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6/27 15:04:57
Name   ORIFixation
Subject   어느날의 질문
2007년 여름이 끝나고 병원에서 학생실습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였다. 내과 실습을 돌던 마지막날 교수님이 우리조를 연구실로 부르셨다.

실습에 대한 소감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중 교수님이 질문을 하셨다.

"학생들은 나중에 의사가 되면 꿈이 무엇인가?"

각자 대답을 해보라고 하셨고 하필이면 내가 제일 먼저였다. 난 그저 평소에 하고있던 생각인 의사가 되서 하고싶은 전공을 택해 환자를 치료하며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교수님의 표정이 살짝 굳으셨고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같은조였던 1등이었던 여자동기는 우선 공부를 더 열심히 해서 학문의 길에 정진하여 훌륭한 연구를 하고 싶다는 정말 지극히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했다. 속으로

니가 그러면 내가 뭐가 되냐... 라고 외치고 바라본 교수님의 얼굴은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다른 동기들도 여자동기의 발언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지 비슷한 내용의 대답을 마친 후 교수님은 날보며 일장연설을 시작하셨다.

다 기억은 나진 않지만 꿈이 너무 작다고, 모름지기 세계적인 석학이 되어 족적을 남길 꿈을 가져야하지 않겠냐고 긴 시간을 이야기하셨고 난 꿈이 소소한 학생에서

마지막은 일신만 챙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내과 인계장엔 질문과 모범답안이 한줄 더 추가되었고, 그 여자동기는 A+를 받았으며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직업을 택했다는 이유로 왜 나는 꿈을 강요받아야 하는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소소한 평탄한 삶을 사는 것은 작은 꿈인가.

내 생각은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그 꿈은 생각보다 정말 이루기 어렵고 매우 많은 사람들은 내 꿈과 같은 것을 이루기 위해 죽도록 노력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질문에 대해 무난히 대답할수 있는 모범답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날 얻은 가장 큰 교훈일것이다.

PS. 그 뒤로 내과를 좀 더 안 좋아하게 된것은 함정...



0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4615 경제어도어는 하이브꺼지만 22 절름발이이리 24/04/23 2280 8
    3136 일상/생각어느날의 질문 52 ORIFixation 16/06/27 3928 0
    2542 일상/생각어느날의 술자리 12 ORIFixation 16/04/05 4170 2
    12976 일상/생각어느날의 상담 사례 기록 - 01 2 dolmusa 22/07/07 2819 18
    6122 일상/생각어느 흔한 여름 날 3 二ッキョウ니쿄 17/08/17 4292 16
    2280 의료/건강어느 핵의학과 의사가 말하는 온라인 의료상담 23 damianhwang 16/02/24 7204 0
    11276 일상/생각어느 택배 노동자의 한탄 11 토비 20/12/26 4053 32
    14894 의료/건강어느 큰 병원 이야기 12 꼬앵 24/09/03 1340 0
    10654 일상/생각어느 이민자가 보는 시스템적인 문제 12 풀잎 20/06/06 4739 19
    12278 일상/생각어느 유서깊은 양반가문 이야기. 16 Regenbogen 21/11/16 4343 35
    4416 일상/생각어느 옛날 이야기 2 뜻밖의 16/12/20 3735 0
    5325 기타어느 영어무식자의 영어평균자(?)가 된 수기 4 dOnAsOnG 17/03/30 3928 5
    6416 스포츠어느 연예인의 악수회 2 키스도사 17/10/14 5205 0
    2909 일상/생각어느 시골 병원 이야기 35 Beer Inside 16/05/28 4418 10
    6778 영화어느 스타워즈 키드의 분노 23 No.42 17/12/18 5467 11
    2886 정치어느 소아성애자의 고백 27 피자맛치킨버거 16/05/25 23339 6
    154 기타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오 65 레지엔 15/06/01 12005 1
    2339 일상/생각어느 면접 후기와 유리천장 12 깊은잠 16/03/05 5380 8
    10091 도서/문학어느 마작사와의 대화 10 호타루 19/12/18 4731 1
    2491 일상/생각어느 동아리 잔혹사 12 순욱 16/03/29 4237 6
    8302 스포츠어느 나라 리그까지가 빅리그인가? 7 손금불산입 18/09/30 4484 0
    3735 육아/가정어느 그리스인의 아들 14 기아트윈스 16/09/20 7172 0
    11091 창작어느 과학적인 하루 5 심해냉장고 20/10/27 3781 13
    3133 일상/생각어느 고등학생의 글을 보고. 19 헤칼트 16/06/27 4196 0
    3366 IT/컴퓨터어느 게임 회사 이야기 (후기) 53 NULLPointer 16/07/27 23339 42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