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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17/02/21 18:19:44
Name   저퀴
Subject   삼국지 13 PK 리뷰

최근에 새로 구입한 게임이 거의 없었는데요. 그나마 비싼 돈 주고 산 삼국지 13의 PK를 살까 말까 고민했다가 나중에 한국어가 지원될 쯤에는 관심도 사라지겠구나 해서 그냥 언어 문제를 포기하고 플레이해봤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평을 들었으면 아예 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게임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게임을 보면 화가 날 정도라서 혹시라도 삼국지 13 PK를 구입하고 싶으신 분들에게 적극적으로 말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삼국지 13은 아주 염치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가격은 AAA급 이상을 받으면서 그 완성도는 인디 게임보다 못했으니까요. 그래픽부터 게임 내적인 완성도까지 유저를 만족시킬만한 요소가 아예 없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보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일러스트와 얼마 되지 않는 음악 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PK에선 대대적인 개선이 있어야만 했는데요. 무언가 고치려고 노력한 건 보이지만, 한참 부족합니다. 오히려 문제의 핵심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어요. 대표적으로는 반복적이면서 지루한 전투, 전략적으로 무언가 할 만큼의 깊이가 없는 간소화 등은 여전히 똑같습니다. 전투는 전장만 쓸데없이 커져서 시간만 잡아먹습니다. 요충지를 통한 전술적 이점 같은 건 숙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허술하고 의미가 없습니다. 여전히 극히 일부의 장수가 밸런스와 상성을 무시할 정도로 강력하거든요.

내치과 외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아예 변화가 없어요. 클릭 노가다는 여전합니다. 따질 필요조차 없어보입니다. 그나마 새롭다고 할만한 건 재야 신분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협객과 상인이 있는데, 이 둘은 처음엔 신선하지만 일반적인 플레이보다 더 깊이가 없습니다. 엔딩까지 플레이가 아예 똑같아요. 모바일 게임만도 못한 반복 플레이만 존재합니다. 심지어 게임의 템포가 너무 빠른 탓에 초반 플레이가 강제되기까지 합니다. 안 그러면 무언가 자유롭게 플레이해보는 것조차 불가능해지거든요.

결혼에 이어서 추가된 육아는 오리지널에 진작에 있어야 했던 것이었고, 그래야 했다고 생각될만큼 역시 깊이가 없습니다. 또 삼국지란 원작의 한계까지 존재하는데요. 황건적의 난부터 진나라의 통일까지 길어도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시간적 배경 탓에 육아를 통해서 2~3세대를 바라볼 정도로 게임이 진행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내 자식과 교류란 것도 존재하지 않고, 다른 행동이랄 것도 없어요. 하다 못해 13이 강조되는 인연이란 요소를 생각하면 다른 가문과 혼인한다거나 하는 이벤트도 넣어줄만 했을텐데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수준에 지나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다른 장수와 교류란 요소가 13 오리지널도 그랬지만 일방적이고 단편적입니다. 심지어 고정적이기까지 한데요. 나와 이미 의형제 혹은 그에 준하는 친구로 거듭난 장수와는 다시 교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친밀도가 하락할 일이 아예 없거든요. 삼국지 내에서조차 의형제라 할지라도 서로 싸우게 되는 관도대전의 유비와 관우의 사례가 있고, 부부라 할지라도 아들의 죽음으로 갈라진 조조의 사례가 있는데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빈약합니다.

그나마 나아진 건 약간의 개선이 있었던 일기토와 설전을 들 수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 둘도 게임 내 빈도에 비해선 재미없긴 마찬가지라서 장점이 될 순 없어요. 게임의 핵심이 영토 확장과 그걸 위한 전투와 일기토, 설전인데 핵심 요소가 단순하고 깊이가 없으니 나머지를 치장해봤자 소용 없는 느낌이에요.

거기다가 약간의 변화만으로 고쳐질 수 있을 것들도 바뀐 게 없더군요. 하북 지방만 통일하면 질 수가 없는 건 여전하고(간혹 이게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데 명백하게 재미를 해치는 요소를 취사적으로 역사적 고증이라고 주장한다면 전 나머지의 허구성을 모조리 비난할 수 있을 겁니다.), 아까 언급한 재야 플레이는 오로지 플레이어만 시도하기 때문에 내가 일반적인 플레이를 선택하면 변화를 체감할 수 없습니다. 하다 못해 인간 관계를 물질적 선물로만 해결하는 정신 나간 구조조차 고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확고하게 친분을 확립하는 과정은 몇 가지 되지도 않는데다가 사람을 짜증나게 만들 정도의 무작위성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건 더욱 큰 문제고요.

그리고 이건 미처 오리지널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인데 물품을 통한 관계 진전부터가 문제가 커요. 게임의 반이 학문을 좋아하는 문관들이고, 그들 상당수가 술이나 무기보단 책을 좋아하는데 게임 내에서 책을 얻을 수 있는 확률이 문관의 비중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합니다. 애초에 이런 부작용을 고려도 하지 않고 게임을 만들었다는 게 확신이 들 정도로 문제가 많습니다. 계속 강조하게 되는데 오리지널의 문제점이 고쳐진 게 하나도 없어요.

기술적 문제로 넘어가면 더욱 심각해지는데 그나마 버그나 CTD는 거의 없었던 오리지널에 비하면 눈에 띌 정도로 게임이 불안정해졌고, 프레임 드랍은 놀랍도록 심해졌습니다. 그래픽만 보면 10년 전에도 별로라고 했을 완성도인데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에요.

마지막으로 그나마 장점을 찾아보자면 장수제에 어울리도록 최대한 여성 캐릭터의 수를 맞춰주려 노력했다는 점과 역대 시리즈 중에서 최고라고 강조할 정도로 많은 캐릭터가 추가되었다는 점, 노부나가의 야망에서 가져온 이벤트 에디터 기능 정도가 있습니다. 물론 수많은 단점을 메꿔줄 정도의 장점일 순 없고요.

혹시 삼국지를 정말 좋아해서 게임의 완성도가 부족해도 상관 없으신 분이라고 해도 전 추천하지 않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너무 풍족해서 상관 없어도 추천하지 않아요. 시간과 예산 문제로 기획과는 다르게 엇나간 게임들이 수없이 많아도 삼국지 13은 PK에 와서도 투자와 노력이 들어가지 않은 미완성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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