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 16/05/15 14:48:16 |
Name | 김보노 |
Subject | 시빌워 흥행을 보며 느끼는 이중잣대 |
현재 국내의 역대 박스오피스 1위는 <명량> 입니다. 약 1700만명이 관람했죠. 온라인 세계는 넓어 일반화 할 수 없지만, 한창 <명량>이 상영할 당시 제가 방문하는 커뮤니티마다 <명량>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었습니다. '자사영화 밀어주기다.', '스크린 독과점으로 만든 흥행이다.' 뭐 이런 비판이었어요. 사실 자료를 찾아보면 저 비판의 근거는 부족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CJ의 자사 영화 밀어주기라기에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의 <명량> 점유율이 높았습니다. 독과점으로 만들어진 흥행이라기에는 <명량>이 상영하고 하루 관람객이 큰 폭으로 늘어납니다. 객석점유율도 높았구요. 수요에 따른 스크린 확대라고 할 만했습니다. CJ측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구요. 다만, 흥행 영화가 있더라도 다른 영화에 일정 스크린을 할당하는 것이 옳지 않겠냐는 주장에는 공감이 갔습니다. 명색이 멀티플렉스인데 한 영화가 도배되어 있으면 곤란하잖아요. 다른 영화에도 기회를 줘야지요. 그래서 <시빌워>에 호평만 보이는게 의아합니다. 왜 <시빌워>의 독과점을 비판하는 글을 보이지 않는 걸까요? <명량>보다 더 많은 스크린을 차지했는데 말입니다.(<명량> 최대 1,587, <시빌워> 1,990) 작품성이 차이나기 때문일까요? 저도 <명량>은 별로였고 <시빌워> 재밌게 봤습니다만, 독과점의 잣대가 작품성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되겠죠. 결국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못 보니 꺼내는 정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명량>의 독과점으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못 본다는 불만이 많았거든요. 과연 <가오갤>이 흥행해 <명량>만큼 스크린을 차지했다면 독과점에 대한 말이 나왔을지를 생각하면 씁쓸합니다.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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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과점에 관한 제 생각은
1. 독과점이 흥행을 유도하지는 못한다. 즉, 흥행할 작품은 독과점과 상관없이 흥행한다. 다만, 5~600만 짜리 작품이 1000만 작품이 되려면 독과점이 필요하다. 독과점은 대박 → 초대박으로 만들 수 있지만 쪽박 → 대박으로 만들 순 없다.
2. 그런데 독과점이 흥행을 유도한다는 잘못된 시선 아래 몇몇 작품에 대한 폄하가 심하다. 명량, 국제시장, 검사외전 등의 작품이 훌륭한 작품성을 갖추진 못했을지언정 흥행을 위한 단 한가지 미덕조차 갖추지 못한 작품은 아니었다. 흥행할 자격이 있는 작품이 흥행을... 더 보기
1. 독과점이 흥행을 유도하지는 못한다. 즉, 흥행할 작품은 독과점과 상관없이 흥행한다. 다만, 5~600만 짜리 작품이 1000만 작품이 되려면 독과점이 필요하다. 독과점은 대박 → 초대박으로 만들 수 있지만 쪽박 → 대박으로 만들 순 없다.
2. 그런데 독과점이 흥행을 유도한다는 잘못된 시선 아래 몇몇 작품에 대한 폄하가 심하다. 명량, 국제시장, 검사외전 등의 작품이 훌륭한 작품성을 갖추진 못했을지언정 흥행을 위한 단 한가지 미덕조차 갖추지 못한 작품은 아니었다. 흥행할 자격이 있는 작품이 흥행을... 더 보기
독과점에 관한 제 생각은
1. 독과점이 흥행을 유도하지는 못한다. 즉, 흥행할 작품은 독과점과 상관없이 흥행한다. 다만, 5~600만 짜리 작품이 1000만 작품이 되려면 독과점이 필요하다. 독과점은 대박 → 초대박으로 만들 수 있지만 쪽박 → 대박으로 만들 순 없다.
2. 그런데 독과점이 흥행을 유도한다는 잘못된 시선 아래 몇몇 작품에 대한 폄하가 심하다. 명량, 국제시장, 검사외전 등의 작품이 훌륭한 작품성을 갖추진 못했을지언정 흥행을 위한 단 한가지 미덕조차 갖추지 못한 작품은 아니었다. 흥행할 자격이 있는 작품이 흥행을 했는데, 이걸 독과점을 핑계로 망작을 유통이 살렸다느니, 국민 수준이 모자르다느니 하는 것은 옳지 않다.
3. 배 v 슈를 보아라. 아무리 쏟아 부어도 똥은 똥값 한다.
4. 그러나 이는 \'독과점에 의해 폄하당한 작품\'을 위한 항변이지, 독과점 자체에 관한 옹호는 될 수 없다. 애당초 개봉주차부터 흥행할 만한 작품을 밀어주는 스크린 배분 부터가 이미 독과점이다. 멀티플렉스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최소 1스크린 1작품 1일 개봉 정도는 보장해라.
5. 독과점의 화살이 스크린을 점유한 \'작품\'을 향해서는 안 된다. 비난의 화살은 배급사와 극장에 돌려야 한다. 왜 작품이 독과점을 근거로 판단되어야 하는가? 김한민, 윤제균이 아무리 맘에 안드는 감독이긴 하다만, 그들이 스크린을 독과점 한 게 아닌데.
1. 독과점이 흥행을 유도하지는 못한다. 즉, 흥행할 작품은 독과점과 상관없이 흥행한다. 다만, 5~600만 짜리 작품이 1000만 작품이 되려면 독과점이 필요하다. 독과점은 대박 → 초대박으로 만들 수 있지만 쪽박 → 대박으로 만들 순 없다.
2. 그런데 독과점이 흥행을 유도한다는 잘못된 시선 아래 몇몇 작품에 대한 폄하가 심하다. 명량, 국제시장, 검사외전 등의 작품이 훌륭한 작품성을 갖추진 못했을지언정 흥행을 위한 단 한가지 미덕조차 갖추지 못한 작품은 아니었다. 흥행할 자격이 있는 작품이 흥행을 했는데, 이걸 독과점을 핑계로 망작을 유통이 살렸다느니, 국민 수준이 모자르다느니 하는 것은 옳지 않다.
3. 배 v 슈를 보아라. 아무리 쏟아 부어도 똥은 똥값 한다.
4. 그러나 이는 \'독과점에 의해 폄하당한 작품\'을 위한 항변이지, 독과점 자체에 관한 옹호는 될 수 없다. 애당초 개봉주차부터 흥행할 만한 작품을 밀어주는 스크린 배분 부터가 이미 독과점이다. 멀티플렉스라는 이름값을 하려면 최소 1스크린 1작품 1일 개봉 정도는 보장해라.
5. 독과점의 화살이 스크린을 점유한 \'작품\'을 향해서는 안 된다. 비난의 화살은 배급사와 극장에 돌려야 한다. 왜 작품이 독과점을 근거로 판단되어야 하는가? 김한민, 윤제균이 아무리 맘에 안드는 감독이긴 하다만, 그들이 스크린을 독과점 한 게 아닌데.
독과점과 관련해서 같은 비판 많이 접해봤는데요, 독과점은 개봉시 스크린 점유에만 있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도 말하셨듯, 한 영화가 흐름 타면 다른 영화 빨리 내리고 그 자리에 잘나가는 영화 올려놓는것도 독과점의 범주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시빌워와 명량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중잣대라고 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명량 독과점 비판 자체는 개봉 전에도 있었지만 그런 의견들이 거세진건 뉴스에서 1300만~1500만 돌파하면서 각 매체에서 톱뉴스로 다루면서부터 본격적인 비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해무 해적 역시 당 해 한국영화 빅4... 더 보기
그리고 시빌워와 명량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중잣대라고 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명량 독과점 비판 자체는 개봉 전에도 있었지만 그런 의견들이 거세진건 뉴스에서 1300만~1500만 돌파하면서 각 매체에서 톱뉴스로 다루면서부터 본격적인 비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해무 해적 역시 당 해 한국영화 빅4... 더 보기
독과점과 관련해서 같은 비판 많이 접해봤는데요, 독과점은 개봉시 스크린 점유에만 있지 않습니다. 본문에서도 말하셨듯, 한 영화가 흐름 타면 다른 영화 빨리 내리고 그 자리에 잘나가는 영화 올려놓는것도 독과점의 범주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시빌워와 명량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중잣대라고 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명량 독과점 비판 자체는 개봉 전에도 있었지만 그런 의견들이 거세진건 뉴스에서 1300만~1500만 돌파하면서 각 매체에서 톱뉴스로 다루면서부터 본격적인 비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해무 해적 역시 당 해 한국영화 빅4로 불리면서 연이어 개봉했습니다. 해무 600여관, 해적 800여관으로 명량 개봉 스크린 수에 비하면 부족한 듯 보이지만, 그렇게 따지면 군도는 명량보다 많은 1250개를 먹고 있었죠.
시빌워가 압도적인 개봉 스크린으로 독과점 비판을 받는다면 그럴수 있다고 봅니다만, 명량과는 좀 다릅니다. 명량과 같은 맥락으로 비판 받으려면, 지금보다 최소 1, 2주 많으면 한달 뒤까지 연일 기록 경신하면서 제때 개봉했어야 할 영화들 다 상영관에서 밀어내고 혼자 독식하는 구조가 나와야 같은 맥락으로 비판이 가능합니다. 그만큼 시빌워 뒷심이 명량보다 안좋다는 이야기도 되구요.
독과점 비판하는 글에 반박글로 개봉 당시 스크린 숫자를 가져오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독과점에 대한 비판은 개봉 당시 스크린 숫자만 가지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빌워와 명량을 동일선상에 놓고 이중잣대라고 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명량 독과점 비판 자체는 개봉 전에도 있었지만 그런 의견들이 거세진건 뉴스에서 1300만~1500만 돌파하면서 각 매체에서 톱뉴스로 다루면서부터 본격적인 비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해무 해적 역시 당 해 한국영화 빅4로 불리면서 연이어 개봉했습니다. 해무 600여관, 해적 800여관으로 명량 개봉 스크린 수에 비하면 부족한 듯 보이지만, 그렇게 따지면 군도는 명량보다 많은 1250개를 먹고 있었죠.
시빌워가 압도적인 개봉 스크린으로 독과점 비판을 받는다면 그럴수 있다고 봅니다만, 명량과는 좀 다릅니다. 명량과 같은 맥락으로 비판 받으려면, 지금보다 최소 1, 2주 많으면 한달 뒤까지 연일 기록 경신하면서 제때 개봉했어야 할 영화들 다 상영관에서 밀어내고 혼자 독식하는 구조가 나와야 같은 맥락으로 비판이 가능합니다. 그만큼 시빌워 뒷심이 명량보다 안좋다는 이야기도 되구요.
독과점 비판하는 글에 반박글로 개봉 당시 스크린 숫자를 가져오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독과점에 대한 비판은 개봉 당시 스크린 숫자만 가지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흥행 추이에 따른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되는 걸까요? 일단 관객 많이 오는 작품 걸어서 돈이나 벌겠다는 극장측? 물들어 올 때 노저어야 되니깐 머라하건 독과점 하겠다는 배급사측?
이 둘의 책임도 크겠지만, 평소에 작지만 좋은 영화를 찾아주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부터 거의 매주 극장에 갔습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라면 극장 전세내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이런 상황인데 극장측에서 기꺼이 흥행작을 내리고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걸어줄 리가 만무하죠. 독과점 욕을... 더 보기
이 둘의 책임도 크겠지만, 평소에 작지만 좋은 영화를 찾아주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부터 거의 매주 극장에 갔습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라면 극장 전세내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이런 상황인데 극장측에서 기꺼이 흥행작을 내리고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걸어줄 리가 만무하죠. 독과점 욕을... 더 보기
그런데 흥행 추이에 따른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되는 걸까요? 일단 관객 많이 오는 작품 걸어서 돈이나 벌겠다는 극장측? 물들어 올 때 노저어야 되니깐 머라하건 독과점 하겠다는 배급사측?
이 둘의 책임도 크겠지만, 평소에 작지만 좋은 영화를 찾아주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부터 거의 매주 극장에 갔습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라면 극장 전세내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이런 상황인데 극장측에서 기꺼이 흥행작을 내리고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걸어줄 리가 만무하죠. 독과점 욕을 먹더라도 일단 흥행작을 걸면 가장 사람 없는 시간대에도 20명은 옵니다. 같은 시간에 예술영화 걸어 놓으면 5명도 안 들어오죠.
흥행 여부도 모르는 개봉주차 부터 스크린 때려박는 꼴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뻘짓입니다만, 일단 흥행한 뒤에 스크린을 늘리는 걸 비판하기에는 명분이 없어요. 장사꾼들한테 문화 다양성이니 이런 걸 들이대봤자죠. 그러니 법으로 규제를 하던가, 예술영화 관객 수가 유의미한 수치를 기록하던가 해야겠죠.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해서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빼면 유통/소비하는 쪽에서는 아무도 큰 소리 칠 자격 없다고 봅니다. 전부 반성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되요.
이 둘의 책임도 크겠지만, 평소에 작지만 좋은 영화를 찾아주지 않는 관객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년부터 거의 매주 극장에 갔습니다. 독립영화, 예술영화라면 극장 전세내는 상황이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이런 상황인데 극장측에서 기꺼이 흥행작을 내리고 독립영화, 예술영화를 걸어줄 리가 만무하죠. 독과점 욕을 먹더라도 일단 흥행작을 걸면 가장 사람 없는 시간대에도 20명은 옵니다. 같은 시간에 예술영화 걸어 놓으면 5명도 안 들어오죠.
흥행 여부도 모르는 개봉주차 부터 스크린 때려박는 꼴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뻘짓입니다만, 일단 흥행한 뒤에 스크린을 늘리는 걸 비판하기에는 명분이 없어요. 장사꾼들한테 문화 다양성이니 이런 걸 들이대봤자죠. 그러니 법으로 규제를 하던가, 예술영화 관객 수가 유의미한 수치를 기록하던가 해야겠죠.
스크린 독과점과 관련해서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빼면 유통/소비하는 쪽에서는 아무도 큰 소리 칠 자격 없다고 봅니다. 전부 반성하고,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되요.
그건 기업 논리에 기업 논리로 받아치는 논리가 되죠. 한편으로는 기업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독과점의 방패이기도 하구요. 문화적 다양성은 \"기업논리\"와 다른 선상에 있습니다. 그건 문화토양에 대한 이야기지 공급과 수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억울하면 니들이 팔아주면 될 거 아니냐, 라는 이야기와 다를 게 없는데 그렇게 치면 소비자들의 원성을 더더욱 무시할 수 없죠. 좋은 시간대에 걸어줘야 볼 수 있을 거 아니냐! 라고 항변할 수 있는걸요. 아예 개봉 첫주부터 24:00 25:00 이런 식의 심야 시간대에, 정말 몇개 안되... 더 보기
억울하면 니들이 팔아주면 될 거 아니냐, 라는 이야기와 다를 게 없는데 그렇게 치면 소비자들의 원성을 더더욱 무시할 수 없죠. 좋은 시간대에 걸어줘야 볼 수 있을 거 아니냐! 라고 항변할 수 있는걸요. 아예 개봉 첫주부터 24:00 25:00 이런 식의 심야 시간대에, 정말 몇개 안되... 더 보기
그건 기업 논리에 기업 논리로 받아치는 논리가 되죠. 한편으로는 기업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독과점의 방패이기도 하구요. 문화적 다양성은 \"기업논리\"와 다른 선상에 있습니다. 그건 문화토양에 대한 이야기지 공급과 수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에요.
억울하면 니들이 팔아주면 될 거 아니냐, 라는 이야기와 다를 게 없는데 그렇게 치면 소비자들의 원성을 더더욱 무시할 수 없죠. 좋은 시간대에 걸어줘야 볼 수 있을 거 아니냐! 라고 항변할 수 있는걸요. 아예 개봉 첫주부터 24:00 25:00 이런 식의 심야 시간대에, 정말 몇개 안되는 관만 배정하는 멀티플렉스의 상술은 전혀 공정하지 못합니다.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는 조건에 걸어놓으니 볼 수가 없는 것이죠. 소비자들이 소비가 불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건 \"공급자\"인데 여기서 소비자가 뭘 더 반성하고 노력해야 할까요.
이런 식의 기업 대 소비자 구조에서 늘 \"화폐저항\"만이 답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런 식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들\"이지 시류에 그냥 업혀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작은 영화들이 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는 이들은 \"보러가고 싶어 하는 소비자\" 자신들이에요. (이런 이분법이 좀 웃긴게...\"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뻔하디 뻔한 한국 영화 보기 싫은 사람도 당연히 주도적으로 소비하려는 계층에 속하게 되지요. 소규모 영화를 팔아주냐 안팔아주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젠 좀 새로운 것 좀 보고 싶다! 고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당연히 문화적 다양성을 외치는 주체가 되는 겁니다) 애초에 갯수와 시간대에서 관 배정부터 엉망으로 해버리면 \"소비\"로 항의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건 구조의 문제고 거기서 소비자들은 \"책임\"을 질 수도 없으며 져야 할 당위도 공급자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아요. 소비자의 책임 이전에, 공급자의 배급과 마케팅, 수직계열화까지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비자가 암만 소규모 영화 팔아줘야 그냥 멀티플렉스 장삿속 채워주는 것밖에는 안됩니다.
억울하면 니들이 팔아주면 될 거 아니냐, 라는 이야기와 다를 게 없는데 그렇게 치면 소비자들의 원성을 더더욱 무시할 수 없죠. 좋은 시간대에 걸어줘야 볼 수 있을 거 아니냐! 라고 항변할 수 있는걸요. 아예 개봉 첫주부터 24:00 25:00 이런 식의 심야 시간대에, 정말 몇개 안되는 관만 배정하는 멀티플렉스의 상술은 전혀 공정하지 못합니다.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는 조건에 걸어놓으니 볼 수가 없는 것이죠. 소비자들이 소비가 불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건 \"공급자\"인데 여기서 소비자가 뭘 더 반성하고 노력해야 할까요.
이런 식의 기업 대 소비자 구조에서 늘 \"화폐저항\"만이 답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런 식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보고 싶어도 못 보는 사람들\"이지 시류에 그냥 업혀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작은 영화들이 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는 이들은 \"보러가고 싶어 하는 소비자\" 자신들이에요. (이런 이분법이 좀 웃긴게...\"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뻔하디 뻔한 한국 영화 보기 싫은 사람도 당연히 주도적으로 소비하려는 계층에 속하게 되지요. 소규모 영화를 팔아주냐 안팔아주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젠 좀 새로운 것 좀 보고 싶다! 고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도 당연히 문화적 다양성을 외치는 주체가 되는 겁니다) 애초에 갯수와 시간대에서 관 배정부터 엉망으로 해버리면 \"소비\"로 항의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건 구조의 문제고 거기서 소비자들은 \"책임\"을 질 수도 없으며 져야 할 당위도 공급자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하지 않아요. 소비자의 책임 이전에, 공급자의 배급과 마케팅, 수직계열화까지 이야기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소비자가 암만 소규모 영화 팔아줘야 그냥 멀티플렉스 장삿속 채워주는 것밖에는 안됩니다.
심야시간에만 걸리는 영화들을 황금시간대에 내건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볼까요. 오히려 멀티플랙스는 좋은 시간대에 흥행영화를 못보게 된 관객들의 항의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멀티플렉스의 상술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셨지만, 이익 추구를 떠나 \'보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은 영화에게 스크린을 할당한다\'도 어떤 면에서 공정한 거 아닐까요. 더군다나 심야시간이라 보러 오는 사람이 적다지만, 같은 심야시간대의 대형영화보다 관람객이 적기 부지기수인걸요. 그리고 멀티플렉스 외에도 작은 상영관, VOD 등 다른 채널도 존재합니다. 물론 대형영화... 더 보기
심야시간에만 걸리는 영화들을 황금시간대에 내건다고 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볼까요. 오히려 멀티플랙스는 좋은 시간대에 흥행영화를 못보게 된 관객들의 항의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멀티플렉스의 상술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하셨지만, 이익 추구를 떠나 \'보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은 영화에게 스크린을 할당한다\'도 어떤 면에서 공정한 거 아닐까요. 더군다나 심야시간이라 보러 오는 사람이 적다지만, 같은 심야시간대의 대형영화보다 관람객이 적기 부지기수인걸요. 그리고 멀티플렉스 외에도 작은 상영관, VOD 등 다른 채널도 존재합니다. 물론 대형영화들 보는 것처럼 편히 찾아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영화 뿐만 아니라 모든 취미에서 소수파는 힘들잖아요..
마지막 문단은 지금까지 얘기했던 상영의 공정함이 아닌, 제작의 다양성에 대한 얘깃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쪽은 잘 몰라서 말씀드릴게 없네요ㅠ
마지막 문단은 지금까지 얘기했던 상영의 공정함이 아닌, 제작의 다양성에 대한 얘깃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쪽은 잘 몰라서 말씀드릴게 없네요ㅠ
오히려 공정함은 그 반대측면에서 조명받는 측면이 많습니다. 51대 49라는 의견에서는 51이 더 많아서 51의 의견대로 모든게 결정되면 오히려 굉장한 불합리함이 도출되기도 하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경쟁도 마찬가지죠. 대기업의 서비스, 제품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다 배치시켜버리면 경쟁은 도태되고 지금 상영관처럼 절대적인 독과점이 산출되기 마련이죠.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교육은 하루아침에 누군가가 깨닫는게 아닙니다. 주변에서 다양한걸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접해져야 소비자들이 다양한 것을 보러가는 계기가 느껴지죠.
결국... 더 보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경쟁도 마찬가지죠. 대기업의 서비스, 제품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다 배치시켜버리면 경쟁은 도태되고 지금 상영관처럼 절대적인 독과점이 산출되기 마련이죠.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교육은 하루아침에 누군가가 깨닫는게 아닙니다. 주변에서 다양한걸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접해져야 소비자들이 다양한 것을 보러가는 계기가 느껴지죠.
결국... 더 보기
오히려 공정함은 그 반대측면에서 조명받는 측면이 많습니다. 51대 49라는 의견에서는 51이 더 많아서 51의 의견대로 모든게 결정되면 오히려 굉장한 불합리함이 도출되기도 하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경쟁도 마찬가지죠. 대기업의 서비스, 제품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다 배치시켜버리면 경쟁은 도태되고 지금 상영관처럼 절대적인 독과점이 산출되기 마련이죠.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교육은 하루아침에 누군가가 깨닫는게 아닙니다. 주변에서 다양한걸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접해져야 소비자들이 다양한 것을 보러가는 계기가 느껴지죠.
결국은 한 시점에서는 대중적인 인기에 따른 판단이 관점이 공정해보이더라도 결국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것이 공정해보이는 결과는 별로 없기에 중소기업 보호나 비례대표 혹은 문화 다양성 등의 정책이 고려되고 권유되는 거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경쟁도 마찬가지죠. 대기업의 서비스, 제품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다 배치시켜버리면 경쟁은 도태되고 지금 상영관처럼 절대적인 독과점이 산출되기 마련이죠.
문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화교육은 하루아침에 누군가가 깨닫는게 아닙니다. 주변에서 다양한걸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접해져야 소비자들이 다양한 것을 보러가는 계기가 느껴지죠.
결국은 한 시점에서는 대중적인 인기에 따른 판단이 관점이 공정해보이더라도 결국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것이 공정해보이는 결과는 별로 없기에 중소기업 보호나 비례대표 혹은 문화 다양성 등의 정책이 고려되고 권유되는 거죠.
제 댓글이 유통측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소비측에도 책임이 없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죠. 중소 영화 보호하라고 말만 하지 말고 직접 가서 봐달라는 요청이자 하소연 입니다. 인터넷에서만 큰소리 치지 말자는 거죠.
소비자들에게는 이미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있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정보 제공이 과할 정도죠. 계기는 충분한데 서비스 제공이 따라오질 못하니 독과점이라는 비판과 불만이 나오죠. 그런데 이런 불만이 나온지 벌써 10년은 되가는 것 같은데, 현상은 유지되고 유통측은 마음을 안 바꿉니다. 무시해도 되는, 수익과 연결되지 않는 인터넷 찻잔속 폭풍이라는 게 밝혀졌거든요. 그러니 이 현상을 바꾸기 위해 유통측에만 책임을 물을게 아니라 소비측도 능동적으로 사태를 변화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는 셈이죠.
소비자들에게는 이미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있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정보 제공이 과할 정도죠. 계기는 충분한데 서비스 제공이 따라오질 못하니 독과점이라는 비판과 불만이 나오죠. 그런데 이런 불만이 나온지 벌써 10년은 되가는 것 같은데, 현상은 유지되고 유통측은 마음을 안 바꿉니다. 무시해도 되는, 수익과 연결되지 않는 인터넷 찻잔속 폭풍이라는 게 밝혀졌거든요. 그러니 이 현상을 바꾸기 위해 유통측에만 책임을 물을게 아니라 소비측도 능동적으로 사태를 변화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는 셈이죠.
앞서 댓글에 말씀드렸다시피, 기업 논리를 제하고도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수요에 따른 상영도 나름의 정의가 있습니다. 소규모 영화에 관심 없는 관객이 대다수인게 사실이니까요.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멀티플렉스 뿐이라면 기업의 수익활동을 규제해서라도 소규모 영화의 자리를 만들어 줄 필요가 크겠지만, 지금은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독과점 규제가 필요한 걸까요. 소규모 영화를 보고 싶은 소수의 관객은 감상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소규모 ... 더 보기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독과점 규제가 필요한 걸까요. 소규모 영화를 보고 싶은 소수의 관객은 감상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소규모 ... 더 보기
앞서 댓글에 말씀드렸다시피, 기업 논리를 제하고도 '더 많은 사람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수요에 따른 상영도 나름의 정의가 있습니다. 소규모 영화에 관심 없는 관객이 대다수인게 사실이니까요.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멀티플렉스 뿐이라면 기업의 수익활동을 규제해서라도 소규모 영화의 자리를 만들어 줄 필요가 크겠지만, 지금은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졌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독과점 규제가 필요한 걸까요. 소규모 영화를 보고 싶은 소수의 관객은 감상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소규모 영화에 관심없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요? 좋은 시간대에 소규모 영화를 건다고 관심 없던 관객이 볼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규모 영화를 찾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상영시간 때문이 아니라고 봐요. 대중의 취향에 맞는 소규모 영화는 인기를 얻어 스크린도 늘고 흥행하기도 하죠. 드물지만 몇몇 예의 영화들이 있잖아요. 소규모 영화의 관람 인원이 적은건 시간대가 아니라 그저 대중의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이겠죠. 이건 기업논리가 아니에요. 더 많은 사람의 관람권을 제한하면서 다양성을 지켜야 하는가의 문제죠.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독과점 규제가 필요한 걸까요. 소규모 영화를 보고 싶은 소수의 관객은 감상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소규모 영화에 관심없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요? 좋은 시간대에 소규모 영화를 건다고 관심 없던 관객이 볼지 의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규모 영화를 찾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상영시간 때문이 아니라고 봐요. 대중의 취향에 맞는 소규모 영화는 인기를 얻어 스크린도 늘고 흥행하기도 하죠. 드물지만 몇몇 예의 영화들이 있잖아요. 소규모 영화의 관람 인원이 적은건 시간대가 아니라 그저 대중의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이겠죠. 이건 기업논리가 아니에요. 더 많은 사람의 관람권을 제한하면서 다양성을 지켜야 하는가의 문제죠.
그러니까 결국 둘 다 정도의 문제인데, 안그래도 상업적 측면에서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없는 영화들을 더 구석으로 몰고 가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 정도가 심하다는 거죠. 다른 데 가서 보면 되지 않냐는 말은 달리 말해서 환경 열악하고 지리적 요건이나 다른 혜택도 대형기업만큼의 조건이 안되는 극장들에 가서 불편하게 봐라 라는 이야기랑 똑같습니다.
지금 하시는 이야기가 수요와 공급의 논리입니다. 그게 전부가 되지 않도록 멀티플렉스의 소규모 영화 상영이 다른 식으로 되어야한다는 게 제 주장이구요. 그렇게 총 관객수를 유일한 기준... 더 보기
지금 하시는 이야기가 수요와 공급의 논리입니다. 그게 전부가 되지 않도록 멀티플렉스의 소규모 영화 상영이 다른 식으로 되어야한다는 게 제 주장이구요. 그렇게 총 관객수를 유일한 기준... 더 보기
그러니까 결국 둘 다 정도의 문제인데, 안그래도 상업적 측면에서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없는 영화들을 더 구석으로 몰고 가는 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 정도가 심하다는 거죠. 다른 데 가서 보면 되지 않냐는 말은 달리 말해서 환경 열악하고 지리적 요건이나 다른 혜택도 대형기업만큼의 조건이 안되는 극장들에 가서 불편하게 봐라 라는 이야기랑 똑같습니다.
지금 하시는 이야기가 수요와 공급의 논리입니다. 그게 전부가 되지 않도록 멀티플렉스의 소규모 영화 상영이 다른 식으로 되어야한다는 게 제 주장이구요. 그렇게 총 관객수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으면 사실 예술영화고 독립영화고 다 지원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전 다른 커뮤니티나 sns의 여론을 보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크로닉> 같은 경우만 해도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는 항의성 글들이 많았어요. 제가 무슨 상황을 가정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수요의 불만을 말씀드리는 거죠
지금 하시는 이야기가 수요와 공급의 논리입니다. 그게 전부가 되지 않도록 멀티플렉스의 소규모 영화 상영이 다른 식으로 되어야한다는 게 제 주장이구요. 그렇게 총 관객수를 유일한 기준으로 삼으면 사실 예술영화고 독립영화고 다 지원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전 다른 커뮤니티나 sns의 여론을 보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크로닉> 같은 경우만 해도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다는 항의성 글들이 많았어요. 제가 무슨 상황을 가정하는 게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는 수요의 불만을 말씀드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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