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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2/20 16:07:06
Name   二ッキョウ니쿄
Subject   선의의 전염에 대해.

00년대 이후정도로 봐야할까요, 근대에 주목받았던 사회를 분석하는 기준들이 점점 무너지면서 사회는 자유와 다변화에 더욱 빠르게 적응합니다. 빈곤한 이들이 더 소비주의적으로 행동한다든가, 경제적 주체들이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든가, 자신이 속한 계급의 이익에 맞게 행동하지 않는다든가, 제도, 법, 이념과 같은 것들과 동떨어지게 행동한다든가.. 사회학자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사회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사회학자들의 이론에 의존하여 판단을 하는 대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의 이론은 대중에게 내려와 하나의 구속력을 지니게 되죠. 그 구속력을 위해선 어느정도의 설명력이 필요하고.. 그런면에서 이데올로기론과 구조주의는 제게 꽤 큰 지분을 차지하는 영역입니다. 사람들의 행태를 일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요소가 구조와 이데올로기에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거죠.

그런 배경에 입각하여, 요즘 제가 개인적으로 느끼는 변화를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대학교 생활과 소위 운동권(내지는 비슷한)활동이나 사회과학 세미나 활동을 병행할때는 기본적으로 주변의 많은 호의와 선의를 무상으로 누리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활동에 반감을 가지는 분들에게서 적의도 받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특성상 어느정도는 내가 옳은 일을 한다거나 남들보다 조금 더 사회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거나 혹은 약자의 편에 선다는 일종의 자부심 내지는 뽕맛도 약간이나마 느끼면서 함께 엮여있는 관계망 속 사람들끼리 서로 호의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사회의 힘든면과는 별개로 저 개인 역시도 그러한 마음가짐을 배우게 됩니다. 타인에 대한 호의, 관용, 여유, 받아들임 같은 것들이요. 이것은 일종의 소속된 관계망의 규칙을 지키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 어떠한 명칭으로 저를 호명했을때, 제가 진보적인 학생, 사회주의적 지식인이길 소망하는 대중, 약자를 돕는 연대자와 같은 호명 아래에서 저는 어떠한 행동을 해야하며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작년 여름 이후 이러한 모임들은 하나하나 해체되기 시작합니다. 방향성에 대해 서로 다른길을 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사회인이 되는 것을 앞두고 다들 자신의 장래를 위해 다양한 길을 떠나기 시작했죠. 누군가는 비슷한 호의가 남아있는 길을 택했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은 길을 택했습니다. 저는 후자였어요.


개인적으로 어릴 때 저는 호의보다 적의를 많이 받아온 삶을 살았습니다. 저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좋아합니다만 빈곤과 가난속에서 땅값 비싼 서울에 아파트를 사고 아이엠에프를 지나면서도 서울의 생활을 유지한 부모님의 억척스러움과 생존력, 그리고 그 경험들은 제게 비슷한 것들을 요구했습니다. 저는 그 기대치에 쉽게 부응할 수 없었고, 부모님께서는 워낙 옛날 분들이시다보니 우리는 서로에게 긍정적인 방식보다는 부정적인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무언가를 할수 있다보다는 넌 못할거야와 같은 말들은 계속 쌓였죠. 저는 저 나름대로 그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오기로 승화시켜보려 노력해왔습니다만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는 제가 무언가를 잘 할수 없다는 절망같은것이 아주 단단하게 자리잡고있습니다. 이건 부모님이 그렇게 키웠다는 이유기 보다는, 제가 이겨내고자 하는 과정에서 실패가 쌓인것이 너무 오래 남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하튼 저는 체격이 크고 힘이 좋은 것에 비해서 성격은 모질지 못했고, 겁은 많아서 모험적인 일을 잘 하지 못했습니다. 공부는 적당히 어중간한 편이었지만 머리는 똘똘하게 돌아가는 편이어서, 말은 또 잘 하고 다녔죠. 학창시절에는 이러한 것들때문에 아이들로부터 꽤 공격적인 태도를 받아왔습니다. 주먹질과 몸으로 학창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저를 찍어누르고 싶어했고,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성적도 안나오는게 말이 많냐는 식이었죠. 저는 어느 그룹에서도 호의어린 시선을 받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외모도 인기가 좋을법한, 혹은 호감형의 외모는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제 편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죠.


그런면에서 저는 호의와 선의에 목마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막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내온 것은 아니고 남들보다 비슷하거나 조금 더 힘들었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지내다가 정착한 울타리 안에서 느끼는 선의와 호의는 매우 달콤하고 선명하게 제 주변을 바꾸기 시작했던 것이죠.


지금의 저는 이러한 울타리를 벗어난지 반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점점 제 내면이 변하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저는 제가 지지했던 많은 운동들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누군가를 돕고 관용으로 대하고 선의로 마주하는 것이 귀찮고 번거롭고 싫어지고 있습니다. 제게 오던 선의들로부터 멀어지고, 사회에서 호의가 배제된 것들과 마주하며 저 역시 점점 염증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죠.  언젠가부터는 페북도 아예 들어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활동했던 친구들의 열정어린 말들이 짜증나기 시작했거든요.


이렇게 보면 저는 그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중에 진정성없는, 뭐라더라.. 무슨 진보라고 했던거같은데. 아무튼 사이비 같은 느낌의 인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근데 뭐 이걸 제가 자아비판하고자 글을 연 것은 아니었고요. 사실 제가 아주 일반적인, 혹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좀 더 이기적이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봤을 경우에 저 같은 사람들이 좋은 선택, 옳은 선택을 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이 글을 쓰게 된 것입니다.


이건 영화 나, 다니엘 브레이크를 보신 분들이라면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우실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현대사회는 법률,행정,제도에 의해 구속되며 이것들을 지키는 것에 정의나 도덕같은 윤리적 이데올로기가 윤활제가 되어줍니다. 문제는 민주주의 사회의 특성이 이것과 결합했을때, 사람들은 동등하여 더욱 배타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에 대해 모르는 만큼 위협을 느끼고, 모르는만큼 최악의 경우를 생각합니다.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이나 소수자에 대한 논란같은것의 핵심, 기본소득이나 보편적 복지에 대한 핵심이 이런 부분과도 이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해'가 싫은 것. 내가 열심히 사는데 열심히 살지 않는 놈들을 위해 무언가가 함께 가는것이 싫은것. 너와 나는 동등하니까 동시에 온전히 동등한 상태이길 바라는 것. 내가 겪는 고통을 감수하지 않은 자들이 나 만큼의 호혜를 누리길 원치 않는 것. 혹은 그러한 고통이 있더라도 그 고통을 외면하고자 하는 것. 그런데 과연 이러한 어떻게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생각들은 정말로 당연한 것들이었을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저는 어릴때부터 댓가와 보상이라는 것에 대해 지속적으로 납득하길 교육받아왔습니다. 동시에, 서로에게 공정하고 평등한 입장이란 서로가 내놓은 것 만큼의 대우를 받는 것을 뜻했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희생했는지를 제대로 계량할수도 확인할수도 없습니다. 다만 비슷하게 그럴것이라고 믿어볼 뿐이죠. 이것은 지속적으로 시스템속에서 주입받아온 생각이고, 이것이 정의롭고 선한 것이라는 교육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당사자가 약자일 때에 또 다른 방식으로 느껴집니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실업급여를 타기위해 노동부의 다양한 기준들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런 규칙들이 부당한 것이라는 건 아니고, 또 어마어마하게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이 실업급여를 받고 재취직 준비를 하는 과정은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한 일들이었고 그 도움의 일정 부분은 제가 담당했습니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실업급여는 분명한 국가의 복지정책이었지만 동시에 그 복지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또 하나의 장벽처럼 느껴지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이 기존의 교육과정에서 옳다고 가르치는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요.


그러한 것들을 반복해서 접하면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향하는 선의나 호의가 무가치하다는 것을 교육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모든 것들은 내가 무언가를 해야만 주어지는 것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제 생각에는, 어떠한 제도나 법률이나 원칙을 아무리 개선해도 이러한 상황 자체를 없앨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비율을 줄이는 과정일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제가 느끼는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이것을 접목시킨다면, 내가 무언가를 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원칙이 사람들을 파편화 하는 과정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면 자본주의의 모순은 어떤 시점에서는 누군가의 '댓가없는' 호의를 필요로 합니다. 이 체제가 유지되는 과정 속에서요. 부유층들의 기부, 임금의 일방적 상승, 사회 복지체제의 확충.. 하지만 이러한 호의들이 약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호혜받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다양한 조건과 댓가들이 붙게 되면서 호의는 더 이상 호의처럼 여겨지지 않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기본적으로 무언가를 기여해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건 아주 당연한 것이죠. 하지만 때때로 우리가 공동체를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당장 할 수 없는 사람도 언젠가 사회 전반적으로 선의가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지 않는다면 많은 부분이 고장나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극히 제 개인적인 변화에 주목해보자면요. 지금의 제도나 행정이 갖는 방향성들이 어쩌면 사람들이 가져야 할 서로에 대한 공동체적 의식과 선의를 오히려 저해하는 것은 아닐지...


이러한 선의나 호의에 의존하는 것은 구조적으로는 무가치하다고 여길만큼 위험한 생각이었습니다. 계량할수도없고 확인하기도 어려우니까요. 이런 것들에 의존하느니 더 명확한 제도와 법률과 원칙에 의존하는 것이 근대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보면, 이 두가지는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비로소 제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사회라는 울타리가 우리의 삶을 단단하게 받쳐준다는 호의를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하고, 그것이 언젠가 다시 사회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 혹은 확신이 남아있는 사회여야 하는건 아닐까 하는거죠. 그런면에서 저는 예전과는 약간은 다른 관점에서 사회가 약자를 어떻게 대할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조금 바꿔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이념이나 구조에 의해 많은 행태적인 부분에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결정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의 행태가 서로에게 선의, 호의와 공동체적 의식으로 맞물릴 수 있는 의식을 생활 일반에서 느끼도록 하는것이 사회 전반의 행태를 긍정적으로 바꿀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지요. 물론 어떤 시점에는 일방적인 비용이 부과되고, 당장의 반동들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오히려 제도나 행정이 갖는 많은 비용들을 줄여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뜩이나 더욱 무한경쟁의 체제 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저 역시 그러한 구성원중 하나로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의 조건없는 호의가 목마른 상황이라 이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우리가 계속해서 서로를 경쟁자로만 받아들이고 위협이 되는 배타적 존재로만 사고한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사회계약설로부터 한 발도 진보하지 못한 사고관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면(그리고 어쩌면 자본주의의 구조적이고 이념적 특징들이 이러한 것을 더욱 강화시키는 상황이라면) 우리가 회복해야할 선의와 공동체의식(국가주의나 배타적 민족주의와는 다른)을 위해서 사회 전반에서 약자들에게 향하는 정책과 환경이 좀 더 일방적인 신뢰관계로 시작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편적 복지라거나, 무상급식이라거나, 반값등록금이라거나, 기초소득같은 것들이요.


본 글은 엄밀한 근거로 쓰여진 것은 아니고 개인적인 심경과 행태의 변화를 추적하며 생각했던걸 풀어봤습니다. 그럼 20000..
P.S 긴글을 안쓴지 오래됐더니 진짜 못쓰겠네요; 넘못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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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찰과 통찰엔 춫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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