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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6/11/19 21:55:24
Name   nickyo
Subject   평화집회를 바라보며
벌써 이 집회도 거진 몇 주째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은 집회를 나가지 않았어요.
지난 주 백만 군중 사이에서 어느정도 새로운 바람을 느꼈었는데.. 동시에 회의도 좀 있었어요.

저는 법적 안정성보다는 민주주의적 민중의 힘을, 사회적 안정성 보다는 저항권의 적극적 인정을 옹호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사회운동이 폭력과 비폭력의 이데올로기에 갖히는게 너무나 싫었어요.
특히 00년대 이후 국가폭력이 낳은 희생들의 면면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고요.
08년에 촛불을 들었었고, 그 이후에도 몇몇 대기업과 정권의 노동자 탄압에 연대하면서도 이 생각은 변한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뉴스룸에서 보여주는 집회영상을 보면서, 어쩌면. 어쩌면 기대해도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지난번에 나온 3.5%의 법칙을 신뢰하지 않아요. 그 교수의 영어로 된 연구논문까지 받아왔고, 다 읽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폭력과 그 연구에서 의도한 폭력의 농도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결국 증오는 증오를 낳는다는 말 역시 부정할 수 없어요. 저는 이제까지 차벽과 경찰들 안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외쳐봐야 가두리양식을 당하는거랑 무슨 차이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여러 노조운동은 그렇게 일상과 강제로 분리되고, 대중과 멀어지고, 고립되고 박살나고 사람들이 죽어야 했어요.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쇠파이프를 갈고 경찰를 찌르고자 파업을 시작한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나에게서 중요한 것들을 하나씩 천천히 빼앗아가고 손발을 자르는 상대 앞에서는 꿈틀할 수밖에 없었던거에요. 그게 우리네 역사였고요. 우리가 배울곳도 그런 곳 뿐이었어요. 우리가 먼저 무기를 들든, 놓든 간에 결국 우리는 얻어맞고 깨지고 감옥에가고 수십억의 손배소 앞에서 파탄나는 인생앞에 쓰러지기만 했거든요. 악은 악대로 쌓이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감옥에가고 자살을 하고 죽어갔어요. 그렇게 나쁜 사람들로 살아온 사람들이 아니었는데. 그래서 전 경찰이 싫어요. 국가폭력이 싫어요.


하지만..

우리는 100만의 군중이 넘는 사람이 모이고서도 너무나 질서정연했어요. 우리는 백남기씨의 죽음에도 저렇게 뻔뻔한 정부와 경찰권력을 앞에 둔 채로 차벽을 부수지 않았어요. 우리는 경찰을 뜯어내고 구타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우리의 분노를 허공에 외치고 불빛으로 일렁였을지언정 그들을 태울 무기로 쓰지 않았어요. 경찰이 백만의 군중앞에서, 그리고 매일 수천 수만의 목소리 앞에서 저 견고한 방패와 헬멧으로 무장하고 서 있을때도, 우리는 우리의 깃발과 두 손, 크게 벌린 입과 외침으로 대신했어요. 아, 제가 이 사람들의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외침을 처음에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에요. 내가 겪었던, 우리가 입었던 상처들이 있는데.. 어떻게. 어떻게. 그런데 그 자리에는 백도라지씨도 있었을테고, 유민아빠도 계셨을거에요. 나보다 더 아팠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다독이는 모습을 보며.. 아, 어쩌면 우리는 길고 힘들지라도 사랑으로밖에 싸울 수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때였어요. 저 높고 두꺼운 차벽과 수많은 경찰병력, 커다란 방패와 투박한 헬멧들 뒤로 숨어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서 있는 무서운 경찰병력이 애처롭고 안쓰럽고 참 별 것 아니구나 싶어진거에요. 우리의 목소리가, 우리의 맨손이 두려워 저렇게 꽁꽁 숨는구나. 우리는 이 선에서 발 붙이고 서서 외칠뿐인데도 그것이 저렇게 두려워 꽁꽁 숨는구나.


저는 매주 매일 광장으로 나오는 시민들에게 새삼 감동하고 있어요. 사람의 인내심이라는게, 스트레스라는게 얼마나 참기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요. 그러나 우리는 벌써 수 주째 잘 참고 끈기있게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가며 외치고 있어요. 저는 이 나라를, 이 시스템을 바꾸고자 자신의 황금같은 주말과 휴식을 맞바꾸어 거리에 나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이 나라와 사람들과 사회를 사랑하는지 새삼 느끼게 되어요. 들이 받고 싶을법도한데, 매주 저렇게 뻔뻔하게 나오는 부당하고 부정한 정권과 위정자들에게 화가 날 법도 한데 끈질기게 기다려주는 거잖아요. 우리가 돌을 들 수도, 화염병을 들 수도, 쇠파이프를 들 수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거잖아요. 증오를 증오로 받아치지 않고, 잘못을 고치기 위해 사랑과 관용으로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증오를 사랑이 언제나 이기는 것은 아니에요. 더 자주 배신당하고, 더 아프게 당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크고 길게 본다면 결국 증오는 증오를 낳지만 사랑은 증오를 끊어낼 수 있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가 옳았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게 되지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이렇게 몇 주간 사랑과 평화의 모습을 보였다면, 어쩌면 우리를 막아서는 공권력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요구해도 되지 않을까. 만약 경찰들이 우리와 마주서지 않고, 우리의 행진 끝자락에서 그저 딱 반바퀴만 뒤를 돌아서 같은 곳을 바라보면 어떨까. 오늘 영상에서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의경, 경찰도 시민이다. 공격하지 말자. 저는 사회과학도로서 그것이 바보같은 주장이라고 생각했어요. 공권력은 특수한 것이고 그 안에서 개인을 찾는건 구조를 모르는 것이라고. 그러나 바보는 저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가 그들을 '공권력'이 아니라 '시민'으로 대했을 때, 그들도 우리를 '투사'나 '폭도'가 아니라 '시민'으로 대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소련의 고르바쵸프가 의도가 어쨌든 간에 일방적인 군비감축을 통해 냉전의 종말을 빠르게 당겼듯이, '일방적인 평화' 만이 평화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라면 우린 이미 그걸 실행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경찰들에게도 외쳐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길을 열어달라 하지 않겠다, 함께 외쳐달라 하지 않겠다. 그러나 집시법의 목적이 그러하고 공권력의 권력이 민중에게서 나온 것처럼, 우리를 막지 말고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우리와 마주서지말고 우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자고.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도 좋으니 그저 반 바퀴 딱 돌아서 함께 바라보자고.


만약 이게 성공하면요, 우리는 차벽을 없애도 좋을꺼에요. 거리와 우리를 분리시키고 시민을 투사로 바꾸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우리를 떨어뜨리고 우리의 목소리를 가두는 저 거대한 성벽을요. 그리고 거기엔 작은 폴리스라인 표지판 정도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우리는 때때로 그 곳을 지나가는 시민들과 목소리를 함께하거나 하이파이브를 할 수도 있고, 핀잔을 듣거나 혼날지도 몰라요. 그러나 결국, 오바마가 말했듯이 우리는 정치적 의견이 다를지라도 결국 한 팀이잖아요.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 그러니까 우리는 분리되지 말아야 해요. 차벽 너머의 사람들과 언제나 이어져 있어야 해요. 우리가 돌아선 경찰에게 우리의 일방적인 평화와 존중을 증명한다면, 경찰은 차벽을 치울 수 있을 거에요. 우리가 그것을 요구할 수 있을거에요. 그러면 그 다음에는 한여름, 한겨울에 힘들고 불편했던 방패와 헬멧도 잠시 치워둘 수 있을지 몰라요. 우리가 함께 사랑으로 대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듯이, 공권력 역시 우리를 신뢰할 수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기적일거에요.


물론 이 얘기는 이상적이고, 불가능해보일지도 몰라요. 그러나 저는 감히 얘기하건대, 지난 몇 주간의 집회야 말로 기적의 연속이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그러니 우리는 안될 것 같다, 그럴 리 없다는 생각대신 이게 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될 거에요. 우리는 우리의 공권력이 우리편으로 돌아설 수 있게 만들어요. 우리의 평화가, 우리의 꽃이 그들의 무장과 그들의 방어를 내려놓을 수 있게 만들어요. 그들이 설령 그것으로 인해 잠시 피해를 입고, 압박을 당하고, 부당한 행정처분을 받는다면 우리가 그것을 감시하고, 잊지말고, 함께 서 있는거에요. 그리고 역사가 우리의 손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의 편이 되어준 이들을 다시 온전히 복권시키면 되요. 과거 광주의 경찰분이 시민에 대한 발포를 거부했다가 고문후유증으로 돌아가신 아픈 역사가 있었잖아요. 우리가 이긴다면 그런 역사를 만들지 않으면 될 거에요. '권력'에 편들지 않고도, 민중과 옳음의 편에 서고도 살아갈 수 있음을. 함께 할 수 있는 역사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면 좋겠어요.


길고 긴 싸움이 우리 역사에 있어서 정말 멋진 선례를 만들길 바래요. 촛불의 일렁임이, 그 평화의 감동이 우리에게 놓여진 서로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길 바래요.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아마 저와 여러분의 고민과 행동에 달려있을거에요. 함께 생각하고, 다음 집회도 다다음 집회도 이를 이루기 위해 함께 노력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감동의 시대를 우리 손으로 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만 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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