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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5/06/29 13:23:54
Name   Neandertal
Subject   확신이 아집이 아니라 멋있을 때...
확신: [명사] 굳게 믿음. 또는 그런 마음.

사전에 나오는 확신의 의미입니다. 확신이라는 것은 대개 좋은 의미로 사용되곤 하지만 때로는 이 확신과 아집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보니 문제가 생길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칼로 무 자르듯 정량적으로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나는 확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대방이 보기에는 아집이나 고집으로 비춰지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특히 인터넷 같은 곳에서 특정 주제로 논쟁이 벌어지면 이 확신과 아집은 위험한 줄타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아집 쪽으로 넘어가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그로 꾼"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확신이 아주 멋있는 장면을 만들어 낼 때도 있습니다. 원소주기율표를 만들어 낸 러시아의 화학자 멘델레예프가 바로 그런 확신을 멋있게 승화시킨 주인공이지요. 화알못이지만 화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물어 본다면 원소주기율표라고 답할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원소주기율표를 모르고 화학을 하겠다는 것은 드리블, 볼트래핑 기술 안 배우고 바르셀로나 1군에서 주전으로 뛰겠다고 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지요.



멘델레예프...


이런 중요한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는 정말 확신에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쓸 만한 화학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그 프로젝트에 착수했을 때 가장 절실했던 문제는 그 당시까지 알려졌던 원소들을 어떻게 묶어서 해설을 해야 할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원자량에 따라 원소들의 화학적 성질이 유사하다는 점에 기초해서 원자량을 기준으로 해서 원소들을 같은 계열로 묶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작업을 하다 보니 난관이 한 둘이 아니었습니다. 일단 알려지지 않은 원소들이 들어갈 자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이미 알려진 원소들이 자신이 생각한 것과 원자량이 다른 경우들이 발생했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접근법이 맞는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원소들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두고 원자량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원소들도 자신의 생각한 자리에 과감하게 배열했습니다. 자신의 접근 방법에 대한 뚜렷한 확신이 없었다면 하기 어려운 결정이었지요.

그런데 그의 이런 확신이 시험에 들 시기가 다가옵니다. 그가 원소주기율표를 만들다 보니 알루미늄 다음에 들어갈 원소가 비게 되었습니다(멘델레예프는 원소주기율표를 가로로 만들었기 때문에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원소주기율표에서 알루미늄 바로 밑에 오는 원소에 해당합니다). 그 당시 그 자리에 들어갈 원소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였지요.

멘델레예프는 그런 원소가 틀림없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고 아직 발견이 되지 않은 그 원소를 eka-aluminum이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소는 빛나는 금속이고 열을 매우 잘 전달하며 낮은 녹는점을 가질 거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소의 질량은 세제곱센티미터에 5.9그램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몇 년 후, 프랑스의 화학자 부아보드랑이 실제로 멘델레예프가 예측했던 것과 맞아떨어지는 금속 원소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원소는 다른 조건들은 다 멘델레예프가 말한 것과 맞아떨어졌는데 단 질량이 세제곱센티미터 당 4.7그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멘델레예프는 즉시 부아보드랑에게 편지를 씁니다. 편지의 내용은 대충

"헤이 부라덜...자네의 샘플에 분순물이 들어간 게 확실함...정제 제대로 했음?...정제 다시 잘 해서 실험해 보기 바람...이상...
멘델레예프로부터..."

이랬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부아보드랑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아니, 이런 시베리안 허스키!...어디서 듣보잡이 실험을 제대로 했네 못했네 x랄이야?...뭐 정제가 어쩌고 어째?..."

이렇게 폭발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화학자에게 정제를 제대로 했냐고 물어보는 건 어떻게 보면 화학자로서의 기본 자질 문제를 거론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부아보드랑은 그렇게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는 멘델레예프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이번에는 정제를 아주 확실하게 하고서 실험을 다시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 추출된 원소의 질량은 정확하게 세제곱센티미터 당 5.9그램이었습니다. 멘델레예프의 예측이 맞은 것이고 그의 원소주기율표의 신뢰성이 담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부아보드랑은 멘델레예프가 예측하고 자신이 발견한 원소의 이름을 갈륨(gallium)이라고 지었습니다. 라틴어로 프랑스가 갈리아(Gallia)인데 자신의 발견한 원소에 자신의 나라 이름을 붙인 것이었지요.

멘델레예프는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고 1963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원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원자번호 101번 멘델레븀이 바로 그것이지요. 자기보다 두 번호 앞 원소가 아인시타이늄(einsteinium), 원자번호 112번이 코페르니슘(copernicium)이니 이 정도면 확신을 밀어붙인 결과로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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