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저도 생각이 확실히 정리가 안 돼서 중얼중얼 하는 거예요.
개인간의 용서가 미덕이 되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인간 대 인간의 용서로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분명히 있거든요. 예를 들어 A가 B를 성추행했는데, A의 사과로 B가 용서를 하고 A는 사법상의 처벌도 받았어요. 그렇다고 A가 저지른 죄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죠. 나를 포함해 모든 것을 보고 있는 절대자를 상정한다면 여전히 A는 그 앞에서 죄인으로 남아 있고, B에게 사과하는(죄값을 치르는) 것과 동시에 절대자에게도 죄값을 치러야 하거든요. 보통 그 죄값은 죄의식을 품고 살아가는 일종의 영혼의 구금이랄까, 그런 형태로 장기간에 걸쳐 치르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런 전지적인 심판자라는 개념이 아예 머릿속에 없다면, B에게 사과를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B를 욕하는 것도 가능하죠. 아무도 모르니까요. 피해자에 대한 집단의 핍박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제가 생각하기엔 소수자에 대한 존중감의 결여 문제와 함께 '우리 빼고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고 심판할 자도 없다'는 절대자 내지 공공성에 대한 불감증이 한 가지 요인이지 않을까 싶어요. 예전에는 한국 사회에도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아는데 어찌..' 하는 식으로 절대자에 대한 감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요즘에는 어떨까요?

피해자가 '너만 참으면 된다'는 주변 사람들의 압력을 견뎌내는 한 가지 방법은 자신을 백업해줄 동료로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절대자를 소환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피해자들이 힘든 싸움 끝에 운동권이 되거나(이념을 소환) 종교인이 되거나(신을 소환) 하는 거겠죠. 우리가 피해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낮은 단계에서는 개인 대 개인의 공감과 연민, 좀더 높은 단계에선 그가 추구하는 공공성에 동참하는 일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보통 연대라고 부르는.

중얼중얼...(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