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 16/09/27 02:57:37 |
Name | 피아니시모 |
Subject | 기억의 단편, 어린시절 내가 겪은 트라우마 (1) |
* 편의상 반말로 작성한 점 미리 사과드립니다 ㅎㅎ ----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개인적인 가족사(?)까지 꺼내야해서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써도 되려나 싶기도 하다. 이때의 기억떄문에 중학생 시절엔 기독교(+천주교 왜 두개 모두인지는 좀 더 나중에 설명)에 대한 혐오심이 극도로 강했었으며 이게 종교라는 거 자체에 대한 혐오감으로 변하기까지했다. 이 트라우마로 인한 혐오감을 어느정도나마 극복하는 데 10년이 조금 안되게 걸렸다. (극복한 것도 군대라는 특수한 환경 덕분이었다..-_-;;) 1. 기억의 시작 내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제외하고 가장 좋아하며 친하게 지낸 친척은 외가집의 작은형이 있었고 그 다음은 작은 고모였다. (아버지는 장남으로 밑에 동생이 3명이었다. 고모가 둘 삼촌 한명 왜 작은아버지가 아니냐면 아직도 결혼을 안하셨다.) 작은 고모는 친가쪽 친척들중에 나를 가장 좋아했었다. 그 당시 작은 고모에게 조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큰고모의 아들과 딸 (내겐 동생들이다.)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그들중에서 나만 특별히 더 이뻐했다고 한다. 그건 아무래도 한동안 같이 살았기때문에 더 컸을거고 직접 업고 다녔기때문에 더 정이 갔었을 거다. 여하튼 나 역시 그런 작은 고모를 잘 따라다녔다. 작은 고모는 내게 책도 읽어주고 이것저것 잘대해주었다. 당시 삼촌은 병사에서 부사관으로 임관하며 직업군인이 되었는데 그때면 한참 군기가 빡셀때였던지라 다소 엄하고 무서웠으며 (사실 실제 삼촌성격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군대라는 곳이..) 큰 고모는 내가 태어나고 얼마 안가서 바로 시집을 갔기도 했지만 작은 고모보다는 좀 더 어려워했던 게 사실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나가고나면 나는 아랫집에 내려가 (당시에 살던곳은 약간 허름한 빌라였는 데 * 지금은 재개발이 되었다.* 이웃끼리 모두 다 친헀다. 물론 같은 동일떄 한정이었지만.. 그래서 아랫집에 사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나를 이뻐하셨다. 뭘 하든 오냐오냐했었으니..-_-;) 냄비뚜껑을 꺼내서 쾅쾅 쳐대는 온갖 민폐를 하고 다녔다-_-;; 어머니는 놀래서 그런 나를 끌고갔지만 아주머니는 그저 내가 귀엽고 이쁘다며 웃을 뿐이었다...고 어머니가 나에게 지금까지도 틈만나면 놀리면서 이야기해준다.. * 사실 이떄 나이가 아직 5살도 안된때인데 저걸 기억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당연히 대부분이 어머니가 이야기해준걸 근거로 한다. 근데 이상하게 냄비뚜껑 치던건 기억난다 왠지 모르겠다..작은 고모에 대한 감정 역시 마찬가지 삼촌과 큰 고모에 대한 감정은 좀 더 크고 난 뒤에 느낀 감정을 저기다 갖다붙인거다..(..) 다시 그렇게 집으로 들어가면 어머니는 집안일을 하느라 바빳고 그러면 결국 다시 작은고모가 나를 놀아주었다. 그리고 이런 생활은 내가 7살떄까지 있었다. 작은 고모와 놀았던 기억의 대부분은 바로 이때의 기억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고모의 약혼자라는 사람이 우리집에 찾아왔다. 2. 불행의 시작 나중에 20살이 넘고나서야 어머니에게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당시 고모는 사랑하는 애인이 있었다고 한다. 그 사람 역시 고모를 정말 사랑했지만 할아버지가 굉장히 싫어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 아버지도 싫어했었다고 한다. 평상시에 정치얘기만 아니라면 사람 차별하는 말은 절대로 안하는 아버지가 이때만큼은 굉장히 짜증냈었다고 한다. 어머니 말로는 그래도 자기 동생이라고 걱정되서 그랬던거 같다고 한다..) 우리 할아버지는..손자인 내가 봐도 부모로써는 그닥 좋은 사람은 아니였다. 평상시엔 멀쩡하지만 술만 들어가면 사람이 변하는 데다 자식들에 대한 차별은 물론이고 (특히 아버지를 굉장히 미워하였다. 오죽하면 나중에 큰고모가 할아버지에게 대놓고 아버지는 양심이 있으면 오빠한테 대접받을 생각은하지도 말라 라고 말했을정도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런 얘긴 절대로 안꺼내니깐 다만 절대로 할아버지에게 대들거나 하진 않았다. 좋아하냐 아니냐와는 별개로 해줄 노릇은 다 해줬다. 단지 그걸 할아버지가 만족못하고 혼자 미워했을뿐) (할아버지는 전형적으로 남들에겐 성인군자인데 가족들에겐 험악한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남들 말 믿고 가족들 말 안듣고 하는 건 할아버지 닮았지만 그렇다고 가족들에게 손대거나 술마셨다고 욕하거나 때리거나하는 건 일체 없는 건 기적같다고 하였다.) 여튼 이때부터 불행의 씨앗이 터져버린다. 일단 집안의 반대도 심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더 이상 그 사람과 함께할 수가 없게 되었다. 고모의 애인이 (몇년도인지는 모르겠다.) 망년회때 술을 마시고 귀가하는 도중에 사고를 당해 죽어버린 것이다. 안그래도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내가 태어나기전에 돌아가셨다.) 그 충격이 엄청났었다고 한다. 아버지나 큰고모는 성격이 활달한데다 밖에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었고 당시에 일을 하고 있었기때문에 그나마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그때의 충격을 조금씩이라도 가라앉히고 있었던 반면 내성적이고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작은 고모는 그 충격을 끝내 떨쳐내질 못했다. 그런 와중에 이런 일까지 겪게되었으니.. 그리고 얼마 안 가 할아버지의 중매로 고모는 새로운 약혼자를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와 큰고모의 말로는 이때 할아버지가 잘못을 해도 너무 큰 잘못을 한거라고 말하였다. 이때의 중매 그리고 약혼과 결혼이 작은 고모의 인생을 송두리쨰 망가뜨려버렸다고 했다. 어쩃든 그 약혼자 나에겐 작은고모부가 되는 그 사람은 집에 인사를 하러 찾아왔고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할아버지가 이 사람이 누군지 아냐?라고 질문하면 작은고모부! (큰고모부를 알고 있었기때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라고 대답하면 할아버지는 좋아하였다. 여튼 그렇게 얼마 안가 작은 고모는 결혼을 하게 되었고 집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3. 지옥같은 결혼생활 당연하지만 작은고모의 결혼생활은 파탄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도 그때의 일은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그 당시 내 기억에 어머니는 언제나 밤마다 작은 고모의 전화를 받아주었다. (참고로 작은 고모는 큰고모를 조금 싫어했다.. 종교적인 차이도 있엇고) 내용은 뻔했다. 결혼생활에 대한 스트레스와 문제가 발생하는 데 이에 대해 들어줄 사람이 의지할 사람이 우리 어머니(고모에겐 새언니)밖에 없었던 거다. 할아버지는 위에 말한대로였고 아버지에겐 걱정끼칠꺼 같다고 말을 안했으며 삼촌은 군인이었기때문에 전화를 할 수가 없었다. 큰고모에게는 사이가 불편한것보다도 큰 고모 역시 시집을 간 상황인데 당시 핸드폰이 있던 것도 아니고 전화를 건다면 결국 사돈(..)에게 전화를 거는것과 다를 바가 없었기때문에 결국 전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친정집의 새언니밖에 없었던 거다. 어머니는 약간 그거떄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셨지만 그렇다고 안받아줄 수도 없었다. 어머니 역시 말씀을 안해주시기때문에 정확히 내가 알수 있는 건 없지만 적어도 그 결혼생활이 작은고모에겐 지옥과 같은 상황이었고 그떄문에 어머니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과는 별개로 고모를 안타까워하며 위로해주었다. (사실 이걸 아버지에게도 얘기를 하긴 했지만 아버지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으니 결국 이야기를 들어주는거밖에는 없었다.) 결국 그렇게 결혼생활은 완전히 파탄이 나버렸고 도망치듯 이혼을 하며 그 집에서 나가게 되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게 아마 결혼한지 2~3년만의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시대였다면 몇달이면 이혼했을 텐데.. 그때는 그게 아니였다. 어쨋든 그렇게 이혼하고 나서 바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부산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큰 고모는 이것이 바로 작은 고모가 겪은 또다른 불행이었다고 말한다. 결혼생활의 실패와 이 부산에서의 생활은 작은 고모를 정신적으로 완전히 뭉개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0
이 게시판에 등록된 피아니시모님의 최근 게시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