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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16/04/21 23:05:44 |
Name | 김보노 |
Subject | 슬견설 - 이와 개의 목숨은 같은가 |
슬견설 아시나요? 중학교 교과서엔가 실린 작품인데 고려의 문신 이규보의 작품입니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규보의 집에 손님이 방문합니다. 손님이 말하기를 오는 길에 어떤 이가 개를 때려죽이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파 앞으로는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이규보는 어떤 사람이 이를 잡아 태워죽이는 걸 보고 마음이 아파 다시는 이를 잡지않겠다고 말합니다. 손님은 자신을 조롱한다고 여겨 어찌 개와 이가 같냐고 화를내자 이규보는 같은 생명에 경중이 다르겠냐고 말합니다.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품을 꼽아보라고 할때, 저는 슬견설을 꼽습니다. 교과서에 실린 짧은 작품이지만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됐거든요. 얼마전 캣맘 논란을 보면서 슬견설이 떠올랐습니다. 귓가에 앵앵거리는 모기를 손으로 때려잡는 것과 심야에 시끄럽게 우는 고양이를 죽이는 것. 이 둘에 어떤 도덕적 차이가 있을까 하고요. 물론 고양이를 죽인다고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아마 이웃이 고양이를 때려 죽이는 걸 보면 멀리할거에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입장입니다. 만약 고양이 죽이는 이웃을 말리는데 그 이웃이 모기 때려잡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고 한다면 저는 뭐라고 반박해야할까요? 더 나아가 필요 이상의 고기를 먹겠다고 동물을 죽이는데 일조하는 주제에 위선 떨지말라고한다면요? 저는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면 대부분 그렇겠지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도덕도 자신의 인지 범위와 애정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기르는 개는 가족과 다름 없지만 평생 좁은 곳에서 길러진 돼지의 시체를 즐겨 먹고, 나와 관계없는 사람의 범죄에는 엄벌을 요구하지만 내 친구의 범죄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여깁니다. 어쩔 수 없이 팔은 안쪽으로 굽는가 봅니다. 미적지근한 결론이지만, 결국 타협과 관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생명은 모두 소중하니 어떤 동물도 죽이지 말자'와 '동물을 죽이는 것은 자유다' 사이 그 어딘가, 혹은 '범죄는 가차없이 처벌해야 한다'와 '관용을 배풀어 용서하자'의 사이 어느 지점에 최선의 답이 있겠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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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 작품입니다.
개나 고양이를 이유없이 학대하고 죽이는 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이면 돼지, 소, 닭을 오로지 사육목적으로 좁은 데에서 키우다가 죽이는 것은 어떤가, 라고 질문점이 떠오릅니다.
[개-고양이-돼지-소-닭]과 [모기, 파리, 바퀴벌레] 그리고 [박테리아]가 다른 생명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짜피 도덕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 외의 모든 생명은 다 그 가치가 동등합니다.
지능의 우열도, 감정의 유무도, ... 모두 생명의 가치를 논할 기준이 될 수 없어요.
개나 고양이를 이유없이 학대하고 죽이는 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식이면 돼지, 소, 닭을 오로지 사육목적으로 좁은 데에서 키우다가 죽이는 것은 어떤가, 라고 질문점이 떠오릅니다.
[개-고양이-돼지-소-닭]과 [모기, 파리, 바퀴벌레] 그리고 [박테리아]가 다른 생명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어짜피 도덕은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 외의 모든 생명은 다 그 가치가 동등합니다.
지능의 우열도, 감정의 유무도, ... 모두 생명의 가치를 논할 기준이 될 수 없어요.
아 이게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서 그렇게 널리 퍼진 논리군요. 우리 때는 안 실려 있었던가 가물가물한뎅... 동물옹호파와 반대파 사이에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반대파가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이유를 알았어요. 교과서가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네요. \'개를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이는 죽이냐? 이중적이다\' 하는 공격논리는 제가 생각하기엔 슬견설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거예요.
이규보는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아서 작은 미물들의 생명을 성찰하는 작품을 여럿 남겼어요. 작중의 이규보는 정말로 이의 목숨이 개만큼 중요하다고 생각... 더 보기
이규보는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아서 작은 미물들의 생명을 성찰하는 작품을 여럿 남겼어요. 작중의 이규보는 정말로 이의 목숨이 개만큼 중요하다고 생각... 더 보기
아 이게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서 그렇게 널리 퍼진 논리군요. 우리 때는 안 실려 있었던가 가물가물한뎅... 동물옹호파와 반대파 사이에 논쟁이 벌어질 때마다 반대파가 그렇게 자신감 넘치는 이유를 알았어요. 교과서가 자신들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네요. \'개를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이는 죽이냐? 이중적이다\' 하는 공격논리는 제가 생각하기엔 슬견설의 의도를 잘못 이해한 거예요.
이규보는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아서 작은 미물들의 생명을 성찰하는 작품을 여럿 남겼어요. 작중의 이규보는 정말로 이의 목숨이 개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개고기 반대파인 손님을 공격하기 위해 이를 끌어온 게 아니고,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의 목숨\'을 강조하기 위해 손님과 개를 끌어들인 거죠. 목적이 완전히 달라요. 하지만 대부분의 개고기 찬성파들은, 본인도 모기나 파리의 목숨이 중요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고기 먹지 말자는 논적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려는 의도로 동물 생명 평등권을 끌어오죠. \'다 먹자(인간은 모든 동물의 생명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사람들이 동물권을 \'먹자\'의 근거로 이야기한다는 건 이율배반이죠.
이규보가 원했던 독자들은 자기 글을 읽고 \'이의 목숨\'도 소중하게 여기게 될 고려시대의 생태주의적 불교인들이었겠지요. 현대로 들어와 이 작품이 동물권 반대파의 근거로 전용되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을 거예요. 아이러니네요.
이규보는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아서 작은 미물들의 생명을 성찰하는 작품을 여럿 남겼어요. 작중의 이규보는 정말로 이의 목숨이 개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예요. 개고기 반대파인 손님을 공격하기 위해 이를 끌어온 게 아니고, 본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의 목숨\'을 강조하기 위해 손님과 개를 끌어들인 거죠. 목적이 완전히 달라요. 하지만 대부분의 개고기 찬성파들은, 본인도 모기나 파리의 목숨이 중요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고기 먹지 말자는 논적의 허위의식을 폭로하려는 의도로 동물 생명 평등권을 끌어오죠. \'다 먹자(인간은 모든 동물의 생명을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사람들이 동물권을 \'먹자\'의 근거로 이야기한다는 건 이율배반이죠.
이규보가 원했던 독자들은 자기 글을 읽고 \'이의 목숨\'도 소중하게 여기게 될 고려시대의 생태주의적 불교인들이었겠지요. 현대로 들어와 이 작품이 동물권 반대파의 근거로 전용되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을 거예요. 아이러니네요.
뭐 꼭 이규보의 의도대로만 주장을 할 필요는 없죠.
거기에서 모티브만 따오면 될 뿐.
슈뢰딩거 고양이의 경우도 슈뢰딩거의 의도와 정반대로 쓰이지만, 문제될 게 없죠.
어짜피 인간 외의 생명들은, 인간이 그 가치를 정하기 나름입니다.
인간의 도덕은 결국 인간이 정하는 거죠.
현실과 형평성 사이에서 엄청 갈등이 되는데,
1. 개나 고양이가 학대당하고 죽는 게 불쌍하다.
2. 그러면 그 고기를 얻는 데에 쓰이는, 사육되는 돼지, 소, 닭은? 안 불쌍한가?
3. 그럼 지능을 가지는 정도, 혹은 감정을 느끼는... 더 보기
거기에서 모티브만 따오면 될 뿐.
슈뢰딩거 고양이의 경우도 슈뢰딩거의 의도와 정반대로 쓰이지만, 문제될 게 없죠.
어짜피 인간 외의 생명들은, 인간이 그 가치를 정하기 나름입니다.
인간의 도덕은 결국 인간이 정하는 거죠.
현실과 형평성 사이에서 엄청 갈등이 되는데,
1. 개나 고양이가 학대당하고 죽는 게 불쌍하다.
2. 그러면 그 고기를 얻는 데에 쓰이는, 사육되는 돼지, 소, 닭은? 안 불쌍한가?
3. 그럼 지능을 가지는 정도, 혹은 감정을 느끼는... 더 보기
뭐 꼭 이규보의 의도대로만 주장을 할 필요는 없죠.
거기에서 모티브만 따오면 될 뿐.
슈뢰딩거 고양이의 경우도 슈뢰딩거의 의도와 정반대로 쓰이지만, 문제될 게 없죠.
어짜피 인간 외의 생명들은, 인간이 그 가치를 정하기 나름입니다.
인간의 도덕은 결국 인간이 정하는 거죠.
현실과 형평성 사이에서 엄청 갈등이 되는데,
1. 개나 고양이가 학대당하고 죽는 게 불쌍하다.
2. 그러면 그 고기를 얻는 데에 쓰이는, 사육되는 돼지, 소, 닭은? 안 불쌍한가?
3. 그럼 지능을 가지는 정도, 혹은 감정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로써 불쌍하고 안 불쌍하고를 판별하자.
4. 그러면 지능이 떨어지는 지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보다 더 인권이 떨어진다는 거냐?
5. ...
6. 결국 인간 외의 생명들은 모두 다 소중하거나, 소중하지 않거나.. 하여튼, 다 동등하지 않다고 볼 이유가 없다.
7. 그런데 개, 고양이를 학대 안 하는 것만큼, 개미, 바퀴벌레, 파리, 모기도 안 죽일 거냐?
8. 결국 개, 고양이도 개미, 바퀴벌레.. 등등처럼 죽여도 된다..??
9. ....
끝이 없는 싸움이죠..;;
거기에서 모티브만 따오면 될 뿐.
슈뢰딩거 고양이의 경우도 슈뢰딩거의 의도와 정반대로 쓰이지만, 문제될 게 없죠.
어짜피 인간 외의 생명들은, 인간이 그 가치를 정하기 나름입니다.
인간의 도덕은 결국 인간이 정하는 거죠.
현실과 형평성 사이에서 엄청 갈등이 되는데,
1. 개나 고양이가 학대당하고 죽는 게 불쌍하다.
2. 그러면 그 고기를 얻는 데에 쓰이는, 사육되는 돼지, 소, 닭은? 안 불쌍한가?
3. 그럼 지능을 가지는 정도, 혹은 감정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로써 불쌍하고 안 불쌍하고를 판별하자.
4. 그러면 지능이 떨어지는 지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보다 더 인권이 떨어진다는 거냐?
5. ...
6. 결국 인간 외의 생명들은 모두 다 소중하거나, 소중하지 않거나.. 하여튼, 다 동등하지 않다고 볼 이유가 없다.
7. 그런데 개, 고양이를 학대 안 하는 것만큼, 개미, 바퀴벌레, 파리, 모기도 안 죽일 거냐?
8. 결국 개, 고양이도 개미, 바퀴벌레.. 등등처럼 죽여도 된다..??
9. ....
끝이 없는 싸움이죠..;;
엄청 짧아서 1분만에 읽어보실 수 있어요 ㅎㅎ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su-pil-bi-pyeong/seul-kyeon-seol.htm
아마 슬견설 중에서 \'이를 잡아 화로에 던지는 사람\'의 언급은 이규보 본인을 가리키는 거 같아요. 이규보는 \'이를 잡다\'라는 시도 썼는데, 이를 열심히 잡아 화로에 던질려다가 문득 \'아 내가 머하는 거지 얘도 생명인데...\' 하고 놓아주는 내용이랍니다.
http://www.seelotus.com/gojeon/gojeon/su-pil-bi-pyeong/seul-kyeon-seol.htm
아마 슬견설 중에서 \'이를 잡아 화로에 던지는 사람\'의 언급은 이규보 본인을 가리키는 거 같아요. 이규보는 \'이를 잡다\'라는 시도 썼는데, 이를 열심히 잡아 화로에 던질려다가 문득 \'아 내가 머하는 거지 얘도 생명인데...\' 하고 놓아주는 내용이랍니다.
아 저가 위에서 약간 애매하게 썼는데요, 슬견설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에서 \'그럼 파리는? 모기는?\'하고 논적을 공격하는 논리 자체가 동물생명권을 인정하는 기조 하에서만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이 슬견설 식의 논리는 기본적으로 동물해방파 내부의 논쟁에서는 유효해요. 위에서 기아트윈스 님이 적절한 예를 들어 주셨는데, 동물권 내부에서 파충류 보호론자들이 포유류에만 관심을 갖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넓히자고 호소하는 근거로는 쓸 수 있겠지요.
그런데 동물학대파(?)가 그런 논리를 끌어와 사용할 때, 슬견설을 머리에 떠올리고 그들의 논리를 긍정하면 좀 곤란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동물학대파(?)가 그런 논리를 끌어와 사용할 때, 슬견설을 머리에 떠올리고 그들의 논리를 긍정하면 좀 곤란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합리적인 선택지는 다음과 같은 것들밖에 없습니다.
1.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다르다. 그 기준은 인간 맘대로.
2.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보다 낮으면서) 같다. 하지만 그들을 최대한 존중하자.
3.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보다 낮으면서) 같다. 그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든 인간 맘대로다.
4.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과도 같으면서) 같다. 그래서 그들을 최대한 존중하자.
근데 이것들은 하나같이 다 문제가 조금씩은 있어요.(저는 2번~... 더 보기
1.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다르다. 그 기준은 인간 맘대로.
2.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보다 낮으면서) 같다. 하지만 그들을 최대한 존중하자.
3.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보다 낮으면서) 같다. 그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든 인간 맘대로다.
4.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과도 같으면서) 같다. 그래서 그들을 최대한 존중하자.
근데 이것들은 하나같이 다 문제가 조금씩은 있어요.(저는 2번~... 더 보기
합리적인 선택지는 다음과 같은 것들밖에 없습니다.
1.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다르다. 그 기준은 인간 맘대로.
2.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보다 낮으면서) 같다. 하지만 그들을 최대한 존중하자.
3.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보다 낮으면서) 같다. 그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든 인간 맘대로다.
4.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과도 같으면서) 같다. 그래서 그들을 최대한 존중하자.
근데 이것들은 하나같이 다 문제가 조금씩은 있어요.(저는 2번~3번 쪽이지만)
도덕은 결국 인간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외의 동물에게 적용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점이 있죠.
1.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다르다. 그 기준은 인간 맘대로.
2.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보다 낮으면서) 같다. 하지만 그들을 최대한 존중하자.
3.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보다 낮으면서) 같다. 그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든 인간 맘대로다.
4. 인간 외의 동물들은 그 중요도, 가치가 (인간과도 같으면서) 같다. 그래서 그들을 최대한 존중하자.
근데 이것들은 하나같이 다 문제가 조금씩은 있어요.(저는 2번~3번 쪽이지만)
도덕은 결국 인간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 외의 동물에게 적용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따르는 점이 있죠.
음... 사람의 생각이란 상당히 복잡하고, 몇몇 유사성이 보인다고 해서 너 생각은 xx에서 유래한거야!!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뭣보다 쟤는 ~하는데 왜 나만 안돼? 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유딩때부터 쓰게되는 유서깊은 논리니까요. 저는 그런 논리가 그저...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좋은 논리는 아니지만 비난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거든요. 일반적인 사람이 자라면서 습득한 윤리규범에서는 동물은 사람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에 가깝거든요.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 더 보기
음... 사람의 생각이란 상당히 복잡하고, 몇몇 유사성이 보인다고 해서 너 생각은 xx에서 유래한거야!!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뭣보다 쟤는 ~하는데 왜 나만 안돼? 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유딩때부터 쓰게되는 유서깊은 논리니까요. 저는 그런 논리가 그저...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좋은 논리는 아니지만 비난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말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이거든요. 일반적인 사람이 자라면서 습득한 윤리규범에서는 동물은 사람이 마음대로 해도 된다에 가깝거든요. 이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걸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누가 나타나서 너 이 나쁜놈아!! 라고 하는거에요. 그럼 이제까지 내가 봐왔던 것들은 다 뭔데? 이게 나쁜짓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지요. 애초에 동물옹호같은 문제는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게 아니라 공감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주제잖아요.
아, 정확하게 말하자면 저는 본문글을 쓰신 김보노님이 하나의 예가 된다고 생각해요. 김보노님은 특별히 동물보호파도 반대파도 아니지만 슬견설을 떠올리면서 반대파의 입장을 긍정하셨지요. 그리고 저는 슬견설 및 슬견설 식의 논리가 반대파의 입장을 강화시켜주는 텍스트는 아니라고 말하는 거구요.
제 입장을 첨언하자면 저는 \'다 먹을 수 있다\' 파에 가까워요. 동물 생명 보호를 여타 인간의 문제들보다 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다만 동물해방론자들과 논쟁할 때 \'파리는? 모기는?\' 하는 식으로 그들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해요.
제 입장을 첨언하자면 저는 \'다 먹을 수 있다\' 파에 가까워요. 동물 생명 보호를 여타 인간의 문제들보다 더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구요. 다만 동물해방론자들과 논쟁할 때 \'파리는? 모기는?\' 하는 식으로 그들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는 건 반칙이라고 생각해요.
자꾸 Moira님께 너무 답변을 많이 다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질문을 할게요.
국어 교과서를 없애면 어떻게 국어 공부를 시켜야 하나요? 모국어 공부는 학생의 competence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데요. 제가 본 언어학 논문들에서도 국어 교과서를 고치자, 바꾸자, 보완하자라는 말은 많았지만 없애자, 라는 이야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문학작품을 수능에 내기엔 매우 부적절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을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문학을 읽는 것도 삶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는데 말... 더 보기
국어 교과서를 없애면 어떻게 국어 공부를 시켜야 하나요? 모국어 공부는 학생의 competence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데요. 제가 본 언어학 논문들에서도 국어 교과서를 고치자, 바꾸자, 보완하자라는 말은 많았지만 없애자, 라는 이야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문학작품을 수능에 내기엔 매우 부적절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을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문학을 읽는 것도 삶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는데 말... 더 보기
자꾸 Moira님께 너무 답변을 많이 다는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질문을 할게요.
국어 교과서를 없애면 어떻게 국어 공부를 시켜야 하나요? 모국어 공부는 학생의 competence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데요. 제가 본 언어학 논문들에서도 국어 교과서를 고치자, 바꾸자, 보완하자라는 말은 많았지만 없애자, 라는 이야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문학작품을 수능에 내기엔 매우 부적절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을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문학을 읽는 것도 삶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는데 말이죠.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문학을 읽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해석된 결과를 가르치는 편이 심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지금 논문들 보시면 이미 국내외 학자들이 많은 문학작품 읽기 이론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편이 좋을 듯 하네요. 해석의 결과를 알려주기보다는, 해석의 방법을 알려주고 수시로 잘못을 교정해주려 피드백해주는 정도로 방향을 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국어 교과서를 없애면 어떻게 국어 공부를 시켜야 하나요? 모국어 공부는 학생의 competence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데요. 제가 본 언어학 논문들에서도 국어 교과서를 고치자, 바꾸자, 보완하자라는 말은 많았지만 없애자, 라는 이야기는 본 적이 없습니다.
문학작품을 수능에 내기엔 매우 부적절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을 읽는 법을 가르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문학을 읽는 것도 삶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는데 말이죠.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문학을 읽는 법을 가르치기보다는 해석된 결과를 가르치는 편이 심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지금 논문들 보시면 이미 국내외 학자들이 많은 문학작품 읽기 이론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학생들에게 소개하는 편이 좋을 듯 하네요. 해석의 결과를 알려주기보다는, 해석의 방법을 알려주고 수시로 잘못을 교정해주려 피드백해주는 정도로 방향을 잡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동물 해방파에게 유용한 텍스트라는데 찬성합니다. 소외된 생명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데 쓰일 수 있겠죠.
허나, 어디까지냐가 문제입니다. 슬견설처럼 이조차 생명으로 존중해야한다고 하는 신념은 훌륭하죠. 하지만 그 신념을 누구나 따를 수 없으니
문제가 돼요. 애완동물을 사랑하지만 해충을 수도없이 때려잡고 고기를 좋아하는게 일반적인 사람들이죠. 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파리를 때려 죽이다니 잔인해!\'라고 비난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반대로 \'고양이는 이뻐하지만 벌레는 죽이잖아? 나에게 고양이는 해로우니 죽이는거야.\'라고 ... 더 보기
허나, 어디까지냐가 문제입니다. 슬견설처럼 이조차 생명으로 존중해야한다고 하는 신념은 훌륭하죠. 하지만 그 신념을 누구나 따를 수 없으니
문제가 돼요. 애완동물을 사랑하지만 해충을 수도없이 때려잡고 고기를 좋아하는게 일반적인 사람들이죠. 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파리를 때려 죽이다니 잔인해!\'라고 비난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반대로 \'고양이는 이뻐하지만 벌레는 죽이잖아? 나에게 고양이는 해로우니 죽이는거야.\'라고 ... 더 보기
동물 해방파에게 유용한 텍스트라는데 찬성합니다. 소외된 생명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는데 쓰일 수 있겠죠.
허나, 어디까지냐가 문제입니다. 슬견설처럼 이조차 생명으로 존중해야한다고 하는 신념은 훌륭하죠. 하지만 그 신념을 누구나 따를 수 없으니
문제가 돼요. 애완동물을 사랑하지만 해충을 수도없이 때려잡고 고기를 좋아하는게 일반적인 사람들이죠. 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파리를 때려 죽이다니 잔인해!\'라고 비난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반대로 \'고양이는 이뻐하지만 벌레는 죽이잖아? 나에게 고양이는 해로우니 죽이는거야.\'라고 한다면요?
동물학대파가 이런 논리를 가져온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셨는데, 네 그게 포인트에요. 곤란하지만 왜? 라는 질문에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가 없죠. 내가 바퀴벌레를 잡고, 고기를 즐겨 먹으면서 \'생명은 모두 소중해\'라고 말한다면 나로 인해 죽은 바퀴벌레와 돼지, 닭은 위선이라고 비웃겠죠.
물론 본문에서 밝혔다시피, 그러니 인간 외 생명의 생사여탈은 자유라고 주장하는건 아니에요. 그저 도덕이 논리로서 명쾌하게 설명될 수 없음을 알고 고민과 대화를 통해 극단과 극단 사이에서 합의점을 도출해야하지 않나.. 싶어서 써 본 글이었습니다.
허나, 어디까지냐가 문제입니다. 슬견설처럼 이조차 생명으로 존중해야한다고 하는 신념은 훌륭하죠. 하지만 그 신념을 누구나 따를 수 없으니
문제가 돼요. 애완동물을 사랑하지만 해충을 수도없이 때려잡고 고기를 좋아하는게 일반적인 사람들이죠. 이 보통의 사람들에게 \'파리를 때려 죽이다니 잔인해!\'라고 비난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반대로 \'고양이는 이뻐하지만 벌레는 죽이잖아? 나에게 고양이는 해로우니 죽이는거야.\'라고 한다면요?
동물학대파가 이런 논리를 가져온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라고 하셨는데, 네 그게 포인트에요. 곤란하지만 왜? 라는 질문에 논리적인 답변을 할 수가 없죠. 내가 바퀴벌레를 잡고, 고기를 즐겨 먹으면서 \'생명은 모두 소중해\'라고 말한다면 나로 인해 죽은 바퀴벌레와 돼지, 닭은 위선이라고 비웃겠죠.
물론 본문에서 밝혔다시피, 그러니 인간 외 생명의 생사여탈은 자유라고 주장하는건 아니에요. 그저 도덕이 논리로서 명쾌하게 설명될 수 없음을 알고 고민과 대화를 통해 극단과 극단 사이에서 합의점을 도출해야하지 않나.. 싶어서 써 본 글이었습니다.
초딩 때 저는 온갖 벌레들을 다 죽였습니다.
어릴 때라서 벌레를 죽이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죠.
그냥 재밌었어요(뭐랄까... 벌레들이 모두 장난감 같이 느껴졌달까요?).
호기심이 많아서 살아있는 송충이, 풍뎅이, 벌, 잠자리, 땅강아지, 메뚜기, 방아개비 같은 것들을 개미한테 먹이로 주면 어떻게 되는지 관찰하기도 하고
야쿠르트 병에 송충이를 가득 담아서 폭약을 넣고 터뜨려서 몇 마리가 죽는지 세어 보기도 하고... -_-;
제가 생각해도 너무 잔인한데... 신기하게 어느 순간부터 해충을 제외하고는 죽이지 않게 되더군요.... 더 보기
어릴 때라서 벌레를 죽이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죠.
그냥 재밌었어요(뭐랄까... 벌레들이 모두 장난감 같이 느껴졌달까요?).
호기심이 많아서 살아있는 송충이, 풍뎅이, 벌, 잠자리, 땅강아지, 메뚜기, 방아개비 같은 것들을 개미한테 먹이로 주면 어떻게 되는지 관찰하기도 하고
야쿠르트 병에 송충이를 가득 담아서 폭약을 넣고 터뜨려서 몇 마리가 죽는지 세어 보기도 하고... -_-;
제가 생각해도 너무 잔인한데... 신기하게 어느 순간부터 해충을 제외하고는 죽이지 않게 되더군요.... 더 보기
초딩 때 저는 온갖 벌레들을 다 죽였습니다.
어릴 때라서 벌레를 죽이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죠.
그냥 재밌었어요(뭐랄까... 벌레들이 모두 장난감 같이 느껴졌달까요?).
호기심이 많아서 살아있는 송충이, 풍뎅이, 벌, 잠자리, 땅강아지, 메뚜기, 방아개비 같은 것들을 개미한테 먹이로 주면 어떻게 되는지 관찰하기도 하고
야쿠르트 병에 송충이를 가득 담아서 폭약을 넣고 터뜨려서 몇 마리가 죽는지 세어 보기도 하고... -_-;
제가 생각해도 너무 잔인한데... 신기하게 어느 순간부터 해충을 제외하고는 죽이지 않게 되더군요.
그냥 그 놀이(어렸을 때에는 그게 그저 재미있는 놀이였던 것 같아요)가 더이상 흥미롭지가 않았던 것 같네요.
어쨌든 별다른 이유없이 벌레를 잡아 죽이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파리, 모기, 바퀴벌레 정도나 잡아 죽이는 정도죠.
다른 녀석들은 집에 들어와도 안 다치게 잡아서 고이 돌려 보냅니다.
아니면 베란다쪽에 있는 화단에서 살게 놔두죠.
그래서 아주 가끔은 자는데 귀뚜라미가 얼굴에 올라와서 깜짝 놀라서 깨기도 하고요. ^^
요즘은 어릴 때 자주 봤던 송충이, 풍뎅이, 벌, 꽃등애, 매미, 나비, 잠자리, 땅강아지, 메뚜기, 방아개비, 올챙이, 개구리, 가재, 피라미 같은 녀석들이 안 보여서 걱정스럽고 혐오스럽게 보이는 벌레들도 귀하게 느껴져서 보기만 해도 반갑더라고요.
지구의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진심으로 걱정스러워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어릴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완전 성인군자 수준인데 별다른 이유없이 이렇게 되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누가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제게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제가 거기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해 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저도 어릴 때 왜 벌레를 죽이는 것과 개를 죽이는 것에서 큰 차이를 느끼는 것일까 생각해 봤었는데 제 결론은 벌레는 크기가 작아서 하찮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짓이긴다고 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비명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어서 끔찍한 느낌이 들지 않지만 개는 일단 크기가 좀 되고 죽이는 과정에서 피도 나오고 비명 소리도 질러서 끔찍하고 흉측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후자의 경우는 끔찍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짜로 생명체를 죽이는 느낌이 들고 다른 사람이 죽이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거나 분노가 치밀기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위에 몇몇 분들이 말씀하셨지만 죽이거나 학대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끔찍한 느낌, 혐오스러운 느낌을 들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게 맞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결국 기준은 내(인간)게 느껴지는 느낌이 어떠하냐는 것이라서 내(인간)게 느껴지는 느낌이 부정적이라면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고 긍정적이라면 그런 행동을 즐기게 될 겁니다.
그래서 살인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고요.
사실 인간 사회에서의 모든 룰은 인간이 중심이고 인간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제멋대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라고 정해 놓은 것일 뿐 절대적 가치 체계는 아니죠.
절대 가치 체계가 있는 세계는 오히려 선, 악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세계일 겁니다.
어릴 때라서 벌레를 죽이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몰랐죠.
그냥 재밌었어요(뭐랄까... 벌레들이 모두 장난감 같이 느껴졌달까요?).
호기심이 많아서 살아있는 송충이, 풍뎅이, 벌, 잠자리, 땅강아지, 메뚜기, 방아개비 같은 것들을 개미한테 먹이로 주면 어떻게 되는지 관찰하기도 하고
야쿠르트 병에 송충이를 가득 담아서 폭약을 넣고 터뜨려서 몇 마리가 죽는지 세어 보기도 하고... -_-;
제가 생각해도 너무 잔인한데... 신기하게 어느 순간부터 해충을 제외하고는 죽이지 않게 되더군요.
그냥 그 놀이(어렸을 때에는 그게 그저 재미있는 놀이였던 것 같아요)가 더이상 흥미롭지가 않았던 것 같네요.
어쨌든 별다른 이유없이 벌레를 잡아 죽이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파리, 모기, 바퀴벌레 정도나 잡아 죽이는 정도죠.
다른 녀석들은 집에 들어와도 안 다치게 잡아서 고이 돌려 보냅니다.
아니면 베란다쪽에 있는 화단에서 살게 놔두죠.
그래서 아주 가끔은 자는데 귀뚜라미가 얼굴에 올라와서 깜짝 놀라서 깨기도 하고요. ^^
요즘은 어릴 때 자주 봤던 송충이, 풍뎅이, 벌, 꽃등애, 매미, 나비, 잠자리, 땅강아지, 메뚜기, 방아개비, 올챙이, 개구리, 가재, 피라미 같은 녀석들이 안 보여서 걱정스럽고 혐오스럽게 보이는 벌레들도 귀하게 느껴져서 보기만 해도 반갑더라고요.
지구의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진심으로 걱정스러워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하고.
어릴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완전 성인군자 수준인데 별다른 이유없이 이렇게 되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누가 생명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제게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제가 거기에 대해 심도있게 생각해 보았던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저도 어릴 때 왜 벌레를 죽이는 것과 개를 죽이는 것에서 큰 차이를 느끼는 것일까 생각해 봤었는데 제 결론은 벌레는 크기가 작아서 하찮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짓이긴다고 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비명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니어서 끔찍한 느낌이 들지 않지만 개는 일단 크기가 좀 되고 죽이는 과정에서 피도 나오고 비명 소리도 질러서 끔찍하고 흉측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후자의 경우는 끔찍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짜로 생명체를 죽이는 느낌이 들고 다른 사람이 죽이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거나 분노가 치밀기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래서 위에 몇몇 분들이 말씀하셨지만 죽이거나 학대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끔찍한 느낌, 혐오스러운 느낌을 들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게 맞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결국 기준은 내(인간)게 느껴지는 느낌이 어떠하냐는 것이라서 내(인간)게 느껴지는 느낌이 부정적이라면 스스로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고 긍정적이라면 그런 행동을 즐기게 될 겁니다.
그래서 살인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고요.
사실 인간 사회에서의 모든 룰은 인간이 중심이고 인간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제멋대로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라고 정해 놓은 것일 뿐 절대적 가치 체계는 아니죠.
절대 가치 체계가 있는 세계는 오히려 선, 악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세계일 겁니다.
음 저는 국어 수업 자료는 교사가 스스로 선별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과서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국어 수업을 없애자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구요. 교사가 텍스트를 온전히 스스로 책임지고 교과 과정을 스스로 짜서 가르칠 수 있도록, 절대 규범으로 작용하여 기계적으로 외우도록 만드는 불합리한 압력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였어용. 현행 교과서에 들어가는 작품들, 특히 문학작품들은 퀄리티가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인 기준을 거쳐 선별되잖아요. 저희 때 중1 교과서 첫 시는 김소월이었어요. 그 뒤에는 김지하였구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더 보기
음 저는 국어 수업 자료는 교사가 스스로 선별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과서를 없애자는 이야기는 국어 수업을 없애자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구요. 교사가 텍스트를 온전히 스스로 책임지고 교과 과정을 스스로 짜서 가르칠 수 있도록, 절대 규범으로 작용하여 기계적으로 외우도록 만드는 불합리한 압력을 없애야 한다는 이야기였어용. 현행 교과서에 들어가는 작품들, 특히 문학작품들은 퀄리티가 기준이 아니라 정치적인 기준을 거쳐 선별되잖아요. 저희 때 중1 교과서 첫 시는 김소월이었어요. 그 뒤에는 김지하였구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어떤 국어교사가 자기는 김지하의 시를 도저히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는데 교과서에 실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면 그건 큰 문제죠. 이건 물리 법칙이나 수학 공식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한국의 국어 교과 과정은 쓸데없는 걸 많이 가르쳐요. 중학생에게 어떤 문학작품의 문장을 주고 이게 환유인지 제유인지 골라라, 이 문단은 나열법인지 예시법인지 골라라, 이 글은 설명문인지 논설문인지 골라라... 이런 걸 선택하도록 강요하니까요. 세상에 어떤 나라가 이런 식으로 모국어를 가르치는지 잘 모르겠어요. 좀만 영민한 학생들이면 국어라는 과목에 회의를 가질 거예요.
게다가 한국의 국어 교과 과정은 쓸데없는 걸 많이 가르쳐요. 중학생에게 어떤 문학작품의 문장을 주고 이게 환유인지 제유인지 골라라, 이 문단은 나열법인지 예시법인지 골라라, 이 글은 설명문인지 논설문인지 골라라... 이런 걸 선택하도록 강요하니까요. 세상에 어떤 나라가 이런 식으로 모국어를 가르치는지 잘 모르겠어요. 좀만 영민한 학생들이면 국어라는 과목에 회의를 가질 거예요.
슬견설과는 다소 다른 요지입니다만.. 동물에 대한 권리같은 것보다는 동물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의 권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주인이 있는 강아지와 아무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주인이 없는 비둘기에 대한 처우가 사람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보여요.
현재 반려동물에 관한 법에서도 타인이 자신의 반려동물에 상해를 입혔을 때, 동물 자체에 대한 권리를 보호한다기보다는 동물을 소유한 주인의 소유권이 침해되었다고 보잖아요.
이런 논리로 보면 같은 돼지라도 주인이 반려동물로 키우느냐... 더 보기
그러니까, 주인이 있는 강아지와 아무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주인이 없는 비둘기에 대한 처우가 사람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보여요.
현재 반려동물에 관한 법에서도 타인이 자신의 반려동물에 상해를 입혔을 때, 동물 자체에 대한 권리를 보호한다기보다는 동물을 소유한 주인의 소유권이 침해되었다고 보잖아요.
이런 논리로 보면 같은 돼지라도 주인이 반려동물로 키우느냐... 더 보기
슬견설과는 다소 다른 요지입니다만.. 동물에 대한 권리같은 것보다는 동물을 소유하고 있는 주인의 권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주인이 있는 강아지와 아무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주인이 없는 비둘기에 대한 처우가 사람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보여요.
현재 반려동물에 관한 법에서도 타인이 자신의 반려동물에 상해를 입혔을 때, 동물 자체에 대한 권리를 보호한다기보다는 동물을 소유한 주인의 소유권이 침해되었다고 보잖아요.
이런 논리로 보면 같은 돼지라도 주인이 반려동물로 키우느냐와 식용으로 도살하는 것은 주인의 마음인건고, 거기에 대해서 타인이 도살을 해도 되느냐, 마느냐로
따지기는 힘들다는거죠.. 주인이 자신이 키우는 돼지를 도살해서 식용으로 시장에 내다 팔고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구매할 뿐이니까요.
우리가 아무리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의 관점에서 내려진 결론이겠죠.
그러니까, 주인이 있는 강아지와 아무도 소유하고 있지 않은, 주인이 없는 비둘기에 대한 처우가 사람들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 보여요.
현재 반려동물에 관한 법에서도 타인이 자신의 반려동물에 상해를 입혔을 때, 동물 자체에 대한 권리를 보호한다기보다는 동물을 소유한 주인의 소유권이 침해되었다고 보잖아요.
이런 논리로 보면 같은 돼지라도 주인이 반려동물로 키우느냐와 식용으로 도살하는 것은 주인의 마음인건고, 거기에 대해서 타인이 도살을 해도 되느냐, 마느냐로
따지기는 힘들다는거죠.. 주인이 자신이 키우는 돼지를 도살해서 식용으로 시장에 내다 팔고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구매할 뿐이니까요.
우리가 아무리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결국은 인간의 관점에서 내려진 결론이겠죠.
아, 제 생각은 동물학대파의 논리에 대해 방어할 근거가 없어서 곤란하다는 뜻은 아니었구요, 그들의 논리를 수긍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난감하다는 뜻이에요.
고기를 먹으면서 생명은 소중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위선적일까요? 물론 위선적이지요. 하지만 그 위선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명제 자체의 진리값을 해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떤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진리를 무시해도 되는 허가증을 받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구체적인 논쟁의 지형 속에서 그들의 주장에 인간적인 약점(일관성의 부재)이 ... 더 보기
고기를 먹으면서 생명은 소중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위선적일까요? 물론 위선적이지요. 하지만 그 위선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명제 자체의 진리값을 해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떤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진리를 무시해도 되는 허가증을 받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구체적인 논쟁의 지형 속에서 그들의 주장에 인간적인 약점(일관성의 부재)이 ... 더 보기
아, 제 생각은 동물학대파의 논리에 대해 방어할 근거가 없어서 곤란하다는 뜻은 아니었구요, 그들의 논리를 수긍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난감하다는 뜻이에요.
고기를 먹으면서 생명은 소중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위선적일까요? 물론 위선적이지요. 하지만 그 위선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명제 자체의 진리값을 해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떤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진리를 무시해도 되는 허가증을 받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구체적인 논쟁의 지형 속에서 그들의 주장에 인간적인 약점(일관성의 부재)이 가미되는 것 뿐이지요. 만일 동물학대파에게 \'모든 생명은 소중/평등하다\'라는 명제가 진리임에 동의하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할 거예요. 그렇다면 그들은 그 명제를 자기 주장(어떤 동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면 다른 동물도 먹지 말아야 한다)의 근거로 사용해선 안 되지요.
한편으로 김보노님처럼 \'나는 고기를 먹으면서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어요. 아주 성찰적이고 자기반성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성찰의 영역은 타인에게 강요되는 순간 폭력이 되고 말지요. 동물학대파가 보호파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논쟁은 \'개고기를 먹을까 말까\'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벗어나서 어느 쪽이 더 도덕적으로 일관되는가 하는 것을 겨루는 경쟁이 되어버려요. 마치 교육감 선거에 나온 진보측 후보에게 \'너는 아이를 자사고에 보냈는데 어떻게 진보냐\'고 추궁하는 경우처럼요. 저는 개고기 논쟁이든 캣맘 논쟁이든 거기에 어떤 2차적인 도덕적 척도를 개입시키는 것은 이 이슈의 핵심에 다가가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동물학대파가 그런 논리를 들고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생산적인 논쟁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아... 그리고 쓰신 글을 너무 어지럽혀서 죄송해요. 생산적인 댓글을 짧게 달아야 하는데... 반성합니다.
고기를 먹으면서 생명은 소중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위선적일까요? 물론 위선적이지요. 하지만 그 위선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명제 자체의 진리값을 해하는 것은 아니지요. 어떤 진리를 말하는 사람들이 위선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진리를 무시해도 되는 허가증을 받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구체적인 논쟁의 지형 속에서 그들의 주장에 인간적인 약점(일관성의 부재)이 가미되는 것 뿐이지요. 만일 동물학대파에게 \'모든 생명은 소중/평등하다\'라는 명제가 진리임에 동의하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할 거예요. 그렇다면 그들은 그 명제를 자기 주장(어떤 동물을 먹지 말아야 한다면 다른 동물도 먹지 말아야 한다)의 근거로 사용해선 안 되지요.
한편으로 김보노님처럼 \'나는 고기를 먹으면서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어요. 아주 성찰적이고 자기반성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성찰의 영역은 타인에게 강요되는 순간 폭력이 되고 말지요. 동물학대파가 보호파에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순간 논쟁은 \'개고기를 먹을까 말까\'라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벗어나서 어느 쪽이 더 도덕적으로 일관되는가 하는 것을 겨루는 경쟁이 되어버려요. 마치 교육감 선거에 나온 진보측 후보에게 \'너는 아이를 자사고에 보냈는데 어떻게 진보냐\'고 추궁하는 경우처럼요. 저는 개고기 논쟁이든 캣맘 논쟁이든 거기에 어떤 2차적인 도덕적 척도를 개입시키는 것은 이 이슈의 핵심에 다가가는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동물학대파가 그런 논리를 들고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생산적인 논쟁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아... 그리고 쓰신 글을 너무 어지럽혀서 죄송해요. 생산적인 댓글을 짧게 달아야 하는데... 반성합니다.
Moira님의 글은 절대 비생산적이지 않은 글이니, 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음.. 제가 도덕이나 법이나 논리는 잘 모르지만, 한 마디 하자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의 명제에서 이 \'인간적인 약점\'은 아주 사소한 정도가 아니라 본질적인 것입니다.
이 \'위선\'을 추궁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진리\'가 \'현실의 영역에서도 어느정도는, 대체적으로라도 잘 작동되기를\' 추궁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을 지나치게 벗어난 말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용어를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 있는데, 저는 지금 \'소중하... 더 보기
음.. 제가 도덕이나 법이나 논리는 잘 모르지만, 한 마디 하자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의 명제에서 이 \'인간적인 약점\'은 아주 사소한 정도가 아니라 본질적인 것입니다.
이 \'위선\'을 추궁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진리\'가 \'현실의 영역에서도 어느정도는, 대체적으로라도 잘 작동되기를\' 추궁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을 지나치게 벗어난 말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용어를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 있는데, 저는 지금 \'소중하... 더 보기
Moira님의 글은 절대 비생산적이지 않은 글이니, 죄송할 필요 없습니다.
음.. 제가 도덕이나 법이나 논리는 잘 모르지만, 한 마디 하자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의 명제에서 이 \'인간적인 약점\'은 아주 사소한 정도가 아니라 본질적인 것입니다.
이 \'위선\'을 추궁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진리\'가 \'현실의 영역에서도 어느정도는, 대체적으로라도 잘 작동되기를\' 추궁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을 지나치게 벗어난 말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용어를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 있는데, 저는 지금 \'소중하다\'라고 하는 말의 정의를 \'인간이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와 동의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물학대파라는 말은 그다지 어감이 좋은 것 같지 않군요.;;
음.. 제가 도덕이나 법이나 논리는 잘 모르지만, 한 마디 하자면.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의 명제에서 이 \'인간적인 약점\'은 아주 사소한 정도가 아니라 본질적인 것입니다.
이 \'위선\'을 추궁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진리\'가 \'현실의 영역에서도 어느정도는, 대체적으로라도 잘 작동되기를\' 추궁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을 지나치게 벗어난 말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용어를 분명히 정의할 필요가 있는데, 저는 지금 \'소중하다\'라고 하는 말의 정의를 \'인간이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와 동의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물학대파라는 말은 그다지 어감이 좋은 것 같지 않군요.;;
사람 vs 동물 구도를 떠나서 \"나\"에게 더 가깝거나, 어떠한 이유로든 더 동질감을 느끼는 상대에 대해서 더 편향적인 성향을 보이는건 쉽게 볼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대 사람의 구도에서도 지난 프랑스 파리나 벨기에 브뤼셀에서의 테러와 비교해서 비슷한 시기에 오히려 더 많은 사상자를 내었던 벨리즈 테러와 같은 사건들을 비교해보았을때 어떤 사건들이 서양 문화권이 주류인 세계적 매스컴에서 더 집중적으로 다루어졌고 그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의 SNS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자했었는지 보면은 비슷한 이야기가 이어질수... 더 보기
사람 vs 동물 구도를 떠나서 \"나\"에게 더 가깝거나, 어떠한 이유로든 더 동질감을 느끼는 상대에 대해서 더 편향적인 성향을 보이는건 쉽게 볼수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대 사람의 구도에서도 지난 프랑스 파리나 벨기에 브뤼셀에서의 테러와 비교해서 비슷한 시기에 오히려 더 많은 사상자를 내었던 벨리즈 테러와 같은 사건들을 비교해보았을때 어떤 사건들이 서양 문화권이 주류인 세계적 매스컴에서 더 집중적으로 다루어졌고 그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의 SNS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자했었는지 보면은 비슷한 이야기가 이어질수있지않나 생각되네요.
정말로 인간의 삶은 다 동등하다고 믿고, 무고한 희생자들의 고통을 다 나누고 싶어한다면 저런 사건들에 대해서 비슷한 유형의 반응을 보여야하지만, 그렇지 않은게 평균적인 반응이니 아예 종이 다른 개체들에 대한 반응은 그만큼 더 일관성이 떨어지는게 필연적이라고도 생각되네요 ㅎㅎ
정말로 인간의 삶은 다 동등하다고 믿고, 무고한 희생자들의 고통을 다 나누고 싶어한다면 저런 사건들에 대해서 비슷한 유형의 반응을 보여야하지만, 그렇지 않은게 평균적인 반응이니 아예 종이 다른 개체들에 대한 반응은 그만큼 더 일관성이 떨어지는게 필연적이라고도 생각되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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