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글을 작성하는 게시판입니다.
Date 17/05/01 14:32:02
Name   와인하우스
Subject   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

오늘은 5월 1일, '노동절'입니다.
노동절의 본격적인 유래는 1886년 미국 시카고에서 벌어진 헤이마켓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시위에서 경찰에 의해 유혈사태가 발생했고, 5월 4일 집회에서 누군가가 경찰에 사제폭탄을 던져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를 명확한 증거도 없이 아나키스트 운동가 8명을 체포해 사형을 언도하고 일부 집행한 사건입니다. 이는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법살인의 예로 꼽힙니다.
1889년 사회주의자 국제기구인 제2인터내셔널이 5월 1일을 노동절로 선포했고, 이후 많은 나라에서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해 각종 집회와 행사가 열립니다.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아나키스트들은 몇 년 후 제2인터내셔널에서 축출된다는 게 유머.)


노동?? 현황


*노동절이 국가공휴일인 나라 목록. (인터넷에서 긁은 거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동절의 기원이 된 미국은 5월이 아니라 9월에 노동자의 날(Labor Day)이 있습니다.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사회적 대타협의 일환으로 노동절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했지만, 한편으론 헤이마켓 사건을 잊게 하기 위한 방책이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Labor Day가 단순 휴일이 아니라 노동절로서의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 5월 1일은 '법의 날'이라고 하네요.



오늘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기도 합니다. 근로자의 날은 법정공휴일이 아닌 법정기념일입니다(다만 근로기준법상 유급휴일로는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늘 근무하는 곳이 휴일 수당을 줄리가 없다는 게 함정이지만). 영세 사업장의 근로자가 아닌 국가에 의해 고용된 교사나 공무원 또한 근로자의 날에 휴무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평등권 침해라는 헌법소원이 있었지만, 2015년 김이수 재판관을 제외한 다른 8명의 의견으로 기각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시기부터 시작된 자체적인 노동절 기념행사가 있었지만, 해방 후 1958년, 정부는 우익단체이자 한국노총의 전신인 대한노총의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1963년엔 그 명칭까지 근로자의 날로 바꾸었습니다. 그러니까 5월 1일의 '노동절'과 3월 10일의 '근로자의 날'이 대립하고 있었고, 이것이 유급휴일 지정과 함께 지금의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된 게 1994년의 일인 것입니다.


근로자의 날은 노동절이 아닙니다. '근로자의 날'은 그 제정 이유를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며, 근무의욕을 제고하기 위함이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절은 국가나 회사의 은혜 따위가 아니라 100년이 훨씬 넘는 투쟁의 역사에서 비롯된 역사적 기념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은 결코 긍정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고용)노동부와 노동법이라는 예외가 있지만 법에서나 각종 매체에서나 '근로'가 마치 '노동'의 순화어인 듯한 인상이 곳곳에 풍깁니다. 하지만 근로는 단순히 '부지런히 일함'을 뜻하고, 노동의 뜻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하여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라 하여 보다 구체적이고 능동적인 느낌입니다. (네이버 사전 발췌) 단적으로 말해 기업은 근로자를 좋아하지만 노동자를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영어단어로도 Worker가 개인 단위라면 Labo(u)r은 계급적 의미를 담고 있고, Worker's party라는 단어가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노동당은 Labo(u)r Party라고 쓰입니다. 노동자라는 단어에 집착하고 노동운동에 주로 힘을 쏟는 국내외의 좌파들이 분명 낡아보이는 점도 있지만, 그 맥락은 역사적인 것, 그리고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현실에 기인합니다.



첨부 링크
국립국어원의 '노동자' 순화 : http://www.upubli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4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노동헌장 선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2956.html



9
  • 좋은글 감사합니다


목록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829 일상/생각갑질 17 biangle 18/07/11 3686 9
6369 기타사랑. 그리고 자립성과 구속성의 균형 - 도날드 위니캇의 대상관계이론을 중심으로 16 호라타래 17/10/04 7569 9
6315 의료/건강의료 소모품 수액줄에 벌레가 발견된 것에 즈음하여 3 Beer Inside 17/09/21 4132 9
6302 정치정치 토론 커뮤니티 '윙스파티'를 소개합니다. 37 기쁨평안 17/09/18 5501 9
6291 기타콜라테러 썰 12 OshiN 17/09/15 4671 9
6197 의료/건강술, 얼마나 마셔야 적당한가? 56 빈둥빈둥 17/08/30 5353 9
6177 스포츠플로이드 머니 메이웨더-코너 맥그리거 경기에 대해 4 Danial Plainview 17/08/27 5784 9
6138 일상/생각빵꾸난 팬티... 10 tannenbaum 17/08/21 3577 9
6086 음악Swing Jazz - 씽씽 불어라, 재즈의 바람 6 Erzenico 17/08/10 5303 9
6079 일상/생각사람과의, 친구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5 쉬군 17/08/09 3510 9
8979 일상/생각오늘 아버지께서 인연을 끊자고 하셨습니다. 17 보리건빵 19/03/20 5963 9
8870 도서/문학서평 『새의 선물』 – 은희경 1 메아리 19/02/17 4710 9
9158 기타조선시대의 붕당에 대해서 대충 적어보는 글 3 피아니시모 19/05/06 4576 9
13985 정치트럼프의 놀라운 범죄 ~ 잃어버린 문서를 찾아서 ~ 8 코리몬테아스 23/06/14 2232 9
5586 일상/생각평범함에 대한 반골의 글. (뻘글 주의) 25 와인하우스 17/05/08 4769 9
5561 일상/생각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15 열대어 17/05/03 4677 9
5552 역사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 4 와인하우스 17/05/01 3694 9
5539 IT/컴퓨터컴쫌알이 해드리는 조립컴퓨터 견적 (2017.05) 14 이슬먹고살죠 17/04/28 6649 9
5535 정치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발언 이슈에 한 마디 보탭니다. 25 Homo_Skeptic 17/04/27 5108 9
5406 일상/생각주말, 바보 22 소라게 17/04/10 3442 9
5329 꿀팁/강좌쉽게 지킬 수 있는 몇 가지 맞춤법. 21 에밀 17/03/30 5876 9
5671 게임이브 온라인 이야기 – 2 3 한아 17/05/19 6667 9
7435 일상/생각고양이 가출에 대해 10 우주견공 18/04/24 4888 9
5243 일상/생각부산 쁘띠모임 후기 58 나단 17/03/20 4758 9
10231 도서/문학[책 감상] 오쓰카 에이지(2020), 감정화하는 사회 호라타래 20/01/28 5058 9
목록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4시간내에 달린 댓글

댓글