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6/09/14 19:02:18
Name   기아트윈스
Subject   서원(書院)에서 한문 배운 썰 (끗): 에필로그

<사과로 아키라의 머리를 본떠 제사지내는 제갈량 기아트윈스. 판화.400 x 319. 작자미상.>

버츄얼파이터사건 이후 저는 ...

...

유명해졌어요. 나쁜 쪽으로 유명했었는지는 누가 제게 얘기해준 적이 없으니 모르겠지만 확실히 긍정적인 코멘트를 많이 받았고, 또 좋건 나쁘건 간에 존재감이 쏙 올라갔지요.

누님들에 따르면 그 관행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아무도 선생님께 문제제기를 하거나 하는 걸 상상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냥 쭉 이어지던 거였대요. 왜냐면, 선생님들의 권력은 절대초월그렌라간투명드래곤급이었기 때문이에요. 서원학습 말미에 문제내고 채점해서 내년도엔 누굴 떨궈줄까 누구에게 기쁨을 줄까♬ 결정하는 분들도 이분들이요 또 졸업 후 상급 코스 진학 시 입학시험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분들도 이분들이었어요. 그러니 누가 그 앞에서 이쁨받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굳이 나서지 않았던 거래요.

양옥 거실에 앉을 때 부엌에 가까운 쪽에 앉은 것도, 사과를 깎으면서도 이러저러하니까 여학생만 부엌일을 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도 모두 일종의 자기합리화였지요. 신기한 건 그 여학생들 중 몇몇은 자기들 대학교에서는 꽤 강한 운동권 조직 소속이었다는 거예요. 비슷한 일을 교양수업 교수가 시켰다던가 했다면 필시 대자보 쓰고 난리 났을 일을 여기서는 관성과 이해관계에 밀려서 그냥 넘어가버렸던 거지요.

남학생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어요. 문제의 사건 이후로도 십수 차례 더 과일을 깎을 일이 있었는데 저 뿐 만 아니라 다른 남학생 2~3 명도 같이 일어나서 따라들어갔어요. 좁은 주방에 7~8 명씩 앉아서 사과를 깎고, 연장이 모자르다보니 잉여 노동력이 생기고, 그러다보니 외려 일부 여학생이 부엌에 자리가 없어서 그냥 거실에 남게 되었지요. 이야, 전 사실 사과 정말 못깎으면서도 그냥 막무가내로 주방에 들어간 거였지만 나중에 참여한 남학생들은 실제로 기가막히게 잘 깎더라구요. 버츄얼 파이터는 저 뿐이었어요.

그렇게 전 여학생들을 위주로 한 그룹에 빠르게 편입됐어요. 매일 윤독 준비를 같이하게 됐고, 술마시고 노는 것도 같이 했지요. 동기들도 새 경쟁자에게 마음을 열어주었어요. 나중엔 이런저런 일로 저를 좀 경계했었다는 고백까지 몇몇 동기에게서 직접 들었구요. 넘나 행복한 것.

물론 제가 이런 결과를 노리고 퍼포먼스를 획책한 건 아니었어요. 이게 벌써 7년 전 이야기라 장면장면이 뚜렷하게 기억이 안나고 글로 쓰다보니 시간 순서가 좀 꼬였는데 제 뇌내의 프로불편러 센서에 불이 들어온 건 "언니"의 경고와 거의 동시였나 그랬던 것 같아요. 공교롭게도 일거양득이 되었지만 노린거 노노 -_-;; 그 행동 자체는 정말 척수반사로 튀어나온 거였어요.




자, 이제 대망의 3주가 마무리되고 시험도 보고 다들 웃으며 헤어졌어요. 커플도 탄생했고, 서로 친한 친구들도 생겼지요. 이런저런 튀는 짓을 벌인 기아트윈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컷오프됐을까요?

살아남아서 서원학습을 두 번 더 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다음 편에서....













쓰려고 했는데 더 이상 쓸 말이 없네요 =_=;;

저는 다행히 살아남아서 다음 한 해도 장학생 신분을 유지했어요. 서원학습도 두 차례 더 다녀왔구요. 이 때도 여러가지 싱기방기한 일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치정극이라 (...) 홍차넷에 구구절절 쓰기엔 부적절할 것 같아요.

다만 한 가지. 버파 사건이 만든 작은 균열 덕분에 제가 3학년이 되어 참가했던 두 차례의 서원학습에선 여학생이 과일 준비를 전담하는 일은 없게 됐어요. 또 그 전까지 남학생만 하던 일들도 몇몇 있었는데 그 일도 여학생들이 분담하게 되기도 했구요. 이제는 제 존재를 알 리 없는 후배들이 여전히 서원학습을 다니고 있을 텐데 요즘도 남자애들이 아키라를 깎고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ㅎㅎ

계획도 없이 만든 즉흥 기획물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끗)








p.s. 1 양옥에서 윤독하는 장면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부엌으로 가는 길을 남자후배 하나가 지키고 있네요. 넘나 이쁜 것.

맞다. 위 사진에는 제가 없어요. 그냥 대강의 분위기만 짐작하시라고 :)




p.s.2

모두 모여서 단체샷을 찍으면 대략 이런 느낌이에요. 여기도 물론 저는 없어요 ㅎㅎ;





p.s. 3 위 시리즈는 물론 논픽션이지만 제 머리가 기억 못하는 빈 틈을 약간의 상상력으로 메꾼 바 있으니 실제와 정확히 부합하진 않아요. 혹시 이 일을 아는 분이 이 글을 읽게 될까봐 노파심에 덧붙입니다.




PS 4 갖고 싶다...




(진짜 끗)




12
  •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
  • 연재물은 완결까지 기다렸다 몰아보는 맛이죠. 잘 봤어요 춪천춪천
  • 춫천
  • 아키라가 사과를 키우는 것이다
  • 흥미진진!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공지 티타임 게시판 이용 규정 2 토비 15/06/19 36115 1
16104 일상/생각[자작] 정신력 깎이면서 지하철 역이름 한자 공부하는(?) 생존 게임 큐리스 26/03/28 126 1
16103 게임역대급 오픈월드 붉은 사막 개발기간은 사실 짧은 편이었습니다. 2 닭장군 26/03/27 337 2
16102 IT/컴퓨터저만의 지식/업무/일정관리 시스템 정착기 3 (개인화) 8 스톤위키 26/03/27 407 2
16101 IT/컴퓨터저만의 지식/업무/일정관리 시스템 정착기 2 (AI, AI, AI) 스톤위키 26/03/27 243 1
16100 IT/컴퓨터저만의 지식/업무/일정관리 시스템 정착기 1 (GTD와 옵시디언) 3 스톤위키 26/03/27 421 0
16099 일상/생각철원 GOP, 푸켓 쓰나미.... 제가 살아남은 선택들 게임으로 만들어봤습니다 1 큐리스 26/03/26 283 3
16098 오프모임[등벙]용마산~아차산 코스를 돌까 합니다(3/28 토욜 아침즈음) 21 26/03/26 430 7
16097 정치50조 원의 청사진과 2년간 멈춰있던 특별법 13 큐리오 26/03/26 598 0
16096 일상/생각제3화: 2002년 겨울, 아무도 먼저 가려 하지 않았다 3 큐리스 26/03/26 242 4
16095 일상/생각제2화: 1998년 가을, 그냥 편할 것 같아서 4 큐리스 26/03/24 319 4
16093 일상/생각나의 윤슬을 찾아서 16 골든햄스 26/03/24 692 11
16092 일상/생각제1화: 금요일 오후 5시의 공습경보 11 큐리스 26/03/24 574 9
16091 음악[팝송] 미카 새 앨범 "Hyperlove" 김치찌개 26/03/24 229 2
16090 방송/연예방탄소년단 광화문 콘서트, 어떻게 찍어야 할 것인가? (복기) 8 Cascade 26/03/23 808 22
16089 일상/생각자전적 소설을 써보려고 해요~~ 5 큐리스 26/03/23 527 2
16088 육아/가정말주머니 봉인 해제, 둘째 7 CO11313 26/03/22 593 20
16087 게임[LOL] 3월 22일 일요일 오늘의 일정 발그레 아이네꼬 26/03/22 245 0
16086 게임붉은사막 짧은 소감. 갓겜 가능성은 있으나, 덜만들었다. 6 닭장군 26/03/21 773 0
16085 게임[LOL] 3월 21일 토요일 오늘의 일정 발그레 아이네꼬 26/03/21 251 0
16084 영화[스포O] <기차의 꿈> - 넷플릭스에 숨어있는 반짝거림 당근매니아 26/03/20 395 1
16083 게임[LOL] 3월 20일 금요일 오늘의 일정 1 발그레 아이네꼬 26/03/20 293 0
16082 게임[LOL] 3월 19일 목요일 오늘의 일정 1 발그레 아이네꼬 26/03/18 317 0
16081 일상/생각ev4 구입기 32 Beemo 26/03/18 1214 15
16080 게임[LOL] 3월 18일 수요일 오늘의 일정 5 발그레 아이네꼬 26/03/17 344 0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