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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08/01 17:53:03
Name   세인트
Subject   뜬금없는 예전 이야기.
* 주저리주저리 뻘글이라 평어체로 작성되었습니다.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일전에 화남과 사과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긴 한데,
그게 홍차넷인지 PGR인지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중요한 건, PGR보단 홍차넷이 사람이 나간 자리가 더 아프다는 거다.
나랑 좋은 사이라서 나랑 아는 사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좀더 오밀조밀한 느낌이라 난 자리가 크게 보이나보다.

뭐 그렇다고 나간 사람이 잘했다 나가게 한 사람이 잘못했다 이런 의미는 아니고(내가 그렇게 말할 자격도 없고 잘 모르기도 하고)
그냥 싸우던 사람들도 상처받은 사람들도 사이좋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랄까 뭐 그런 의미로다가...







아무튼, 친목질 하니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나서 재탕해보는데
(이거 아마 한 삼백번 쯤 재탕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원래 자기중심적인 이야기들은
틈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던지는 거라고 모 개그맨 겸 MC분이 말씀하셨...)
아래의 글은 친목질에 대해 생각난 이야기일 뿐 누군가를 옹호하거나 비난하려는 목적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할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부공대장 겸 캐스터 딜러 장을 맡고 있었고
당시 나의 여자친구분은 공대의 힐러셨다.

이 분이 신정인가 그 다음날인가 즈음해서 대형 사고를 하나 치셨는데,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그 전 주에도 크리스마스 이브/크리스마스 전후해서 공대 일정이 겹쳐서
가뜩이나 난이도 있던 네임드에서 공략이 지지부진하던 공대에 인원까지 모자라서 해당 주(크리스마스 주차)의 공략은 거의 못하다시피 했고,
나는 회사 출장 일정 관계로 새해를 지방에 내려가서 맞이하게 되었던 상황이었다.
(물론 크리스마스 주차에는 나는 레이드 공략에 참여하였고, 그 다음 주 신정 전후의 불참은 내가 소속된 공대에는 미리 고지한 상태였다)
그런데 당시 나의 여친분께서는 이유 여하와 상관없이 불참이 포인트에 결코 좋지 아니한 조건인 것을 알고 있었고
크리스마스 주에 인원이 도저히 안 나와서 공략을 못하고 조기 해산했던 것에 아이디어(?)를 얻으셨는지
신정이 낀 그 주에 불참한다는 어떠한 이야기도 남기지 않고 친구들과 술자리 약속을 잡아 버리셨다.
그러니까, 새해인데 무슨 레이드냐 하고 사람이 어차피 모자랄 것이고, 그럼 굳이 불참하겠다고 글 남기거나 불참 페널티 없이
합법적(?)으로 받을 포인트는 받고 레이드도 안하고 놀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던 것이었따
(물론 나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설마 정말로 그럴 줄은 몰랐고 원체 상대방에게 터치를 안 하는 성격이라 그냥 냅뒀다)

그러나 내가 공략에 불참한 것과 별개로, 크리스마스 주 이후에 다들 복귀하여 사기가 충천한 상태로 오늘은 꼭 잡자 라는 인원이
공격대 최소 정원보다 2~3명 간신히 넘길 정도로 모인 상태였고
당시 여친분은 속으로 '아 왜 오늘따라 사람이 다 잘 모인거야! 아 하기 싫어!! 친구들 벌써 약속장소 출발했다는데 어쩌지 전전긍긍' 이러고 계셨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친구들이 약속장소로 완전히 다 모였고 어서 오라는 연락을 받으신 직후
(이는 나중에 나에게 다 이야기한 것으로 본인이 넘겨짚은 것이 절대 아님을 밝힌다)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마침 그 때 한 번의 트라이가 실패로 끝나고 잠시 담배/세수타임 가지자는 공대장의 말에
공격대 던전 내에 자신의 캐릭터를 세워둔 채(그러니까 컴퓨터와 와우가 켜져 있는 그 상태 그대로)로 그냥 무단으로 집 밖으로 나가버리셨던 것이다.
(참고로,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당시 와우의 공격대 던전은 진입 제한 인원이 있어서 일정 숫자의 인원이 진입이 다 되면 추가 인원이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여친분은 던전 내에 캐릭터를 세워두고 나가버리셨기 때문에, 그 분을 공격대에서 강제 추방을 시켜도 해당 인스턴스 레이드 던전이 이미 귀속된 이후라 - 당시 6번째 네임드인가 에서 트라이 중이었던지라 이미 앞의 잡아버린 네임드 덕분에 귀속이 되어 있었음 - 안그래도 빡빡하게 공략시도중이던 공격대 던전에서 인원을 한 명 빼고 진행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이 분의 잠수가 15분 20분을 넘어가면서 공대에서는 난리가 났고 여친분에게 전화를 계속 하였으나 묵묵부답.
(당연히 전화가 계속 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회피를 시전하셨다)
덕분에 저녁에 지방에서 로컬 업주분을 접대중이던 나에게까지 전화가 왔으나 내가 그 분의 행방을 알 리가 만무했다.

결국 그날 밤에 공격대장이 폭발하였고 (사실 그 이전에도 혼자 준비물을 안 챙겨 오거나 한 번 읽어만이라도 보고 오라는 공략글과 영상을 아예 안 보고 오는 등의 사소한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부공대장이던 나에게 그날 밤에 전화가 와서
이러이러한 상황이 있었으니, 공격대 규약에 근거해서 그 분을 제명 조치 하려고 하는데 동의하는가를 물었다.
나는 규정에 어긋났으면 제재가 당연하고, 이미 운영진에서 그렇게 결정이 났다면 나는 반대할 권한도 이유도 없다고 했다.

정작 그 여친분께 공대 제명을 통보하는 역할은 공격대 힐러장님께서 맡아서 하시기로 하셨다는데,
당시 여친분의 외모가 꽤 수려한 편이었고, 힐러장님은 여자를 밝히기로 소문난 분이셨으며, 그 여성분께 마음이 좀 있던 관계
(에다 플러스로 욕 먹거나 책임지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이셨)로
'나를 포함한 좋은 오빠들은 너의 제명에 반대하였으나, 너의 남친인 부공대장이 현장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너의 제명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러니 이 일로 나를 욕하지 말길 바란다' 라고 멋지게 포장을 해 두신 덕에
나는 다음날 출장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KTX에서 향후30여 년 간 들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온갖 저주와 욕설을 찰지게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상큼하게 차였다.

이후의 자잘한 소란들은 이야기가 구질구질해지니 스킵하도록 하고,

당시 내가 '나의 여친인데 내 여친이 무조건 옳음! 제재에 반대한다!!'
라고 했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는 그 여친분과 계속 잘 지낼 수 있었을까?
내 선택이 최선의 선택이었나?
나도 그 힐러장 형처럼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며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를 시전하는게 맞았을까?
그깟 게임이 연인관계보다 소중했을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맞는 선택을 한 건지 아닌지도.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싸는 내가
사실은 '너님이 잘했음!'
이라는 낯간지러운 동의를 구하기 위해 쓴 저열한 저도의 자기자랑 글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는 사실도.

그러니까 아무튼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 것 같다.

배가 너무 고파서 당이 떨어져서 손발이 후들거려서 뻘글을 쓰나보다.
퇴근하면서 라면이라도 사가서 집에 가자마자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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