6002 IT/컴퓨터재미로 써보는 웹 보안이야기 - 1 18 Patrick 17/07/25 3944 6
    14783 일상/생각재미로 보는 홍차넷 생활상식 5 전문가 24/07/09 1320 7
    6137 일상/생각재미난 프로모션 - 하나씩 풀어볼까요? 14 CONTAXS2 17/08/21 3465 0
    4975 꿀팁/강좌재미난 짤 모아봅시다 (데이터 주의) 110 Toby 17/02/23 11592 1
    10685 일상/생각재미난 지인이 하나 있습니다. 12 nothing 20/06/14 4768 2
    12132 도서/문학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 리뷰 19 mchvp 21/10/01 4653 5
    6919 일상/생각재능을 나누는 이들에게 감사를. 13 세인트 18/01/09 3833 17
    10987 사회재난지원금 신청/지급이 오늘부터 시작됩니다 7 Leeka 20/09/24 4290 5
    2582 일상/생각장학금 매칭... 33 새의선물 16/04/09 3921 1
    8171 기타장하성 "모두가 강남 살 이유 없다…저도 거기 살기에 드리는 말씀" 19 신문안사요 18/09/05 6853 0
    4706 방송/연예장인철씨 이야기 7 개마시는 술장수 17/01/27 5785 6
    14132 일상/생각장염을 자주 앓아요! 14 퐁퐁파타퐁 23/09/05 2219 3
    14910 사회장애학 시리즈 (5) - 신체 장애를 지닌 아이들의 사회 기술 발달과 가정의 역할 7 소요 24/09/09 2055 5
    14736 사회장애학 시리즈 (4) -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고 가르친다는 것 2 소요 24/06/11 1141 6
    13486 사회장애학 시리즈 (3) - 지리는 게 매력적인 모습은 아니잖아요?: '어른'이 되기 위해 억제를 배워간다는 것, 그리고 장애와 섹슈얼리티 8 소요 23/01/17 2045 10
    13065 사회장애학 시리즈 (2) - 시각장애인 여성은 타인의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돌려주는가? 5 소요 22/08/07 3016 15
    12998 사회장애학 시리즈 (1) - 자폐를 지닌 사람은 자폐를 어떻게 이해하나? 16 소요 22/07/14 4333 24
    11180 일상/생각장애인의 결혼생활에 대한 짧은 생각들 10 오구 20/11/28 4751 4
    12870 정치장애인 탈시설화 논쟁 12 방사능홍차 22/05/29 4253 26
    8899 경제장병내일준비적금 이자소득 비과세 신설 8 세무회계연습 19/02/23 3617 4
    2835 의료/건강장병(瘴病) 이야기. 14 기아트윈스 16/05/19 6410 16
    2486 일상/생각장미라는 이름 12 ORIFixation 16/03/28 4380 5
    5665 오프모임장미꽃놀이 갈 홍차클러, 요기요기 다 붙어라 :D 95 lagom 17/05/18 6121 1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