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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6/19 23:19:29
Name   우너모
Subject   [조각글 31주차] 오뎅의 추억
주제 _ 선정자 : 레이드
당신이 쓸 수 있는 가장 밝은 글을 써주세요.
주제나 소재는 상관없습니다.
글을 비틀거나 꼬는 것 없이 밝은 글로 써주세요.

합평 받고 싶은 부분
정리가 덜 된 글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쓰면 더 읽기 좋을지 궁금합니다.

하고싶은 말
밝은 기억들을 꺼내보다가 제일 좋아하는 걸 소재로 썼습니다. 쓰고보니 밝다기보다는 따뜻함에 가까운 감정인 것 같긴 하지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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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올라와 발견한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부산오뎅"이 1,200원씩이나 한다는 것이었다. 부산오뎅은 보통 오뎅과 어떻게 다른지, 내가 부산 길거리에서 사 먹던 오뎅과 같은지. 대체 어떤 연유로 오뎅이 그 값을 받을 수 있는 걸까 궁금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오뎅은 1,000원짜리 한 장 내고 먹으면 거스름돈을 받을 수 있는 길거리의 불량식품이었다. 어릴 적엔 200원 하던 것이 나중엔 500원, 800원으로 오르는 걸 보고 신기하게 여겼는데 1,200원이라니.

오뎅이 200원하던 시절 나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그 때 우리 가족은 부산 사하구 구석배기의 공단 근처에 있는 오래된 아파트에 살았다. 동네에선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퀴퀴하고 달큼한 매연 냄새가 났고, 아파트 뒤쪽에 사는 산동네 아이들의 얼굴은 까맸다. 학교가 끝나면 아이들은 시장통으로, 나는 학원으로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때로는 헤어지기 아쉬워 문방구 앞 오락기 앞에 쪼그려 몇 분씩 놀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이 엄마에게 들킬 때면 혼쭐이 났다. 엄마는 내가 산동네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과 동네 시장에서 군것질하는 것을 싫어했다. 시부모님과 삼촌 둘, 고모 하나와 함께 사느라 예민했던 엄마는 별것 아닌 일로도 종종 매를 들었고, 나는 매 맞는 게 싫었다. 그래서 100원짜리 떡볶이, 200원짜리 오뎅, 500원짜리 돈까스꼬치를 아이들이 사먹을 때면 주머니 속의 동전을 만지작거리면서 침만 꼴깍대다 돌아오곤 했다.

오뎅을 푸지게 먹을 기회는 2주에 한 번씩 찾아왔다. 할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갈 때였다. 할아버지는 목재소에서 은퇴하신 뒤, 우리가 살던 아파트의 경비원을 직업으로 삼고 손주 기르기를 취미로 삼으셨다. 새벽 등산과 큰 손주 목욕탕 데려가기는 당신의 꽤 중요한 일정 중 하나였다.

펄펄 끓는 목욕탕에 할아버지가 '어흠' 하고 들어갈 때면 나도 '어허 시원하다' 하고 들어갔다. 동네 아저씨들이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며 '뜨겁지도 않으냐' 물을 때면 괜히 어른이 된 것 같아 우쭐했다. 할아버지도 그랬는지 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살이 벌겋게 익을 때면 냉탕에 들어가 헤엄을 치고, 폭포수를 맞는 게 지겨워지면 사우나로 갔다. 동네 아저씨들과의 기싸움에선 늘 이겼지만, 할아버지보다 오래 버틸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쯤 있다 보면 할아버지가 때를 밀어주셨다. 생살을 대패질하듯 밀어대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아팠지만, 그 이후에 오는 보상이 달콤했기에 참을 만했다. 목욕 후엔 언제나 음료수 한 캔을 마실 수 있었고, 집에 돌아오는 포장마차에 들러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때 먹은 모든 것들은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일이었고, 설사 엄마가 안다고 해도 야단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떡볶이든 오뎅이든 닭꼬치든, 할아버지는 뭐든 많이 먹으면 좋아하셨다. 우리 자리 앞에 수북이 꼬치가 쌓이면 할아버지는 온 얼굴로 허허허 웃으셨다. 그러다가 보청기가 어긋나서 삐이이 소리가 나면 귀를 매만지시곤, 얼만교, 하고 물으셨다.

"하이고, 쪼깨난 게 마이도 뭇네, 오천 원이네예."

"히야, 니 오늘 신기록 세웠다야, 솔아."

몇 달 후에 그 포장마차가 없어지면서 나의 오뎅 레이스는 5,000원에서 멈췄다. 초등학교 5학년에 들어설 때쯤 나는 길거리 음식을 별로 입에 안 대기 시작했다. 그 시절 오뎅을 너무 먹어서였을까? 코 밑에 푸르게 털이 날 때쯤부터는 할아버지와 목욕탕을 안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뎅이 500원 할 때였나, 우리 식구는 분가하기로 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공기 좋은 김해 어디로, 우리는 투자가치가 있는 거제동 어디로. 오래된 시집살이에 지친 엄마의 결정이었다.

할아버지는 어느 새벽, 내 방에 들어와 손을 잡고는 갑자기 우셨다. 너무 놀란 나는 할아버지의 크고 건조한 손이 축축해지도록 잡고만 있었다. '이래 헤어져가 따로 살면 니랑 언제 또 보겠노.' 손을 더 꼭 잡아드리거나, 어깨를 살풋 안아드리거나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냥 그렇게 앉아서 '울지 마세요, 할아버지.', 했었던 것 같다. 아빠한테 말을 해야 하나, 하다가 이것 또한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일이기에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분가를 한 것도 이제는 십 년도 더 된 옛날의 이야기다. 해가 질 때쯤, 버스를 내려 자취방으로 걷다 보면 종종 뜬금없이 경남 지역번호의 전화가 걸려온다. 할아버지다.

"잘 사나?" 예! 잘삽니다아!
"밥 뭇나?" 예에! 먹었습니다!
"내가 뉴스를 보니까 요새 인문계가 취업이 잘 안된다 카드라, 학원을 가서 이공계 지식을 쌓고, 차근차근히 기업을 조사를 해봐라. 니는 크게 될 놈이니까, 절대로 조바심 내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여자친구는 있나?" 아니... 예 있습니다. "부산에 내려오나?" 아니... 예, 곧 갑니더!

뭐라고 묻든 '예'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일방적인 대화다. 이제 할아버지는 더욱 귀가 먹어 거의 들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한참을 준비했던 말씀을 다 하시고 나면, 내가 뭐라고 하든, 그래 잘 있어라, 하고 뚝 끊으신다.

할아버지, 내려가면 목욕탕이나 함 갑시다.

"어어, 그래 안 들리니까 할머니한테 말해놔라."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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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머나... 이 글 너무 좋아요..
  • 장면이 환하게 떠오르네요. 글 마디마다 진심이 있어 멋있고 좋습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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