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5/02 14:19:36
Name   nickyo
Subject   [조각글 24주차] 이해와 인정 사이
제목 : [조각글 24주차] (☜ 말머리를 달아주세요!)

[조각글 24주차 주제]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이해하기 힘든 것'에 대해서 써주세요.
시나 수필로 작성하되 소설로 전개하면 안 됩니다.

*주제 선정자의 말
이해하기 힘들다는 감정에 대해서 쓸 필요는 없고, 대상이 뭐든 상관없어요.
'신이 존재하는 걸 믿는 사람들' 이런 추상적이고 딱딱한 걸 수도 있고, 엄마가 나를 왜 사랑하는지,
서울 사람들은 왜 순대를 소금에 찍어먹는지, 등등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분량, 장르, 전개 방향 자유입니다.

맞춤법 검사기
http://speller.cs.pusan.ac.kr/PnuSpellerISAPI_201504/

합평 받고 싶은 부분
ex) 맞춤법 틀린 것 있는지 신경써주세요, 묘사가 약합니다, 서사의 흐름은 자연스럽나요?, 문체가 너무 늘어지는 편인데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글 구성에 대해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맘에 안 드는 것은 전부 다 말씀해주세요, 등등 자신이 글을 쓰면서 유의깊게 봐주었으면 하는 부분 등등을 얘기해주시면 덧글을 달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말

사랑보다먼~우정보다는 가까운~
날보는 너의 그마음을 이젠 떠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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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은 매우 흐릿하다. 하지만 유치원 선생님이 독방에 데려가 더 이상 떠들고 시끄럽게 굴었다간 입술을 붙여버리겠다고 실리콘 쏘는 기계를 들이대며 협박했던 기억은 선명하다. 주황색 불빛과 독방치고는 넓었던 놀이방. 놀이방이 독방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아이들이 착하게 티비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리콘 쏘는 기계는 매우 뜨겁다고 했고, 그게 뭘 쏘는 건지는 모를 나이였지만 총처럼 생기기는 했으니 입술을 꽉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선생님의 아귀힘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아마 내 악력이 더 셀텐데. 예전에 동네에서 이름을 바꾸고 확장한 유치원의 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보았다. 골목을 지나가는데 내 어깨쪽과 사이드 미러가 스치며 빠앙-하는 클락션을 들었다. 안에 원생들이 없었는지 차가 멈춰서고 조수석 창문이 열린다. 익숙한 얼굴이다. 기억이 나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와 내가 떨어져 있던 아득한 시간에 비해 훨씬 짧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더니 창문을 다시 올렸다. 나는, 그대로 엑셀을 밟으려는 차 앞으로 지나서 운전석으로 향했다. 차가 튀어나가려다 들썩 하고 엉덩이를 흔들며 멈춘다. 운전석 창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당신 뭐하는 거야! 저 기억 안나세요? ...어? 저요. 그 옛날 한아유치원시절에 선생님 유치원 다녔었는데. ...아.. 아..! 기억이 나지 않는 어색한 표정이다. 뭐라고 떠들려 하기에 멱살을 틀어쥐었다. 운전 똑바로 하세요 씨발새끼야. 뒤지기 싫으면. 입술에 실리콘을 쳐 발라줘야 철들래? 어? 커다란 머리통이 조수석 창문 밖까지 끌려나온다. 켈록대는 꼴이 우습다. 툭, 하고 쥔 멱살을 놔줬다. 골목길에선 안전운전 하십시다 선생님. 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유치원이 아동학대로 부모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것을 엄마 입에서 들은 것은 이 일이 있기 몇년 전의 이야기였다. 지나고 나니 그 원장과 그 원장의 아들이었던 '실리콘 선생'이 애들에게 왜 그랬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6살 아래의 애들을 때리고, 쥐어박고, 목을 조르고. 여자애들에겐 더한짓도 했겠지.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을 나는 구별하고 싶지 않았나보다.



2. 중학교때는 꼭 반마다 주먹질을 잘 한다며 애들을 괴롭히는 것이 인생의 보람인 아이들이 있었다. 나라고 그 누구도 괴롭히지 않고 놀리지 않은 삶을 살았을리는 없다마는, 학교의 시작부터 끝이 욕설과 주먹질로 시작해 점심시간에는 커다란 스크린을 내리고 컴퓨터를 쥔채 야동을 틀며 밥먹는 애들에게 성기의 접합과 확대된 서양인의 생식기를 강제로 구경시킨 애들이 떠오른다. 갓 부임한 여자 교생선생님의 키는 그 애들보다 작았는데, 그걸 말려보겠다고 달려들다가 막아서는 애들을 밀치지도 못한 채 성희롱 비슷한 것을 당했던 것도 떠오른다. 선생님도 저래요? 선생님도 저렇게 해요? 선생님 남친은 커요? 제껀 큰데. 눈물을 움치며 도망가는 스물서넛의 여선생님과, 십여분뒤 당구채를 들고 온 학생부장 선생님.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지보지섹스를 이유없이 앵무새처럼 떠들며 애들을 때리고 샤프로 찌르고 커터칼로 긋던 아이는 그렇게 학생부장 선생님 옆에 따라온 여선생님에게 씨발년이라며 손찌검을 하고, 당구채가 그 애에게 날아가고, 학교를 때려친다며 의자를 선생에게 던지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저렇게 살지? 지금도 이건 이해가 선행되지 않아 인정의 여부를 가릴 수 조차 없다. 그 애는 뭐하고 살까. 어디서 달건이짓이라도 하고있나. 혹은 개과천선해서 검정고시라도 봤을까. 웃긴건, 내가 그 선생님보다 그 애의 미래가 더 궁금하다는 사실이다.  니 인생은 좆됐어야해. 그런 심리일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남자 중학교의 생태계란.



3. 어른이 되고 나서 겪는 많은 일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었지만, 지나고 나면 이해할 수 없는 것 보다는 인정하기 싫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발식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기 싫은 것이었다. 학교의 꼰대같은 예비군 선배들도, 한남충으로 가득했던 과실에도, 한심한 이야기를 정답처럼 떠드는 유사과학 신봉자의 교수도, 외모로 훨씬 더 사람을 심하게 가렸던 여자들과, 외모로 사람을 가리지 않는 척을 하기 위해 애썼던 남자들과,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열심히 사랑과 섹스를 찾아 방황하던 젊은이들. 그렇게 심각한 이유로 서로를 정말 친근하게 여기면서도 너무나 쉽게 적대시 했던 스물 언저리의 아이들과, 선배니 후배니 하며 서로를 규정했던 시간들. 그 어딘가에 예쁘게 꾸며졌을 비린내 나는 청춘과 추억. 학교의 테투리 바깥에는 2MB와, FTA와, 비정규직과, 노조탄압과, 빈곤과, 남녀불평등과, 자유권의 침해와, 알바와 노동법의 지독히도 먼 거리와, 나열하기엔 지면이 모자랄만큼 산재했던 부조리들이 있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과,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을 나는 습관처럼 이해가 안된다고 말하곤 했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대부분 이해가 안되는 일이 아니라 인정을 하기 싫은 일들이었다.



4. 삶에서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내가 이것들을 다 이해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보다
노래마을의 나이 서른에 우린이 더 좋다.

내게는 아름다운 미화와 그리움보다는
앞으로도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서른이고, 마흔이고  싶어서 그렇다.





3
  • 추천을 인정하는 서른이 되시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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